소설리스트

절대타경-663화 (663/712)

663화. 허칠안이 소생하다 (1)

“광효, 하반기에 기댈 수 있는 건 자네 혼사밖에 없네.”

송정풍이 개탄했다.

본래 그는 경찰 해가 지나면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할 줄 알았다. 경찰은 그저 시작일 뿐이라는 걸 누가 생각했겠는가. 올해에는 너무 많은 일이 발생했다. 연초에 운주 사건, 연중에 회왕 백성 대량 학살 사건 그리고 추수 후의 이 격동.

송정풍은 활짝 열린 대문을 넘어 정원 안에 시들어 누레진 나뭇잎에 시선을 두더니 중얼거렸다.

“다사다난한 시기구나, 정말이지 다사다난한 시기야. 광효, 우리 형제 둘은 이겨낼 것이네.”

점점 더 과묵해지던 주광효는 ‘응’하고 소리 내었다.

그들이 막 이야기를 나누는데 연무장에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조 금라가 우리를 소환하는군.”

두 사람은 즉시 춘풍당을 나서 이옥춘과 함께 관아 내의 모든 야경꾼을 따라 연무장을 향해 집결하였다.

송정풍은 연무장에 이르러 한번 훑어본 뒤 경악하였다. 그는 이곳에 집결한 야경꾼이 예상보다 훨씬 많다는 걸 발견하였다. 휴가를 보내는 자들 모두 소집되어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는 곁에 있는 주광효와 이옥춘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 역시 같은 의구심이 들었다.

세 사람은 말없이 대열에 들어갔고, 이각 가까이 기다리니 갑자기 다급하면서도 가지런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보니 반짝이는 칼과 갑옷을 찬 금군 무리였다. 그 수가 매우 많았다. 대략 눈대중했을 때 적어도 오백 명은 되었다.

‘금군?’

송정풍은 남몰래 눈살을 찌푸렸다.

금군 대오가 세차게 밀려와 야경꾼을 겹겹이 둘러쌌으나 다음 동작을 취하지는 않았다.

야경꾼들이 당혹스러워하는데 먼 곳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몇 사람이 보였다.

중간에는 위엄이 넘치는 중년 남자가 비포를 입고 있었다. 그의 좌측에는 무표정의 조 금라가 있었다. 우측의 그자는 주양이었으며 주양 옆에는 주성주였다.

이옥춘과 송정풍 그리고 주광효는 둘째 치더라도, 다른 야경꾼들도 이 부자를 보자마자 안색이 변했다.

원웅은 가까이 다가와 두 손을 등 뒤에 뒷짐 지고 모든 야경꾼 앞에 이르렀다.

조 금라는 눈앞의 부하들을 훑어보더니 딱히 별다른 표정 없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의 명을 받들어 오늘부터 원 도어사가 위 공의 직무를 대신하여 야경꾼 관아를 관리하게 되었다. 어서 대인께 인사를 드리지 않고 뭐하느냐.”

야경꾼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 쳐다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목소리를 낮추고 의논하였다.

“개소리, 그가 무슨 근거로 야경꾼을 관리하나?”

어느 은라가 중얼거렸다.

“권력 있는 자에게 아부하며 빌붙는 소인일 뿐인데 야경꾼을 관장할 자격이 있는가?”

“위 공의 위치를 대신한다고 하면, 좌도어사 류홍 류 대인이어야지.”

원웅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조 금라는 새로 부임한 관리인 상급자를 쳐다보더니 가슴이 철렁하여 소리쳤다.

“전부 입 닥쳐라! 너희 반란을 일으키고 싶은 것이냐?”

그는 부하들이 상대의 안색을 살피고 그 의중을 헤아릴 줄 모르는 데에 분노하였다. 새로 부임한 관리는 의욕이 대단하여 반대 의견을 주장하는 자들을 우선 쳤다. 복종하지도 통제되지도 않을수록 본보기로 삼기에 쉬웠다. 하물며 원웅은 이번에 ‘사건 조사’ 때문에 왔다.

조 금라 역시 위연의 심복으로 금라들은 전부 위연의 심복이었다. 주양도 그러했다.

