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630화 (630/712)

630화. 백골의 산

기기를 주입한 후, 지서 파편은 혼탁한 미광을 반짝였다. 미광은 마치 물 흐르듯 주문에 하나씩 불을 붙였다.

허칠안과 낙옥형은 약속이나 한 듯 돌판 위로 뛰어올랐다. 다음 순간 혼탁한 미광이 소리 소문 없이 팽창하더니 두 사람을 삼켰고, 그들을 데리고 석실에서 사라졌다.

허칠안은 다시 빛이 없는 순수한 환경에 들어서니 온몸이 말없이 바짝 긴장되었다. 그는 마치 강한 적을 맞닥뜨린 듯 지난번에 자신이 소리 소문 없이 ‘죽어가던’ 장면을 저도 모르게 떠올렸다.

그는 공포스럽고 통제할 수 없는 압박감을 떠올렸다.

이때 그는 총채가 팔을 가볍게 치는 것을 느꼈다. 귓가에 낙옥형의 전음이 울려 퍼졌다.

“내 뒤를 따르게!”

총채가 다시 그를 쳤다. 마치 그에게 따라와도 된다는 의사를 표한 듯했다.

‘너무 어둡잖아. 하나도 안 보여. 내가 만약 앞으로 손을 뻗어 더듬는다면, 이모의 탱탱한 엉덩이를 만질 수 있을까?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겠지…….’

그는 생각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복도는 적막하면서도 길었다. 장장 일각을 걸으니 허칠안의 마음이 조여오면서 그 공포스러운 숨소리와 태산 같은 묵직한 위압감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전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사 평온했다.

‘응?’

그는 아무런 내색하지 않은 채 낙옥형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몇 분 지나자 전방에 미약하지만 순수한 금빛이 나타났다.

‘내가 지난번에 바로 여기에서 사망했는데.’

허칠안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제자리에 멈추고 움직이지 않았다.

낙옥형의 수법과 수련 경지는 안심해도 괜찮았다. 정말 무슨 위험이 닥치면 이모가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건 그저 이모의 분신이잖아……. 엇, 그녀의 분신이 만약 해결하지 못하면, 내 진짜 몸이 알약인가?’

생각하다가 허칠안은 갑자기 멍해졌다.

그는 연상을 펼치는 사이, 갑자기 낙옥형의 몸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오는 장면을 보았다. 반짝이면서도 눈부시지 않은 금빛이 주위의 어둠을 밝게 비추었다.

이모가 고개를 돌렸다. 정교하고 더없이 아름다운 이목구비는 마치 금빛 찬란한 조각상 같았다. 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여기는 이상 없네. 한 승려만 있을 뿐.”

‘이상이 없다고?!’

허칠안은 또다시 멍해졌다.

‘공포스러운 위압감은? 무시무시한 숨소리는?’

그는 의심을 품으며 낙옥형과 불문의 기운을 내뿜는 금빛을 향해 다가갔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가니 전방에 널찍한 밀실이 보였다. 밀실 중앙에는 돌 침상이 하나와 청동 단로(丹爐)가 놓여 있었고, 돌 침상 옆은 단층의 심연이었다.

돌 침상 위에 체구가 크고 훤칠한 승려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머리 위에는 금빛 찬란한 주먹 크기만 한 구슬이 떠 있었다.

그는 눈을 감은 상태였다. 일찌감치 생명의 흔적이 사라진 뒤였다.

‘항원 대사…….’

허칠안은 갑자기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순간 그는 머릿속에 지난날 항원과 관련된 여러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그가 자신에게 은자를 달라고 했을 때의 난처함, 그가 양생당에서 노인과 과부, 홀로 남겨진 아이를 보살필 때의 진지함이 떠올랐다…….

낙옥형은 주먹 크기만 한 구슬을 잠시 주시하더니 말했다.

“사리자(舍利子), 2품 나한이 응집한 과위(果位)지.”

그녀는 멈칫하더니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그는 그저 죽은 척하는 것이네.”

‘그저 죽은 척하는 거라고…….’

허칠안은 쉴 새 없이 복받치던 슬픔이 갑자기 사라지는 듯했다. 그는 마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 한숨 내쉬더니 돌아서서 물었다.

“사리자가 나한 과위라지만, 항원이 2품 고수일 리가 없습니다.”

항원이 불문 2품 우두머리라고 속인 게 아닌 이상, 이건 불가능해 보였다.

낙옥형은 침음하더니 말했다.

