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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623화 (623/712)

623화. 시작점에 있는 자 (2)

깊은 밤 동북 변방, 정관성 하늘에 걸린 반달 아래에서 위연은 짙은 남색 겉옷을 걸친 채 성벽 위에서 연기가 자욱한 성지를 굽어보았다. 화포가 집과 거리를 부수고 울음소리와 고함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정관성은 마침 피와 불의 세례를 받았다. 대봉의 기병, 보병이 성안의 각 거리로 돌진하여 완강하게 저항하는 염국 수비병의 짧은 병기와 마주했다.

싸우고 죽이는 소리가 도처에 가득했다.

위연은 시선을 거두고 손에 들고 있는 머리를 쳐다보았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겁에 질린 표정은 영원히 얼굴에 박혀 있을 것이었다.

정관성의 군대 통솔자, 독알흑이었다.

그는 실망하여 고개를 젓더니 머리를 아무렇게나 성벽에 내던지고선 태연하게 말했다.

“좀 떨어지는구먼!”

그런 뒤, 위연은 천천히 마도(馬道)를 훑었다. 마도는 병사들의 시체로 뒤덮였고, 걸쭉한 선혈이 무자비하게 파괴된 성벽 위를 빨갛게 물들였다.

그의 뒤에는 십여 명의 고위 장군들이 서서 침묵했다.

일부 부하들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위연을 따른 적 없는 일부 장수들은 이번에 진짜로 용병여신(*用兵如神: 용병술이 귀신과도 같다) 네 글자를 실감했다.

위연은 손가락의 피를 짜내더니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명령을 전하거라, 성을 점령한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휘영청 밝은 달빛에 짙은 남색의 옷자락이 펄럭였다. 위연의 눈동자에 도약의 전화가 환하게 비쳤다.

* * *

이튿날 허칠안은 하품을 하며 일어났다. 그는 처마 밑에 웅크리고 앉아 세수하고 이를 닦았다.

그가 세수와 양치질을 마치자 종리는 그제야 자신의 나무 대야를 안고 문밖으로 나와 역시 세수하고 이를 닦기 시작했다.

본래 종리는 허칠안과 함께 처마 밑에 웅크리고 앉아 세수하고 양치질했을 터였다. 하지만 허영월이 한번 아주 공교롭게도 이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허영월은 보자마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종 사저는 사천감의 손님인데 손님이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아 세수하고 양치질하는 건 허부의 결례였다.

그녀는 그날 바로 하인에게 새 방을 마련하여 깨끗하고 예쁘게 청소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런 뒤 직접 종리를 들어가 살게 하면서 마음을 주고받았더랬다.

두 사람이 마음을 주고받는 과정은 솔직했으며, 서로 사용했던 어휘는 부드럽고 예의 있었다. 그들이 주고받은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 큰 오라버니가 아직 혼사를 치르지 않았으니 그한테서 좀 떨어져.>

종리는 그날 매우 억울해하며 새 방으로 들어갔다. 허칠안이 돌아온 뒤 다시 그녀를 데리고 돌아갔지만, 종리 역시 지혜로운 소저였다. 비록 채미 사매와 그녀는 사천감의 돌머리와 재수덩어리로 불리긴 했지만.

돌머리는 저채미였다. 종리는 그래도 아주 똑똑했다.

총명하고 지혜로운 종 사저는 허씨 집안 소저가 자신에게 적의를 품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고, 그래서 허칠안과 묵묵히 거리를 유지했다. 물론 그녀는 여전히 방 안에서는 안마하거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얘기했지만 허씨 집안 소저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허칠안은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다시 종리를 방에서 내쫓았다.

“밖에서 얌전하게 쪼그리고 앉아 있으세요.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함부로 다른 사람과 말하지 말고, 상처…… 입지 말고요.”

종리는 ‘응’하고 소리 내더니 힘껏 고개를 끄덕여 자신은 경험이 풍부하여 스스로를 잘 돌볼 것이라는 의사를 표했다.

종리가 떠난 뒤 허칠안은 부검을 꺼내 원신을 활성화했다.

“이…… 국사, 저 허칠안입니다.”

국사를 한참 기다렸으나 오지 않자 허칠안은 연락이 닿지 못한 줄 알았다. 그런데 찬란한 금빛이 용마루를 뚫더니 우의를 입은 풍만한 몸매의 절세미인이 방 안에 나타났다. 금빛은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다.

‘나는 아마 대봉에서 유일하게 낙옥형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남자일 거야. 나랑 자고 싶지 않다고 했지? 때려죽여도 나는 믿지 않거든…….’

허칠안은 허영심에 약간 만족하면서도 어장이 너무 작아 이 대어를 담을 수 없다는 사실에 개탄하였다.

