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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652화 (652/712)

652화. 사나이는 아무도 없는가?

여명, 아침 햇살 첫 줄기가 황량한 평지 위, 피로 물든 성벽 위를 비추었다.

둥둥둥…….

울적하면서도 우렁찬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처량한 나팔 소리가 울렸다. 염국과 강국 양국의 보병은 새까만 개미 떼처럼 다시 성을 공격하였다.

노이혁가는 말 등 위에 앉았다.

대봉 수비병들은 깜짝 놀라 일어나 무기를 쥐고 성벽 위로 올랐다.

성가퀴에 기대어 쉬던 병사들은 잠을 자면서도 칼을 쥐고 있었다. 이 순간 그들은 잇따라 깨어나 피곤한 얼굴로 눈에서 살의를 불태웠다.

옹성 안, 장개태는 패도를 들고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뛰쳐나갔다.

맞은편에 성벽 위에 서 있는 청의가 보였다.

그 순간, 그는 하마터면 깜짝 놀라 소리칠 뻔했다. 기억 속의 그 청의가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

“허칠안, 자네…….”

장개태는 표정이 복잡했다.

“더는 노이혁가 그들이 성벽 위로 오르게 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면 저희의 손실이 너무 커서 오래 버틸 수 없을 겁니다.”

허칠안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이 이치는 장개태도 당연히 알았다. 하지만 지키지 않으면 성 아래로 내려가 사투라도 한다는 말인가?

상대는 무려 정예병 칠만이었다. 죽이려고 해도 차마 손을 댈 수 없었다. 하물며 노이혁가 등의 고수도 있었다. 성벽 아래로 내려가면 죽는 길뿐이었다.

이때 허칠안이 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제가 가서 진영을 뚫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장병들의 압박을 줄일 수 있습니다.”

장개태는 벌컥 화를 냈다.

“자네 미쳤는가?”

허칠안은 고개를 저었다.

“미치지 않았습니다. 장병들의 압박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심을 북돋울 수 있습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제가 노이혁가를 죽일 겁니다.”

‘노이혁가를 죽인다고?’

장개태는 그가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다.

“뒤가 위 공의 고향입니다.”

그는 즉시 한 마디 덧붙여 장개태가 더는 말을 내뱉지 못하게 했다.

이묘진은 비검을 밟고 성벽 위를 스쳐 올라갔다. 무표정에 침울한 미간을 한 그녀는 먼저 아래쪽에 하늘을 찌를 듯이 함성을 지르며 돌격해 오는 적군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뒤 그녀는 무언가를 감지한 듯 옆으로 고개를 돌려 성가퀴 위의 청의를 쳐다보았다.

“묘진, 그대 금단을 좀 빌려 쓰겠소.”

그의 눈빛은 맑고 깨끗하며, 그 모습은 듬직하고 엄숙했다. 미간 사이의 의지와 기개가 되살아났다.

이묘진은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천종의 심법(心法)을 짊어진 사람답게 이 남자가 어렴풋이 변했다는 점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이묘진은 멍하니 말했다.

“자네…….”

그는 환한 웃음을 띠었다.

“4품에 들어섰소.”

남자는 얼마나 걸어야 성장할 수 있는가? 어쩌면 평생일 수도 있고, 하룻밤 사이일 수도 있었다.

그는 하룻밤만에 4품에 들어섰다.

4품의 허칠안이 얼마나 강할까? 아는 자는 없었다.

이묘진은 순간 시선이 다소 흐려졌다.

“알겠네!”

도문 수사가 금단을 잃는 건, 근간을 잃고 수련 경지를 잃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금단이라고 해도 그의 활짝 핀 웃음은 당할 수 없었다.

성벽 위, 의기양양한 표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봉 무사 허칠안, 나아가 진영을 뚫을 것이다!”

대봉 민간 전설에 따르면 은라 허칠안은 운주에서 홀로 반란군 수만을 막아서서 혼자만의 힘으로 반란을 평정했더랬다.

그가 어찌 백성들을 실망시킬 수 있겠는가.

하늘과 땅 사이, 청의가 금단을 삼키고 몸을 날려 성벽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하늘까지 울려 퍼지는 포효 소리를 듣고 성벽 위의 수비병들은 잇따라 경악하였다.

병사들과 민병들은 마도 위에서 뇌목(檑木)과 화살을 나르던 중,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은 채 성가퀴로 달려들었다.

‘허 은라가 진영을 뚫는다니?’

