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5화. 기병(奇兵) (2)
전쟁은 낮부터 밤까지 계속되었다. 염국 군대는 팔천여 구의 시체를 내버리고 성에서 철수하였다. 강국 군대도 마찬가지로 손해가 막심하여 삼천 리 밖으로 철수하였다.
한편, 이때 대봉 군대가 매우 난처한 곤경에 처한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전쟁 방면의 패배.
염국 수도는 난공불락으로 이미 정복한 7개 성보다 더 물어뜯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염국 수도에는 고수가 구름처럼 많았다. 또 병력이 풍부하며 3품 주술사가 주재하고 있어서 단기간 내에 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게다가 강국 군대의 젊은 지원군까지 합세하여 아무리 성을 공략하고 싶어도 이미 불가능한 일이었다.
둘째: 보급선 단절.
보급선이 사라지면서 대봉 군대는 토대가 없는 다락방이 되었다. 무너지는 건 단지 시간문제였다.
염국 복부에 꽂은 이 칼은 이미 칼끝이 마모되었다.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는 군막 안에서 진영을 필두로 하는 청·장년파와 남궁천유를 필두로 하는 위연파가 한자리에 모였다.
진영은 모래판 앞에 서서 강산을 가리켰다.
“강국과 염국의 책략은 일목요연합니다. 탄환과 식량이 다 떨어지거나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질 때까지 저희를 염국 수도 아래에 묶어두고 그런 뒤 그들이 그걸 나눠 먹게 하는 거지요. 저희 군량과 마초가 곧 떨어집니다. 모레면 말을 죽여 식량으로 먹어야 할 거예요.”
한 장수가 입을 옆으로 찢었다.
“제가 군량과 마초 약탈을 책임지겠습니다. 염도 수도 근처에 마을이 적지 않으니 어쨌든 먹을 걸 수탈할 수 있을 겁니다. 말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진영은 ‘헤’하고 소리 내며 말했다.
“조 장군, 그럼 장군에게 맡기겠네. 위 공께서 우리에게 준 임무는 열흘을 버티는 것인데 현재 6일이 이미 지났으니 4일만 더 버티자고. 나흘 뒤면 우리 철수네.”
그는 멈칫하더니 모든 장수들을 훑었다. 그들이 흥미가 많지 않아 보이자 그는 잠시 침음하더니 거리낌 없이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전투는 뜬금없고, 군량과 마초는 더 뜬금없이 끊겼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위 공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군령은 산과 같지요. 설령 위 공께서 저더러 불바다에 뛰어들라고 하셔도 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겁니다. 저희는 지금 3만 형제가 더 남아있으나 나흘 뒤에는 그들 중에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더욱이 모르겠고요. 하지만 무신교는 요 몇 년간 젠장, 저희를 너무 업신여겼습니다.
조정 관리와 결탁하여 우리 대봉의 군비를 착복하고 운주에서 산적을 도와 백성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북방을 점령하여 우리 대봉의 동북 양쪽 경계선을 포위하려고 하지요. 이 전투로 설령 전군이 전멸한다고 해도 염국과 강국의 병력을 다 써버려야 합니다. 여러분, 죽는 게 두렵습니까?”
“두렵기는 개뿔, 전장에 나올 수 있다는 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거지.”
한 장수가 욕지거리를 했다.
“고작 나흘 아닌가? 나흘 후에도 이 몸은 지금처럼 팔딱팔딱 뛸 거라고.”
“위 공께서 우리에게 명했으니 4일은 둘째 치고, 40일이라고 해도 나는 임무를 완수할 걸세.”
사람들은 남궁천유를 쳐다보았고 남자면서 여자처럼 생긴 금라가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오늘 밤에 중장기병 일만을 거느리고 떠날 걸세.”
진영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를 주시하였다.
“위 공의 임무입니까?”
남궁천유는 ‘응’하고 소리 냈다.
진영은 그를 한참 쳐다보았다. 곧 준수한 외모의 젊은이는 웃음을 띠었다.
“좋습니다. 안심하고 금라의 일을 하십시오. 이쪽은 저희에게 맡기시고요.”
남궁천유는 그를 상대하지 않고 돌아서서 떠났다.
그는 즉시 군막을 걸어 나가다가 갑자기 멈추었다. 남궁천유는 사람들의 얼굴을 천천히 그리고 자세하게 훑더니 깊이 숨을 들이쉬고 읍했다.
