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7화. 가상한 용기 (2)
“아오오……!”
하늘과 땅 사이, 우렁찬 포효 소리가 여기저기서 메아리쳤다.
본래 조금도 힘을 들이지 않고 군함을 파괴해야 하는 그 조수가 마치 굳어버린 듯 몇 초간 멈추더니 와해되었다. 마치 자신을 지탱할 힘을 잃은 듯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성벽보다 더 높고 큰 해일은 군함에 부딪히지 않았지만, 그것이 흩어져 형성한 힘 때문에 스무 척의 군함이 하마터면 전복될 뻔하였다.
해안가, 무신교 휘하 모든 세력의 고수, 병사, 주술사들은 표정이 변해 소리를 따라 쳐다보았다. 그들은 거품이 들끓는 바다 위로 굵고 단단하며 비늘이 가득한 몸뚱어리가 튀어나오는 장면을 보았다.
북방 요족, 교부!
신마의 후예 교룡.
교룡은 뭍에 오르면 주교(走蛟), 물에 들어가면 또 교(鮫)라고 불렀다.
그것들은 물의 신령을 조종할 수 있는 바다의 우두머리였다. 바람과 파도를 일으킬 수 있고, 폭풍우를 잠재울 수도 있었다.
시야를 넓혀 보니 바람을 타고 파도를 가르는 교룡이 우렁차게 울부짖고 있었다. 족히 백 마리가 넘는 교룡이었다. 교부가 거의 총출동한 듯했다.
파도가 치솟는 바다가 순식간에 많이 온순해졌다. 하지만 또 풍랑이 완전히 고요해지지는 않았다.
폭우가 투둑투둑 평범한 가랑비로 변했다.
물의 신령을 조종하는 두 힘이 맞붙었다가 미묘한 균형을 이루었다.
“교룡, 북방 요족이네.”
“어쩐지 그 위연이 감히 바다를 건너다니. 알고 보니 교룡의 도움에 의지하고 있었군.”
납란연은 다소 어두워진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뜻밖이지 않다. 만약 자신이 없었다면 그는 오지 않았을 것이야. 군대를 철수시키고 대봉 군대가 뭍에 오르자마자 바로 저지한다.”
이 명령이 막 하달되지마자 바다에서 묵직한 울림이 들려왔다. 몇 초 뒤, 사람들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진 백사장이 폭발하면서 깊은 구덩이가 생겼다. 파편과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점점 더 많은 포탄이 해안가의 수비군과 주술사들을 공격하였다.
“물러나라, 즉시 철수한다.”
한 장수가 큰 소리로 포효하며 깃발을 휘둘러 병사들에게 후퇴를 명령했다.
그가 막 소리를 지른 그때 포탄 한 알이 마침 옆에 떨어졌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불빛이 팽창하더니 이 장수는 산 채로 폭발하였다.
그는 아직 죽지 않았지만, 동피철골이 그 자리에서 부서지면서 중상을 입었다.
이게 바로 납란연이 군대에게 철수하라고 한 이유였다. 대봉 군함은 화포와 상노를 배치하고 있었다. 이것들은 위력이 크고 사거리가 길며 수량이 많았다. 해안을 수비하다가 바로 산 채로 폭격당해 죽는 결말을 맞을 수도 있었다.
본래 대주술사의 법술로 군함의 전군을 전멸시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교룡부의 참전으로 무신교가 우위를 잃었다.
지금 비교적 좋은 대응책은 군대를 철수한 뒤 정산성의 일반 산길과 산림 수호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임무는 수비군의 생명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터는 주술사의 장이었다. 다만 유감스러운 건 여기는 전쟁터가 아니라 주술사의 일상 생활 근거지라는 점이었다.
가장 무시무시한 시체 병사 전술이 그대로 사라졌다.
관건은 전쟁이 격렬해짐에 따라 방대한 수량의 시체 병사를 끌어들일 수 있냐는 것이었다. 이 시체 병사는 아마도 전부 정산성 사람들일 터였다…….
이게 하책이었다.
상책이라면, 납란연이 보기에 사실 간단했다. 대주술사가 나서서 위연을 그 자리에서 죽인다면, 대봉 군대는 오합지졸이 되어 전투력이 바로 절반으로 깎일 것이었다.
