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3화. 선황 묘 탐색
허칠안은 항원을 데리고 허부로 돌아와 하인에게 객실을 깨끗이 치운 뒤 대사를 모시고 묵으라고 분부하였다.
항원이 허부에 묵는 건, 허칠안과 허부 가족들에게 의심할 여지 없이 엄청난 이득이었다. 천종 성녀가 있고, 남강의 괴력 보유자가 있고 또 사리자를 몸에 감춘 승려가 있었으니 방어력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허부의 방어력은 사실 이미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다. 일부 왕공 귀족의 저택보다도 훨씬 대단했다.
항원은 양손을 합장하더니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하인들을 따라 바깥뜰로 갔다.
그는 비록 승려긴 해도 어쨌거나 남자였기에 안뜰에서 묵는 건 불편했다. 안뜰에는 안식구가 너무 많았다.
* * *
하인의 인솔 아래, 항원은 변두리에 있는 외진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조금도 푸대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허칠안의 배려에 흐뭇하였다. 항원은 아침저녁으로 경전을 낭독할 수 있는 아주 조용한 방이 필요했다.
항원은 간단하게 방을 청소한 뒤에 양손을 합장하여 하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인이 떠난 뒤, 그는 방문을 닫고 좌선하려했다. 그런데 갑자기 문 앞에서 누군가 작은 머리를 내미는 게 보였다. 그 사람은 새까맣고 또렷또렷한 눈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그를 어리바리하게 쳐다보았다.
항원은 웃음을 짓더니 온화하게 말했다.
“작은 시주님.”
그는 이 계집애를 알아보았다. 허칠안의 어린 여동생이었다. 항원 역시 허부에 여러 차례 온 적이 있었다.
“아저씨도 우리 집에 묵으러 왔어요?”
허영음이 물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항원은 유감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영음은 문턱을 넘어 주머니에서 곧 부서질 듯하나 아직 부서지지 않은 떡을 꺼내 얼굴을 젖히고 두 손으로 받쳤다.
“드세요.”
‘정말 철들고 선량한 아이구나…….’
항원은 감동 어린 미소를 짓더니 겸사겸사 떡을 받아 입으로 쑤셔 넣었다. 음, 맛이 좀 이상했다.
허영음은 신나게 뛰어나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손에 시들어 버린 난초를 한 송이 쥐고 뛰어 들어왔다. 뿌리 쪽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
항원은 좀 당황하여 여자아이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떡을 선물하고 꽃까지 선물하려는 건가? 허 대인의 어린 여동생은 정말로 친절하고 철이 들었군.’
허영음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고민하다가 말했다.
“제가 방금 밖에서 장난치다가 어머니가 아끼는 꽃을 뒤집어엎었어요. 저는 또 맞을 거예요. 아저씨, 아저씨가 뒤집어엎었다고 말하면 안 돼요? 아저씨는 손님이니까 어머니가 때리지 않을 거예요.”
항원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출가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허영음은 지적으로 고개를 젖혔다.
“무슨 뜻이에요?”
항원은 온화하게 설명했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허영음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럼 아저씨, 떡을 제게 돌려주세요. 제가 신발에 3일 동안 숨겨놓은 거예요. 저도 아까워서 먹지 못했는데…….”
항원은 넋을 잃고 우두망찰하였다.
* * *
회경과 이묘진은 서재로 돌아온 뒤에도 쭉 기다렸다. 아름다운 자태가 각기 다른 뛰어난 두 미인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분위기가 무겁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가볍지도 않았다.
허칠안이 문턱을 넘어 들어오는 걸 본 회경의 반응이 이묘진보다 더 잽쌌다. 그녀는 재빨리 일어나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빠른 걸음으로 맞이하였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더니 가을 호수 같은 눈동자로 그를 빤히 주시하면서 몇 번 말을 하려다 말았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떨림을 절제하며 편안하게 말했다.
“누구인가?”
“그는 아닙니다.”
허칠안이 고개를 젓더니 몇 초간 멈칫하고선 나지막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입니다.”
두 개의 대답과 두 개의 ‘그’가 각각 초상화 두 장과 대응됐다.
회경은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청초한 얼굴에서 혈색이 조금씩 가셨다. 그녀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엄청난 어지럼증이 몰려왔고 몸을 휘청거리며 곧 쓰러질 듯했다.
허칠안은 팔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탄식했다.
“마마, 슬픔을 억누르십시오…….”
“본 공주는 괜찮다, 본 공주는 괜찮아…….”
회경은 몇 차례 그를 밀치더니 그의 어깨에 축 기대어 어깨를 덜덜 떨었다.
