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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622화 (622/712)

622화. 시작점에 있는 자 (1)

깊은 밤, 꿈을 꾸던 허칠안은 누가 머리를 두드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는 진짜로 누군가 머리를 두드렸다기보다는 원신을 두드린 것에 가까웠다.

방 안에 그의 머리를 두드릴 수 있는 건 한 사람과 칼 한 자루뿐이었다. 종리는 보통 가느다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태평도라면 칼날로 그를 찔렀을 테니, 이렇게 부드러울 리가 없었다.

‘원신 영역의 피드백이다. 누군가 나와 1:1로 대화를 나누려고 해…….’

허칠안은 눈을 반쯤 뜨더니 손을 뻗어 지서 파편을 꺼냈다. 뒤이어 그는 누가 그와 1:1로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지 깨달았다.

일호, 회경이었다.

그는 회경의 DM 요청을 수락한 뒤 전서로 아주 정중하게 말했다.

[삼: 왜 한밤중에 전서를 보내십니까? 설마 각하께서는 성생활을 하지 않으십니까?]

대봉 조정에서 남녀 간의 일은 아주 중요시되었다. 세부적인 일은 형용하지 않았다. 호칭만 해도 사람에 따라 일에 따라 달라야 했다.

예컨대 정상적인 남녀 관계는 ‘공부무산(共赴巫山)’이라고 했으며 정상적이지 않은 남녀 관계는 ‘구란청곡(勾欄廳曲)’이라고 했다. 남자와 남자 사이의 어떤 관계는 ‘단수지벽(斷手之癖)’, 여자끼리의 관계는 ‘일룡이봉(一龍二鳳)’, 쓰리썸은 ‘쌍관제하(雙管齊下)’라고 했다.

좀 더 고급스러운 말도 있었다.

허칠안과 부향의 육신 관계는 밑줄이라고 불렀다.

허칠안과 황선아의 관계는 밑줄이라고 불렀다.

‘성생활’은 허칠안이 무의식적으로 비아냥거리면서 나온 표현이었다. 이는 시대를 초월하는 어휘에 속하기에 설령 학식이 풍부하고 재능이 출중한 회경이라도 이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깨달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딱히 좋은 말이 아니라는 걸 눈대중할 수밖에 없었다.

허칠안은 일단 비아냥거린 뒤 좀 난처해졌다. 그는 전생의 ‘삭제’ 기능에 관한 그리움을 참을 수 없었다.

다행히 회경은 그 뜻을 알지 못해 미주알고주알 따지지 않고 전서로 말했다.

[일: 남원 정덕 26년의 권종을 나는 이미 봤네. 총 두 가지 일이 발생했더군. 첫 번째 일은 정덕 26년 가을, 남원의 짐승이 갑자기 대규모로 자취를 감추고 행방불명 된 것이야. 깊은 곳에 짐승이 활동한 흔적만 있을 뿐이었지. 두 번째 일은 회왕과 황자 시절의 폐하가 남원에 가서 사냥하다가 곰에게 습격을 당해 수행하던 시위가 거의 다 죽거나 다친 일이지. 회왕은 분노에 차 곰을 산 채로 찢었고 선황에게 미래의 나라를 지키는 기둥이라고 칭송받았지.]

그녀는 몇 단락 전달하더니 몇 초간 멈췄다가 다시 전서를 보냈다.

[일: 나는 회왕과 폐하가 그해 외곽에서는 사냥감을 찾지 못해 남원 깊숙이 들어갔다는 의심이 드네. 또한 선황의 몸 상태는 줄곧 괜찮았는데 일 년 내내 여색이 홀딱 빠지는 바람에…… 노년에 갑자기 병이 찾아왔네. 사천감의 술사는 그의 생명을 1년 연장해줄 수밖에 없었고, 1년 뒤에 승하하셨지.]

허칠안이 전서로 물었다.

[삼: 남원 외곽의 짐승이 대규모로 자취를 감추었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산짐승들이 도망쳤다고?]

일호가 전서로 말했다.

[일: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네. 짐승은 영역 의식이 아주 강해 폭력적으로 내몰리지 않는 한, 근거지를 떠날 가능성이 크지 않아. 짐승들은 대규모로 자취를 감추었네.]

일호는 말을 마친 뒤 침묵했지만, 연결을 끊지도 않았으며 계속해서 전서를 보내지도 않았다. 그녀는 허칠안의 의견을 기다리는 게 분명했다.

허칠안은 잠시 헤아리더니 전서로 말했다.

