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4화. 부고 (2)
대군이 출정한 지 거의 한 달 남짓이 되던 어느 날 밤, 물처럼 휘영청 맑은 달빛 아래.
다그닥다그닥…….
경성 밖 관도 위, 준마 한 필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이리저리 떠다니며 객지에서 고생하느라 입술이 말라서 터진 역졸이 말고삐를 잡아 멈추게 한 뒤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성문을 여시오. 팔백 리 긴급이오……!”
그는 외성, 내성, 황성을 지나 황궁에 보내졌다.
깊은 밤, 왕 재상은 다급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깼다. 늙은 집사가 방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나리, 나리, 일어나십시오…….”
칠흑같이 어두운 방 안, 밝게 비추는 촛불 아래 바깥방에서 자던 여종이 옷을 걸치고 촛대를 든 채 황급히 달려와 문을 열었다.
이내 여종은 종종걸음으로 들어와 목소리를 낮추었다.
“나리, 관아에서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팔백 리 긴급 당보(塘報)라고 합니다.”
나이가 많은 왕 재상은 한밤중에 시끄러워서 깬 바람에 정신적 피로를 감추기 어려웠다. 그는 미간을 문지르더니 말했다.
“옷을 갈아입겠다.”
내각처럼 중요한 관아에는 밤에 당직을 서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런 긴급 사건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팔백 리 긴급도 그렇고, 육백 리 긴급도 그렇고 역졸들은 필사적으로 달렸다. 달리다가 말 몇 필 죽는 일은 아주 흔했다.
여종의 시중을 받아 관포를 입은 왕 재상은 마차에 올라탔다. 덜컹거리는 바퀴 소리 사이로 황궁에 들어가 내각 관아에 이르렀다.
왕 재상은 빠른 발걸음으로 대청에 들어가 자신의 책상에 앉은 뒤 천천히 말했다.
“당보!”
대청 내에 당직 서던 관원이 즉시 곁에 단단히 보관하던 당보를 건넸다. 팔백 리 긴급 문서는 대학사 몇몇만이 뜯을 수 있었다.
왕 재상이 봉랍을 제거하자 종이가 화라락 미세한 소리를 내었다. 그는 당보를 꺼내 펼쳐서 읽었다.
사위가 곧 적막에 빠졌다.
* * *
무영전 대학사 전청서, 건극전 대학사 진기, 동각 대학사 조정방 등 6명의 대학사가 한데 모여 움직였다. 그들은 내각에 들어와 재상 대청 안에 이르렀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내각 재상이자 최고 관직의 왕당 우두머리가 단숨에 몇 살은 더 늙어 보였다.
그는 표정이 어두웠으며 눈가가 약간 붉었다. 다소 탁해 보이는 두 눈은 약간 멍했다. 그는 마치 어떤 비통한 상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듯했다.
분명히 어제 왕 재상은 멀쩡했다. 어떤 충격이길래 하룻밤 사이에 사람의 체력과 정신력이 이런 상태까지 나빠졌을까?
왕 재상은 고개를 들고 모든 학사를 둘러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위연이 희생되었네.”
멈칫하더니 그는 덧붙여 말했다.
“십만 대군 중에 일만 육천여 명만이 철수하여 돌아왔네.”
쿵!
사람들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마음이 흔들리고 낯빛이 굳었다.
무영전 대학사 전청서는 중얼거렸다.
“이, 이건 불가능해, 불가능해…….”
왕 재상은 어조를 좀 회복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믿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네. 하지만 현재 이게 바로 사실이네. 여러 대인께서는 좋지 않은 모든 감정을 추스르고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시게나. 이 전역은 아주 이상해. 당보가 이미 궁 안에 전해졌으니 조회 전에 우리 먼저 좀 상의하자고…….”
동틀 무렵이 되자 모든 학사는 피폐한 표정으로 깊은 시름에 빠져 떠났다.
왕 재상은 손짓하여 심복 한 명을 불러 무표정으로 분부했다.
“사람을 보내 허부에 다녀오게. 허칠안에게 동북의 전황을 알리게.”
그가 종이를 주지 않은 건 약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심복이 물러날 때까지 기다린 왕 재상은 천천히 창가로 걸어가 동트기 전, 가장 어두운 밤빛을 바라보며 마치 조각상처럼 한참을 말하지 않았다.
‘위연, 자네가 없으니 앞으로 조당이 얼마나 적막하겠는가.’
