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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631화 (631/712)

631화. 사람이 다 떠난 빈집

한참 뒤 허칠안은 들끓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백골로 가려지지 않은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의 거대한 돌판에는 비뚤비뚤하고 기이한 주문이 새겨져 있었다.

‘이 전송 진법이 바로 외부 세계로 통하는 유일한 길? 지종 도사가 이걸 통해 떠났나? 왜 떠났지? 왜 이 순간에 떠나기를 선택한 거지……. 내가 지난번에 탐색하다가 상대를 놀라게 했나?’

“국사.”

그는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금빛이 내려왔다. 낙옥형은 허공에 떠서 고개를 숙여 그들을 내려다보다가 심연의 백골산을 굽어보았다.

낙옥형이 담담하게 말했다.

“자네가 지난번에 들어왔을 때 아마 그를 놀라게 하여 그가 떠나기로 마음먹은 듯하네. 지서를 내던지게. 내가 진법의 반대편 끝으로 전송되어 상황을 살필 테니. 자네들은 먼저 돌아가서 평원백부에서 나를 기다리게.”

진법의 다른 쪽은 함정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어차피 분신이었기에 없어지면 없어지는 것이라 총알받이가 되는 걸 개의치 않았다. 본체와 분신의 연결을 제때 끊기만 한다면, 지종 도사의 오염을 교묘하게 피할 수 있었다.

허칠안은 지서 파편을 꺼냈다. 그런 뒤 기기를 조종하여 지서 파편을 돌판 위에 보내고, 원거리에서 기기를 주입하였다. 혼탁한 미광이 빛나더니 주문을 밝히며 전송 진법을 작동시켰다.

낙옥형은 금빛으로 변해 전송 진법에 뛰어들었다. 그녀가 미광과 접촉한 뒤, 형체가 갑자기 사라지더니 진법이 연결된 다른 쪽으로 전송되었다. 허칠안은 지서 파편을 회수하고 항원과 재빨리 밀실에서 철수했다. 그들은 복도를 미친 듯이 달려 평원백부로 다시 전송되었다.

* * *

두 사람은 석실을 나섰고, 이윽고 석가산에서 걸어 나왔다. 시간이 있는 틈을 타, 허칠안은 항원에게 원경제와 지종 도사의 ‘관계’ 그리고 은밀한 사건에 관해 얘기하였다.

또한 그는 금련 도사가 바로 지종 도사의 선념이라고도 말했다.

항원은 한참을 말이 없다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알고 보니 그랬군요. 빈승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금련 도사가 2품 고수의 마념에 매달릴 수 있다니요. 음, 허 대인께서는 어째서 지서 파편을 갖고 계시지요?”

허칠안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신년이 북경에 싸우러 가서 삼호의 지서 파편을 잠시 제게 맡겼습니다.”

‘항원 대사, 대사님이 내 마지막 고집입니다…….’

항원은 허 대인을 무한히 신뢰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허 대인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이 화원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평범한 사람은 볼 수 없는 금빛이 날아와 석가산 위에 내려앉았다.

낙옥형은 석가산 위에 서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쪽은 사람이 없는 내성의 저택이네.”

‘사람이 없는 저택? 다른 한쪽 끝이 황궁이 아니라 사람이 없는 저택이라고?’

허칠안은 침묵에 빠졌다.

‘지종 도사가 이미 갔다. 이거…… 너무 결단력 있게 간 거 아니야? 어디로 간 거지? 고작 나한테 놀랐다고 무서워서 도망쳤다고? 아니면 황궁에 갔나? 감정은? 감정이 그가 간 걸 아나? 감정은 그가 황궁에 들어가는 걸 좌시할 건가?’

낙옥형은 그가 한참 동안 말이 없는 걸 보자 물었다.

“단서가 또 끊겼나?”

허칠안은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지종 도사의 분신이 철수한 게 틀림없습니다. 어쩌면 제가 처음으로 탐색했을 때 이미 그를 놀라게 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건 그가 너무 급작스럽게 가는 바람에 몸을 숨길 장소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항원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어쩌면 지종 도사는 이미 목적을 달성했을지도 모릅니다. 경성이 어떠하든 이미 그와 무관하니까요?”