위연은 수련 경지를 폐한 평범한 사람이지 않은가!
쿵쿵쿵!
포탄이 해안에 내리 찍히고, 땅바닥에 화살이 꽂혔다. 무신교 군대에 엄청난 살상을 입히면서 혼란스러운 장면이 빚어졌다.
대봉 군함은 파죽지세로 해안에 접근했다.
뱃머리의 그 청의는 굽히지 않고 우뚝 서서 해안가의 사람들이 아니라 정산 꼭대기에 마색 긴 장포를 입은 형체를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절벽 위에서 따사로운 햇볕과 포근한 바람을 즐겼다.
한 사람은 먹구름이 잔뜩 끼고 거센 파도가 일렁이는 넓은 바다 한가운데 있었다.
세계가 마치 경계가 뚜렷한 두 부분으로 갈라진 듯했다.
온화한 눈빛 두 쌍이 하늘을 사이에 두고 서로 시선을 맞추었다.
바로 이때 남서 방향에서 한 줄기 빛이 오더니 상공에서 멈추었다. 그가 소매를 휘두르자 포탄 수십 개가 날아갔다.
“이이포 장로…….”
모든 하위 주술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주살술, 공시술(控尸術) 등의 수법은 현재 대봉 군대에게 사용할 수 없었다. 게다가 방어에 능하지 않은 주술사는 화포의 공격을 막을 수가 없었다.
5품 축제와 4품 몽무는 무사의 영령을 소환하여 자신을 무사로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전혀 의미가 없었다. 대봉 군함에는 분명히 더 많은 수의 고품 무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무사였다.
주술사가 강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주술사의 수법은 괴상하여 전쟁터에서 무적이지만, 현재 상황은 주술사가 마치 대부분의 특기를 순식간에 잃은 것처럼 보였다.
그해 산해관전역 때, 그들은 여러 차례의 전투를 전부 영문도 모른 채 졌다.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도 자신이 왜 졌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3품 주술사의 출현은 모든 단점을 메우기에 충분했다. 3품과 4품 사이엔 뛰어넘을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하였다.
이이포는 허공에 서서 깃발 위의 청의를 바라보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동전 세 개를 꺼내 자신에게 점을 쳤다. 점괘는 길(吉)이라고 표시되었다!
그는 즉시 마음을 높고 목소리를 높여 분부하였다.
“퇴각하라. 관도, 산림을 지키던 병사들을 분산시키고 백 명이 한 대오를 이룬다. 대오마다 주술사 한 명을 배치하겠다.”
이이포는 명령을 하달한 뒤 동전을 거두고 재빠른 속도로 두 손으로 수결을 빚어 허공에 허영을 불러들였다. 그것은 이이포의 머리 위에 자리했다.
이이포의 온몸에 혈기가 팽창하면서 근육이 장포를 찢어 수 장(丈) 높이의 거인이 되었다.
갑판 위, 병사들이 잇따라 포구, 상노를 돌려 이이포를 저지하려고 했다.
화포와 화살이 그의 몸에 부딪혔다. 3품 ‘무사’ 앞에서 포탄과 화살은 조금도 상처를 낼 수 없었다.
이 순간, 무신교 측의 기대와 기쁨 그리고 대봉군 측의 걱정과 분노가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3품 ‘무사’의 기세는 대단했다. 모든 압박이 마치 위연 한 사람에게 집중된 듯했다.
살쩍이 희끗희끗하고 두 눈에 세상의 온갖 풍파를 머금은 남자가 드디어 가볍게 손을 들었다.
그가 거인의 목을 졸랐다.
다섯 손가락이 갑자기 힘을 주었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이이포 머리 위의 허영이 바로 터졌다.
“용기가 가상하군!”
위연은 온화하게 웃었다.
우두둑!
이이포의 목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바로 이 찰나에 이이포는 자신의 손가락을 부러뜨려 피가 섞인 잘린 손가락을 선홍색의 비틀린 주문으로 만들었다.
선홍색의 비틀린 주문이 위연을 덮고 그의 몸 표면에서부터 침투해 들어갔다. 이건 물리적인 공격이 아니었다. 무사의 동피철골이 막을 수 없는, 주술사의 주살술이었다.
