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2화. 진상의 일부분
회경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네. 자네가 초주성 백성 대량 학살 사건에서 회왕이 혈단을 얻고 아바마마께서 혼단을 얻었다고 말한 적 있었지. 하지만 혼단의 효과는 아바마마께서 천하의 대악(大惡)을 범하기에 역부족이야.”
“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원경제를 조사하기 시작한 겁니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채미에게 물어보아 혼단의 효능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잔혼을 보수하는 게 가장 강한 효능이라는 걸 발견하였네. 다른 작용은 이와 비교할 수 없더군. 하지만, 만약 지종 도사가 정말 일기화삼청을 했다면 원신이 절대 불완전할 리가 없네. 내가 좀 더 분명하게 얘기하자면, 도문 2품의 고수가 설마 일기화삼청 법술도 부리지 못하겠는가?”
허칠안은 어리둥절했고, 재빠르게 자신의 추리를 한 번 살피더니 회경의 말과 비교했다.
‘내가 사고의 오류에 빠졌다. 지종 도사의 다른 분신이 용맥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한 뒤에 혼단의 단서를 연결하니 자연스럽게 지종 도사가 혼단을 정제하는 게 불완전한 영혼을 보완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나는 2품 도사의 지위를 소홀히 했다. 지종 도사가 일기화삼청을 했는데 어찌 갈라진 영혼이 불완전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금련 도사는 확실히 잔혼인데…….’
혼잡하고 어수선한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허칠안은 침을 삼킨 뒤 숨을 내뱉었다.
“이건 확실히 불합리한 부분이군요. 하지만 제가 지종 도사를 의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마의 의심 역시 그저 의심일 뿐, 확실한 증거가 없습니다.”
회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시선을 옮겨 전기적인 인물이라고 칭송받는 허 은라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의문점은, 음, 내가 생각하는 의문점은…… 사람을 납치하는 건 정덕 26년부터 시작되었네. 이건 자네가 밝혀낸 것이야.”
허칠안은 침음하더니 말했다.
“당시 재위한 황제는 선황이지만, 원경제는 태자였지요. 그 역시 황궁에서 암암리에 밀실을 만들 능력이 있었습니다.”
회경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당시 평원백은 아직 젊었네. 아주 젊었어. 그는 마침 왕성하게 위로 올라가고 있는 단계에 놓여 있었네. 그가 암암리에 인신매매 조직을 편성하여 아바마마를 위해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었네. 여기에는 분명히 이익 거래가 있었을 거야. 하지만 나중에 아바마마께서는 제위에 올라 황제가 되었지만, 평원백은 여전히 평원백이었지. 작위든 관위든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네. 하지만 이건 평원백이 야심이 없어서가 아니야. 그가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해 양당과 연합하여 암암리에 평양군주를 해한 게 바로 가장 좋은 증거지. 자네는 이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자네가 평원백부라면 달갑겠는가? 태자를 위해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는데 태자가 제위에 오른 뒤 자네는 여전히 이십여 년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잖나.”
대청 내부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분위기가 돌연 무거워졌다. 물론 이묘진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들어서 완전히 깨닫지 못했지만, 그녀 역시 사건에 반전이 생겼다는 점을 의식하였다. 회경이 한 말은 아주 일리가 있었고, 허칠안 역시 반대하지 않았다.
회경이 자발적으로 정적을 깨고 물었다.
“자네는 지하 용맥에서 뭘 발견했는가?”
허칠안은 항원을 구해낸 과정을 얘기하였다.
“그래서 용맥 위에는 실제로 무시무시한 존재가 숨어 있지만, 지종 도사는 아니다?”
이묘진은 회경을 힐끗 쳐다본 다음 다시 허칠안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누구지?”
회경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은 그 사람이 지종 도사가 아니라는 점을 확신할 수는 없지. 설령 혼단을 지종 도사에게 준 게 아니라고 해도, 설사 평원백한테 의문점이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용맥 안의 그 존재가 지종 도사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는 없네.”
허칠안은 생각하더니 미간을 문지르면서 말했다.
“확인하고 싶다면 간단합니다. 항원이 그 자식을 본 적 있고, 저와 묘진은 흑련을 만난 적이 있지요. 초상화를 그려 항원에게 식별하라고 주면 알게 될 겁니다.”
