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621화 (621/712)

621화. 남원

동북 세 나라 중에 정국이 가장 북방에 있어 북방 요족의 근거지에 인접했다. 염국은 중앙에 위치하여 대봉의 3주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남쪽에 위치한 강국은 바다에 인접한 나라였다.

세 나라는 각각의 특색이 있었다. 둘도 없이 용감한 정국의 정예병은 산해관전역 이후 북방 요족 및 오랑캐가 구주 제일 정예병의 보좌에서 떨어지자 내친김에 정상을 차지하였다.

염국 관내에는 험준한 산봉우리가 널리 분포했기에 대부분의 중요한 성지는 전부 난공불락의 지역에 건설되었다. 그들은 지리적 우세에 의지하여 수비하니 태산처럼 끄떡없었다.

그리고 염국 백성은 수렵으로 생계를 꾸려 활쏘기에 능했다.

지리적 우세를 차지한 것 외에도 염국의 강점은 더 있었다. 그들에게는 최강 군대가 있었으니, 바로 비수군이었다.

《구주지리지·동경》에 따르면, 동동산(東桐山)에는 회백색 하류가 많았다. 나무도 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빨간 사시나무 같고, 그 즙은 피와 같으며, 그 이름은 기(芑)라고 했다. 설구(挈拘)는 이를 먹었다.

설구는 일종의 기이한 짐승이었다. 그 날개는 펼치면 3m 길이로, 개 머리에 쥐 꼬리를 하고 하루에 500리를 날았다.

동동산은 염국의 중부에 있었다. 금수부의 기이한 짐승인 우주처럼 염국도 설구를 이용한 제공(制空) 군대를 소유했다.

단점은 설구군의 숫자가 화갑군보다 훨씬 적기에 보통은 비장의 무기로 사용된다는 점이었다.

염국 변방은 정관성(定關城)이었다.

정관성은 변방의 큰 성으로서 충분한 병력, 물자 그리고 군비를 갖추었기에 대봉 대군의 진공을 수비하기에 여유가 넘쳤다. 그리고 만약 무신교가 중원으로 진격하는 군대를 저지하고자 한다면, 정관성이 재빠르게 출격할 수 있었다. 그 자체로 언제든지 전쟁에 뛰어들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틀 전, 정관성은 가장 높은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양국 상인, 백성의 출입을 금지했다. 성안의 군대는 밤새도록 쉬지 않고 순찰하였고 성 밖의 척후병은 끊임없이 밀서를 주고받았다.

대봉 군대가 왔다!

동북 변방이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안정적이었는데 마침내 전쟁의 불길이 다시 치솟으려 했다.

독알흑(禿斡黑)은 선명한 갑옷을 입은 채 허리에 칼을 찼다. 그는 빼곡하게 둘러싼 부장군 등 부하들 사이로 걸어갔다. 그는 정관성 성벽 위에 올라 아주 먼 곳에 있는 평원을 조망하였다.

그는 정관성의 군대 통솔자로 군의 최고 지도자였다.

아침 해가 막 떠올랐다. 가을이 되자 짙은 녹색의 산꼭대기에 시들어 누런 나뭇잎이 늘어났다.

“모두가 위연이 대봉의 군신이라고 말하던데 본장(本將)은 위연이라는 자가 우리 염국의 난공불락 성인 정관성을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 줄곧 알고 싶었네.”

독알흑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염군 군대의 청장년 파로 그해 산해관전역 때는 남아서 국토를 지키는 걸 담당하던 하층 군관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위연에 관한 명성을 들은 지는 이미 오래였다.

“전쟁터 후방에서 책략을 세워 위연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아마 없을 겁니다. 설령 하후옥서라고 해도 제가 보기에는 위연에 훨씬 못 미치지요.”

얼굴에 구레나룻으로 가득한 부장군이 개탄하더니 이어 냉소를 지었다.

“하지만 양군이 싸우는 것과 성지를 공수(攻守)하는 건 다른 일이지요. 장군, 만약 위연이 정관성에 패한다면, 장군께서는 장차 구주에서 권세가 대단한 인물이 될 겁니다.”