주살술은 두 가지 형식이 있었다. 첫 번째는 목표물의 피, 모발 나아가 몸에 붙어 있는 의복, 물품을 획득하여 이걸 매개로 주살을 거는 형식이었다. 3품 경지에 이르면, 어떠한 매개 없이 공간을 두고 주살할 수 있었지만, 효과가 크게 떨어졌다.
두 번째는 자신의 피와 살을 대가로 하여 목표에 주살을 거는 형식이었다. 이런 형식은 적이 당신에게 상처를 입혔을 때마 가능하다는 전제 조건이 따라붙었다.
핏빛 주문이 위연의 원신을 부식시키고 그의 혈기를 소모시켜 그가 잠시 굳어지게 했다. 다음 순간 모든 부정적인 상태가 무사의 강한 기기에 의해 파괴되었다. 하지만 이 1초는, 이이포에게 충분하였다.
그는 나침반 법기를 쥐고 부수더니 갑자기 사라졌다가 수백 장(丈) 밖에서 나타났다. 그는 조류의 허영을 소환해내어 날카로운 발톱으로 그의 양쪽 어깨를 둘둘 감고 재빨리 정산 방향으로 도망쳤다.
상처가 가볍지 않은 이이포는 조류 요수(妖獸)의 영혼을 소환하여 자신을 데리고 탈출하는 걸 택했다.
구품 혈령의 혈기 자극 능력은 고품일 때 질적으로 도약하였다. 그 능력은 무사의 사지 재생 능력에 뒤지지 않았지만, 전자가 소비하는 영력이 더 높다는 데 그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무사의 절단된 팔다리는 지나친 대가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는 불멸의 몸을 지닌 무사의 ‘천부적인 자질’이기 때문이었다. 3품 고수는 죽이기 쉽지 않았다. 어떤 체계든 3품은 이미 평범한 자를 능가하였다.
무신교와 대봉 군대는 해안가 그리고 군함 위에서 이 광경을 보더니 눈만 크게 뜬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장개태 등 금라는 눈물이 얼굴을 뒤덮었다. 극소수의 심복을 제외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위연이 그해 얼마나 강했는지 알지 못했다. 요족, 오랑캐, 고족 그리고 무신교 전봉 고수를 죽인 몇 차례의 비밀스러운 전투 모두 그가 계략을 품고 불문 고수들을 거느리고 한 일이었다.
그는 전장의 후방에서 책략을 세울 뿐, 거의 나서지 않았다.
위연은 산해관전역이 끝난 뒤 왠지 모르겠으나 수련을 스스로 그만두었다. 마치 스스로 발톱과 이빨을 자른 맹호처럼 기꺼이 조당에서 참고 견디며 평범한 자의 신분으로 조정에 발을 붙였다.
이 전봉 무사의 어마어마함을 기억하는 이가 없었다. 21년 후, 그가 드디어 다시 무적의 재주를 드러냈다. 진상을 모르는 병사들은 지난날의 인식이 뒤집혔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우선 믿기 어려웠고 뒤이어 발아래 조수와 같은 환희로 가슴에 벅차올랐다.
이게 바로 대봉의 군신이었다. 이 사람이야말로 대봉의 군신이었다. 무신교 본부를 친 이상, 기세만 요란하고 실행은 제대로 하지 않는 어린애 장난일 수가 없었다.
대봉 병사들이 끓어오르는 열정으로 환호하고 있을 무렵, 무신교 진영의 주술사와 강호 산인들은 저마다 두피가 저렸다.
그들은 장로 이이포를 한 수에 물리쳤다. 무신교 측은 이 전투가 자신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못되었고 무시무시하다는 걸 예감했다.
무신교 본부의 전체적인 실력은 절대 대봉 경성에 뒤지지 않았다. 위연이 비록 산해관전역에서 혁혁한 명성을 쌓았지만, 그가 정말 정산성에 위협을 가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자는 없었다.
기껏해야 고기 한 덩어리를 물어뜯어서 아프지만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대봉 군대의 기세가 등등하다고 하지만 전봉 고수가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무신교 본부를 위협하겠는가?
그런데 지금 이 대봉의 군신이, 불가사의할 정도로 높은 품계의 강자라는 것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