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9화. 뭐라고? 허 은라가 검 하나로 적군 수십만을 베었다니? (2)
이내 허칠안 홀로 염국·강국 양국을 막아낸 사적이 ‘뜻 있는 사람’의 추진에 힘입어 경관 및 시정 백성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내성 어느 고급 주루에 경관 한 무리가 떼를 지어 들어왔다.
그들이 별실에 들어가 술과 안주를 주문하고 제멋대로 떠들던 중, 한 경관이 몇 잔 기울이더니 말했다.
“방금 병부에 있는 한 친구한테서 들은 소식인데 그저께 염국·강국 두 나라 연합군이 팔만 정예병을 집결하여 옥양관을 공격하였다네.”
동료들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상주가 함락되었는가?”
“아니, 아니.”
그 경관은 손사래 치더니 사람들을 둘러보며 생생하게 말했다.
“마침 허 은라가 자리에 있었는데 홀로 칼을 들고 적군 이만여 명을 죽이고, 강국 통솔자를 죽이고 그 염군조차도 베어버렸네.”
“헛소리. 술 좀 적당히 먹고 안주나 많이 먹게. 전부 술주정이구먼.”
동료들은 믿지 않았다.
“이 일은 백번 천번 사실이야. 어차피 이렇게 큰일은 자네들이 조만간 알게 될 텐데 내가 자네들을 속여서 뭐 하는가. 소고도홍웅의 명성이 값어치가 없단 말인가?”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빨리 좀 말해보게…….”
별실 밖, 시중을 들던 심부름꾼은 똑똑히 듣더니 즉시 아래층으로 뛰어갔다. 그는 흥분하여 얼굴이 귀밑까지 빨개져 주인을 찾아갔다.
“주인님, 주인님, 큰일 났어요.”
계산대 뒤에 있던 주인의 안색이 변했다.
“싸우는 손님이 있느냐?”
심부름꾼은 연거푸 손사래 치더니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큰 소리로 말했다.
“염국·강국 양국 팔만 연합군이 변방을 공격하였는데, 허, 허 은라 한 사람에게 말끔하게 죽임을 당했대요! 염군조차 죽었어요!”
떠들썩하던 주루 대당이 순간 고요해졌다.
* * *
어느 기루.
“들었는가? 허 은라가 상주 변방에서 홀로 염국·강국 두 나라의 십만 대군을 막아서서 모조리 전멸시켰다네.”
“허 은라는 경성에 있는 거 아니었나?”
“누가 그가 경성에 있다고 알려주었는가. 이건 조정의 기밀 정보네. 내 친척 하나가 조정에서 벼슬을 하고 있어서 이 일을 안 걸세. 무려 십만 대군이네, 여러분. 시체가 성벽보다 높이 쌓였다더군.”
* * *
골목 어귀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고함쳤다.
“여러분, 내 얘기를 들어보게. 내가 이제 사람 마음을 흥분시키는 큰일을 얘기할 걸세. 자네들이 믿지 않을 수는 있지만, 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사실임을 장담할 수 있어!”
“무슨 일인가?”
행인들은 잇따라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였다.
고함치던 자가 선포하였다.
“어제 허 은라가 옥양관에서 홀로 무신교 십오만 대군을 막아섰네. 칼 한 번에 십만, 칼을 열다섯 번 휘두른 후 적군이 전부 사라졌다네.”
“이 말이 사실인가?”
어떤 행인은 믿지 않았다.
“나도 들었네. 하지만 듣자 하니 십오만이 아니라 이십만 대군이라던데. 자네 허 은라의 공적을 먹칠하지 말게.”
“엇, 이십오만이 아닌가?”
“이거 유언비어지?”
“무슨 유언비어인가. 허 은라라면 틀림없이 해낼 수 있었네. 자네들 잊었는가? 작년에 운주에서 허 은라가 홀로 반란군 이만을 막아섰고 혼자만의 힘으로 반란을 평정했네.”
인파 속, 사람들이 끊임없이 소리를 냈다.
소식이 1을 전하면 10이 되고, 10을 전하면 100이 되어 경성 백성들 사이에서 재빠르게 퍼져나갔다.
경성 백성들은 기쁜 마음으로 소식을 들었고, ‘역시 그다’라는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는 신바람이 나 대봉을 하늘이 도왔다고 여겼다.
누군가는 우거지상을 한 채, 계속 이렇게 가다간 인간 세상이 허 은라를 용납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그가 만약 하늘로 가 버리면 대봉은 이 손해를 감내할 수 없었다.