자고로 전쟁은 어렵고, 성을 공략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성을 공략하기 위해선 때때로 열 배 심지어는 수십 배의 병력을 투입해야 했다. 만약 지리적 우세를 점한 성지를 맞닥뜨린다면…… 아무리 대단한 장수라고 해도 골치가 아파 꽁무니를 빼곤 했다.

누군가 억지로 매달리고자 하면 한 차례 전쟁의 결말이 뒤집어지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역사적으로 유사한 사례가 아주 많았다.

독알흑은 웃기 시작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방심해서는 안 된다.”

그의 마음속이 뜨거워졌다. 양군이 싸우면 그는 위연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성 수비라면 마침 그의 강점이었다. 그렇지 않고선 염군(炎君)의 신뢰를 얻어 변방의 군대 통솔자가 됐을 리가 없었다.

정관성은 좌측으로 큰 강을 끼고 있고, 우측으로는 험준한 산봉우리에 의지하고 있어 난공불락이었다. 독알흑은 지리적 우세를 높이기 위해 산에 들어가 돌을 다듬을 자들을 파견하였다. 2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행군하는 주도로를 제외하고 성벽 양쪽에는 돌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공성차나 사다리가 다가갈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 했다. 누군가 힘을 들여 깨끗이 처리하려고 한다면 바로 살아 있는 표적이 되었다.

“아오오오……!”

무게감 있는 포효 소리가 먼 하늘에서 들려왔다. 성벽 위의 장수, 병사들은 이것이 설구의 울음소리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소리를 따라 보니 검은 형체가 먼 곳에서 날아오면서 서서히 또렷해졌다. 설구였다.

개 머리에 쥐 꼬리를 한 짐승은 널찍한 마도(馬道)에 착륙하더니 양 날개를 접고 선홍색의 흉측한 눈으로 전방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치 인족 사병이 보초를 서는 듯했다.

설구 몸에는 달라붙은 견고한 가죽 덮개는 등 위의 척후병에게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척후병은 허벅지와 허리의 ‘안전띠’를 풀고 새 등 위에서 뛰어내려 독알흑 앞으로 황급히 달려와 공수했다.

“대장군, 대봉 군대가 정관성에서 20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성벽 위 사람들의 안색이 순간 엄숙해졌다.

독알흑은 잠시 침음하더니 말했다.

“내 친서를 전하거라. 나는 정관성의 수비 장수 독알흑으로 그대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 하지만 내 눈에 그대는 그저 사람들을 속여 명예를 훔친 환관일 뿐이오…….”

참모는 재빨리 종이와 필묵을 펼치고 붓을 들더니 재빠르게 써 내려갔다.

독알흑의 친서에는 다른 내용은 없었다. 전편 모두 위연을 모욕했다. 그가 산해관전역에서 승리한 건 단순한 운이었으며, 그는 사람들을 속여 명예를 훔친 데다 자식이 없는 환관이라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친서는 그의 선조까지 욕했다.

어찌나 듣기 싫게 욕하고 어찌나 악독하게 썼는지!

마지막으로 그는 위연과 우열을 가려 대봉 군신을 전장에 파묻겠다고 언급하였다. 간단히 번역하자면 이러했다.

<용기 있으면 덤벼 봐.>

참모가 다 쓰고 묵적을 불어 말린 뒤 웃었다.

“대장군의 이 계략은 위연을 화나게 하기 위함인지요?”

독알흑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적 중 하나일 뿐이네.”

참모가 겸허하게 물었다.

“다른 목적이 있습니까?”

독알흑이 건방지게 냉소를 지었다.

“이 몸은 그저 이 환관을 모욕하고 싶을 뿐이네.”

다들 성벽 위에서 한바탕 떠들썩하게 웃어댔다. 엄숙한 분위기가 적잖이 가라앉았다.

독알흑은 또 말했다.

“위연의 수준을 보면 그렇게 쉽게 화를 내지 않을 듯하네. 그래서 일각마다 우리는 한 번씩 욕할 걸세. 모두가 함께 욕하는 거지. 사람이 많으면 말도 많지 않은가.”

부장군은 하하하 웃었다.

“대봉 군신에게 치욕을 줄 수 있다니 통쾌하군요.”