허칠안은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목적을 달성했는지 대사께서 어찌 아십니까? 하지만 만약 지종 도사가 원경제의 처지에 대해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면 그는 확실히 아주 후련하게 갈 수 있겠지요.”

허칠안은 얼굴을 문지르더니 탁한 숨을 내뱉었다.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바로 감정을 찾아가겠습니다.”

지종 도사가 떠나면서 이 사건은 다시 단서가 없어졌다. 비록 지종 도사가 직접 인정하지는 않았고, 그의 추측도 어쨌거나 추측일 뿐이지만, 이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하에 쌓인 백골이야말로 중요한 증거였다.

위 공은 경성에 없으니 이 일은 감정을 찾아가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감정이 지난번처럼 그와 만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니 감정은 이 일을 아는 듯합니다.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공교로울까요? 제가 지난번에 용맥을 탐색하러 가려 했을 때 그는 마침 저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왜 싸늘한 눈으로 방관하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낙옥형이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상식에 맞지는 않지.”

허칠안이 막 말을 하려던 차에 뒤통수를 누군가 후려친 듯한 감각이 밀려왔다. 그는 머리를 문지르면서 지서 파편을 꺼냈다.

일호의 지서 파편이 삼호에게 1:1 채팅을 보냈다.

‘정말 한 대 후려치고 싶네. 여신의 뒤통수를 갈기면 어떤 기분일까…….’

그는 비아냥대면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일: 나 허부에 있으니 속히 돌아오게.]

[삼: 무슨 일이십니까? 참, 저 항원을 구해냈습니다.]

회경은 한참 동안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의구심을 품은 전서를 보냈다.

[일: 평안무사한가?]

그녀의 진짜 말뜻은 ‘평안무사하게 사람을 구해냈는가?’ 였다.

[삼: 확실히 별다른 위험은 없었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시죠. 참, 저를 무슨 일로 찾으십니까?]

[일: 자네 이 사건에 문제가 있으니 저택으로 돌아와 얘기하지.]

“국사, 저희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새로운 진전이 생기면 제가 다시 통지하지요. 국사께서…….”

허칠안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금빛이 되어 도망가는 국사를 보았다. 순간 그는 표정이 굳은 나머지, ‘국사께서 저희를 돌려보내 주시지요’라는 말을 더는 내뱉을 수 없었다.

‘좌우간 우리를 돌려보내 줘야지. 나는 암말을 데려오지 않았다고!’

그는 속으로 말하면서 즉시 곁에 있는 항원을 쳐다보았다……. 음, 암말을 데려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두 사람은 백부 저택의 높은 담을 뛰어넘었다. 그들은 주변에 사람이 없어 재빨리 빠져나와 큰 거리의 인파 속에 합류하였다.

길목까지 걸어가니 영안가(永安街)의 패방 아래, 해시계가 나타내는 시간은 진시 사 각이었다.

경성은 모든 주도로의 길목에 거대한 패방이 세워져 있었으며, 패방 옆에는 해시계가 세워져 있어 백성들이 시간을 확인하게끔 했다.

‘30분 정도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군. 회경이 초조하게 기다리지 않길 바라야지.’

허칠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경성에서는 낮이든 밤이든 처마와 담벼락을 나는 듯이 넘나드는 게 허용되지 않았다.

허칠안도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지금 명성을 좀 낮추는 편이 좋았다. 그러지 않으면 그는 행인들의 열광적인 성원으로 혼란을 야기할 터였다.

다행히 허칠안은 은라 차복 차림이 아니었기에 백성들은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사실 사람들은 뚜렷한 특징만을 기억할 뿐이었다. 게다가 경성 인구는 이백만이 넘었기에 모든 사람이 그렇게 운 좋게 허 은라의 늠름한 자태를 보기란 불가능했다.

많은 이들은 허 은라의 평범하고 소박한 모습을 전혀 본 적이 없었다.

허칠안은 걷다가 갑자기 굳었고,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항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대사, 지하에 한 달 남짓 갇혀 계셨으니 노인과 아이들을 보러 양생당으로 돌아가시지요.”

항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요즘 잘 지냈습니까?”

허칠안이 거리낌 없이 말했다.

“제가 비록 가보지는 않았지만, 줄곧 사람을 보내 은자와 생활용품을 지원했습니다.”