허칠안은 품속의 미인을 꽉 안고 싶었지만, 그녀가 임안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여 그저 가볍게 끌어안는 데 그쳤다. 그는 건장한 가슴과 널찍한 어깨를 공주마마에게 빌려주었다.
이묘진은 진상을 알지 못했기에 깜짝 놀라 멍해졌다.
‘너, 너희들 뭘 하고 싶은 거야……? 내 앞에서 뭘 하고 싶은 거야?!’
이 과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회경은 가볍게 한바탕 울고 난 뒤, 재빠르게 가슴속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녀는 허칠안의 품에서 떨어져 목소리를 낮추었다.
“본 공주가 추태를 부렸네.”
이묘진은 틈만 보이면 바늘을 꽂듯이 진상을 캐물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허칠안은 회경을 쳐다보았고 그녀가 반대하지 않는 걸 보자 천종 성녀에게 설명했다.
“용맥 밑의 그분은 지종 도사가 아니라 선황이오.”
‘선황?!’
이묘진은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서는 천천히 입을 벌리고 아름다운 눈을 부릅떴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허칠안의 말이 반복적으로 메아리쳤다. 한참 지난 뒤 그녀는 자신이 중얼거리며 묻는 말을 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진정으로 장생에 집념이 있는 사람은 선황이었소. 나 역시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 이러할지도 모르오.”
허칠안은 또 한숨을 쉬었다.
선황은 사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는 비록 죽은 척했지만, 사천감 술사의 진단 결과는 틀리지 않았다. 이는 바로 선황이 여색에 빠져 몸의 기가 다 빨렸다는 뜻이었다.
이 점은 사서에 아주 명확하게 기재되었다. ‘정덕은 여색을 좋아한다’라는 짧은 몇 글자가 모든 걸 설명했다.
자신의 신체는 자신이 가장 잘 알았기에 선황은 도를 닦는 것과 장생에 대해 갈망이 생겼다. 하지만 또 기운이 몸에 더해진 자는 장생할 수 없다는 규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음속에 갈망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지종 도사가 경성에 도착했고, 그 이후에는 틀림없이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는 은밀한 비밀이 생겼을 터였다. 따라서 선황의 생각이 바뀌었으며 그가 장생의 가능성을 엿보게 되었다.
이묘진은 오랜 시간을 들여서 이 정보를 소화하였고, 연신 반박하였다.
“불가능해. 선황은 도문의 제자도 아니고 심지어 무사도 아니네. 하지만 자네가 지하 용맥 속에서 본 그 존재는 전율을 일으킬 만큼 강했다고 했잖나.”
회경은 눈시울을 약간 붉히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둘 사이에는 어떠한 인과 관계도 없다. 선황은 평범한 사람이지만, 이것이 그의 천부적인 자질이 부족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지. 황실 구성원 중에 무릇 제위를 승계할 자격이 있는 황자들은 진작에 비를 받아들여 황실을 위해 자손을 이어갔네. 아들이 있는지 없는지가 태자의 자리를 경쟁하는 데 중요한 기준 중 하나이기 때문이거든. 심지어 황자가 무도에 사로잡히면 황제와 제공들의 반감을 사곤 했네. 무도에 사로잡혔는데 정무를 처리할 힘이 어디서 나겠는가. 아…… 그가 20년 동안 도를 닦는 데 심취하여 조정과 재야의 비난이 거셌던 점이 바로 좋은 예지.”
이 말의 의미는 만약 황제가 되고 싶다면, 수행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쨌거나 사람은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선황이 평범한 사람이 되어 제위를 선택하였다고 해서 그의 천부적인 자질이 부족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는 이 20년 동안 마치 거머리처럼 대봉의 국운 위에 엎드려 백성을 악랄하게 착취하고 고혈을 짜냈다. 설령 돼지 한 마리라고 해도 이렇게 많은 자원을 먹이면 돼지 장군이 되었다.
더군다나 현재 상황을 보자면, 선황의 천부적인 자질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이묘진은 순간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무엇이 떠올랐는지 몰라도 깜짝 놀라 소름이 끼치면서 실성할 지경이 되었다. 그녀가 다급히 회경에게 물었다.
“진북왕의 시체가 어디에 있지요?”
허칠안과 회경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허칠안은 그녀가 왜 이렇게 흥분하는지 몰라 물었다.
“왜 그러시오?”
진북왕의 시체는 여러 갈래로 갈기갈기 찢겨 죽었다. 이 친왕의 시체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신경 쓰는 이가 없었다.
