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화. 지기(知己)
위연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듯 허칠안에게로 쏠렸다.
성벽 위의 임안, 회경, 문무백관. 성벽 아래의 출정 대오, 길가의 백성들 모두 그를 보았다.
허칠안은 북소리를 멈추고 잠자코 있다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우렁찬 목소리로 웃었다.
“위 공, ‘천하에 어느 누가 그대를 모르리’ 이후에 송별시는 그보다 더 나은 것이 없더군요.”
그는 멈칫하더니 한껏 소리를 질렀다.
“차라리 소직이 한 수 짓는 편이 낫겠지요!”
두 사람은 수천만 명 앞에서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위연은 잠시 침음하더니 웃음을 머금었다.
“가능하지!”
시선들이 삽시간에 다시 허칠안에게로 향했다. 밑에 있는 서생과 성벽 위의 문관들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감정, 이 상황에 어떻게 시사로 흥을 돋우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대봉 시괴가 자리에 있으면 지식인 사회에 대대로 전해질 명작이 또 한 수 나올 것이었다.
지식인들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좀 취기가 올라, 허칠안의 사(詞)에 더할 나위 없이 기대를 걸었다.
허칠안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격렬하게 북을 쳤다. 북소리가 둥둥 메아리쳤다.
그의 마음속에 확실히 위연에게 선물하고 싶은 시가 한 수 있었다.
그는 초주에서 돌아온 뒤 위연과 한 차례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서, 위연이 진북왕과 관련된 계획을 세웠으며, 그에게 병권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때, 허칠안은 비로소 깨달았다. 조당에서 여러 당과 힘을 겨루는 대청의는 사실 줄곧 다시 군사를 장악하여 포부를 펼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위 공, 20년입니다. 전쟁터로 돌아가 강산을 이끌고자 하는 꿈을 꾸셨습니까?’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북소리를 동반한 채로 단전에 기기를 운행하여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등불 아래 취한 눈 떠보니 칼이 보이고, 꿈에서 깨어나니 군영에서 진격의 호각 소리가 울리네! 휘하의 병사들에게 잘 익은 소고기를 나눠주고, 칠현금 연주로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니, 이곳은 가을날 전쟁터구나!”
위연은 멍해져서 놀란 모습으로 성벽 위의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좋은 사(詞)다!
모든 문관들의 눈이 갑자기 반짝였다. 이 한 구절은 등불 아래 꿈에 취해 칼이 보인다고 말했고, 그들은 마치 그해 군 생활로 돌아간 듯했다.
그들은 마치 20년 전, 입추 이후 병사를 소집한 그 전쟁터와 군대를 이끌고 출정한 그 위연으로 돌아간 듯했다.
이는 위연에게 쓴 사(詞)였다.
둥둥둥, 둥둥둥!
허칠안은 격렬하게 북을 치면서 한껏 소리를 질렀다.
“살찐 말들은 적토마처럼 빠르고, 활시위를 떠난 활은 번개와 같은 소리를 울리네. 군왕의 대업을 완수하여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고 싶구나!”
당신이 조정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고 황실을 위해 강산을 수호하여 무엇을 얻었는가?
조정이 당신의 공적을 덮고, 진북왕을 과대 선전하였다. 본래 당신 것이었던 후광을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백성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 짐승을 위해 조금씩 조금씩 떠넘겼다.
문관과 지식인 사회는 글로써 죄상을 폭로하여 당신에게 환관당의 우두머리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다들 산해관전역에서 누가 이겼는지, 20년간 대봉의 태평성대를 누가 이루어냈는지 잊은 듯했다.
당신은 무엇을 얻었는가?
그는 멈추었고 북소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허칠안의 목소리는 아주 우렁찼으나 어조에는 깊은 서글픔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가련한 백발의 서생이여!”
성벽 위 분위기가 갑자기 굳었다. 왕정문 등의 문관은 멍하니 허칠안을 바라보며 마지막 단락을 음미하였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슬픔과 처량함이 가슴속에서 솟구쳤다.
문인을 가장 감동시킬 수 있는 건 언제나 시와 사였다.
사실 자리에 있는 문관들은 속으로 위연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설령 다툼에 혈안이 돼 있다고 해도 마음속으로는 위연의 품성을 인정하는 바였다.