이묘진과 회경의 눈이 반짝였다.
허칠안과 이묘진은 동시에 말했다.
“저는 단청(*丹靑: 그림을 그림)할 줄 모릅니다.”
회경은 적극적으로 나섰다.
* * *
세 사람은 대청을 나서 방으로 들어갔다. 허칠안은 정성스럽게 물을 붓고 먹을 갈고 종이를 펼쳐 백옥 문진(文鎭)으로 눌렀다.
회경은 한 손으로 소매를 걷고, 한 손으로는 붓을 든 뒤, 고개를 들어 이묘진과 허칠안을 훑었다.
“그가 어떻게 생겼지?”
“그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물고기인 인어입니다. 좌우도 아니고 상하도 아니고 머리가 있고 성기도 있고…….”
허칠안이 즉시 묘사하였다.
“얼굴형이 홀쭉하고 코는 높으며…….”
그의 묘사에 이묘진이 덧붙이자 회경은 네다섯 장의 초상화를 연속으로 그렸고, 마지막으로는 지종 도사와 70~80% 비슷한 노인을 그려냈다.
“됐습니다.”
허칠안은 종이를 쥐고 손을 털어 기기로 묵적을 증발시킨 뒤 초상화를 잘 말면서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한 장 더 그려주세요. 그자는 아마 마마께 낯설지 않을 겁니다.”
회경은 잠시 침묵하더니 종이를 펼쳐 두 번째 초상화를 그렸다.
회경이 초상화를 다 그리자 허칠안은 다급히 방을 빠져나갔다.
이묘진이 황급히 떠나는 허칠안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마마께서 그린 두 번째 사람은 누구인지요?”
회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표정이 어두우면서도 엄숙했다.
* * *
항원은 동성 양생당에서 개가죽을 걸치고 있는 가엾은 아이를 포함하여 노인과 아이를 한 명씩 다 살폈다. 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많지 않았다. 승포 두 벌과 불경 몇 권뿐이었다.
출가인은 혈혈단신이라 짐이 두세 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여기에 계속 남을 수는 없었다. 원경제가 조만간 다시 올 것이고 언젠가는 잡힐 것이었다. 이곳을 떠나 노인과 아이들과 연락을 끊어야만 그들을 더 잘 보호할 수 있었다.
늙은 하급 관리는 방문 앞에 서서 슬픔 가득한 얼굴로 몸을 벌벌 떨었다.
“저 당분간은 경성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허부에 가서 한동안 머물 계획입니다. 비교적 안전한 은신처이면서 동시에 허부의 방어력을 높일 수도 있지요. 초주성 백성 대량 학살 사건 이후, 그의 처지가 몹시 나빠졌거든요……. 그동안, 제가 정기적으로 돌아와 살필 겁니다.”
항원은 승복을 접으면서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은자 방면으로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허 대인은 마음이 선한 사람이니 양생당의 지출을 부담하실 겁니다.”
사실상 그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늙은 하급 관리는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슬퍼하였다.
“대사님, 다짐하십시오. 꼭 돌아오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는 대사께 다시 일이 생기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항원은 짐을 다 챙기고 늙은 하급 관리를 스쳐 방을 걸어 나갔다.
* * *
마당 안, 백발이 성성한 노인 여덟 명이 아이에게 부축을 받거나 지팡이를 짚고 한데 모였다.
아이들 열두 명도 다 모였다. 이미 걸을 수 없는 뒤뜰의 그 아이를 제외하고는…….
아이들은 그나마 깨끗한 얼굴을 젖히고 순진하고 맑은 눈동자로 소리 없이 항원을 바라보았다.
“저희 대사님을 배웅하러 왔어요.”
한 노인이 입을 떼 말했다.
“가게. 다시는 돌아오지 말게. 자네 우리를 너무 많이 도와주었어. 더는 자네에게 짐이 돼서는 안 되지.”
아이들은 눈물을 머금고 말을 하지 않았다.
항원은 말없이 합장하며 인사하였다.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마침 양생당 대문으로 들어오는 허칠안이 보였다. 허칠안은 발걸음이 분주해 보였다.
“허 대인?”
항원은 그를 맞이하러 나갔다. 그는 놀랍고 기쁘면서도 의아했다.
