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8화. 소실(消失)의 진상 (2)
숙부는 조카의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흰 바지를 입은 숙모는 침상에 앉아 두 긴 다리를 구부린 채 민간에서 떠도는 그림책을 보았다.
그림책은 특별히 어린이와 숙모처럼 글을 모르는 사람을 겨냥해 개발한 도서였다.
아리땁고 농염한 숙모는 고개도 들지 않고, 그림책에 전념했다.
“칠안이 나리를 무슨 일로 찾았나요? 제가 듣자 하니 나리께서 뭐 형제라고 말하던데.”
숙부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곤란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상하네. 그가 당초 산해관전역 때 나와 생사를 넘나들었던 두 형제에 관해 묻더군. 하지만 한 명은 이미 전사했고, 한 명은 먼 옹주에 있어 그가 몰라야 맞는데. 또 나한테 주표가 나 대신 칼을 막아줬냐고 묻더군. 내가 전장에서 그렇게 약했단 말인가? 이놈도 나를 위해 칼을 막아주고, 저놈도 날을 위해 칼을 막아주게.”
숙모는 고개를 들어 까맣게 반짝이는 민첩한 눈동자로 그를 살피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잠시만요, 누구라고요?”
“주표, 당신은 모르오. 그자는 군대에 있을 때의 형제요.”
숙모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는 그를 기억해요. 나리가 집에 서신을 보내실 때 이 자에 대해 언급했던 것 같아요. 그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다나 뭐라나 하셨어요. 그리고 그 서신은 칠안의 모친이 제게 읽어 줬던 걸로 기억하고요.”
애석하게도 20년 전의 서신은 진작에 없어졌다.
숙부는 갑자기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치 미치광이를 보는 듯 믿기 어렵다는 눈빛으로 아내를 쳐다보았다.
* * *
[삼: 신년에게 알려주세요. 실제로 그 사람이 존재했고, 숙부가 그자의 믿음을 저버렸다고요.]
허칠안은 전서를 보낸 다음 지서 파편을 탁자 위에 가볍게 엎어 놓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사저 먼저 나가세요. 저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요.”
멀지 않은 곳, 평상 위의 종리는 조심스럽게 그를 쳐다보더니 자수 신발을 질질 끌면서 살금살금 나섰다.
방문이 닫히자 허칠안은 탁자 옆에 가만히 앉아 아주 오랫동안 조각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 * *
요원한 북경, 초원진은 전서를 다 보내고 잠시 잠자코 있다가 고개를 돌려 곁에 있는 허신년을 바라보았다.
허신년은 상대방의 표정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초원진이 하는 말이 들렸다.
“칠안이 말하길 조반의가 말한 게 진짜라고 하네.”
허신년은 표정이 극도로 나빠지더니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칼을 빼 들고 조반의에게 걸어갔다.
조반의는 갑자기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신년을 노려보면서 입으로는 ‘으으’ 소리를 냈다.
그의 부하들은 마치 강한 적을 맞닥뜨린 듯 쉴 새 없이 욕을 퍼부었다.
고깃국을 먹던 병사들 역시 소리를 듣고 쳐다보았다.
허신년은 손목을 반대로 돌려 밧줄을 단칼에 끊고, 칼을 아무렇게나 옆으로 내던지더니 깊이 읍하였다.
“제 부친께서 사람 구실을 하지 못했습니다. 부친이 진 빚, 아들이 대신 갚겠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따르겠습니다.”
조반의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는 허신년을 하찮게 여기면서도 의심스러웠다. 이 자식이 왜 갑자기 태도가 급변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비웃었다.
“허평지가 미안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데, 나한테 무슨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거지?”
조반의는 허신년 발 옆에 가래를 뱉더니 허리를 굽혀 패도를 줍고 부하들의 오랏줄을 풀어준 뒤 데리고 떠나려고 했다.
“잠깐!”
허신년이 소리치더니 말했다.
“형제들이 전부 상처를 입고 굶주렸으니 남은 걸 싸가십시오. 고깃국도 한 그릇 먹고 가시지요.”
그는 호의를 거절하는 조반의를 보자 즉시 말했다.
