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화. 소실(消失)의 진상 (1)
허신년과 초원진이 일어났고, 전자는 침음하더니 말했다.
“그들을 데려오거라.”
그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초원진을 향해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니 식량은 유지할 수 있어요.”
이내 척후병은 서른 명의 패잔병을 이끌고 달려왔다. 이 패잔병은 화포 한 문과 포탄 십여 개도 가지고 왔다.
그들은 이리저리 떠다니며 객지에서 고생하느라 얼굴이 피로로 가득했다. 입은 갑옷은 부서졌으며 칼자국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사람들 전부 상처를 입었다.
보아하니 그들은 전투를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듯했다.
보병 이백 명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솥을 보고 걸쭉한 고깃국 냄새를 맡으면서 침을 흘렸다.
허신년은 앞으로 나아가 그들을 맞이했다.
“직급이 가장 높은 자가 앞으로 나와서 말하거라.”
마흔 가까이 돼 보이는 한 구레나룻 사나이가 앞으로 나오더니 공수했다.
“소직 옹주 계현(溪縣) 백호소(百戶所)의 총기(總旗), 조반의(趙攀義)입니다.”
허신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본관은 정주 안찰사 첨사, 한림원 서길사, 허신년이다.”
조반의는 다 듣더니 안색이 변하여 허신년을 표독스럽게 노려보며 콧방귀를 뀌더니 돌아서서 갔다.
허신년은 어리둥절하였고, 얼굴에는 막막한 기색이 스쳤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조 총기, 멈추게. 본관과 자네가 아는 사이인가?”
“모릅니다!”
‘모른다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네 마누라를 빼앗은 줄 알았잖아…….’
허신년은 속으로 빈정대더니 미간을 더욱 잔뜩 찌푸렸다.
“모르는 사이인데 조 총기는 무슨 까닭이지?”
“말솜씨가 역시나 참 고상하십니다. 역시 지식인다워요. 허평지 그 몹쓸 잡놈이 지식인 종자를 낳았다니. 허 은라의 사촌 동생 역시 군에 있다고 진작에 들었는데 오늘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조반의가 냉소를 짓더니 말했다.
“저는 그쪽은 모르지만 그쪽 아버지는 알지요. 산해관전역 때 저희는 그래도 형제였습니다.”
‘이게 형제의 태도라고?’
허신년은 깜짝 놀랐다.
“조 총기는 내 아버지와 오랜 원한이 있는가?”
“오랜 원한은 없습니다. 그저 그 배은망덕한 자식이 눈에 거슬릴 뿐이지요.”
조반의는 ‘퉤’하고 소리 내더니 말했다.
“산해관전역 때 저와 허평지는 같은 대오였습니다. 그때는 주표(周彪)라고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저희 셋의 관계는 아주 좋았습니다. 서로의 등을 내어줄 수 있는 형제였어요. 산해관전역 막바지에 저희는 무신교의 시체 병사를 저지하라고 파견됐습니다. 격렬한 전투 중, 주표가 그쪽 부친 대신 칼을 막았고 전장에서 죽었지요. 허평지는 그때 맹세하였습니다. 주표의 노모를 경성으로 데리고 가 봉양하고 그의 아들딸을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하겠다고요.
젠장, 이 몸은 나중에야 이 배은망덕한 새끼가 주표 고향집에 사람을 데리러 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후레자식인데 아들이라고 뭐 좋은 인간이겠습니까? 전부 망나니입니다. 저 조반의가 설령 배고파 죽든 전장에서 죽든, 그쪽 밥은 한 입도 먹지 않고 그쪽 탕은 한 입도 마시지 않을 겁니다. 퉤!”
허신년은 비록 자주 마음속으로 저속한 부친과 큰형을 경시했지만, 부친은 부친이었다. 어찌 다른 사람이 부친을 모독하는 일까지 용인하겠는가.
그러므로 허신년은 조반의의 지탄을 들은 뒤 우선 속으로 재빠르게 자기와 여동생의 나이를 몰래 계산하여 자신이 친자식임을 확인했다. 그는 그제야 벌컥 화를 내며 소매를 뿌리치더니 냉소를 지었다.
“조반의, 말끝마다 우리 아버지가 배은망덕하다고 말하는데 무슨 증거라도 있는가?”
산해관전역은 21년 전에 일어났으며 자신의 나이는 스무 살, 영월은 열여덟 살로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와 영월은 주씨 집안의 고아는 아니었다.
조반의는 코웃음을 쳤다.
“사람이 죽은 지 21년째인데 무슨 놈의 증거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허평지가 배은망덕한 건 배은망덕한 것이니 이 몸이 그를 모욕할 가치가 있지요?”
허신년은 그 말을 믿지 않았기에 손사래를 쳤다.
“여봐라, 이놈을 포박하라.”