그저 입장이 다를 뿐이었다.
가련한 백발의 서생, 가련한 백발의 서생……. 이 순간 위연과 반평생 싸웠던 문관들이라고 해도 가슴속의 울적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임안은 입술을 깨물고 눈꼬리를 살짝 찡그렸다. 처음에는 딱히 생각이 없었다가 그가 마지막 구절을 읊은 뒤로 슬프고 처량한 감정이 갑자기 해수처럼 밀려들었다.
회경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는 뜻밖에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제기랄, 이게 무슨 망할 사(詞)인가. 듣자니 이 몸의 코끝이 찡해지는구먼.”
강율중은 얼굴을 비비더니 중얼거렸다.
출정한 대오 중에 산해관전역에 참전한 선배들은 이 순간 눈가가 촉촉해졌다.
“하하하…….”
위연은 도리어 웃었다. 그는 아주 통쾌하게 웃었으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허칠안, 내가 왜 자네를 수양아들로 거두지 않는지 알겠는가? 왜냐하면, 내 가슴속에 자네는 지기(知己)거든!’
* * *
조위는 청운산 운록서원 정상에 서 있었다. 유삼과 희끗희끗한 백발이 바람에 나부꼈다. 그는 마치 거리를 관통하는 듯한 눈빛으로 출정하는 대오를 보았다.
“서원은 대봉으로 인해 궐기했지만, 유가는 대봉으로 인해 쇠약해지는구나.”
그의 눈빛은 차분하고, 어조는 침착했으며 눈에는 기쁨도 슬픔도 없었다.
그는 호연정기를 뒤흔들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위연, 개선하게!”
그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유가 언출법수의 기운이 허공으로 들어가더니 사라졌다.
다음 순간, 법술의 반격 효과가 강림하여 조위 몸을 감돌던 호연정기를 요란하게 흐트러트렸다. 그의 미간에 틈이 벌어지더니 빠르게 뻗어 나가며 균열을 일으켰다. 마치 잘게 부서진 달걀 껍데기 같았다.
아성전 내에서 청광 한 줄기가 발사되어 곧장 조위의 몸을 비추니 균열이 생겼던 몸이 천천히 아물었다.
“쉽게 허풍을 떨어서는 안 되지. 더욱이 품계를 초월하는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면. 위연아, 위연.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네를 여기까지만 도울 수 있겠네. 이천여 년 전에 유가 성인이 있었다면 지금 인족에는 이 깃발을 짊어질 수 있는 자가 자네뿐이야.”
조위는 말을 마치고 아성전을 향해 읍하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성.”
정씨(程氏) 성인의 비석이 깨진 후에 아성전의 힘은 이미 살아났더랬다.
* * *
진영 안에는 총 7만 병력이 배치되었다. 금군 1만을 제외한 나머지 6만은 경성 관내 및 각주에서 차출되어 온 병력이었다.
남은 병력은 동북 3주인 상주, 예주, 형주에 있었다.
경성 쪽의 7만 군대는 네 갈래로 나누어 동북 3주로 향했다. 그리고 그중 2만은 수로로 북경 초주를 향해 나아갔다.
허신년이 바로 이 이만 군대에 속해 있었다.
행군이라는 일은 사람이 많을수록 사실 더 번거로웠다. 그렇기에 대규모로 출정할 때는 통상적으로 군대를 나누어 처리한 뒤 한곳에서 집결하여 합류하였다.
7만 대군이 출정한다는 게 어떤 개념인가?
끝없는 사람으로, 머리가 보이지 않고 꼬리도 보이지 않았다.
대군은 관도를 따라 출발했다. 위연은 마지막으로 경성을 뒤돌아보니 까닭 없이 그 자식의 사(詞)가 떠올랐다.
‘군왕의 대업을 완수하여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고 싶구나. 가련한 백발의 서생이여…….’
위연은 웃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혼잣말하였다.
“나를 위해 불평을 늘어놓을 필요 없네. 나는 나라에 충성하고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뿐. 내가 충성하는 건 사직이자 백성이거늘. 자네는 나를 잘 알겠지.”
대군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7만 대군은 소리 없이 침묵하였다. 그저 덜컹거리는 바퀴 소리, 군마의 울음소리 그리고 갑옷과 투구가 부딪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장병들은 갑자기 하늘가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들었다.