성벽 위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 * *

경성 동궁, 임안은 마침 그녀의 태자 오라버니와 오목을 두는 중이었다. 태자는 다소 귀찮았지만, 꾹 참고 그녀와 함께했다. 애교 부리기를 좋아하면서도 예쁜 여동생을 총애하지 않는 오빠는 거의 없을 테니까.

“안 할래요, 안 할래…….”

임안은 버럭 화를 내며 바둑돌을 내던지더니 볼을 부풀리고 불평하였다.

“정신이 자꾸 딴 데 가 있잖아요. 태자 오라버니는 저랑 함께하길 원치 않는 거예요.”

‘화본이 재미없어졌나 아니면 제기가 재미없어졌나? 또 어쩌면 회경이 요즘 그다지 밉살스럽지 않은 건가?’

태자는 속으로 중얼거리더니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임안, 본 태자는 사무가 바쁘단다. 너랑 이렇게 지루한 놀이를 할 시간이 어디 있겠니?”

임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인이랑 같이 놀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저는 태자 오라버니랑 놀고 싶단 말이에요.”

궁녀, 태감이 놀아주는 것과 가족이 놀아주는 걸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임안은 어릴 적에 태자를 졸졸 따라다녔다. 치마를 입은 키가 작은 꼬마는 태자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다. 좀 더 컸을 때는 진비가 차라리 회경을 성가시게 하라고 종용했더랬다.

이때 환관이 종종걸음으로 입구에 오더니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태자 전하, 회경공주마마께서 오셨습니다.”

남매 둘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태자가 중얼거렸다.

“그녀가 동궁에 뭐하러 온 거지.”

태자는 즉시 회경을 들어오게 하라고 했다. 이내 이목구비가 아름다우며 그림처럼 청아한 외모의 회경이 흰 궁장을 입고 문턱을 넘어 태자를 향해 예를 갖춘 뒤, 임안을 쳐다보았다.

“회경, 본 태자를 무슨 일로 찾았느냐?”

태자는 뜨뜻미지근한 어조로 물었다.

회경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태자께 염화성(閻畵聖)의 《추렵도(秋獵圖)》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을 사냥이 다가오니 본 공주가 갑자기 흥미가 생겨 가져가서 모사하고 싶습니다.”

태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본 태자가 이따가 사람을 보내 가져다주라고 하겠다.”

비록 그들의 모친이 후궁에서 대단한 열의를 가지고 서로를 물어뜯지만, 가짜 남매의 정은 그래도 수호해야 했다.

‘가을 사냥이라니…….’

임안은 눈을 반짝이더니 매우 기뻐했다.

“태자 오라버니, 우리 남원에 가서 사냥해요.”

태자는 이 말을 듣자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이 남원에 가서 뭐하려고? 길이 멀다.”

임안은 끊임없이 허리를 비틀며 애교를 부렸다.

“조금도 멀지 않아요, 조금도 멀지 않다고요. 말을 타고 가면 되잖아요. 태자 오라버니, 데리고 가주세요.”

태자는 그녀의 이 수법을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워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수법이 가장 잘 먹힌다는 점도 잘 알았다. 마치 원경제처럼 말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알겠어, 알겠어. 오늘 내가 우선 계획할 테니 내일 날이 밝으면 가자꾸나.”

그는 수중에 일이 남아 있었기에 이 기회에 임안과 회경을 내쫓았다.

가을 사냥은 성대한 일이었다. 원경제가 도를 닦는 데 깊이 빠진 이래로 가을 사냥은 아주 드물게 개최되었다. 왕년에 황자, 황녀들은 알아서 남원에 사냥하러 가곤 했다. 보고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임안에게 사냥은 가장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이는 그녀가 활을 쏠 수 있는지 없는지와는 관계없었다.

마치 허칠안의 전생에서 일부 여자아이들이 게임에 중독된 것과 같았다. 이는 그녀들이 허접인 것과는 상관없었다.

* * *

임안이 저택에 돌아오자 한 궁녀가 바로 나와서 보고하였다.

“마마, 방금 회경공주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회경이 나를 찾는다고? 근데 방금 동궁에서는 왜 나한테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거지?’

임안은 눈을 깜박이더니 막연한 표정을 지었다.

‘에휴, 상관하지 않을래. 우선은 화본을 보고 내일 남원에 사냥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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