고기를 삶던 병사들은 줄곧 이쪽의 동정을 주시하다가 이 말을 들은 뒤 잇따라 패도를 뽑아 떼거리로 몰려들었다. 그러곤 그들은 조반의 등 병사 서른 명을 겹겹이 둘러쌌다.
조반의 수하의 병사들도 칼을 뽑아 매서운 얼굴로 동포들과 대치하였다. 비록 그들은 상처를 입은 데다 수적으로도 불리했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전쟁터에 있는 건 마치 지옥에 떨어진 듯한 경험이었다. 때문에 정국 기병은 출정한 이래로 교대로 교전하면서 일찌감치 독기를 키워내었으므로 누구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조반의는 손을 아래로 저어 부하들에게 충돌적으로 굴지 말라는 의사를 표하고는, ‘퉤’하고 가래를 뱉으면서 하찮게 여기는 기색을 드러냈다.
“이 몸은 동포와 목숨을 내걸지 않는다. 누구처럼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전부 배은망덕한 개자식은 아니거든.”
허신년은 어두운 얼굴로 소리쳤다.
“포박하라.”
병사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칼자루로 조반의 등을 두드려 패더니 오랏줄로 꽁꽁 묶어 옆에 내던지고 계속해서 말고기를 삶으러 돌아갔다.
조반의는 여전히 그곳에서 상스러운 욕을 퍼부었다. 그는 안식구들까지 포함한 허씨 집안 조상 18대까지 욕했다.
허신년은 수하의 병사들에게 조반의의 입을 막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웅웅웅 대며 더는 상스러운 말을 내뱉지 못했다.
“집안일인가?”
초원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그를 보더니 웃으며 떠보았다.
허신년은 고개를 저었고, 멀지 않은 곳의 지면을 쳐다보면서 주저했다.
“저는 저희 아버지가 그런 사람일 거라고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조반의의 말에 제가 떠오른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그를 남겨 두고자 합니다.”
소년기에 큰형과 어머니의 관계가 화목하지 않아 아버지는 골머리를 앓으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늘 자신이 큰아버지와 서로 등을 떠받쳐주며 싸우다가 큰아버지가 그를 대신해 칼을 막고 전쟁터에서 죽었다고 말했다.
허신년은 그 말을 어릴 때부터 클 때까지 듣고 자랐다. 그리고 그는 지금 영문도 모른 채 나타난 주표가 아주 이상해 보였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초원진이 붓을 대신해 손으로 옥석경 거울면에 글자를 쓰는 모습을 보았다.
* * *
석양이 완전히 지평선에 의해 통째로 먹혔다. 맑은 하늘 아래, 허칠안은 저녁 식사를 마쳤다. 그는 아직 땅거미가 내려앉지 않은 맑은 하늘을 보고 정원에서 산뜻하게 소화를 시키며 콩알이와 제기를 찼다.
콩알이는 아직 자신의 힘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어서 항상 제기를 바깥뜰까지 차서 날려버리거나 땅바닥을 차서 구덩이를 팠다.
‘힘이 너무 빠르게 증가하는데? 역고부의 단체법을 수련한 지 고작 몇 개월인데? 도대체 이 아이의 몸에 기운이 더해진 거야 아니면 내 몸에 기운이 더해진 거야…….’
허칠안은 보다가 멍해질 뻔했다.
“리나, 영음이 어찌 된 일이오? 너무 과장되게 발전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소.”
그는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서 귤을 까 먹고 있는 리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존대했다.
리나는 이 말을 듣더니 코를 찡그렸다.
“내가 영음은 송아지처럼 골격이 장대하다고 말했잖아요. 혈기가 넘쳐흘러 역고를 수행하기에 좋은 싹이에요. 제 판단을 믿지 않나요?”
‘좋은 싹이라고 해도 너무 좋은 거 아니냐. 내가 다 질투 나네…….’
허칠안은 제기를 손에 쥐고 허영음 발밑의 얕은 구덩이를 쳐다보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 아이는 지금 아직 자기 힘을 통제할 수가 없어 자칫하면 힘을 과하게 쓸 것이오. 숨 돌려가면서 수행해도 무방하겠소.”
콩알이는 활발하고 활동적인 아이면서도 숙모한테 들러붙는 편이었다. 콩알이는 전에 학당에 공부하러 다닐 때도 집에 돌아오면 미친 듯이 뛰어 들어와 동그랗게 치켜 올라간 엄마의 복숭아 엉덩이를 향해 우악스럽게 덤벼들었다.
지금은 계속 집에 있었으니 그렇게 숙모한테 엉겨 붙지는 않았다.
‘어느 날 또 외출하러 나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의 지금 힘이라면 허씨 집안에 엄마가 없는 아이가 셋이나 늘어날지도 모르고.’
“아하!”