* * *
태자는 황궁에서 심복 관원으로부터 첫 번째로 소식을 접하곤 넋을 잃고 우두커니 있었다. 그는 위연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소식을 접한 뒤 그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 임안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태자는 임안과 허칠안이 서로 감정이 있는 것을 복비 사건 때 이미 눈치챘다. 더욱이 여동생은 사람 마음이 흉악한지 모르는 만큼, 말을 해주어야 했다.
태자는 허칠안이 보여주는 능력이 점점 더 강해짐에 따라 마음이 무척 복잡해졌다. 이 소식은 한편으로는 그가 부황의 미움을 사면서 죽을 운명에 놓였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정말 쓰임새가 좋았다. 태자는 허씨를 휘하로 끌어들이면 자신의 황위가 더 견고해질 거라는 생각까지 했다.
다른 건 차치하고, 수련 경지가 뛰어난 전봉 고수가 만약 자신을 위해 목숨 걸고 충성을 다한다면 적어도 그는 안전하고 무탈할 터였다.
지금 태자는 이 사실을 점점 더 인정했다.
그는 동궁을 나와 아주 빠르게 거리가 멀지 않은 소음원에 이르렀다. 그는 시위에게 통지한 뒤, 화원에서 붉은 치마를 입은 여동생을 보았다.
그녀의 하얀 얼굴은 동글반반하며 이목구비는 조각처럼 정교하였다. 촉촉하고 맑은 도화안은 언제나 애정 어린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매력적이면서도 요사스럽지 않았으며, 돌아볼 때는 고혹적이면서도 경박하지 않았다.
태자는 남매로서 임안의 아름다운 미모에 타고난 면역력을 지녔다. 하지만 그는 이 순간 임안의 아름다운 미모, 정제된 미는 정말 대단히 훌륭한 무기라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태자 오라버니가 웬일로 시간이 나서 저한테 왔나요?”
임안은 정자에 앉아 가을 경치를 감상하면서 고개를 돌려 생긋 웃었다. 애교가 철철 넘쳤다.
태자는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가 시원하게 웃었다.
“누이와 큰일을 공유하려고 왔지.”
그는 옥양관에서의 허칠안의 쾌거를 한바탕 얘기하였다.
그가 잠시 멈추더니 상대를 떠보았다.
“임안, 허칠안은 정말 보기 드문 출중한 인재다. 너는 그를 어떻게 생각하니?”
비록 그의 말에는 여동생을 이용해 사람의 마음을 구슬리겠다는 의도가 있었지만, 명색이 태자로서 이는 기본적인 조작이었다.
임안은 멍해졌고, 예쁜 계란형 얼굴에는 한참 동안 표정이 없었다.
한참 뒤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가 동북 변방에 갔군요…….”
“그렇단다. 홀로 진영을 뚫고 만 명을 베어 죽임으로써 오만 적군이 놀라서 물러났다. 대봉 사서에서 보기 드문 쾌거야.”
태자는 흥분해서 말했다.
임안은 그저 마음이 아팠다. 그는 뭐 때문에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변방으로 달려가 몸소 병사들의 앞에 서서 목숨 걸고 진영을 뚫은 것인가?
틀림없이 위연의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당신이 한 사람을 좋아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점은, 그가 가져다주는 영예와 영광이 아니라 언제나 그 사람의 희노애락이었다.
물론 임안은 동시에 미친 듯이 쿵쿵 뛰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그 남자는 이미 천궁(天宮)을 뛰어넘어 천계 공주를 데리고 속세에 내려올 능력을 갖추었다.
* * *
어도위가 있는 군사(軍舍) 안, 허평지는 동료와 상급자들에게 축하를 받았다.
“허 대인, 축하하네. 허씨 집안은 정말 충성스럽고 절개가 곧군. 신년이 군대를 따라 출정하고 칠안은 홀로 변방을 지켜 바로 큰 공을 세웠구먼.”
“나는 아무래도 허 대인의 안목이 좋다고 말하고 싶네. 허 은라가 자질이 타고난 무도 기재라는 걸 진작에 알아본 거 아닌가.”
“그러네, 그러네. 전에 내가 사람 구실 못 한다고 남몰래 욕했어서 다행이야. 다들 못 들었잖은가! 하하하!”
‘이 말은 할 필요 없었는데, 이 저속한 무사 놈아…….’
허평지는 복잡한 심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응대했다.
* * *
장포를 입은 왕정문은 관성루 팔괘대에 올랐다. 기억하기로 그가 관성루 꼭대기에 오른 횟수는 다섯 번을 넘지 않았다.