“여러분, 몸 조심하시게!”
“몸 조심하십시오!”
모든 장병이 나지막이 말했다.
남궁천유는 투구를 벗어 바닥에 가볍게 놓고선 허리를 굽혀 몇 초간 멈칫하더니 성큼성큼 떠났다.
* * *
촛불에 밝게 비친 염국 수도의 대전 안, 노이혁가는 왕좌에 높이 앉아 신하들이 공무를 논의하는 상황을 옆에서 들었다.
대봉 군대와 비교했을 때 이쪽의 분위기는 훨씬 가볍고, 기쁨이 충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들은 엿새 동안 성을 지켰다. 대봉 군대는 첫째 날에만 성을 공격하였다. 대봉은 수천 구의 시체를 내버린 뒤 기가 꺾여 물러났다. 그들은 더 이상 두 번째 성 공격은 개시하지 않았다.
또 강국 지원병이 도착하여 양쪽에서 협공을 실천하였다. 심지어 대봉의 보급선을 차단하여 그들의 군량과 마초를 끊었다.
여기서 며칠만 더 끌면 대봉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재 그들에게 남은 병력으로는 이미 다시 성을 공격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서 수도는 태산처럼 끄떡없었으며, 약함을 드러낼까 봐 두렵지 않았다.
일단 그들이 군대를 철수하면 염국과 강국 양국은 추격할 수도 있었다.
그들이 승리하면 대봉은 장차 무신교에 속할 터였다.
이렇게 보니 소위 대봉 군신도 상상하는 것만큼 그렇게 무시무시하지는 않았다.
정세의 호전은 염국 모든 이들에게 강렬한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산해관전역 때 쌓은 위연의 명성이 순식간에 많이 깎였다.
“허허, 보아하니 대봉의 군신이 성 공격에 전혀 능하지 않구먼.”
“아마도 20년 동안 조당의 다툼으로 그의 예기(銳氣)가 점차 사라졌겠지. 하긴, 20년간 군대를 통솔하지 않았으니 진작에 다른 사람이 됐을 거야.”
“단 한 번의 전투로 우리 염국이 위연의 명성을 짓밟고 구주에 위세를 떨치겠군.”
“십만 군대만을 거느리고 본부를 치고 싶다니? 허황된 망상이지.”
위연이 군대를 이끌고 북벌하였는데 염국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결국에는 전쟁에서 패하고 잔존 병력을 데리고 대봉 국경으로 도망쳤다……. 사서에는 틀림없이 이렇게 기록될 터였다.
노이혁가는 고개를 돌려 황금 지팡이를 손에 쥐고 장포를 두른 국사 이이포를 쳐다보며 웃었다.
“이이포 국사, 위연을 물리치면 저희 병력을 나누고 등에 업어 강국이 북경 전쟁을 평정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이후엔 대봉에서 지원병을 파견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우리가 승리하면 대봉도 장차 저희 무신교 판도로 들어오겠지요.”
이이포가 담담하게 말했다.
“북경 전쟁은 급하지 않네. 본부의 명령은 대봉 군대를 국경 안에서 소멸시키라는 거지. 위연을 대봉으로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되네.”
노이혁가는 어리둥절하여 남몰래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본부의 명령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전쟁은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게 아니었다. 특정한 인물이나 몇몇 인물이 아니라 언제나 시선을 멀리 대세에 두어야 했다.
대봉 군대를 물리치고 북방 영토를 차지하는 것이 위연을 죽이는 것보다 훨씬 중요했다.
이이포는 계속해서 말했다.
“허나 위연을 염국 관내에서 저지할 수 있는 것도 확실히 뜻밖의 기쁨이지. 그대가 임무를 원만하게 완수하면 내가 그대를 대신해 본부에 논공행상을 주청할 것이야.”
노이혁가는 웃음을 띠었다.
“감사합니다, 국사.”
갑자기 이이포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귓가에 허황되고 어렴풋한 실없는 소리가 겹겹이 전해졌다. 마치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한데 합쳐져 다른 세계에서 온 듯했다.
이이포는 태연하던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새파랗게 질렸다. 안색이 너무 빠르게 변해 노이혁가는 순간 멍해졌다.
“무신이 나를 소환하고 있……. 위연?!”
이이포는 빛으로 변해 대전을 뛰쳐나가 순식간에 어둠 속에서 사라졌다.