* * *
날이 아직 밝기 전에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와 방 안에 있던 종리와 허칠안을 동시에 깨웠다.
후자가 대답하였다.
“누구신가?”
문지기 장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첫째 공자님, 누가 공자님을 찾아왔습니다. 자신이 내각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내각? 왕 재상이 이 시간에 사람을 보내 나를 찾는다고?!’
허칠안은 즉시 일어나 장포를 걸치고 말했다.
“나를 그에게로 안내하게.”
* * *
허칠안은 방을 나서서 외청까지 갔다. 그는 관복 차림으로 외청에 선 낯선 중년을 보았다.
“허 은라!”
중년 관원은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이 호칭을 외쳤다.
허칠안은 경성 사람들이 ‘옛 모습을 유지’하는 관념에 익숙해졌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인께서 나를 무슨 일로 찾는 것이오?”
중년 관원이 말했다.
“재상 대인께서 은라께 말을 전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역시 왕 재상이었군…….’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십시오.”
그런데 중년 관원은 오히려 머뭇거리더니 한참 동안 생각을 가다듬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위 공께서 동북에서 희생되셨습니다.”
허칠안은 약간 어리둥절하다가 갑자기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중년 관원을 주시하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이 농담은 전혀 웃기지 않소.”
그 말은 마치 귓가에서 ‘네 아버지가 죽었어’라고 하는 듯했다.
만약 허칠안은 왕 재상의 성격을 알지 못했다면 그가 일부러 자신을 도발한다고 여겼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왕 재상이 이렇게 할 리가 없다는 걸 알았기에 더 분노했으며 더 당혹스러웠으며 더 울적하였다.
중년의 관원은 고개를 약간 떨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무덤덤하게 말했다.
“위 공께서 무신교 총단 정산성에서 전사하셨습니다. 십만 대군 중에 일만 육천여 명만이 철수하여 돌아왔습니다……. 팔백 리 긴급으로 저녁에 막 도착하였습니다.”
중년 관원은 말을 마치고 한참 동안 대답을 듣지 못하자 눈을 들었다. 그는 창백한 얼굴을 보았다.
“폐하와 제공들께서 오늘 조회 때 틀림없이 이 일을 논하실 겁니다. 후속 당보 역시 계속해서 경성에 들어올 것이고요……. 말은 이미 전했으니 그럼 본관은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는 읍한 뒤 돌아서서 떠났다.
* * *
끼익…….
종리는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혼미하게 고개를 치켜올려 보았다. 그녀는 허칠안이 돌아온 모습을 보더니 안심하고 계속해서 잠을 청했다.
종 사저는 자신의 수면을 매우 중시하였다. 이는 사람이 수면이 부족하면 늙는다는 말과는 관계가 없었다. 주된 이유는 그녀가 수면이 부족하면 심근경색이나 돌연사 등 돌발적인 질병이 생길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생사가 결정되는 건 찰나이기에 그녀는 사천감의 영험한 묘약을 복용할 시간이 없을지도 몰랐다.
물론 이런 상황은 드물었다. 하지만 종 사저는 경험이 풍부하고 자신을 어떻게 보호하는지 알았기에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 놓이도록 자신을 내버려 두지 않을 터였다.
날이 곧 밝을 무렵, 종리는 잠시 쉰 다음 정시에 깨어났다. 그녀는 다소 나른하게 일어나 앉아 기지개를 켜다가 갑자기 멍해졌다…….
책상에 한 형체가 앉아 있었는데 고요한 정도가 오랜 옛날부터 존재한 조각상 같았다.
‘그가 방으로 돌아온 뒤에 줄곧 저곳에 앉아 있었구나!’
종리는 문득 깨닫고선 조심스럽게 관찰하였다. 그의 표정은 아주 쓸쓸하고 고요했다.
마치 타향을 떠도는 나그네 같았다.
* * *
문무백관은 이 시각 조당 금란전에서 엄숙한 분위기 속에 오문을 지나 금수교를 건너 순서대로 자신의 관직에 맞는 위치에서 멈추었다.
제공들은 단폐(*丹陛: 붉은 칠을 한 대궐의 섬돌)를 지나 넓고 화려한 금란전으로 들어갔다.
