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3화. 무적
아리백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분노하여 소리쳤다.
“대장군이 이 자식의 손에 죽었다. 크나큰 수치다. 피맺힌 깊은 원한은 복수하지 않을 수 없지.”
보병 이천 명은 대단한 기세로 고함쳤다.
“크나큰 수치였으니 보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리백은 이 모습을 보더니 더는 말하지 않고, 말을 탄 채 돌격하였다!
보병 이천 명은 드높은 기세로 그 뒤를 바짝 따랐다. 원한과 군공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기와 교차되었다.
성벽 위에서 장개태 등의 장수는 안색이 좀 변했다.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통제할 수 없이 걱정스러운 감정이 솟구쳤다.
“나는 그를 도우러 가야겠네. 그 혼자서 진영을 뚫게 해서는 안 돼.”
장개태는 기세를 몰아 성벽 위로 올라갔다.
그의 걱정은 일리가 있었다.
무신교 군대의 군급 제도는 대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0명이 한 오(伍)로 우두머리는 반드시 연정경이어야 했다.
열 오(伍)가 한 대(隊)로 백부장은 반드시 연기경이어야 했다. 열 대(對)는 한 대대로, 대대장이 되면 병종의 차이와 군공의 많고 적음에 따라 안배되었다.
화기 진영 같은 부대는 앞장설 병사가 필요하지 않기에 대대장의 수련 경지는 통상적으로 연신경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그 최대한이 동피철골이었다.
기병 진영과 보병 진영의 고급 장수야말로 수련 경지를 중시했다. 앞장서는 병사가 희생되기 가장 쉬웠다.
그중에도 특히 보병이 가장 위험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아리백은 대대장이지만, 수련 경지는 착실한 5품 화경이었다.
허칠안이 마주한 것이 어떠한 형태의 포위 공격인지 어떠한 고수들인지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주변에 그의 살육으로 두려움에 떨던 첫 번째 공성 병사들은 틀림없이 이 기회를 빌려 보복하려들 터였다. 그들은 허칠안의 머리를 쟁취해 군공을 세우려할 것이었다.
“자네 가면 안 되네!”
이묘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충동적인 무사를 막아서고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현재 동등한 장군의 신분이었다.
“자네가 간 뒤 노이혁가가 고수를 이끌고 성을 공격하면 어떡하는가? 나는 금단을 다 써서 자네를 묶어 둘 수 없네. 자네는 결국 돌아와서 지원해야 할 걸세. 그리고 적군에게는 움직이지 않은 만 명 보병진 세 대오가 더 있네. 그리고 움직이지 않은 기병도 더 있지. 자네가 가면 노이혁가는 손해가 막심하더라도 필사적으로 싸워 자네를 벨 거야.”
허칠안이 홀로 진영을 뚫는 것, 그 자체가 본래 죽음을 자초하는 행위였다.
염국과 강국 연합군은 대봉 고수가 성에서 내려오길 간절히 바랄 테지만, 원해도 이룰 수 없었다. 그들은 공성의 번거로움을 던 셈이었다.
이묘진은 계속해서 말했다.
“허칠안이 왜 홀로 진영을 뚫어야 하는가? 자네들이 성 아래로 내려갈 수 있도록? 아래쪽의 적군을 견제하고 우리의 압박을 줄여주기 위해, 결국 사상자를 줄이기 위해서야. 그리고 노이혁가는 그의 비장의 패를 두려워해. 군대가 그의 기력을 다 쓰게 한 뒤 그가 비장의 패를 꺼내도록 압박할 것이네. 그가 진영을 뚫어야만 상대에게 두려움을 심어줄 수 있네. 이해했는가? 그는 자신의 안위를 걸고 자네들의 피해를 줄이고 있는 거라고. 의지와 기개로만 일을 처리하지 말게.”
이묘진은 잠시 멈칫하더니 가냘프게 말했다.
“현재 수비군은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적을 무너뜨리는 줄 알고 사기가 진작되었네. 자네가 도와주러 간다고 해도 수비군들이 보기에는 무적의 모습인 허칠안이 무너질 걸세.”
먼 곳에서 달려오던 장수가 이 말을 듣더니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장개태를 따라 성 아래로 내려가 전투를 돕겠다는 충동이 사라졌다. 이묘진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핵심을 찔렀다.
이묘진은 모든 장수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자네들은 안심하고 성을 지키면 되네. 그가 기진맥진해지면 자연스럽게 돌아올 걸세. 그때 가면 자네들에게 의지해 노이혁가 등의 고수를 상대하고자 할 거야.”
장개태는 잠자코 있다가 천천히 주위의 병사들을 훑어보았다. 그들은 극도로 흥분했고, 투지가 불타올랐다. 성벽 아래의 그자와 같이 싸우고자 하는 열정이 불타올랐다.
