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6화. 각 측 (2)
60리 밖, 염국의 수도는 거대한 골짜기 사이에 세워져 있었다. 3백 장(丈) 길이의 우뚝 솟은 성벽이 끊임없이 이어져 양쪽 산봉우리와 연결되었다.
산봉우리는 가파르고 험준하며 성벽은 높이 우뚝 서 있었다. 화포, 상노, 낙성 등 성을 지키는 군비를 더해 난공불락이라고 불릴 만했다. 어떤 군사 전문가라도 이 옹성을 만나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역사를 통틀어 염국이 수도를 세운 이래로 1400여 년 동안 이 도시는 딱 한 번 파괴되었었다. 그건 대주가 가장 흥성하던 시기, 2품 합도무사(合道武夫)인 대주 황실의 한 친왕이 군대를 이끌고 염국을 공격하였다.
염국 사료에는 그 전투가 아주 격렬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무신교는 2품 우사 한 명, 3품 영혜 한 명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무신이 직접 나서 전봉의 2품 친왕을 죽였다.
이건 염국의 방어 문제가 아니었다. 상대방의 전투력이 이미 구주 정상에 올라있기 때문이었다.
수도, 궁전에 있던 염국의 국군 노이혁가(努爾赫加)는 이미 머리가 희끗희끗했지만 체구는 여전히 우람했다. 이 국군은 천부적인 자질이 아주 뛰어나 젊을 때 무사의 길을 걸었고 4품 전봉이 된 후에는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다.
그런 뒤 그는 주술사 체계 수련으로 방향을 틀어 4품이 된 후에 다시 병목 현상에 진입하였다.
쌍체계(雙体系)는 보기 드물었다. 다른 체계 간에 배척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수행하기가 어렵기에 한 체계에 전념해야만 더 높이, 더 멀리 갈 수 있었다.
쉰이 넘은 노이혁가는 무사 체계든 주술사 체계든 이미 3품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는 그래도 애석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3품 고수는 봉황의 털과 기린의 뿔처럼 매우 보기 드물기에 수련해내지 못하는 건 정상이었다. 그리고 그처럼 쌍체계는 전투력만 놓고 봤을 때, 어떤 체계의 4품보다도 강했다.
노이혁가는 왕위에 앉아 신하들의 열띤 토론을 들었다.
염국 고위층은 위연의 강세로 낙담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일찌감치 대패할 마음의 준비를 마친 터였다.
“위연이 이미 수성을 공격하였으니 내일이면 적군이 성 밑까지 쳐들어올 것이네.”
“그는 어찌 고작 열흘만에 7개 성을 연달아 격파할 수 있는 건가.”
“수도를 지킬 수 있겠는가?”
대전 내, 분위기가 다소 경직되었다. 염국의 대신들은 강한 적과 맞닥뜨린 듯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 순간, 일부 늙은 신하들은 마치 산해관전역으로 돌아간 듯, 위연의 강세로 인한 두려움과 치욕을 돌이켜 회상하였다.
“설구 척후병이 전해온 정보에 따르면 대봉 군대의 병력이 기껏해야 5만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네. 위연이 아무리 용병의 신이라고 해도 5만 군대로 수도를 함락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지.”
“지금 성 안 위아래로 모든 이가 한마음이며 수비군, 군비, 군량과 마초 모두 충분하네. 까짓것 위연과 목숨을 걸고 싸우자고.”
“…….”
노이혁가는 옆에 불포(不袍)를 싸매고 모자를 쓰고 손에는 보석을 끼워 넣은 금장(金杖)을 쥔 노인을 무심결에 쳐다보더니 공손하게 말했다.
“이이포 국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동북 세 나라의 모든 나라는 3품 영혜가 국사의 역할을 맡았다. 평소에는 정무에 개입하지 않았지만 한 나라의 군주보다 지위가 높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본진을 대표하고 무신교를 대표하기 때문이었다.
초주에서 운 좋게 목숨을 건진 이이포는 금장을 손에 쥔 채 나지막이 말했다.
“강국의 5만 대군이 이미 염국 관내에 진입했네. 기껏해야 5일이면 포위하는 형세를 형성할 수 있을 걸세.”
노이혁가는 침음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염국의 수도는 천년 넘게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적잖은 전쟁을 치르면서 딱 한 번 함락되었지요. 위연이 성을 부수고 싶어도 단기간 내에는 하지 못합니다. 지금의 대봉 군대라면 시간이 관건입니다. 그들의 군량과 마초가 부족할 테니까요.”