‘음, 낙옥형은 단지 나를 세심하게 관찰할 뿐이야. 나와 쌍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 아니잖아. 그녀는 원경제도 관찰했고……. 엇? 이 익숙한 기시감은 어떻게 된 일이지? 나, 나 역시 낙옥형 어장 속의 물고기인가?! 그리고 그녀가 오늘 입은 장포는 예전과 달라. 더 산뜻하고 더 아름다워. 허리를 꽉 졸라매니 가슴 사이즈가 드러나고 허리도 참 가느다랗고……. 일부러 꾸민 건가?’

허칠안이 끊임없이 연상을 펼치는 사이, 낙옥형은 그를 자세히 살피면서 서리가 내린 듯한 날카로운 얼굴로 쌀쌀맞게 말했다.

“이 국사?”

허칠안은 입을 벌렸으나 순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방 안은 몇 초간 조용해졌고, 낙옥형이 자발적으로 이야깃거리를 꺼냈다.

“무슨 일인가?”

“콜록, 콜록!”

허칠안은 목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지종 도사에 관한 단서입니다. 새로운 진척이 생겼습니다.”

그는 정덕 26년과 관련된 사건을 낙옥형에게 말했다.

이모는 다 듣고 나서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고작 이렇다고? 자네 나를 소환할 필요 없었네.”

허칠안은 탄식하였다.

“국사, 제가 국사를 청한 건 다른 일 때문입니다.”

낙옥형이 그를 쳐다보았다.

허칠안은 한참을 침묵하였다. 꼬박 15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는 길게 숨을 내뱉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금련 도사가 마도에 빠진 지 몇 해가 되었습니까?”

낙옥형은 멍해지더니 도도한 얼굴에 보기 드물게 놀란 표정을 드러냈다.

“금련이 지종 도사라는 걸 알았나?”

‘내가 바보도 아니고…….’

허칠안은 씁쓸하게 웃었다.

“검주에서 돌아온 뒤 저는 금련의 신분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전에도 저는 이미 의심했지요.”

종리가 그에게 금련 도사의 영혼이 부향처럼 불완전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영혼이 불완전함으로써 생기는 뒤탈은 단지 두 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바보와 식물인간.

금련 도사는 도문 지종 출신으로 원신은 또 도문이 정통한 영역이었다. 그래서 영혼이 불완전하다고 해서 뭔가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뜻밖의 사고로 원신 반쪽을 잃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묘진을 따라 함께 지내면서 도문 수법을 깊게 알 수 있었다. 이묘진은 일찍이 그와 종리를 도와 원신을 그러모았다.

금련 도사의 수련 경지가 이묘진보다 강한데, 그는 어째서 원신을 규합하지 않았을까?

규합할 수 없는 그 원신 반쪽은 어디로 갔을까?

이는 의문점 중 하나였다.

그 밖의 세부 사항도 더 많았다. 예를 들면 지서 파편, 구색 연뿌리, 3품에 미치지 못하는 지종 도사가 2품 도사의 수중에서 구색 연뿌리를 빼앗을 수 있다니…….

물론 이것들은 의문점이었다. 하지만 금련이 바로 지종 도사라는 걸 증명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는 검주에 가고 난 뒤에 금련 도사와 지종 도사의 원신이 뒤섞이는 광경을 보았다. 아름다운 부인 백련이 금련 도사는 지종의 법술을 사용했을 뿐이었다고 말했음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허칠안은 그 순간 머릿속에 빛 하나가 관통하는 듯했다.

‘나는 둘째 치고, 지서 단체 채팅방에서 리나를 제외하고 검주에서 연밥을 수호하는 투쟁에 참여한 구성원들은 아마 깊고 얕은 의심을 하였을 테지…….’

허칠안은 이목구비가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거울처럼 도도한 눈동자를 지닌 낙옥형을 바라보았다.

“국사, 금련 도사가 언제 마도에 빠진 줄 아십니까?”

낙옥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6년 전, 금련이 관문을 돌파하는 데 실패하여 마도에 빠졌네. 그의 영혼은 둘로 갈라져 선념(善念)은 지서 파편을 쥐고 제자 일부를 보호하며 도망쳤지. 악념(惡念)은 제자 대부분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리하여 지금의 천지회와 지종으로 분열되었네. 당시 금련의 선념이 비밀리에 경성에 잠입하여 영보관에 와서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네. 그때 나는 2품으로 승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근간이 아직 안정적이지 않았지.

게다가 지종이 수련하는 건 공덕으로, 일단 마도에 빠지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가 되네. 인종이 수행하는 법술은, 인간 세상의 업화가 몸을 태워 자칫하면 벼랑 끝을 걷는 결과를 낳지. 만약 다시 지종에 의해 오염된다면 자멸의 길이라는 결말뿐이야.”