“500년 전, 불문은 일찍이 중원에서 크게 흥했는데 생각건대, 그 시기의 고승이 남아있는 듯하네. 그가 왜 사리자를 가졌는지라면, 그가 나한의 환생이거나 기연(機緣)을 몸에 짊어져 사리자를 얻은 것이네.”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제가 듣자 하니 나한은 죽지 않았다는데요.”

그는 말을 마치고 속으로 빈정거렸다.

‘얘네 불문의 수련 체계가 너희 도문보다 훨씬 안정적이야. 너네 도문 삼종은 완전히 사도에 빠졌잖아.’

낙옥형은 그를 흘겨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불문의 선사 체계 중에 4품 고행승이 전기지경(奠基之境)이네. 고행승은 대망(*大望: 큰 희망)을 빌어야 하는데 대망이 클수록 과위도 높아지지. 과위의 차이에 따라 나한과 보살의 차이가 생기네. 과위가 일단 응집되면 다시는 바꿀 수 없네. 바꿔서 말하면, 나한은 영원히 나한으로 1품 보살과는 인연이 없는 셈이지.

그리하여 전세중수(*轉世重修: 다시 태어나 다시 수련함) 법술이 생긴 것이네. 만약 나한이 1품이 되고 싶으면 반드시 전세중수하여 이생의 모든 걸 포기해야 하지. 모든 나한이 전세할 때마다 불문은 모든 힘을 다해 찾고, 전생의 그의 사리자를 그의 체내에 삽입하네. 500년 전, 유가가 멸불을 밀고 나가 불문을 서역에서 물러나도록 핍박하였는데 이 사리자는 아마 그해 남겨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네. 음, 허나 이 승려는 어쩌면 기연이 우연히 일치하여 사리자를 얻었을지도 모르네. 꼭 나한이 환생한 건 아니야.”

‘이게 바로 항원의 비밀이구나. 이게 바로 금련 도사가 지서 파편을 그에게 준 이유구나……. 항원이 나한의 환생이든 기연이 우연히 일치하여 사리자를 얻었든 앞으로 그의 업적은 절대 하찮지 않겠군……. 사리자에는 영(靈)이 있어서 항원 대사를 보호하니 그가 위기에서 벗어나겠지?’

허칠안은 문득 모든 일을 깨달았다.

동시에 그는 도액 나한이 애당초 그를 불자라고 칭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도액이 그가 어떤 나한의 환생이라고 의심했나?’

그의 생각이 날뛰는 사이, 낙옥형은 손가락을 뻗어 사리자 위를 가볍게 찍었다.

그녀가 쓴 건 원신을 깨우는 도문의 비법으로 공격성을 띠지 않았다.

사리자는 부드러운 빛을 은은하게 발했다.

몇 초 뒤, 허칠안은 항원의 가슴 속에서 쥐 죽은 듯이 고요했던 심장이 다시 뛰는 소리를 들었다. 피가 공급되기 시작하더니 십여 초 더 지나자 승려는 눈꺼풀을 파르르 떨면서 눈을 떴다.

“허 공자님? 국사?”

항원은 망연히 둘러본 뒤 허칠안 그리고 반짝이는 금빛을 내뿜는 낙옥형을 보았다.

“대사, 명이 정말 기시네요!”

허칠안은 웃음을 터뜨렸다.

항원은 막 말을 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깜짝 놀랐다. 그는 마치 털을 세운 고양이 도사 같았다. 그는 문득 청동 단로 방향을 쳐다보았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항원은 치켜올린 ‘고양이 털’을 천천히 거두더니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미간 사이가 한결 가벼워졌다.

허칠안은 항원의 반응에 다소 소름이 끼쳤다. 그는 잠시 어휘를 고르더니 자신이 비밀 통로를 어떻게 발견했고, 국사에게 어떻게 도움을 청했는지 간단하게 얘기하였다.

그러고 나서는 물었다.

“대사께서는 이곳에서 무얼 맞닥뜨리셨나요?”

항원은 그제야 허칠안의 얘기를 다 들으면서 세부 사항을 검증한 다음 비로소 눈앞의 두 사람이 진짜임을 믿었다.

그는 즉시 사리자를 도로 삼키고 양손을 합장한 뒤 감칠맛 나게 말했다.

“그날 제가 회왕 밀정에게 끌려온 뒤, 그들은 평원백부의 전송 진법을 통해 저를 이곳에 보냈습니다. 이곳은, 이곳은…….”