[삼: 이 일을 내가 계속 조사할 것이니 사적으로 한 번 만날 수 있겠는가? 내가 자네에게 자세하게 설명하겠네.]

일호가 말했다.

[일: 안 되네.]

그녀는 말을 마치고 연결을 끊었다.

‘허, 그녀는 내가 그녀의 신분을 안다는 걸 아직 모르는군…….’

허칠안은 입을 삐죽거렸다.

그는 지서 파편을 거두고 침상에 누워 두 손으로 머리 뒤를 베고 습관적으로 복기하고 분석하였다.

‘선황이 일 년 내내 여색이 깊이 빠져있어서 몸 상태가 딱히 좋지는 않았군. 기운이 몸에 달라붙은 자는 장생할 수 없다는 법칙에 근거했을 때, 선황은 확실히 죽었어야 해……. 원경제와 회왕이 그해 남원 깊은 곳에서 마주친 건 절대 곰이 아니야. 시위가 거의 죽거나 다쳤다는 게 바로 증거지. 만약 곰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그리고 그해의 회왕은 아직 소년이었다.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궁 고수보다 강할 리는 없어. 게다가 수행하던황궁 고수가 전부 죽었는데 그와 원경제는 죽지 않았다. 이건 아주 불합리해 보인다고.

그해 위기에서 그와 원경제는 어떠한 이유로 죽음을 피한 것이다. 이 이유밖에 사정이 설명되지 않는다. 만약 힘들게 도망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면 원경제와 회왕은 사후에 아마 궁에 보고하여 선황에게 고수를 파견하여 처리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정사(正史)에 회왕이 손으로 곰을 찢어 선황에게 미래의 나라를 지키는 기둥이 될 것이라고 칭송받았다고 기재되어 있다. 이는 원경제와 회왕이 수동적이든 자발적이든 진상을 숨겼다는 의미다.’

* * *

같은 날 밤, 북경 월아만(月牙灣)에서 모닥불이 훨훨 타올랐다. 낮은 탁자에 구운 소고기와 양고기 및 말 젖 술이 놓여 있었다.

오랑캐 사나이와 여인들은 모닥불을 둘러싼 채 춤을 췄다. 노랫소리는 소탈했으며 분위기는 화끈했다.

입추 후, 북방의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거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허신년의 야들야들한 얼굴은 좀 찌뿌드드했다.

그는 배만서루의 추천으로 양 기름을 얼굴에 발라 북방의 건조한 기후를 막는 데 썼다.

허신년의 계책은 효과적이었다. 3만 대봉 군대가 북상하여 정국이 미처 손을 쓸 새 없이 기습하였다. 바로 전날 전투에서 오랑캐와 협력하여 화갑군 3천 명, 경기병 1천 4백 명, 보병 5천 명을 섬멸하였다.

북방 요족 및 오랑캐에게 이는 항쟁한 지 2개월 만에 가장 큰 승리였다. 당연히 대봉의 군대는 요족과 오랑캐의 열렬한 환영과 우대를 받았다.

하지만 허신년은 알았다. 모든 일은 양면성이 있었다. 3만 군대는 이번 기습을 위해, 행군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4일 치 식량만 챙겼다.

만약 후방의 보급선이 끊기면 3만 군대는 탄환과 식량이 다 떨어지는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게다가 군사가 끊임없이 이동하는 바람에 후방 부대가 식량을 운송하면서 따라잡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들은 정국 군대와 마주칠 가능성이 훨씬 더 컸다.

비록 요족 및 오랑캐 두 종족은 식량을 빌려줄 수 있다고 주장하였지만, 전쟁이 일단 벌어지면 진영이 해산되는데 누가 누구를 돌볼 수 있겠는가?

그때가 되면 그들은 변방으로 돌아가 기회를 엿보다가 다시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그들은 승리할 기회를 많이 놓치는 셈이 될 터였다.

허신년은 말 젖 술을 마시는 데 익숙하지 않았기에 조금씩만 홀짝대면서 요족과 오랑캐의 남녀들이 춤추는 걸 바라보았다.

요족과 오랑캐 두 종족한테는 여인이 군영에 나타나는 게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우선 이 여인들의 존재는 남자들의 생리적 욕구를 잘 해결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요족 및 오랑캐 두 종족의 여인은 마찬가지로 약하지 않은 전투력을 지녔다.

배만서루는 옷깃을 바로 한 채 단정하게 앉은 허신년을 쳐다보더니 웃으며 요염한 요녀에게 오라고 손짓하였다. 그는 그녀에게 분부하였다.

“우리의 친구를 잘 시중들거라.”

