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5화. 장례를 치르다
“폐하!”
왕 재상은 목소리를 높이고 흥분하여 말했다.
“당보에 따르면, 위연이 이미 정산성을 함락시켜 무신교의 손해가 극심하답니다. 본부 고수는 7할 가까이 잃었습니다. 염국은 대군에 의해 중심 지역을 관통당했습니다. 지금 함락하기 어려운 그 성들을 이미 위연이 격파시켰습니다. 정국은 북방에서 수개월 간 전쟁을 치르느라 손해가 막심하면서 또 북방 요족 및 오랑캐에게 견제당했지요. 현재 병력을 완전하게 보존했다고 할만한 곳은 강국뿐입니다. 이때 다시 한번 치면 100년 동안은 대봉의 자손이 무신교에게 화를 입을까 걱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의 제안은 일부 훈귀와 무장들의 동의를 얻었다.
위연이 무신교의 국력을 필사적으로 없애 총단을 함락시켰기에 대봉 군대를 저지하는 염국이라는 난관이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좀처럼 얻기 힘든 좋은 기회였다.
“왕 경…….”
원경제는 손사래를 치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무력을 남용하여 전쟁을 일삼는구려.”
왕 재상은 용의에 높이 앉아 있는 황제를 바라보면서 입을 벌렸다가 낙담하여 물러났다.
그가 물러나면서 역사의 수레바퀴가 다른 방향으로 틀어졌다. 후세 사람이 이 역사를 다시 기억할 때는 이러할 터였다. 대봉과 무신교의 국력을 분석하고 쌍방의 손실을 비교한 뒤 이때의 대봉이 만약 독하게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면 미래 십수 년의 국력을 내걸고 출정했을 것이라고!
그런다면 동북 육만 리 강산 위에 수천 년을 군림한 무신교라는 거대한 산이 와르르 무너져 다시 기세를 펴기 어려울 터였다.
수많은 후세인은 주먹을 불끈 쥐고 탄식할 것이었다.
정산성에서 목숨을 바친 청의 군신에 관해서라면 사서에 ‘중원을 위해 한 목숨을 더했다’라고 평가될 것이었다.
원경제는 대오에서 물러난 왕 재상을 더는 보지 않고 돌아서서 군신들을 둘러보았다.
“제공들은 이 일을 어떻게 뒤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병부상서가 대열에서 나와 읍했다.
“신은 상주·형주·예주 세 개 주와 인접한 각 주에서 이만 병력을 선발하여 국경에 배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철수한 잔존 병력 역시 세 개 주 변방에 남겨 무신교의 반격을 방어하고요. 또한, 위 공께서 이미 목숨을 바치셨으니 폐하께서는 군대를 통솔할 다른 사람을 파견하셔야 합니다.”
원경제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병부상서가 말을 잇지 않는 모습을 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경의 말이 옳구려.”
이때 병부시랑 진원도가 대열에서 나와 말했다.
“폐하께서 평화를 주장하실 거라면, 최대한 빨리 관련 일을 상의하여 동북에 파견한 평화 회담 사절에게 확인하셔야 합니다.”
병부시랑 진원도는 확고부동한 황제파로 도찰원 우도어사로 좌천당한 원웅과 한편이었다. 두 사람은 황제파의 핵심 인물이었다.
병부상서는 위(魏)당으로서 진원도를 표독스럽게 노려보았다.
그는 애써 평화 회담을 언급하지 않았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무신교와 전투를 치러 위연을 위해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원경제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선하군.”
진원도가 자리로 돌아간 뒤 호부상서가 뒤이어 대열에서 나와 말했다.
“병사들의 무휼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요?”
그가 이 말을 내뱉자마자 금란전 안이 적막에 잠겼다.
오랜 시간 동안 말하는 이가 없었다.
원경제는 천천히 말했다.
“경들의 의사는 어떠한고?”
그는 연거푸 세 번이나 물었으나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원경제는 다시 원웅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 황제의 충심 ‘수행원’은 시선을 회피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로금과 연관된 일은 아주, 매우 컸다.
대봉 율법 규정에 따르면, 보병이 전사할 시 가족에게 3년간 전액으로 군량미 36석을 주었다. 은자로 환산하면 18냥이었다. 그런 뒤 평생 한 달에 쌀 3~6말을 주었다.