전 내의 군신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강국 군대가 그들의 식량 보급선을 끊기만 한다면, 우리가 성을 지키고, 사흘도 되지 않아 위연이 철수하게 할 수 있지요.”
“이 전투를 위연이 어떻게 치르는지 봅시다.”
이이포는 문을 넘어 바깥의 쪽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7개 성을 연이어 격파하여 우리 무신교의 기운을 가로채고 무신을 검지(劍指)하려고……. 위연, 자네는 자신이 계략이 아주 뛰어나고, 작년의 모든 배치에 어떠한 허점도 없는 줄 알겠지. 허, 우리가 기다리는 게 바로 자네라는 건 전혀 모를 테야.’
10만이 되지 않는 병력으로 본부를 치고 싶다고 생각하다니, 이는 몹시 황당무계한 말이었다.
* * *
파괴된 성벽 위, 위연은 짙은 청색의 겉옷을 걸치고 아래쪽을 굽어보았다. 대봉 병사들은 수레처럼 보이는 삼륜차를 끌고 시체를 한 구 한 구 깊은 구덩이와 횃불 속으로 내던졌다.
피와 살이 타는 악취가 뒤섞인 짙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타 버린 시체 중에는 염국 병사와 백성도 있었고 대봉의 병사들도 있었다.
고작 열흘이란 시간 동안 대봉 군대는 4만이 넘는 장수와 병사들을 잃었다.
병사들은 말없이 행동했다. 그들은 연일 치른 전쟁, 피와 불의 세례로 말이 없어졌다. 병사들은 용맹한 기세를 이 침묵 속에 감추었다.
남궁천유가 위연 뒤로 와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의부님, 이 전투가 끝나면 의부님께서는 역사적으로 오명을 피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들은 7개 성을 연이어 함락시키면서 수백 리를 피로 물들였다. 남궁천유가 보기에 투항한 병사를 생매장하는 건 크게 비난할 일은 아니었다. 대봉군은 적지에 깊숙이 침투한 고립된 군대로, 투항한 병사를 죽이지 않으면 오히려 피곤해졌다.
투항한 병사의 반란도 고려해야 하는데 또 밥을 먹는 입이 하나씩 늘어나니 식량이 소모되었다.
하지만 백성을 살육하는 짓은 병법에서도 금기 시하는 행동이었다. 하물며 7개 성을 연이어 살육하였다. 설령 그들이 개선하여 돌아간다고 해도 옛 사상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죄상을 폭로 당할 터였다.
그들이 출병한 이래로 대봉 쪽에서 군량과 마초가 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오는 길에 온갖 만행을 저지르며 전쟁으로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였다. 그들이 약탈한 건 전부 염국의 식량과 군비였다.
이는 좋은 현상이 아니었다.
신세대 장수들은 다만 의부의 독특한 군대 인솔 방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들은 연이어 승리의 묘미를 맛본 뒤 흥분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도 점점 이상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신세대 장수들은 철수를 선택했다.
신세대 장수들마저 이러한데 하물며 남궁천유처럼 위연을 십여 년, 20년 따른 고참들은 어떻겠는가.
“군량과 마초가 있을 리가 없네.”
위연의 미소는 지난날과 다름없이 온화하였고, 어조는 처음처럼 무미건조했다.
“우리가 가져온 군량과 마초가 우리한테 있는 전부네. 대봉은 곡식 한 톨도 더 주지 않을 걸세.”
“누가 감히 식량을 끊는다는 겁니까?”
남궁천유는 살기가 넘쳐흘렀다.
“대봉 전체에 누가 있을 수 있겠는가.”
위연이 웃으며 반문했다.
남궁천유는 눈동자가 심하게 수축했다.
“나는 자네가 처음 기세로 염국 수도를 점령하고 싶어 하는 걸 아네. 그런 뒤 그들의 성을 강점하여 이 난관을 이용해 강국 지원병을 상대하고, 형주·상주·예주 3개 주의 지원병으로 강국 지원병을 포위하려는 거겠지. 애석하네. 염국 수도는 갉아먹기 어려운 뼈라 우리가 먹지 못하네. 나는 3개 주의 모든 병력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어.”
위연은 변치 않는 표정으로, 시체 더미 위에서 활활 타오르는 화염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일 대군이 50리 밀고 나가 염국 수도와 3일간 대치할 걸세. 3일 후, 자네는 중장기병 1만을 이끌고 떠나게. 다른 사람은 신경 쓸 필요 없네. 그들이 이곳에 남아야 하니까.”