이 무적의 기세가 일단 무너지면 재건하고 싶어도 하늘의 별 따기였다.
장개태는 이묘진에게 설득당했다.
‘반드시 돌아와야 합니다…….’
장수 몇몇은 고개를 돌려 금빛 찬란한 형체를 쳐다보았다. 그는 홀로 천군만마를 향해 돌격했다.
* * *
허칠안이 미친 듯이 달리던 중 태평도를 내던지자, 어두운 금빛의 도광이 선으로 변해 단숨에 열여덟 명을 베더니 결국에는 연신경 백부장이 휘두르는 칼에 날아갔다.
태평도는 한 바퀴 선회하더니 결국에는 허칠안의 손으로 돌아왔다. 그는 재빨리 수십 보 돌격하여 훌쩍 도약하더니 선회하는 나선형 도광으로 변하여 병사 이천 명을 맞이했다.
쉭쉭쉭!
땅땅땅!
손에 무거운 방패를 든 병사들은 몸이 철제 방패와 함께 갈렸다. 허칠안은 난폭하고 억지스러운 태도로 핏빛 길을 닦으며 적군의 중심부로 쳐들어갔다.
그런 뒤 그는 몸을 돌려 칼을 휘둘러 원을 만들었고, 잔잔한 물결 형태의 도광이 흩어지면서 몸뚱이를 베어 죽였다. 그는 사람이 없는 지대로 도약했다.
강국 병사들은 재빨리 흩어졌다.
아리백은 말머리를 돌려 군마에 올라타 돌격하였다. 맥도의 칼날이 아래를 향했다. 그는 돌격하는 말의 기세를 빌려 매섭게 맥도를 휘둘렀다.
땅!
쟁쟁한 소리 사이로 맥도가 두 동강 났다. 칼 반토막이 하늘로 높이 솟구쳤다.
백부장 둘이 기습하였다. 한 사람은 긴 창을 손에 쥐고 허칠안의 뒤를 곧장 찔렀다. 한 사람은 정면으로 돌격하여 그의 두 눈에 칼을 휘둘렀다.
각도는 교활했다.
설령 동피철골이라고 해도 정말 빈틈이 없지는 않았다. 그 역시 언제나 온몸 위아래로 방어에 다소 취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었다.
허칠안은 한 발로 창끝을 밟았다. 그는 이를 축으로 하여 몸을 돌려 한 발로 백부장의 머리를 목에서부터 걷어찼다. 그런 뒤 그는 기세를 빌려 태평도를 힘껏 내리쳤다.
도기가 번쩍하다가 사라졌다.
백부장의 몸이 두 동강 났고, 창자와 내장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그의 뒤에 있던 여러 병사들의 몸이 동시에 갈라졌다.
이어서 조수처럼 병사들이 몰려들어 함부로 난도질해댔다. 번쩍이는 금빛과 쟁쟁한 칼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오장(伍長) 세 명이 일반 병사들 사이에 숨었다가 허칠안이 숨을 돌리는 틈을 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한 사람은 그의 양쪽 발을 붙잡았으며 한 사람은 그의 몸을 감싸 안았다. 또한 한 사람은 칼을 쥔 그의 오른팔을 잡았다.
이 순간 위험에 관한 무사의 예지가 효력을 잃은 듯했다. 위험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수백 자루의 칼, 수십 자루의 긴 창 그리고 갑작스레 날아오는 화살. 주변이 전부 적이었다.
허칠안은 무궁무진한 위험 때문에 오장 셋이 나설 거라는 점을 사전에 예측할 수 없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발목이 잡혔다.
후후후…….
십여 명의 병사들이 밧줄로 허칠안을 잡았다. 그들은 그의 목덜미를 묶고 양손을 묶었다.
더 많은 병사들이 밧줄로 허칠안을 옭아맸다.
이 밧줄둘은 전부 아주 강인한 재료로 엮어 만든 것이었다. 주로 공성차를 잡아끌고 화포를 끌어 성벽 위로 오르는 등의 중형 작업에 쓰였다.
설령 5품 화경이라고 해도 이런 밧줄 십여 줄을 끊기란 불가능했다.
하물며 허칠안은 지금 목과 두 손이 전부 묶인 상태였다.
“태평!”
허칠안은 입이 자유로웠다.
태평도는 쉭쉭 소리를 내며 비행하면서 밧줄을 끊고자 했다. 하지만 이내 한 오장이 달려들었고 뒤이어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연달아 병사들은 자신의 몸뚱어리로 이 절세신병을 짓눌렀다.
“그의 머리를 비틀어라!”
한 백부장이 소리쳤다.