기병이 전사할 시 쌀 72석을 주니 은자로 환산하면 36냥이었다. 그런 뒤 평생 한 달에 쌀 6~10말을 주었다.
차례차례 위로 올라가면서 병종별로, 관직별로 주는 위로금이 다 달랐다. 엄격한 규정이 적용되었다.
이밖에 또 다른 규칙이 있었는데 이는 조당 제공들이 적막에 빠진 이유이기도 했다.
패전하면 위로금이 절반으로 줄기 때문이었다!
호부상서가 위로금 문제를 언급하였다. 위로금은 단지 표면적인 일이었다. 배후에 연관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제공들이 후환이 두려워 감히 손을 대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이 전투의 성질을 규정하는 격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 전쟁에서 승리했는가 아니면 패배했는가?
침묵 속, 왕 재상에 대열에서 나와 비통하게 말했다.
“위연이 무신교 총단을 함락시켜 대봉 역사의 효시를 열었습니다. 이 전쟁은 우리 대봉의 완승입니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는 호응했으며 누군가는 생각에 빠졌다. 또 누군가는 슬피 통곡하였다.
원경제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더니 왕 재상에게 대답하는 대신 말했다.
“짐이 좀 피곤하다. 이 일은 중대하니 내일 다시 논의하지.”
늙은 태감이 소리 높여 말했다.
“퇴청!”
* * *
쿵쿵…….
방문을 맥없이 두드리는 소리가 두 번 났다. 문을 두드리는 사람 역시 좀 침울해 보였다.
오늘 휴가인 숙부는 깨어나서 베개 옆에서 천진난만하게 자는 아내를 보았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지 않자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숙부의 수련 경지로는 바깥에서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바로 깨어날 수준이었다.
그는 따뜻한 이불에서 벗어나 옷을 걸치고 바깥방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칠안?”
문 앞에는 조카가 서 있었다. 그는 무표정으로 미간 사이에 우울함이 응결된 상태였다.
숙부는 문득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이 조카를 너무 잘 알았다. 숙부는 조카의 눈빛과 말투로 생각을 알아챌 수 있었다.
아버지만큼 아들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온갖 고생을 견디며 정성 들여 길렀는데 어찌 아들과 다르겠는가.
“숙부, 바로 준비하셔서 운록서원에 가요. 그곳에 가서 우선 우선은 좀 피해 있으세요.”
허칠안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숙부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말했다.
“알겠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서 이묘진의 방문을 두드렸다.
눈처럼 흰 치마에 칠흑같이 까만 눈동자, 붉은 입술, 고운 외모의 소소가 문을 열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에요!”
하늘하늘한 장포를 입고 머리를 묶은 이묘진은 탁자에 앉아 마침 차를 마시며 떡을 조금씩 베어 먹던 참이었다.
허칠안은 소소를 상대하지 않았다. 그는 이묘진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나 동북 변방에 다녀오고 싶소.”
이묘진은 어리둥절하여 의구심을 갖고 물었다.
“자네도 싸우러 가려는가?”
허칠안은 고개를 살짝 젓더니 말했다.
“위 공께서 전쟁터에서 돌아가셨소.”
이묘진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그녀는 손에 있던 떡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녀는 즉시 정신을 차리고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눈앞의 이 남자가 위연을 얼마나 신뢰하며 존중하는지 잘 알았다.
그가 위연에게 입은 은혜가 태산과 같다는 걸 더욱이 잘 알았다.
순간 그녀는 어떻게 입을 떼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어떤 위로의 말도 이런 시기에는 자신과 상관없는 거짓 연민처럼 보일 터였다.
허칠안이 가볍게 말했다.
“나는 믿지 않소. 나는 그가 전사할 거라고 믿지 않소. 그러니 나를 데리고 변방에 가주시오. 만약……그가 정말 죽었다면.”
그는 잠시 멈추더니 초점이 흐려지는 듯 멍하게 말했다.
“그에게는 딸아들이 없으니 장례를 치를 사람이 없소. 내가 갈 것이오. 내가 가야 하오…….”
이묘진은 가슴이 미어졌다.