“위연?”
노이혁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대전 내의 대신, 무장들은 어리둥절하여 서로 쳐다만 보았다. 그들은 순간 갈피를 잡지 못했다.
위연이 뭘 했길래 이이포 국사가 이렇게 화를 내지?
염국 수도에서 만 리 떨어진 강국의 수도에서 마찬가지로 한 줄기 빛이 허공을 가르고 동북 방향을 향해 재빠르게 스쳐 갔다.
* * *
희미하게 날이 밝아올 즈음, 남궁천유는 중장기병 일만을 거느리고 마침내 위연이 지정한 장소에 도착했다.
이곳은 산골짜기로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시냇물이 졸졸 흘렀다.
남궁천유는 기병들이 제자리에서 휴식하며 정비하게 했다. 행군하는 동안 그는 위연이 지정한 규칙을 엄격하게 준수했다. 10리에 한 번 쉬면서 말의 입과 코를 닦고, 30리에 사료를 한 번 먹이는 규칙이었다.
그는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서 솥 안의 야채탕을 푹 끓였다.
식량은 오는 길에 마을에서 약탈했으며 채소는 스스로 챙겨온 것이었다. 남궁천유는 이걸 얘기하자면 그와 총애를 다투었던 그 자식이 떠올랐다.
대군이 출정하기 전, 허칠안은 위연에게 계략을 하나 바쳤다. 채소를 햇볕에 말리고 불에 구워서 수분을 철저하게 짜낸 뒤 양의 창자로 밀봉하는 것이었다.
모든 병사가 수분을 없앤 채소를 1kg씩 휴대하였다. 무거운 편은 아니지만, 물에 불린 뒤에는 양이 넉넉해졌다. 굵은 소금을 한 움큼 뿌리면 맛이 감동적이었다.
남궁천유는 야채탕을 마시면서 손으로 밥알을 쥐었다. 그는 음식을 먹으면서 의부님이 그에게 대군에서 벗어나라고 한 목적을 생각했다.
위연이 알려준 방향은 남쪽이었다. 대군이 행진하는 노선과는 완전히 상반됐다.
남궁천유는 은연중에 의부님이 20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설계하고 만든 중장기병 갑옷 일만 개가 어쩌면 다른 용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반드시 대군에서 벗어나야 했다. 의부님은 가능한 한 이 중장기병에게 큰 손실이 생기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남궁천유가 막 이렇게 생각하던 참에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
그가 고개를 홱 돌리자 평범한 외모의 백의 술사가 보였다. 언제부터 자신의 뒤에 서 있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이 백의 술사는 전형적인 중원 사람의 부드러운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었다. 얼굴이 각지지도 않고, 눈이 깊지도 않으며 입술이 두꺼운 편이라 소박한 인상을 주었다.
남궁천유는 영양이 도약하는 것처럼 반사적으로 뛰어올랐고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그러곤 내친김에 패도를 뽑아 소리쳤다.
“누구냐!”
중장기병들은 일제히 그릇을 던지고 칼을 뽑아 말에 올라탔다. 민첩한 동작으로 아주 뛰어난 군인의 소양을 드러냈다.
백의 술사는 여유롭게 말했다.
“들…….”
남궁천유는 다시 소리쳤다.
“누구냐!”
이 백의 술사는 소리 소문 없이 그의 뒤에 나타났다. 수련 경지가 양천환보다 위인 게 틀림없었다.
백의 술사가 말했다.
“늦게 왔…….”
그는 한참을 있다가 드디어 말을 마쳤다.
“……네.”
‘자네들 늦게 왔네?!’
남궁천유는 드디어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고선 깜짝 놀라 말했다.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의부님께서 오라고 한 것입니까?”
백의 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천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황급히 물었다.
“각하께서는 누구신지요? 의부님께서 저희더러 각하를 찾아가라고 한 게 무슨 안배인지요?”
백의 술사는 차분하게 그를 쳐다보면서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감정…….”
남궁천유는 안색이 돌변했다.
‘감정? 그가 감정이라고?! 아니, 그가 어떻게 감정일 수가 있겠어. 나는 감정을 만난 적도 없는데……. 잠깐, 꼭 감정의 본체란 보장은 없지! 분신일 수도 있잖아. 맞다, 이렇게 되면 그가 내 뒤에 나타났지만 내가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 의부님이 우리에게 감정을 만나라고 하다니,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