천종 성녀는 천천히 일어나 극도로 겁에 질린 눈빛으로 두 사람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일기화삼청, 일자삼인, 삼인일자, 세 분신이 철저하게 죽지 않는 이상, 그들은 죽지 않을 겁니다. 죽은 건 그저 오랜 세월 누적된 피일 뿐이고, 죽은 건 그저 삼 분의 일 원신일 뿐입니다.”
허칠안과 회경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 * *
상백, 다시 건설한 후의 영진산하 사당.
원경제는 검은색 바탕에 금색 실이 수 놓인 비단 장포 차림으로 뒷짐 진 채 개국 황제의 조각상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쉰이 넘었지만, 불그스름한 얼굴과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곧은 자태는 보기에 고작 마흔 살밖에 돼 보이지 않았다.
“조상님, 조상님께서는 대봉 왕조를 건립하여 중원의 기운을 응집하여 1품으로 승직하셨습니다. 전봉일 때는 무신교라고 해도 마지못해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요. 무종, 무종께서는 케케묵은 적통을 뒤집고 유가의 인정을 얻으셔서 제위에 올라 황제로 칭송받고 1품으로 승직하셨지요. 이후 유가가 크게 흥하면서 불문도 어쩔 수 없이 서역으로 물러났지요. 대봉 건국 600년, 두 분 제외하고 더는 1품 무사가 없었지요. 하지만 두 분께서 생전에 얼마나 강해 온 천하를 호령하였든 간에 100년 후에는 결국 흙 한 줌이 되었습니다.”
원경제는 차분한 눈빛과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나는 대봉에서 처음으로 영원히 사는 황제가 될 겁니다. 곧입니다, 곧이에요.”
* * *
경성 관내, 복룡(伏龍) 산맥.
고공에서 내려다본 복룡 산맥은 마치 그 지방에 깊이 잠든 거대한 용 같았다. 천하의 영기(靈氣)가 응집되어 있고, 지맥의 기세가 맺힌 이 산은 경성 관내 최상의 길지였다.
약 300년 전, 그 시대의 황제가 이곳에 능을 세웠다. 그 후 300년 동안 앞뒤로 여섯 명의 황제가 복룡 산맥에 묻혔다. 이러한 이유로 이 지역의 황릉은 ‘봉육릉(奉六陵)’이라고도 불렸다. 선황 역시 이곳에 묻혔다.
일행 네 사람은 은밀히 황릉에 잠입하였다. 사천감과 유가의 법술로 저속한 무사들의 ‘방어선’을 피해 황릉 외곽의 건물을 뚫고 산속에 진입하여 선황 무덤 밖에 멈춰 섰다.
그들이 이번에 온 이유는 마지막으로 검증하기 위함이었다.
명색이 한 나라의 군주로서 죽은 척하는 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조정 전체의 문무백관, 어의, 사천감 모두 확인했을 터였다. 애당초 선황이 관에 들여보내진 이상, 그는 적어도 당시에 확실히 죽은 것이었다.
그들은 도대체 무슨 일인지 무덤에 내려가 확인해야만 했다.
* * *
황릉 밖에서 허칠안은 유가법술서를 한쪽 찢고 세 미인을 향해 말했다.
“저를 붙잡으십시오.”
종리는 순종적으로 뒤에서 그를 안았고, 회경과 이묘진은 그를 흘겨보더니 손을 그의 어깨에 얹었다.
‘역시 종 사저가 가장 순종적인가? 회경과 묘진은 개성이 너무 강해…….’
허칠안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입으로는 멈추지 않고 기기로 종이를 태우며 읊조렸다.
“우리는 황릉 밖에 있는 게 아니라 황릉 대문 안에 있다.”
종이가 거의 다 타자 미약한 청광이 네 사람을 휘감아 사라졌다.
종리는 야광주로 만든 법기를 사용하여 맑고 투명한 빛을 내뿜게 해, 칠흑 같은 황릉 내부를 밝게 비추었다.
이묘진은 고개를 돌려 보았는데 자기 편 네 사람이 그저 황릉 대문을 지나쳤을 뿐이라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황릉에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걸 알고 참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왜 바로 말하지 않았지? 주묘로 바로 들어가자고?”
‘유가의 법술을 사용하여 문 하나밖에 지나치지 못하다니. 너무 낭비 아닌가?’
그들은 광명정대하게 대문을 열 수 없었고, 도굴을 파는 데 시간을 들일 수도 없었다. 하지만 허칠안은 바로 그들을 시체가 있는 주묘로 전송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