그가 ‘연좌’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4품 무사의 수련 경지 덕분이었다.

대봉, 나아가 구주의 어떠한 세력이든 4품은 중·고위층 인물이었다. 더욱이 무사는 공격력이 강하고 방어력이 높으며 파괴력이 셌다.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조정은 4품 무사에게 통상적으로 회유책을 썼다.

원웅은 체면을 유지할 4품 금라가 많이 필요했기에 그를 복종시켰다.

조 금라가 황명을 거역할 수 없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가 이곳을 지키면 어쨌거나 야경꾼 관아 전부를 주양에게 넘기는 것보다는 나았다.

주양은 보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야경꾼에 다시 왔기에 그와는 달랐다.

위 공이 목숨을 바친 이상,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야경꾼은 위 공 절반의 심혈이었다. 그는 적어도 위 공을 대신해 지킬 수 있었다.

원웅은 야경꾼의 비난을 못 들은 체하고선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오시, 민부 육이씨가 오문 앞에서 북을 두드려 고발하였다. 위연이 무자비하게 재물을 착취하고 선량한 백성을 모함하였으며 야경꾼이 재물을 갈취하고 그녀의 아들 며느리를 더럽혔다고 고발하였다. 폐하께서는 진노하시며 내게 야경꾼 관아를 인수하여 사악한 풍조를 숙청하고 권리로 사욕을 도모한 자들을 처벌하라고 특별히 명하셨다.”

야경꾼들은 육이씨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에 관해 욕을 내뱉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위 공이 무자비하게 재물을 착취했다니?’

관아 전체에 위 공이 가장 청렴결백하고 공정하다는 걸 누가 모르는가. 일개 민부가 감히 위 공이 재물을 착취하고 그녀의 가족들을 박해했다고 고발하다니. 생각은 하지 않는 건가? 그녀에게 자격이 있는가?

위 공이 정말 재물을 착취하고자 했다고 치자. 설마 보통 하급 벼슬아치처럼 백성을 갈취하러 갔겠는가?

동라, 은라들은 멍청하지 않았기에 즉시 누군가 위 공을 모함하려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 사람이 아마 눈앞에 있는 우도어사 원웅일 것이었다.

그는 위 공의 정적이었다.

“시끄럽다!”

원웅이 담담하게 말했다.

조 금라가 소리를 내며 호통을 치려던 차에 주양이 한발 먼저 발을 내디뎠다. 4품 고수의 기기가 세차게 치솟았다. 삽시간에 자리에 있는 야경꾼들은 제대로 서지 못하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갑자기 멎었다.

원웅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리를 높여 말했다.

“본관은 이미 기밀 보고를 입수하였다. 법을 어기고 뇌물을 받은 놈들에게 절대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이며 이어 이름을 부르는 자는 대열에서 나오거라.”

“장동량.”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장동량!”

역시나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야경꾼은 소리 없는 반항을 했다.

원웅은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옆에 있는 주양을 힐끗 쳐다보았다.

주양은 무슨 뜻인지 깨달았고, 그의 시선은 이미 무리 속의 어느 은라를 바짝 좇았다. 그가 팔을 벌리고 손바닥으로 그자를 겨누었다.

굵직한 사각 얼굴의 한 사나이가 군중 사이를 속절없이 ‘비집고’ 나왔다. 그의 두 발은 땅에 박혀 있었고, 발끝이 질질 끌려 두 갈래의 흔적이 남았다. 그는 모든 힘을 다해 대항했으나 어쩔 수 없이 끌려 나오는 자신을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원웅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본관은 명을 받들어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다. 명령을 어기는 건 곧 성지를 거역하는 것과 다름없이 죽을죄다!”

조 금라는 주양이 다시 앞다투어 나설까 봐 두려웠기에 재빨리 장동량을 제치고 공수했다.

“대인, 이 우악스러운 사내가 본의 아니게 무례한 짓을 하였으니 사정을 봐주시지요.”

장동량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목덜미의 핏줄이 갑자기 곤두섰다. 그는 나지막이 으르렁댔다.