“그쪽과 우리 아버지 일은 사적인 일이니 형제들과는 무관합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우리 대봉 장병들의 사활을 걸면 안 되지요.”
허신년은 조반의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아주 떨떠름하게 마지못하여 남아 모닥불 옆에 둘러앉아 동포들과 향기가 짙은 흐물흐물한 고깃국을 나눠 먹은 다음,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허신년은 초원진 옆으로 돌아가 그의 손의 옥석경을 쳐다보면서 기이함을 칭찬하였다.
“이걸로 저희 큰형과 연락한 겁니까?”
초원진은 ‘헤’하고 소리 내더니 소탈하게 웃었다.
“물론이지. 지서는 천 리 만 리 밖에서도 전서를 보낼 수 있잖나…….”
그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그는 목을 서서히 비틀어 허신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지요?”
허신년은 막연하게 말했다.
“자네, 지서 파편을 모르는가?”
초원진이 입을 벌리더니 또박또박 내뱉었다.
“뭐가 지서 파편이에요?”
허신년은 여전히 망연자실했다.
둥둥둥…….
심장 소리가 커졌다. 초원진은 깜짝 놀라 연이어 뒤로 몇 걸음 물러났고, 다소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삼호가 아닌가?!”
“삼호가 뭡니까?”
콰당……. 초원진은 손에 쥔 지서 파편을 놓치면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 * *
밤이 깊어지자 허칠안은 책상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종리가 무릎을 감싸 안고 창 밑에 기대어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는 탄식하더니 허리를 굽히고 팔을 오금에 끼워 넣어 그녀를 들쳐 안았다. 팔에 전해지는 촉감은 동글반반하면서 우아하였다.
그는 방으로 돌아와 종리를 평상 위에 두고 얇은 담요를 덮어주었다. 가을이다. 만약 그가 담요를 덮어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불운 후광으로 내일 아침에 감기에 걸릴 게 틀림없었다.
“후…….”
허칠안도 촛불을 불어서 끈 다음, 둘둘 말아 놓은 이불 속으로 움츠리고 들어가 드러눕자마자 잠들었다.
졸음이 쏟아질 때 그가 마지막으로 한 생각은 이러했다.
<내가 아주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한 것 같은데!>
* * *
깊은 밤, 북경의 밤, 황량함 속에 살을 에는 추위가 스며들었다.
허신년은 모닥불 옆에 비스듬히 누워 졸던 중 정기적으로 일어나 두 손으로 병사 두 명의 어깨를 누르고 나지막하게 소리를 냈다.
“더운 피가 끓어오르는구나!”
병사 둘은 편안하게 신음하더니 전처럼 온기를 느끼려고 움츠러들지 않고 꿈속에서 미세한 만족을 드러냈다.
요족 및 오랑캐와 대봉 연합군은 정국의 중장기병에 의해 해산되면서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이 아주 많았다. 예를 들면 식량, 생활 용품이 있었다.
장막, 침상과 침구도 사라졌다. 가을에 들어선 북경에서 노숙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었다. 병사들은 심지어 감기에 걸리거나 감염되어 죽을 수도 있었다.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 감염은 죽음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허신년은 한밤중에 규칙적으로 일어나 병사들에게 추위를 쫓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법술을 가했다.
그는 이미 7품 인자였다. 이 경지의 유생은 신체와 정신이 보통 사람보다 건장했다. 게다가 언출법서의 틀을 숙달하였다.
언어가 바로 힘이었다!
허신년은 어느 정도 범위 안에서 목표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무력함이나 용기나 고통 감소나…….
다만 일정 정도의 합리성을 유지해야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허신년의 현재 수준으로는 병사들이 추위를 쫓도록 잠재력을 불러일으키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약 조위 원장이 이곳에 있다면 그는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사막의 아름다운 풍경, 3월 날씨로구나~!’
가을에서 봄으로 날씨가 변화하면서 온난한 기후가 상당히 긴 기간 유지될 터였다.
허신년은 차례대로 병사들에게 추위를 쫓는 법술을 가한 뒤,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품에서 육포를 한 덩이 꺼내 힘껏 물어뜯었다.