오늘 조회는 좀 늦었다. 임시로 긴급한 상황이 생겨 날이 밝을 무렵에야 궁에서 경관(京官)들에게 조회를 한다고 통지했기 때문이었다. 어떠한 핑계든 휴가를 내는 건 허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병이 났다고 해도 죽지만 않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궁에 들어와야 했다.
큰일이 난 게 틀림없었다!
경관들은 전부 약삭빠른 인간들이라 상황이 긴급하다는 걸 즉각 깨달았다.
제공들은 질서정연하게 금란전으로 들어가 소리 없이 적막하게 가지런히 정렬하였다. 이때, 왕 재상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좌측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곳은 본래 위연이 있어야 했다.
위연은 출정한 이래로 처음으로 이런 행동을 하였다.
일부 예리한 관원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일각 뒤, 원경제가 금란전 뒤편에서 들어왔다. 그는 이제 장포 대신 노란 용포를 입은 상태였다.
원경제를 보는 순간, 제공들은 멍해졌다. 도를 닦아 흑발이 다시 자라고 혈색이 좋은 늙은 황제는 이 순간 마치 인생에서 큰 타격을 입은 듯한 노인 같았다.
그의 두 눈은 비통함과 암담함을 머금어 빛이 없었고, 그의 피부는 뻑뻑하여 광택이 부족했다. 사람 전체가 유달리 초췌하였다.
이건……. 제공들은 눈동자가 수축했다.
늙은 환관이 적시에 대열에서 나와 소리 높여 말했다.
“아뢸 일이 있사옵니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왕 재상이 대열에서 성큼 나와 나지막이 말했다.
“폐하, 동북에서 긴급 전보가 왔습니다. 위연이 군사를 이끌고 적 깊숙이 파고들어 무신교 총단을 함락시키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합니다. 십만 대군 중 일만 육천여 명만이 철수하고 돌아왔습니다…….”
금란전 안, 관원들은 멍하니 굳은 표정을 지었다. 몇 초 뒤, 금란전이 들끓더니 순간 떠들썩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숙!”
늙은 태감이 회초리를 휘둘러 깨끗한 바닥을 후려치자 탁탁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해도 제공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억제할 수 없었다.
왕 재상이 막 비보(悲報)를 들었을 때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처럼 제공들도 그러했다. 어떤 일은 가슴에 정기가 있지 않으면 정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십만 대군이 거의 전멸에 가까이 희생되었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정수리에 일침을 가한 듯한 타격이었고 심지어 대봉의 국본을 흔들 정도였다.
그리고 진정으로 제공들의 마음이 동요하여 집단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유는 대봉 군신 위연이 목숨을 바쳐 희생했기 때문이었다.
위연의 정적들은 둘째 치자. 그들은 걸핏하면 ‘폐하, 이 자식의 머리를 베어주십시오’라고 소리높여 외쳤다.
하지만 왕당 같은 정적을 포함한 제공들은 사실 진심으로 원하든 원치 않든 내심 위연이야말로 사실 대봉을 지키는 기둥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회왕은 3품 무사였으므로, 한쪽을 지키는 건 가능하지만 대봉이라는 산을 받치기에는 아직 좀 부족했다.
위연만이, 산해관전역을 승리로 이끈 이 대봉 군신만이 구주 각 세력이 진정으로 꺼리는 인물이었다. 왜냐하면 20년 전에 그들은 무섭게 패했기 때문이었다.
아주 아프게 패했다.
진북왕? 그는 당시에 그저 위연 곁에 있던 애송이로 간신히 위연을 보좌했었다.
현재, 진정한 나라를 지키는 기둥이 쓰러졌다…….
제공들은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팔백 리 긴급의 군사 당보는 대봉이 나라를 세운 지 600년 이래로 틀린 적이 없었다. 어쨌거나 이는 목을 베야 할 대죄였으므로 그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원경제는 묵묵히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는 한참을 기다렸다가 대전 내의 떠들썩한 소리가 잠잠해지자 그제야 비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경들은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이번에도 왕 재상이 대답하였다. 그는 강경한 어조로 우렁차게 말했다.
“신은 각 주에서 군사를 집결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국적인 병력을 동북으로 이동시켜 요족 및 오랑캐와 연합하여 무신교를 일거에 평정해야 합니다.”
원경제가 탄식했다.
“대봉은 이미 십만 군사를 잃었다. 그들은 전부 짐의 백성이고 짐의 자식이거늘 왕 경은 짐더러 어떻게 다시 모진 마음을 먹고 전쟁을 일으키라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