“이 몸은 복종하지 않습니다. 조 금라, 그에게 구걸할 필요 없습니다. 만약 위 공께서 아직 계셨다면 원웅이 감히 관아에 한 발짝이라도 발을 들였겠습니까? 다른 금라가 아직 있었다면 주양이 돌아왔을까요? 저는 그저 그날 우리 대장을 따라 함께 출정하지 않은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가 위 공과 함께 정산성에서 전사할 수 있었던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어쨌거나 자기 편의 손에 죽는 저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원웅이 담담하게 말했다.

“주 대인, 야경꾼은 관직이 있는 몸이니 살리고 죽이며 주고 빼앗는 건 전부 폐하께서 결정해야 하네.”

주양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헤’하고 말했다.

“이해했습니다.”

그는 기기를 잡아끌어 장동량을 끌어당긴 뒤 한 주먹으로 이 은라의 가슴을 찧었다. 퍽! 장동량의 옷이 바로 찢어졌다.

모든 이들은 흉골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장동량은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은 아직 붙어 있었다.

새로 부임한 의욕 넘치는 관리는 첫 번째로 가련한 벌레의 몸을 불태웠다.

쟁!

칼을 뽑는 소리가 전해졌다. 어떤 은라가 칼을 뽑았다.

쟁쟁쟁!

주위의 금군들이 잇따라 칼을 뽑아 언제든지 야경꾼을 제압할 준비를 하였다.

주양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 발 내디뎌 4품 무사의 몸으로 모든 야경꾼을 무력으로 위협하였다.

“모두 그만!”

조 금라는 크게 호통쳤다.

“자네들 반란을 일으키고 싶은 겐가? 머리가 필요 없는가?”

“조 금라.”

“대장…….”

야경꾼들의 반응은 매우 격렬했다.

“대장은 설마 안 보이시는 겁니까? 그는 저희를 숙청하는 겁니다. 우리가 죄가 있든 없든 좋은 결말은 없을 거라고요!”

“조 금라, 위 공께서 계시지 않으니 관아에서 형제들을 위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건 대장뿐입니다. 이런 원웅의 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장, 형제들이 모함당하는 걸 냉정하게 지켜볼 겁니까?”

‘적어도 자네들은 살 수 있잖나…….’

조 금라는 이마에 핏줄이 선 채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칼-을-거-두-게!”

야경꾼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누군가는 분노했으며 누군가는 달가워하지 않았고 누군가는 비통해했으나 다들 여전히 칼을 거두려 하지 않았다.

원웅은 이 모습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의 가족들 모두 경성에 있겠지.”

악랄한 놈!

야경꾼의 임용 조건은 조상 3대 이상이 전부 경성 인사로 가문이 결백한 것이었다.

왜? 바로 힘으로 금령을 범하는 이런 무사들을 방비하기 위함이었다.

위 공이 전사하고, 다른 금라들은 전사하거나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저항할 마음이 있었지만, 뒤를 봐주는 이가 없었다.

“만약 허칠안이 아직 있었다면…….”

누군가 목소리를 낮추고 중얼거렸다.

모든 야경꾼들이 순간 아련해지면서 칼을 휘두르며 요패를 베고 벼슬아치 노릇을 하지 않는 그 동료를 저도 모르게 떠올렸다. 그랬다. 만약 허 은라가 아직 있었다면! 그에 대한 위 공의 애정과 그의 물렁물렁하지 않은 강직한 성격을 감안했을 때, 주양과 원웅이 감히 이렇게 날뛰겠는가?

원웅 역시 듣더니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주성주의 표정이 확연히 일그러졌다. 허칠안, 애당초 그 비열한 동라가 그의 앞길을 망친 원흉이었다.

그는 이 자를 뼈에 사무치도록 미워하였는데 고작 1년 사이에 세상은 이미 변모하였다. 그 비천한 동라는 이미 따라잡을 수 없는 거물이 되었다. 설령 허칠안이 폐하의 미움을 샀다고 해도 여전히 그가 관여하고 보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이 복수의 불길이 마음속에서 불타올랐으나 털어놓을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복수의 불길은 매일 그의 영혼을 불태웠고 그의 심성은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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