‘6년 전, 금련 도사가 경성에 왔다고? 앗, 그래서 회경이 그때 도사한테 지서 파편을 받아 천지회의 일원이 되었나?’

이럴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허칠안은 이에 연상을 펼쳤고 생각이 번뜩였다.

“그럼, 금련 도사가 천종한테 도움을 청한 적이 있습니까?”

낙옥형이 비웃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이렇게 보니 이묘진 역시 당시에 지서 파편을 받아들였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마 금련 도사가 지종 도사인 줄은 몰랐을 터였다. 그리고 그녀의 스승 역시 그녀에게 알리지 않았다.

“천종이 동의할까요?”

“천종이 수련하는 건 태상망정(*太上忘情: 성인은 감정에 움직이지 않음을 뜻함)이네. 이묘진 같은 제자는 다른 종류에 속하지.”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허칠안은 이해했다. 천종 도사는 나선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낙옥형은 지종의 몰락한 속성을 꺼렸지만, 천종 도사는 단순하게 ‘나는 감정이 없으니 상관하지 않는다’ 였다.

‘만약 6년 전에 마도에 빠진 거라면 내 추측과 어긋나는데…….’

낙옥형이 그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추측이 틀렸는가?”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국사, 금련 도사가 마도에 빠지기 전에 무슨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까? 지종이 마도에 빠질 때는 갑작스럽나요, 아니면 점진적으로 빠지나요?”

낙옥형은 헤아리더니 말했다.

“내가 알기로 금련이 그해 홀로 수행한 건 천겁을 넘기 위해서네. 한 번 독거 수행에 들어서니 근 3년이 되었지. 마도에 빠진 거라면, 내가 비록 지종의 공덕을 수행하지는 않지만, 작은 일이라고 무시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 법이고, 만사와 만물은 모두 이 이치에서 벗어날 수 없지. 마도에 빠지는 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네.”

쿵, 쿵쿵!

허칠안은 자신의 심장이 몇 차례 미친 듯이 뛰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침을 삼켰다.

“무슨 일인지 대략적으로 이해했습니다. 국사, 제 생각을 좀 들어보시지요…….”

그는 잠시 멈추더니 감칠맛 나게 말했다.

“저는 회왕과 원경이 진짜로 마주한 게 곰이 아니라 지종 도사라고 의심합니다. 그는 당시에 이미 마도에 빠질 조짐을 보였습니다. 살육하고자 하는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거나 부정한 물건 등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남원을 선택하여 보통 짐승을 살육하고자 했겠지요. 경성에는 감정이 있고, 수많은 고수가 있으니 경성에서 제멋대로 살육할 수는 없었겠지요.

이 역시 정덕 26년 가을, 왜 남원 주위의 짐승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는지 설명이 됩니다. 당시 회왕과 원경은 남원에 깊이 들어가 사냥하다가 의도하지 않게 마도에 빠진 금련 도사와 마주쳤고 수행 시위가 전부 죽었습니다.

허, 곰이 어찌 그렇게 많은 고수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만약 금련 도사라면 아무리 많은 시위가 간다고 해도 죽는 길밖에 없겠지요. 국사께서 방금 말씀하시길 지종 도사가 3년 동안 독거 수행했는데 관문을 돌파하는 데 실패하여 마도에 빠졌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30년 전, 마침 딱 그가 경성에서 돌아왔습니다. 시간상으로 꼭 들어맞지요. 다시 말해서 그가 경성에 있을 때는 이미 마도에 빠질 조짐을 보였습니다.”

낙옥형은 들을수록 안색이 굳어지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금련이 왜 원경과 회왕을 죽이지 않았지?”

허칠안은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는 분명히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단서는 이 목적을 가리키지 않아 추측할 수가 없습니다. 제 생각은 그 둘이 금련 도사에게 오염됐다는 겁니다.”

그는 초주에 있을 때 일찍이 지종 도사의 분신과 맞붙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가 가장 크게 체감한 건, 바로 모든 걸 오염시키는 상대방의 악의가 마치 세상 만물을 함께 타락시킬 수 있을 듯하다는 점이었다.

진국검조차 오염되어 거의 일각 동안 총기를 잃었다.

그렇다면 원경과 회왕까지 오염되었다는 것도 합리적이고 설명이 됐다.

이는 공상이 아니라 허칠안이 먼저 갖고 있던 단서에 기인한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심지어는 회왕의 냉혹함과 이기심, 불합리에 가까운 장생에 대한 원경제의 집념을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종의 도사처럼 진작에 반쯤은 미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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