적군 칠만여 명은 기세가 등등하여 3일 밤낮을 죽인다고 해도 다 죽일 수 없었다. 병사들이 허 은라를 숭배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들은 시정 백성들과 달랐다. 오랜 세월 전쟁터를 누볐기에 인력의 한계를 알았다. 보통 사람이 어떻게 혼자서 칠만여 명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꼼짝 않고 서 있다고 해도 죽일 때는 차마 손을 대지 못하거나 힘을 다할 터였다. 하물며 적은 정예 부대이지 않은가.

“머리를 내밀지 말아라. 죽고 싶은 것이냐!”

한 장수가 이 모습을 보더니 벌컥 화를 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성을 지켜라! 이것이 너희의 임무이다. 발포하라. 멍하니 있지 말고 전부 발포하라. 허 은라가 진영을 뚫는 건 우리의 압박을 줄이기 위함이다. 너희가 설령 죽는다고 해도 지켜내야 한다.”

“네!”

해일 같은 대답 소리가 퍼졌다.

병사들은 하나 같이 눈시울을 붉히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들은 허 은라를 따라 강토를 보위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고대에는 국경을 지키는 천자가 있었다면, 지금은 혼자서 진영을 뚫는 허칠안이 있었다. 모든 것이 사서에 기록될 만한 장거(壯擧)였다.

군심이 전에 없이 결집되었다.

* * *

쿵!

금빛 찬란한 몸이 이치를 따지지 않는 난폭한 모습으로 성벽 아래를 묵직하게 내리쳤다. 대지가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충격파로 주변 십여 미터 내에 있던 적군은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망가진 갑옷과 투구, 부러진 칼날이 공중에 떠서 흔들렸다.

허칠안이 왼손을 누르자 기기가 갑옷과 투구, 칼날 등의 파편을 뒤덮었다. 양옆과 전방을 힐끗 보니 강철 칼을 휘두르며 돌격해 오는 적군이 보였다. 소매가 힘껏 펄럭였다.

갑옷과 투구, 강철 칼, 긴 창 등의 무기가 사방팔방으로 발사되었다.

앞에서 돌격해 오던 병사들의 머리가 갑자기 터지더니, 팔이 ‘펑’하고 잘렸으며 가슴에는 주먹 크기만 한 구멍이 생겼다. 죽은 모습이 각기 다 달랐다.

하지만 이는 결코 적군을 두렵게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목숨을 개의치 않고 돌격하였다.

허칠안은 처음에는 칼을 휘둘러 사방팔방에서 몰려드는 적군을 야채를 자르는 것처럼 베어 죽였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자가 없었다.

이내 그는 전법을 바꾸어 기기를 머금고 내뱉지 않았다. 금강신공의 신체와 정신력 그리고 화경 무사의 몸놀림 및 태평도의 날카로운 칼날로 적군과 육탄전을 벌였다.

그는 적의 진영에 있는 만큼, 사방이 전부 적이었기에 기기를 조금씩 아낄 수 있기는 했지만 4품은 어쨌거나 사람이었다. 또한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었다.

그가 혼자만의 힘으로 진영을 뚫고 적군 수만을 쳐부수고 싶다면, 지금 고려해야 할 건 우선 적의 강함이 아니라 체력이었다.

위연이 일찍이 그에게 잔소리한 적 있었다. 그해 산해관전역에서 사실 대부분의 고품 무사가 전부 힘을 다해 죽었다고 말이다.

그가 전법을 바꾸자 순식간에 적어도 수십 자루의 강철 칼이 사방팔방에서 날아왔다. 허칠안은 위기에 관한 무사의 직감으로 적군 병사들의 동작을 포착하였으나 피할 길이 없었다.

마구 휘두르는 칼로 고수를 베어 죽이는 ‘진짜’ 전쟁터였다.

슉슉슉……. 허칠안은 찌르거나 들추거나 베거나 휘두르면서 적군의 목숨을 하나씩 앗아갔다.

한 병사가 몸을 날려 훌쩍 솟아오르더니 강철 칼로 허칠안의 머리를 사정없이 그었다. 정제된 강철 칼이 순간 구부러졌고 허칠안은 손을 뒤집어 태평도를 휘둘러 이 적군의 허리를 베었다.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확고부동하게 꼿꼿이 앞으로 나아가 무사의 신체와 정신력을 빌려 완강히 무기에 맞섰다.

2~300명이 죽은 뒤에도 적군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맹하게 전진하였다.

5~600명이 죽은 뒤, 적군은 두 눈을 붉히며 오히려 난폭하게 싸웠다.