그가 감정을 만난 횟수 역시 다섯 번을 넘지 않았다. 그는 대봉의 수호신이자 500년간 인간 세상을 방관한 신선 인물이 분명히 속세에 있으면서 속세와 관계를 끊었음을 알아차렸다.
왕정문이 조정에 들어와 관직을 맡은 이래로 감정이 나서서 정무에 관여한 걸 진짜로 본 건, 지난번에 원경제에게 죄기소를 쓰라고 압박하였을 때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왕정문은 탄식하더니 말했다.
“영도(令徒)님…… 건강은 무탈하십니까?”
멀지 않은 곳에서 양천환이 쭈그리고 앉아 두 사람을 등진 채 끊임없이 구시렁댔다. 왕정문은 어렴풋이 몇 글자를 들었다.
“나는 질투하지 않았다, 나는 질투하지 않았어……. 가증스러운 허칠안, 가증스러운 허칠안, 가증스러운 허칠안…….”
“상대할 필요 없습니다.”
범속을 초월한 풍채의 감정은 말문이 막힌 듯했다.
왕정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당보 두 건에 관해 얘기하고는 읍했다.
“감정께서 제게 가르쳐주십시오.”
앞의 당보는 위연의 전사였고, 뒤의 당보는 군량과 마초에 관한 일이었다.
감정은 그를 등진 채 손에 든 술잔을 비비며 가볍게 웃었다.
“재상 대인께서는 대봉에서 누가 대군 십만의 군량미를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 *
세찬 가을바람이 휙휙 소리를 내며 팔괘대를 휘감았다.
왕 재상의 몸이 바람에 휘청이는 듯했다.
한참 지난 뒤, 그는 입을 열고 목에서 허스키한 목소리를 냈다.
“회왕의 백성 학살 사건에 그도 책임이 있습니다, 맞지요?”
감정은 대답하지 않고 침묵으로 묵인했다.
반백이 넘은 노인의 얼굴이 조금씩 창백해졌고, 눈동자는 사그라들었다.
“감정께서는 왜 지금껏 막지 않습니까?”
왕 재상의 목소리는 쉬었다.
“이 강산은 그의 것 아닙니까?”
감정이 웃으며 반문했다.
왕 재상은 대답할 말이 없었고, 눈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심경과 당혹스러움이 짙게 배었다. 강산이 바로 그자의 것이기에 더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왕 재상은 관성루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 이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 여전히 자신의 추측에 회의적인 태도를 지녔다.
감정은 계속해서 덧붙였다.
“하지만 이 강산은 일반 백성의 것이기도 하지요.”
그는 이 말을 마치더니 더 이상 입을 떼지 않았다.
왕 재상은 팔괘대 가장자리로 걸어가 황궁 방향을 조망하였다. 눈빛에는 비통, 분노, 당혹, 슬픔, 실망이 가득했다.
‘폐하, 무슨 까닭으로 반란을 일으키십니까?!’
왕 재상은 다시 읍하더니 이번에는 묻지 않고 돌아서서 떠났다.
* * *
허칠안은 관성루 7층 침실 안에서 초주검이 되어 침상 옆에 누워 있었다. 백의 술사는 마침 그에게 약을 갈아주던 참이었다.
송경은 허 공자를 흠모하는 백의 술사를 데리고 옆에서 지켜보았다.
“아, 이거 상처가 이렇게 심하다니.”
“이렇게 심하게 다쳤다면 설령 완치되더라도 지병이 될 걸세.”
“우리가 허 공자에게 신체를 바꿔주는 게 낫겠어. 내 생각에 아주 재미있을 거 같네만.”
“그런 뒤 송 사형이 생물 연금술 실험을 하도록 남겨주고?”
“허 공자는 평생 연금술에 사로잡혀 있으니 틀림없이 연금술을 위해 헌신하길 원할 걸세.”
백의 술사들은 서로 속닥거렸다.
‘너희들 마귀니?!’
이묘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하마터면 검을 들고 쫓아갈 뻔했다.
송경은 손을 아래로 내려 사제들의 수다를 막더니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헛소리, 어떻게 허 공자의 몸을 실험하는 데 쓸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적어도 그의 의견을 물어봐야 하네. 이건 기본적인 예의야.”
“물러가시오!”
이묘진은 침을 뱉더니 밉살스러운 술사들을 내쫓았다.
“감정의 제자 중에 정상적인 놈이 없군.”
그녀는 탁자 옆의 저채미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저채미는 이 말을 듣더니 아주 깊이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이 직접 가르침을 전수하신 사형, 사제들 중에 내가 제일 똑똑하고 지혜롭고 정상적이야.”
‘감히 묻겠는데 어디서 난 자신감이야?’
이묘진은 그녀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