이때 그는 그제야 초원진이 잠을 자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 장원랑은 마차에 등을 기대어 앉고 발바닥을 땅바닥에 파묻어 깊은 구덩이를 파헤쳐놓았다.
그는 표정도 이상했다.
‘씁, 다 큰 남자가 이렇게 복잡한 표정을 짓다니…….’
허신년은 일어나 초원진 옆으로 걸어가더니 앉아서 말했다.
“무슨 일인가요? 방금 전서 이후로 안색이 아주 좋지 않으신데요.”
“나는 그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생각이 드네…….”
초원진은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허신년을 쳐다보면서 말을 하려다가 또 말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신년, 내가 전에 자네에게 아주 이상한 말과 이상한 일을 많이 했었지. 자네가 개의치 않길 바라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 온몸에 닭살이 돋으면서 일생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느낌이 드는구먼.”
허신년은 생각하더니 말했다.
“초 형이 말씀하시는 일이, 길가에 서서 까닭 없이 저한테 웃어 보이신 일입니까?”
초원진은 벼락을 맞은 듯했다.
“말, 말하지 말게…….”
진상은 분명했으니, 삼호가 바로 허칠안이었다. 그가 줄곧 자신의 사촌 동생 허신년을 사칭했다. 삼호가 자신은 신분이 드러나는 걸 바라지 않으니 만났을 때 최대한 지서를 언급하지 말자고 말했다.
삼호가 말했다. 자신이 곧 군대를 따라 출정할 것이니 지서 파편을 당분간 큰형에게 맡기겠다고 말이다.
이것들 전부 허칠안이 삼호라는 사실을 덮기 위해 교활한 술수를 부려 사람을 속인 것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허신년도 아주 잘 협조하였다.
초원진은 달가워하지 않으며 물었다.
“자네는 지서 파편을 모른다고 말했지. 자네는 늘 자네가 나한테 음, 너그럽다고 생각했겠지. 내가 무슨 이상한 말을 하든 무슨 이상한 일을 하든, 자네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잖나.”
그가 당시에 이심전심이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대화는 지금 생각해보니 완전히 혼잣말이었다. 신년은 지서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허신년이 거리낌 없이 말했다.
“형님이 일러주었습니다. 초 형께서 무슨 이상한 말을 하든 무슨 이상한 일을 하든, 저보고 이상해하거나 미소를 짓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무튼 신경 쓰지 말라고요.”
초원진은 발바닥으로 또 땅바닥을 깊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초원진은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허칠안이 줄곧 그의 사촌 동생을 가장하였다. 그는 인물 컨셉에 부합하기 위해 지서 파편에서 자주 초원진을 ‘형님’이라고 추켜세우며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한 말들을 아주 많이 했더랬다.
‘만약 허칠안이 내가 그의 신분을 알아냈다는 사실을 안다면, 난감한 사람은 그여야만 하다! 절대로 그를 봐주어서는 안 된다!’
초원진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그는 바로 생각이 트였다.
* * *
허칠안은 경성 허부에서 누군가에게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에 순간 잠에서 깼다. 그는 비슷한 경험을 몇 번 한 적 있었기에 태평도와 종리가 제 머리를 두드렸다고 의심하지는 않았다.
‘정말이지, 한밤중 1:1 채팅이라니. 그 개자식이 밤 생활을 하지 않은 회경은 아니겠지…….’
그는 베개 밑에서 능숙하게 지서 파편을 꺼낸 뒤 일어서서 탁자로 걸어가 촛불을 켰다.
그는 밝게 비추는 불빛 아래 앉아서 전서를 살폈다.
[사: 허칠안, 자네가 바로 삼호가 맞지? 줄곧 우리를 속였다니.]
허칠안은 온몸이 얼어붙었다.
‘초원진이 언제 내 신분을 알았지? 내가 언제 노출되었지? 그가 드디어 허신년이 드러낸 허점을 통해 내 신분을 간파했나?’
이 순간 그는 수치심이 바닷물처럼 밀려오는 듯했다. 아니, 해일이 그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초원진은 전서를 보낸 뒤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허칠안은 거대한 수치심에 빠져들어 순간 답장할 ‘용기’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