그는 여기까지 말한 뒤 아주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 사악한 괴물이 살고 있어요.”

‘사악한 괴물?!’

허칠안은 낯빛이 약간 변했고, 등줄기 근육이 비틀어졌으며 털이 곤두섰다.

“그가 나를 먹고 싶어 했지만, 사리자 덕분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리자도 그를 어찌할 도리가 없더군요. 심지어, 심지어는 조만간 그에게 정련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와 맞서기 위해 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온 힘을 다해 사리자를 재촉했습니다.”

항원은 고생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는 어떻게 생겼나요?”

허칠안이 황급히 물었다.

“그가 제게 주는 느낌은 지종의 요도와 아주 비슷합니다. 눈빛에 악의가 가득해서 마치 한 번 보면 그를 따라 같이 타락할 것 같지요. 잔인하고 포악하며, 탐욕스럽고, 색욕이 넘쳐…… 각종 사념을 일으킵니다. 이 역시 제가 ‘열반’의 상태로 접어들기로 마음먹은 이유입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와 맞서는 도중에 본성을 유지할 수 없겠더군요.”

항원은 가슴이 떨렸다.

‘역시 지종 도사의 다른 분신이야!’

허칠안은 무의식적으로 낙옥형을 쳐다보았고, 그녀 역시 자신을 본다는 걸 알았다. 쌍방은 문득 깨달은 듯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자는요?”

허칠안은 석실을 훑어보았는데 평범하지 않은 부분을 발견했다. 밀실은 지상으로 통하는 통로 없이 폐쇄되어 있었다.

그는 즉시 돌 침상 오른쪽의 심연을 쳐다보았고, 그 자식이 심연 밑에 있을 거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항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얼마 전에 저는 바깥의 압박감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그 역시 시선을 심연으로 옮겼다.

낙옥형은 몸을 날려 심연으로 뛰어들었다.

약 5분 후, 낙옥형은 금빛을 몰고 올라왔다. 허칠안은 처음으로 그녀의 눈과 표정에서 극도의 분노를 보았다.

“국사?”

그는 떠보며 소리쳤다.

“아래는 안전하네.”

낙옥형은 별다른 표정 없이 말했다.

‘심연 아래에 도대체 무슨 물건이 있기에 그녀의 안색이 이렇게 안 좋은 거지?’

허칠안은 의문을 품고 그녀의 의견을 구했다.

“저 내려가서 보고 싶습니다.”

낙옥형의 조각 같은 정교한 입꼬리에 냉소가 걸렸다.

“마음대로.”

허칠안은 몸을 훌쩍 날려 심연으로 뛰어들어 자유롭게 착지 운동을 하였다. 십여 초 후, 그는 쾅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심연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무사는 정말 저속해. 조금도 소탈하지 않아…….’

그는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뒤이어 뒤에서 ‘쿵’하는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항원 역시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무승도 저속해!’

허칠안은 속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자신이 허 대인에게 비웃음 산지도 모르는 항원은 입을 벌리고 사리자를 내뱉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엄숙한 금빛이 어둠을 뚫고 두 사람이 지하의 광경을 똑똑히 보게끔 했다.

허칠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백골이 널려 있었다. 두개골, 늑골, 다리뼈, 손뼈…… 그것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네 글자를 이루었다. 백골의 산.

그는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오랜 세월 동안 거듭해서 쌓인 백골이었다.

이들이 바로 최근 40년간, 평원백이 경성 및 경성 주변에서 납치해온 백성들이었다.

남자도 여자도 심지어는 아이까지 있었다.

그들은 황궁 지하, 용맥 위로 보내졌고, 여기서 살육당했다. 어떠한 이유로 목숨을 빼앗겼다.

‘40년간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인가…….’

허칠안의 얼굴 근육이 조금씩 경련을 일으켰고, 잇새 사이로 두 글자가 튀어나왔다.

“짐승!”

그는 마치 다시 초주로 돌아간 듯, 다시 정흥회의 기억 속으로 돌아간 듯했다. 지푸라기처럼 쓰러진 백성들이었다.

“아미타불…….”

항원은 양손을 합장하고 머리를 떨군 채 불호를 읊었다. 장대한 몸은 끊임없이 벌벌 떨렸다.

자비로운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하늘을 찌르는 분노가 솟구쳤다. 금강복마(金剛伏魔)의 분노였다.

몸이 떨리는 건 두려워서가 아니라 분노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