이어 그는 허신년에게 말했다.

“군영 안은 답답하고 무료하지요. 병사들은 낮에 전쟁터에 나가 서로 싸우고 죽여야 하고 밤에는 잘 쉬어야 합니다. 신년 형, 그녀는 오늘 저녁 당신의 것입니다.”

요염한 요녀는 애교 띤 눈초리로 기대오더니 자신의 부드러운 몸을 허신년의 팔에 문질렀다.

허신년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계속해서 밀치며 자신은 이런 사람이 아님을 표현했다.

‘양군이 대치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어떻게 미색에 빠질 수 있겠는가……. 나는 요족의 여인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잖아……. 몸은 참 부드럽긴 하네. 아니, 아니,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나는 지식인이야……. 적어도, 적어도 목욕은 해야해…….’

허신년은 배불리 먹고 마시면서도 요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대봉 지식인의 자존심을 굳게 지켰다.

* * *

그는 군막으로 돌아와서는, 가장 두껍고 무거운 겉 갑옷만 벗고 장화를 벗은 뒤 드러눕자마자 잠들었다.

초원진은 소리 소문 없이 군막 안에 나타나 의자에 앉아서 검을 감싸 안은 채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무신교와 전투를 치렀던 자들은 대체로 습관 하나가 생겼다. 밤에 쉴 때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한 사람은 자고 한 사람은 감시하였다. 일단, 잠자던 사람이 소리 소문 없이 죽은 걸 알면 바로 징을 울려 경종을 울렸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몽무라고 하는 주술사 4품이 꿈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데 가장 능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몽무가 이 수단을 시전하기엔 거리와 인원수 방면에 제한이 있었다. 그러다 종종 몇 차례 목적을 달성하여 십수 명, 수십 명을 죽이면 발각되곤 했다.

산해관전역 때, 위연은 몽무를 상대로 한 방법을 고안해냈다. 4품 고수와 술사 몇 명을 파견해 척후병으로 위장시킨 뒤 군영 밖에서 순찰하게 했다.

그들은 일단 몽무가 속한 군영을 발견하면 징을 울렸다. 술사는 우선 수색하여 몽무의 위치를 굳히고 4품 고수는 포위하였다.

몽무는 이 주술로 사람을 죽일 때, 군영과의 거리가 너무 멀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몽무를 수색할 때는 4품과 술사를 조를 이루도록 하였다. 술사가 수색하고 4품이 속도로 제압하면 대부분 일격에 승리할 수 있었다.

일부 병사들의 생명을 4품 몽무와 바꾸는 건 아주 큰 수확이었다.

* * *

허신년은 정신이 몽롱한 사이, 다시 경성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이때, 부친 허평지가 갑자기 목덜미를 감싸더니 흉한 얼굴로 죽었다. 그의 입가에서는 검은색 피가 스며 나왔다. 뒤이어 모친, 여동생 영월 그리고 형님이…….

허신년은 아연실색하여 막내 여동생 영음을 쳐다보았다. 영음은 동글반반한 얼굴에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오라버니, 그들은 중독으로 죽었어요.”

영음의 손에는 비상(砒霜) 한 봉지가 있었다.

“영음, 너…….”

허신년은 믿기 어려웠다.

“흥, 저한테 맛있는 걸 주지 않았으니 모두 죽을 거예요.”

허영음은 그녀의 인성과 부합하는 말을 하였다.

‘내가 영음의 손에 죽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허신년이 막 입을 떼려던 참에 갑자기 복부가 뒤틀리듯 통증이 왔고, 입가에서는 검은 피가 스며 나왔다. 목숨이 곧 다할 듯했다.

순간 자색 빛이 허신년의 눈앞에서 반짝이더니 허영음의 눈에서도 반짝였다. 그녀는 끙끙 소리를 내더니 빠르게 흩어져 사라졌다.

* * *

군막 안, 허신년은 눈을 번쩍 뜨고 몸을 뒤척이며 일어나 앉아 숨을 헐떡였다.

“몽무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누르면서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의 가슴엔 자양거사가 그에게 선물한 옥패가 있었다.

대유의 호연정기로 다년간 품었던 휴대용 옥패였다.

바로 이때, 대포의 굉음이 군영 밖에서 들려왔다. 이어서 군영 안에서도 굉음이 터졌다. 불빛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 깜깜한 밤을 밝게 밝혔다.

그런 뒤 지면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수많은 정예병이 바싹 접근하여 세차게 쳐들어오는 듯했다.

그들은 정국의 보복성 습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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