항원은 양손을 합장하더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허 대인은 빈승이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인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빈승은 허 대인과 친구가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허칠안은 답례하였다. 그 역시 몸에 나한 과위를 품은 대사에게 숭배받아 앞으로 적잖은 이익을 얻을 수 있어 아주 기뻤다.

뛰어난 인재 초원진, 의협심이 강하고 정의로운 천종 성녀, 타고난 자질이 비범하고 힘이 넘치는 리나, 몸에 나한 과위를 품은 항원, 그리고 재능과 지혜가 둘도 없이 뛰어난 황장녀 회경.

기껏해야 10년, 어쩌면 천지회 구성원들이 구주 전봉의 세력이 될지도 몰랐다.

‘음, 칠호와 팔호는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는데 실망시키지 않길 바랍니다.’

허칠안은 북적거리는 인파 사이로 항원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항원이 그를 따라 허부로 돌아간다면, 회경이 일호 신분이라는 걸 숨길 수 없었다.

그럼 회경의 성격으로는 다 같이 죽자고 할 터였다.

* * *

회경은 허부 대청 안에서 앉아 기다리다가 좀 짜증이 났다. 명색이 안주인인 숙모는 황장녀의 강력한 위엄과 신분 때문에 할 수 없이 잠시 함께 있다가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를 대고 방으로 돌아갔다.

허영월은 이묘진에게 저지당해 돌아갔다. 비록 허씨 집안의 맏딸이 그녀의 어머니보다 더 감당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얘기할 일은 기밀이라 그녀가 옆에서 듣기에는 곤란했다.

이묘진은 회경이 사건에 중대한 의문점이 있다고 직접 얘기한 일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추리 능력이 허칠안 바로 밑이자 천지회 제2호 사건 조사 담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녀들은 마당에 들어오는 허칠안을 보았다. 그는 청석판이 깔린 곳을 가로질러 대청 내부로 걸음을 내디뎠다.

명색이 주인인 허칠안은 회경과 이묘진 두 사람이 각각 앉은 두 의자를 보고 어쩔 수 없이 아래쪽 손님 자리에 앉았다. 그가 황장녀를 쳐다보았다.

“뭘 발견하셨나요?”

회경은 몇 초간 어휘를 고르더니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지종 도사가 일기화삼청인지 어떻게 확인했지?”

‘이게 확인까지 필요해?’

허칠안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회경은 다시 이묘진을 쳐다보더니 물었다.

“도문의 법술로 사람이 원신을 분열시킬 수 있나? 하지만 꼭 세 사람으로 변하는 건 아니겠지.”

이묘진은 이런 문제라면 생각할 필요가 없었기에 바로 말했다.

“일기화삼청은 원신 영역의 최전봉 법술입니다. 그건 한 사람을 세 사람으로 분열시킬 수 있습니다. 심지어 독립적인 의식을 지니고 있어 단독적인 사람이면서도 삼자(三者)가 합일(合一)할 수도 있지요. 만약 그저 원신이 분열되는 거라면, 음신을 수련해내는 사람은 전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열된 원신은 불완전하고 온전하지 않아 일기화삼청과 비교할 수 없지요.”

회경은 이 대답에 아주 만족하였고, 돌아서서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가을 호수처럼 맑은 눈으로 이글이글 사람을 압박하였다.

“자네 금련 도사가 잔혼이라고 말한 적 있었지. 이는 원신이 분열하는 상황에 부합하긴 하네. 지종 도사는 어쩌면 단순히 선념과 악념으로 나뉘었을지도 모르네. 소위 일기화삼청은 그저 자네의 추측일뿐, 증거가 없어.”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차분한 어조를 유지하면서 분석하였다.

“어쩌면 지종 도사가 갈라져서 나온 세 사람은 이미 분리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음, 이건 필연이지요. 그게 아니라면 흑련은 진작에 금련 도사를 찾아냈을 겁니다.”

이묘진이 말했다.

“말했잖나. 일기화삼청도 독립적일 수 있네. 연결고리가 존재하지 않는 세 사람이 굳이 갈라져야 하는 게 아니라.”

허칠안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그는 선황의 기거록 속에 일기화삼청에 관한 지종 도사의 주석을 떠올렸다.

일인삼자가 말하는 게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그들은 완전히 독립적인 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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