병사들은 잇따라 칼을 버리고 힘을 합쳐 밧줄을 잡아당겼다. 밧줄마다 수십 명의 병사들이 얽혀 있었다.
전쟁을 여러 차례 겪은 보병들은 고품 무사 한 명을 어떻게 포위하고 죽이는지에 관해 경험이 풍부했다.
허칠안의 목이 어쩔 수 없이 뒤로 젖혀졌다. 근육이 돌출되며 팽창했다.
그는 기기를 운용했다. 밧줄 한쪽에 수십 명의 건장한 병사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그와 힘을 겨루었다.
이 순간 허칠안은 밧줄 세 개 위에서 백 명이 넘는 건장한 병사와 힘을 겨루었다.
이를 부득부득 갈던 병사들이 갑자기 얼굴에 핏줄을 세우며 온 힘을 다했다. 하지만 그들이 설령 이렇게 버틴다고 해도 두 발은 조금씩 앞으로 미끄러졌다.
그들은 너무 무서웠다.
이 남자의 힘이 너무 무시무시했다.
이때 아리백은 패도 한 자루를 빨아들여 드높은 기기를 들이부었다. 그는 모든 병사와 힘을 겨루는 대봉의 은라를 주시하며 냉소를 지었다.
“개자식, 이렇게 많은 형제를 죽이다니. 너 허씨가 위연의 심복이라던데 그를 따라 청의를 입은 건가? 이 몸이 지금 이 칼로 너를 거세하고 네 금신을 부숴 그처럼 종자 없는 환관으로 만들어주겠다.”
허칠안의 두 눈이 순식간에 벌게졌다.
그는 나지막이 포효하였다. 그의 목 둘레가 더 굵어졌다. 몸의 근육이 이에 따라 부풀면서 청의가 팽팽해지고 세찬 기기를 쏟아 냈다.
뻥뻥뻥……. 밧줄 세 개가 끊어지더니 병사들이 비틀거리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윽고 청의가 보병들의 포위망을 뚫었고, 사람 형체가 내던져졌다.
아리백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허칠안의 면전에 주먹을 휘둘렀다. 동시에 한 발로 걷어차 힘껏 반격하였다.
하지만 그가 어쩔 수 없는 건 금신의 견고함이었다.
“너 역시 그를 모욕한다고?”
허칠안은 그의 머리를 떼어 내어 손에 쥐었다.
아리백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술을 살짝 깨문 채였다. 그는 죽기 전에 용서를 구하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욕을 하려는 것 같기도 했으나 허칠안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적진으로 돌격한 대대장 아리백이 전사하였다!
죽고 다친 절반의 돌격 병사들은 불안에 떨며 한시도 버티기 힘들어했다. 그들은 조금의 투지도 남지 않아 허둥지둥 도망쳤다.
허 은라는 칼을 짚은 채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의 뒤, 성벽 위는 대봉 병사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허 은라, 무적!”
“허 은라, 무적!”
“허 은라, 무적…….”
그들은 방금 허칠안이 밧줄에 얽매인 걸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마음이 쿵 하고 가라앉았더랬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 몹시 긴장했지만 지금은 아주 상쾌하였다.
역시 그는 허 은라다웠으며 또 대봉의 영웅다웠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무적이었다.
이 순간 성벽 위, 몇 군데에서 소수의 적군이 방어선을 돌파한 걸 제외하고 대부분의 구역은 안정감 있게 수비하고 있었다.
허칠안과 수비군들은 조화를 이룬 듯했다. 전방에서 진영을 뚫는 자가 쓰러지지 않으니 후방은 태산처럼 굳건하였다.
죽어도 굳건히 수비할 것이었다.
허 은라가 홀로 대군을 맞이했는데 그들이 무슨 이유로 죽음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 * *
“훌륭해!”
모든 장수들은 지휘하면서 한편으로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복의 미소를 지었다.
‘같은 4품인데 이렇게 오랫동안 진영을 뚫으며 싸우다니. 만약 나였다면 아마 기기를 절반 넘게 써 버렸겠지…….’
장개태는 속으로 감개무량하다가 이내 멍해졌다. 경험이 풍부한 4품인 그조차 이러했다.
“돌아올 때가 됐는데, 그가 돌아올 때가 되었어.”
장개태는 다급한 어조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설사 허칠안의 천부적인 자질이 비범하다고 해도 기기의 강도가 경험이 풍부한 4품보다 강할 리가 없었다.
다시 말해서 허칠안은 지금 기기를 절반 이상 소모하였고 돌아올 때가 되었다. 돌아오지 않으면 그는 노이혁가가 이끄는 대군, 고수에게 얽매여 산 채로 고통을 받다 죽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