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생각났다. 영음은 역고부의 아이가 아니었다. 역고부의 아이는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폭력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남을 다치게 할까 봐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집안의 가구, 물품을 망가뜨린다면, 부모가 당신에게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점을 조심해야 했다.
영음은 그러면 안 됐다. 허씨 집안은 모두가 평범한 사람이지 않은가.
허칠안은 만족했다. 남강의 까만 피부는 백치미 있는 소저였다. 하지만 백치미의 장점은 바로 교만하지 않고, 말을 잘 들으며 철이 들었다는 점이었다.
이묘진이라면 그녀는 같은 문제를 두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안심하게. 오늘 이후로 훈련 강도는 배가 될 거야. 가장 짧은 시간 내에 그녀가 자신의 힘을 통제할 거라고 장담하네.>
임안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럼 안 배울래. 우리 같이 놀자.>
채미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수행이 얼마나 무료한데. 우리 뭐 먹자.>
회경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자네 지금 나한테 훈수를 두는 건가?>
이때 익숙한 가슴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허칠안은 즉시 콩알이와 리나를 내팽개치고 빠른 걸음으로 방에 들어갔다.
* * *
그는 베개 밑에서 지서 파편을 더듬어 꺼냈다. 초원진이 그에게 1:1 채팅 요청을 보냈다.
[삼: 초 형, 북상 전투는 어떠합니까?]
[사: 전쟁은 힘들지만 괜찮은 편일세. 각자 승패가 있으니. 내가 자네를 찾은 건 신년 대신 물을 일이 있어서네.]
십여 초 후, 두 번째 전서가 왔다.
[사: 우리가 조반의라는 옹주 계현 총기를 만났는데 자신이 허씨 집안 숙부와 산해관전역 때 돈독한 사이였다고 얘기하더군. 그런데 그가 허신년을 보자마자 심하게 욕을 퍼부었네. 허평지가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욕을 하더군. 이유는 그 당시 조반의, 허평지 그리고 주표라는 자가 있었는데 세 사람은 한 대오에서 돈독한 사이로, 전쟁 중에 서로 등을 떠받쳐주며 싸웠다더군. 후에 주표가 허평지를 대신해 칼을 막고 전쟁터에서 죽었네. 허평지는 상대방의 가족을 잘 보살피겠다고 맹세를 했는데 허평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더군. 20년간 지금껏 주표의 가족들을 찾아간 적이 없었다네. 신년은 이 일을 믿지 않아 나더러 자네에게 전서를 보내 숙부에게 물어보라고 부탁하라더군.]
허칠안은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적었다.
[삼: 기다리세요!]
그는 지서 파편을 거둔 다음에도 바로 숙부를 찾아가지 않았다. 대신 그는 물을 한 잔 따른 뒤 천천히 마셨다. 그가 물을 다 마시니 손의 떨림이 사라졌다.
끼익…….
허칠안은 방문을 열고, 무표정으로 동쪽 행랑채로 걸어가더니 촛불이 새어 나오는 방문을 두드렸다.
숙부는 평상복을 입고 걸어와 문을 열더니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칠안, 무슨 일이냐?”
허칠안은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고선 몇 초간 적절한 어휘를 고르더니 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숙부, 조반의를 아셔요?”
숙부는 깜짝 놀란 티가 났다.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경악했다.
“내가 그해 산해관전역에서 사귀었던 벗을 네가 어찌 아니? 그 친구는 내가 목숨까지 내던질 수 있는 벗이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에 어째서 연락이 끊겼나요?”
숙부는 고개를 저으며 실소했다.
“너는 모른다. 군대 생활이라는 게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나기 쉽지 않고 각자 직책이 있기에 시간이 오래되면 무뎌진단다.”
허칠안은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또 물었다.
“그럼 숙부는 틀림없이 주표도 알겠네요?”
허평지는 조카를 살피면서 짙은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너 오늘 왜 이러니? 왜 조반의와 주표를 알고 있는 거지?”
허칠안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숙부, 우선 제 말에 대답해주세요. 주표는 전사했지요?”
“그래. 한 형제가 애석한 결말을 맞이했지.”
“어떻게 죽었습니까?”
“그해, 우리는 무신교의 시체 병사를 저지하기 위해 파견되었고, 주표는 바로 그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숙부는 탄식하였다.
“숙부 대신에 칼을 막은 게 아니에요?”
“무슨 헛소리니. 나 대신 칼을 막은 건 네 아버지다.”
“…….”
스산한 가을바람이 한바탕 불어오자 툇마루 아래, 초롱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촛불도 흔들거리며 허칠안의 얼굴을 비추었는데 변화무쌍하여 종잡을 수 없었다.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숙부…….”
허칠안은 한참 지난 뒤 떪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나서 숙부의 당황한 눈빛을 받으며 천천히 돌아서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