그는 말을 하면서 품에서 비단 주머니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자색이고 하나는 붉은색이었다.
“3일 후, 자색 비단 주머니를 열면 자네가 어디로 갈지 알려줄 걸세.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 붉은색 비단 주머니를 열면 앞으로 자네가 어떻게 해야할지 알려 줄 게야.”
* * *
허신년은 석양 볕 아래에서 사병들에게 시체를 불태우고 군마를 해부하라고 지휘했다. 그들은 막 소규모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적군 팔백 명을 섬멸하고, 아군 천 명을 잃었으니 이미 아주 흡족한 승리였다.
그들이 그날 밤 습격을 당한 뒤로 이미 여러 날이 지났다. 그 대규모 습격으로 요족 및 오랑캐, 대봉 세 측의 연합군이 흩어졌다.
정국 대군은 즉시 결단을 내렸다. 군사를 나눠 추격한다!
요 며칠 동안 허신년은 전쟁의 잔혹함을 더욱 깊이 깨닫고 화갑군의 용맹함도 체감했다. 더욱이 그는 주술사가 출정하여 시체를 깨우고 시체 병사로 만드는 기이함과 끔찍함도 배웠다.
중장기병과 시체를 조종할 수 있는 주술사의 존재로 인해 대봉군은 완전히 죽을힘을 다해 승리를 거머쥐었다.
허신년과 초원진은 연합군이 해산됐을 때 곁에 고작 대봉 병사 육백 명만 거느렸다.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나면서 오는 길에 패잔병을 받아들이니 그 수가 일천칠백 명까지 늘어났다.
지금은 다시 고작 칠백 명만이 남았다.
허신년은 시체를 다 태우고 척후병에게 순찰을 지시하고, 즉시 병사들에게 솥을 올리고 말고기를 삶게 했다.
병사들은 익숙하게 말고기를 잘랐다. 그런 다음 몇 사람이 협력하여 방금 막 사람을 죽인 패도를 휘둘러 말고기를 잘게 다졌다. 그들은 그제야 말고기를 솥에 넣고 푹 삶았다.
이는 허신년이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말고기는 단단하고 투박하여 식감이 아주 좋지 않고 소화하기에도 쉽지 않았다. 이따금 한 끼 먹는 건 괜찮지만 며칠 연속으로 말고기를 먹으면 병사들의 위장이 견딜 수 없었다.
그러면 병사들은 똥도 누지 못했다.
그리하여 허신년은 말고기를 아주 잘게 다져 솥에 넣고 풀어질 때까지 삶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하면 식감도 좋아지고 소화도 촉진되었다.
“만약 초 형이 없었으면 우리는 몇 백 명 더 죽었어야만 적군을 전멸시킬 수 있었을 겁니다.”
허신년은 초원진의 곁으로 걸어가 물주머니를 떼어 건넸다.
초원진은 꿀꺽꿀꺽 반 주머니를 마시더니 다소 쓸쓸하게 웃었다.
“어릴 때 병서 몇 권을 읽었다고 내가 군대 통솔과 전쟁의 기재인 줄 알았네. 오늘 전쟁터에 나가보니 비로소 알겠네, 나는 적임자가 아니라는 걸. 오히려 자네의 성장 속도가 빠르군. 지금 이 병사들 중에 자네를 따르지 않는 자가 있는가?”
허신년은 웃었다.
“사람은 저마다 장점이 있지요. 제게 만약 이런 타고난 자질이 없었다면 스승님께서도 제게 병법을 전공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저는 전장에서 책략을 사용할 때가 결국 많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대부분은 병력에 의지해 강경하게 맞서야 하죠. 무사와 군비 역량이 가장 중요한 작용을 하더군요. 애석하게도 화포 세 문, 차노 여섯 대만 가지고 나왔으니.”
‘전쟁터에 나서기 전의 허신년이었다면 지금쯤 아마 아래턱을 높이 치켜들고 거만한 얼굴을 했을 텐데, 그래도 허위라도 겸손한 말들을 좀 하는군…….’
초원진은 다시 한번 개탄하였다.
그들이 마침 얘기를 나누는데 척후병 한 명이 쏜살같이 달려와 소리 높여 말했다.
“허 첨사님, 패잔병 한 대오를 발견했습니다. 서른 명입니다.”
그들은 호각을 부르지 않고 대봉 군대가 자기 편이라고 설명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