“알겠네.”
* * *
조회가 끝난 후, 팔백 리 긴급 당보의 내용이 재빠르게 퍼져나갔다.
모든 경관이 말을 퍼뜨렸다. 모든 사람이 목소리를 낮추고 폐쇄적으로 얘기하며 신속하면서도 짓눌린 태도로 소문을 냈다.
* * *
붉은 담벼락에 겹겹이 쌓인 황궁, 진비가 있는 경수궁.
아름답고 눈부신 외모에 다정다감한 눈을 지닌 임안이 막 어머니에게 안부를 물은 뒤 경수궁에 남아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진비는 양생차(養生茶)를 마시면서 눈부시게 아름다우며 함축적인 자태를 지닌 딸을 바라보고는 탄식하였다.
“위연이 군사를 이끌고 출정한 건 장차 사람들이 눈독 들일 정도로 가치가 높은 군공(軍功)이 될 거야. 위연은 네 태자 오라버니 동궁의 지위에 가장 큰 위협이지만, 태자의 가장 견고한 초석이기도 하거든.”
임안은 차를 한 모금 홀짝 마셔 작은 입을 축축하게 적실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공주로서 부적격인 게 분명했지만, 보고 들은 게 많아 수준이 좀 있었기에 어머니의 말뜻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위연은 사황자를 지지하였다. 이 점은 두말 할 나위가 없었다. 위연은 봉서궁 출신 환관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위연은 태자의 가장 견고한 ‘초석’이기도 했다. 부황이 의심이 많은 데다, 위연은 공이 너무 높아 황제를 뒤흔들기에 자연스럽게 사황자는 태자가 될 수 없었다.
진비가 개탄했다.
“위연이 전쟁터에서 죽었으면 좋겠구나.”
임안은 이 말을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모비(母妃)가 위연을 저주하는 것이 불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위연과 별다른 정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모비가 이 말을 하는 어조와 표정에서 희망과 확신이 묻어난다고 생각했다. 맞다, 바로 확신이었다.
그녀는 어떤 일을 알고 있지만 평가하기 전에는 또 다소 안절부절못하며 완전히 확정 지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공주는 소녀의 천진난만함을 지닌 만큼 당연히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리는 수준이 깊지는 않았지만, 눈앞에 이 여인은 그녀의 생모로 그녀가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들이 마침 한담을 나누는데 문밖의 빛이 순간 차단되었다. 태자가 문턱을 넘어 황급히 들어오더니 소리 높여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
임안이 고개를 돌리니 방 안에 들어온 자신의 친오빠가 보였다. 그의 표정은 아주 복잡했다. 흥분 속에 애석함이 섞여 있고, 기쁨 속에 또 슬픔이 가라앉은 상태였다.
진비는 웃더니 말했다.
“태자, 얼른 앉으세요.”
그녀는 궁녀를 불러 태자에게 차를 우려주었다.
태자는 손사래를 치며 자신은 필요 없다는 의사를 표한 뒤 궁녀를 내쫓았다. 그는 노란 비단을 깐 부드러운 평상에 앉아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말했다.
“어머니, 위연이…… 동북에서 전사하였습니다.”
모녀 둘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몇 초 뒤, 판이하게 다른 두 표정이 드러났다.
임안은 좀 창백해졌다. 그녀는 충격 속에 망연함과 걱정이 뒤섞였다.
진비는 미친 듯이 기뻐했다. 그녀는 이 기쁨이 실로 커서 몸이 다소 떨렸으며 말투 역시 이에 따라 떨렸다. 그녀가 공대를 내려놓고 말했다.
“정말이니?!”
태자는 고개를 끄덕여 확신의 답을 주었다.
“팔백 리 긴급 문서가 어젯밤에 도착했어요. 오늘 아침 아바마마께서 임시로 조회를 열어 이 일을 논하셨고, 위연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아주 빨리 경성에 퍼져나갈 겁니다. 십만 대군 중에 일만 육천여 명만이 철수하여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 전쟁으로 우리 대봉의 손해가 막심합니다.”
진비는 흥분하여 얼굴이 붉어지고 온 얼굴이 희색이 만면하였다. 그녀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이미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아한 자태를 뽐냈으며 전혀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