“전쟁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북방에서 이 조국의 강산을 바라보네. 격동의 시기에 인재들이 만나 살벌한 검기가 오가네……. 황하처럼 감정이 요동치는 사이 20년간 종횡무진하는데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어떤 이는 막연하게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고, 어떤 이는 노랫소리에 젖었다.
“망국(亡國)에 대한 원한으로 전쟁터로 출정하네. 얼마나 많은 충의지사가 타국 땅에서 전사하겠는가……. 나는 수천 번 죽어서라도 국가에 보답하리. 탄식을 참고 말을 하지 않으니 피눈물이 얼굴에 범벅이네……. 우리는 남으로 향하지만, 마음은 북에 가 있구나. 시비를 가리고자 했으나 어둠이 떠오르네. 나는 국토를 수호하고 나라를 위해 영토를 확장하여 위풍당당한 중원을 사방에 떨쳐 축하받길 원하나니.”
누군가 저 멀리 산비탈에 오랫동안 서서 미친놈인 듯 계속해서 소리 높여 노래 불렀다.
‘20년간 종횡무진하는데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반드시 개선하시게. 위 공!’
* * *
사천감, 팔괘대에서 눈처럼 하얀 옷을 입은 감정은 이번에 탁자에 앉는 대신 가장자리에 서서 무표정으로 출정하는 대오를 관찰했다.
“막이 열렸군.”
감정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막이 열렸다니요?”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주인공인 나를 빼놓을 수가 있지요? 그렇죠, 스승님?”
감정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탄식하였다.
“대봉을 놓고 보면 군대를 이끌고 ‘정산성’까지 칠 수 있는 자는 위연뿐 일세. 그가 아니면 안 돼.”
양천환은 반박할 힘이 없어 입을 벌렸다.
감정은 시선을 거두었다.
“자네 마음이 잠잠하지 않은데 어떻게 승직하겠는가?”
양천환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스승님, 저는 이미 여러 날 동안 사천감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외부 사람은 제 명성을 모를 것이고, 사천감에 양천환이 있다는 걸 모를 겁니다. 저, 달갑지 않습니다.”
‘어디서 얻은 명성?’
감정은 하마터면 미간을 문지를 뻔했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허칠안이 출정하지 않았네.”
양천환은 어리둥절했다.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감정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성벽 위에서 북을 치고 사(詞)를 지어 만인의 주목을 받았지.”
‘성벽 위에서 북을 치고 사(詞)를 지어 만인의 주목을 받았다라…….’
양천환은 너무 부러운 나머지 온몸을 떨었다.
한참 뒤, 그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스승님, 저 3품으로 승직할 겁니다!”
감정은 미소를 지었다. 이때, 저채미가 달려와 큰 소리로 말했다.
“스승님, 스승님. 송경 사형이 다른 사형들을 데리고 소란을 피웠어요!”
“응?”
“송 사형이 말하길 창작은 열정이 필요하대요. 그들은 단조롭고 재미없고 반복적인 작업을 거절했어요. 그들이 제식 법기 정련을 거부했어요.”
감정은 마침내 미간을 문지르더니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그들에게 알리거라. 양천환이 나를 거역하여 지하 3층에 갇혀서 벼락을 맞고 불에 타는 벌을 받았다고.”
저채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이렇게 하면 송 사형 일행은 얌전히 일할 거예요. 스승님 정말 똑똑하셔요. 이렇게 훌륭한 계책을 생각해내실 수 있다니요.”
‘이건 똑똑한 거랑 상관없는데…….’
양천환은 속으로 빈정댔다.
감정은 탄식하더니 다시 미간을 문질렀다.
저채미는 양 사형이 그녀의 지능에 관해 비아냥거렸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감정 스승의 미간을 문지르는 행위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감정 옆으로 달려가 우선 탁자를 보았다. 그녀는 요리는 없고 술만 있는 걸 보자 실망하여 시선을 거두고 신비스럽게 말했다.
“스승님, 저 한 가지 가르침을 청하고 싶은데요…….”
감정은 갑자기 좀 흐뭇했다.
“제가 유일본에서 기묘한 주문들을 발견했는데 스승님께서 저 대신 봐주실 수 있을까요?”
저채미는 말을 하면서 품에서 가지런하게 접은 종이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