7~800명이 죽은 뒤, 그들은 유격전을 펼치며 싸우기 시작했다. 칼을 쥐고 버티는 게 아니라 허리춤에 있던 군노를 쏘기 시작했다.

“비켜!”

화기 진영의 대대장이 벌컥 화를 내더니 포병을 밀치고 한발로 포대를 걷어차 수백 근 무게의 중포(重砲)의 포구를 돌렸다.

이 대대장은 직접 포탄을 장전하고 정확하게 조준하더니 심관에 불을 붙였다.

포신(砲身)이 일그러진 부문을 반짝였다. 힘을 다 비축한 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중포 전체가 세차게 뒤로 밀렸다.

포탄이 격렬하게 발사되더니 길을 따라 병사들의 몸을 갈기갈기 찢었다.

허칠안은 미리 위기를 포착했지만 피하지 않고 태평도를 휘둘러 포탄을 막아냈다.

귀가 멀 정도로 먹먹한 폭발음이 터졌다. 허칠안을 둘러싸고 공격하던 병사들이 이 무시무시한 폭발에 여러 갈래로 갈기갈기 찢겼다.

자욱한 먼지 연기 사이, 피로 물든 청의를 입은 대봉 은라는 우뚝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옷이 그을린 흔적 외에는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는 칼을 짚은 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앞에 있던 적군은 두려워하는 기색을 드러내며 겁을 먹고 움츠러들어 앞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들은 거듭 밀어젖혔고 그가 가는 길을 감히 막지 못했다.

허칠안은 칼끝의 핏자국을 털더니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

“강국과 염국 두 나라의 겁쟁이 중에 사나이는 아무도 없는가?”

성벽 위, 대봉 장병들은 뜨거운 피가 끓어올랐고, 울부짖으며 대답하였다. 그들은 얼굴과 귀가 빨갛게 달아오르고 핏줄이 섰다.

한순간에 사기가 진작되었다. 힘을 다해 뇌목을 내던지고 활, 상노 그리고 화포를 발사하였다. 어제와 비교했을 때 혼자서 진영을 뚫는 허칠안이 있으니 수비병들의 압박이 확실히 많이 줄었다. 지금까지 사상자도 극히 적었다.

노이혁가는 먼 곳에서 말을 타고 관전하던 중 미간을 찌푸렸다. 성벽 아래 신체와 정신력이 무쌍한 우악스러운 사내가 혼자서 진영을 뚫었으며, 성벽 위에서는 화포와 활이 그를 도왔다. 고작 일각도 채 되지 않아 자기편의 사상자가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공성은 본래 열 명의 목숨을 한 명과 맞바꾸는 고된 일이었다. 게다가 이 자식에게 돌격하느라 손해가 막심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병사들이 죽임당해 시퍼렇게 질린 거야말로 중대한 손해였다.

‘그의 비장의 패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군…….’

노이혁가는 사방을 둘러보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염국과 강국 두 나라의 용사들이여. 누가 이 자식의 목을 베겠는가?”

“두 번째 진영으로 돌격하여 적을 죽이러 가고 싶습니다!”

보병 진영에서 한 장수가 소리쳤다.

이 장수는 칠흑같이 까만 중갑(重甲)을 입고 손에는 80근 무게의 맥도를 들고 있었다. 강국의 장수는 전부 이런 무기 사용하는 걸 좋아했다.

노이혁가가 물었다.

“자네는 이름이 뭔가.”

“아리백(阿里白)입니다.”

그 장수는 크게 소리쳤다.

“좋다. 네가 두 대대를 이끌고 출정하는 걸 허가하겠다. 이 자식의 머리를 들고 돌아와 내게 보여주어라.”

노이혁가는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대대장 아리백은 말을 타고 대열에서 나오더니 말머리를 돌리고 뒤에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포효했다.

“너희들은 겁쟁이인가?”

허칠안의 난폭한 기세를 직접 목격한 뒤 마음속에 절로 두려움이 생긴 강국 병사들은 질문을 듣고 눈에서 순간 분노가 타올랐다.

전장에서 싸우는 자들에게 가장 부족한 건 혈기였다.

아리백은 손에 맥도를 쥐고 계속해서 포효했다.

“대장군이 성벽 위에서 전사하였으니 우리가 만약 이 성을 함락시키지 않으면 돌아가서도 죽은 목숨일 것이다. 성을 함락시키고 기고만장한 대봉의 필부를 베어서 돌아가면 관작(官爵)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병사들의 열렬하고 간절한 마음이 순식간에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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