“항원 대사, 지하의 그 존재를 본 적이 있다고 했지요? 맞지요!”
항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허칠안은 흑련의 초상화를 펼치고 이글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상대방을 주시하였다.
“그자입니까?”
항원은 정신을 집중하여 잠시 식별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가 아닙니다!”
‘그가 아니라니……. 참, 항원도 흑련을 본 적이 있지. 그 역시 검주의 연밥 다툼에 개입했었다. 만약 흑련이라면 당시 지하에 있을 때, 그가 알아차렸겠지. 내가 또 이 디테일을 놓쳤네……. 음, 그 분신의 용모가 흑련 도사와 다를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금련과 흑련은 다르게 생겼으니까…….’
허칠안은 손을 털어 흑련의 초상화를 태워버린 뒤 회경이 그린 두 번째 초상화를 펼치고 괴이한 어조로 물었다.
“이, 이 자입니까?”
항원은 갑자기 무거운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어찌 그의 초상화를 가지고 계십니까? 바로 이 자입니다.”
‘이건…….’
허칠안은 눈동자가 순간 크게 요동쳤다. 그는 왠지 모르게 털이 곤두서고 등골이 서늘해지는 듯했다.
선황이다!
회경이 그린 건 선황이었다!
지하 용맥 안의 그 존재가 선황이었다!!
이 순간, 허칠안의 솔직한 감상은, 터무니없으면서도 합리적이고 충격적이면서 또 충격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회경이 두 가지 의문점을 지적한 뒤에 그는 선황에게 의심을 품었고 그제야 회경에게 두 번째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회경은 정말로 선황의 초상화를 그렸고 이는 회경 역시 선황을 의심한다는 의미였다.
“알고 보니 그해 지종 도사가 오염시킨 게 회왕과 원경이 아니라 선황이었다니……. 맞다, 선황은 여러 번 일기화삼청과 장생을 언급하였지. 그야말로 장생에 집념이 있는 사람이었어.”
허칠안은 천천히 돌 탁자 옆으로 걸어가 앉았다. 머릿속에서 디테일이 하나씩 하나씩 끊임없이 떠올랐다.
‘일기화삼청, 삼자일인, 삼자삼인, 일인삼자. 일인이 삼자일 수도 있다. 선황은 선황일 수도 있고, 회왕일 수도 있고, 더욱이 원경일 수도 있다. 알고 보니 그들 부자 세 사람은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의심 많은 원경이 회왕에게 모든 걸 다 맡긴 것이다. 그에게 진국검을 하사하고, 대봉 제일의 미인을 하사함으로써 제왕의 심보에 어울리지 않는 믿음을 보였다.
생각났다. 왕비가 한 번 얘기했었지. 원경이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미색에 극도로 매혹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이야……. 어쩐지. 그가 왕비를 회왕에게 선물하길 원했던 것도 이래서였구나. 만약 회왕 역시 그 자신이라면?
그해 남원 사건 때 회왕과 원경이 설령 죽지 않았어도 문제가 생긴 것이다. 통제당하거나 지종 도사에게 오염되었거나. 그 후 그들은 선황에게 동화되고 빙의되어 한 사람이 되었다. 이게 바로 일인삼자의 비밀이다. 이게 바로 애당초 지종 도사가 선황에게 말한 비밀인가? 그때 도리를 논한 후에 그들은 어쩌면 모의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용맥 밑에 누워 있는 자가 바로 선황의 본체…….
감정은 모든 걸 다 알면서도 아무것도 관여하지 않았다. 소란을 피우는 사람이 지종 도사가 아니라 대봉의 황제였기 때문이다. 아니, 감정은 그만의 계획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추측하지 못한다.
평원백은 줄곧 사람을 속이고 납치하는 짓을 하면서 감히 공을 바랄 엄두를 내지는 않았다. 이는 그가 선황을 위해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원경이 아니라 선황의 일을 돕고 있는 줄 알았다. 선황은 왜 그 백성들이 필요하지? 초주성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이 이미 내게 답을 주었다. 혈단과 혼단이다! 선황은 정통 도사가 아니라서 일기화삼청을 완벽하게 시전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폐단이 남은 것이다. 예컨대 원신이 불완전하여 혼단으로 보수해야 한다거나…….’
허칠안은 두피가 욱신욱신 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