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611화 (611/712)

611화. 북을 두드리다

검은 옷의 여인은 아주 조심스럽게 잠시 살피더니 벽을 따라 걸어 다녔다. 그녀는 기름 그릇을 하나씩 조사하였는데 그릇 안에는 먼지가 떨어져 있고, 심지가 메말라 있었다. 오랫동안 기름을 채운 사람이 없었다.

기름 그릇은 올가미가 없어 하나하나 손쉽게 들 수 있었다. 벽을 두드리니 묵직한 메아리가 들려왔다. 이는 벽 안에 암합(暗合)이 없고 올가미가 없다는 걸 증명했다.

검은 옷의 여인은 한 바퀴 조사한 뒤, 석판에 다가갔다. 그녀는 더할 나위 없이 신중하게 석판을 두드리며 극도로 경계하였다.

일각 뒤, 등불은 거의 다 타버렸고 그녀는 다시 다른 등불을 밝혔다.

‘평원백 저택은 황제가 하사한 저택이다. 황실이 건설한 저택은 구조가 엄격하고 반드시 풍수가 가장 좋은 곳을 고른다. 경성의 어떤 곳이 용맥이 위치한 지역보다 더 좋겠는가? 그러므로 토둔 법술로 전송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묘진이 토둔 법술은 실행하기 어렵다고 말한 적 있다. 평원백과 회왕 밀정이 이 비술에 정통할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석판에 새겨진 진법이 토둔술이라면, 작동한 후에는 분명 목적지로 전송할 것이다.그곳은 어디일까? 황궁의 어느 곳?

그 당시 항원은 화가 나서 저택에 난입하였다. 평원백은 틀림없이 이 지하도로 도망쳐 전송진을 통해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성공하지 못했다. 어쩌면 막 비밀 통로를 열었을 때 항원에게 맞아 죽었을지도……. 하지만 항원은 다른 일은 전혀 알지 못했다. 비밀 통로 하나만으로 전부 유추하기란 불가능하다. 게다가 귀족 저택에 비밀 통로를 만드는 건 아주 정상적인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폐하의 눈에 이건 커다란 허점이다. 그래서 항원은 반드시 죽어야 했다. 지금까지 내 추측이 전부 검증되었고, 어떠한 구멍도 없다. 허칠안 그 자식이 생각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당분간 무시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항상 그가 더 많이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폐하께서 왜 정기적으로 사람을 모으려는 걸까? 그는 무고한 사람들로 무얼 하려는 걸까?’

검은 옷의 여인은 생각에 잠겼다.

한참 뒤, 그녀는 탄식하더니 마음을 가다듬고 석판을 자세히 주시하였다. 그녀는 10분간 침묵하며 모든 세부 사항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머릿속에 새겼다.

그런 뒤 그녀는 등불을 쥐고 빠른 걸음으로 밀실을 빠져나갔다.

* * *

6월 18일, 입추!

삼제를 지내고 드디어 대군이 출정하는 날이 다가왔다.

이날 이른 아침, 위연은 장군들을 거느리고 말을 탄 채 황성 간선도로에서 출발해 경성 밖 대군 군영을 향해 갔다.

그들이 ‘남의 이목을 끌며 거리를 지나가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었다. 과거 급제와 출정 모두 국가 대사라 반드시 백성들의 이목을 끌고 거리를 지나가며 널리 알려야 했다.

위연은 위풍당당한 수백 명의 대오 속 가장 선두에 있었다. 여전히 청의를 입고, 희끗희끗한 양쪽 귀밑머리를 한 위연은 훤칠하고 의젓했다.

마치 그해 같았다.

간선도로 양쪽에는 백성들이 가득 서 있었다. 오래도록 선전한 덕분에 백성들은 이미 전쟁을 받아들였고, 대오를 둘러싸고 묵묵히 지켜보았다.

인파 속, 백발의 노인이 그 청의를 뚫어지게 주시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마구 흘리면서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왜 우세요?”

노인 곁의 젊은 남자가 막연하게 물었다.

“위 공, 위 공께서 드디어 다시 군대를 이끄시는구나…….”

노인은 희비가 교차하여 아들의 손을 꽉 잡았다.

“아버지가 그해 참전했을 때 위 공을 따라서 산해관전역에 갔다. 그리고 그를 따라 돌아왔지. 눈 깜짝할 사이에 20년이 흘렀구나. 위 공께서는 여전히 그해의 모습이란다. 그저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졌을 뿐. 그 당시 나는 폐하께서 성벽 위에 서서 직접 북을 치며 위 공을 배웅했던 걸로 기억한다.”

‘폐하께서 북을 쳤다니…….’

젊은 아들은 눈을 부릅뜨고 믿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청의 차림의 사내가 군대를 인솔하는 광경을 보더니 잇따라 그해 산해관전역을 떠올렸다.

그들은 대봉에 군신이 한 명 더 있었다는 걸 떠올렸고, 그해 진북왕이 고개를 내밀지 못하게 제압했던 그 청의 사내를 떠올렸다.

특히 일찍이 참전했던 노인들은 위연이 군대를 통솔하는 모습을 다시 보자 눈물을 흘리거나 매우 흥분하였다. 희비가 교차하였다.

“위 공, 위 공이다…….”

“20년 됐네, 꼬박 20년이야. 드디어 위 공께서 군대를 거느리는 걸 다시 보았군.”

“이렇게 여러 해가 흘렀네. 나는 애당초 위 공이 천군만마를 이끌고 서쪽으로 정벌을 떠났던 광경을 잊을 뻔했어. 위 공, 왜 산해관전역 이후로 조당에 숨어 계셨습니까. 그해 형제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아십니까…….”

젊은이들은 기성 세대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그 청의가 왕년에 얼마나 눈부시게 빛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길가, 치안 유지를 책임지는 허평지는 긴 칼을 허리춤에 차고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꿈을 꾸는 듯했다.

“백호 대인, 대인께서도 그해 산해관 전투를 치르셨지요. 위 공이 정말 그렇게 대단합니까?”

한 젊은 어도위가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우리 세대 사람들은 위 공이 계시는 곳에 군대의 기세가 있다고 하지. 그는 군인들이 기꺼이 전투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하는 그런 인물이네.”

허평지는 탄식했다.

“자네 세대의 젊은이들은 그해의 우리를 이해하기 어려울 걸세. 허나 자네들은 조만간 체득하게 될 걸세. 음, 무신교를 쳐부술 때까지 기다려보라고.”

“제가 듣자 하니 그해 산해관전역 때 폐하께서 직접 성벽 위에서 북을 치셨다고요?”

다른 어도위가 물었다.

“산해관전역은 국가의 존망과 관련된 일이었으니 당연히 다르지. 이번에는 볼 수 없네.”

허평지는 애석해했다.

위연 뒤, 강율중 등 위연을 뒤쫓아 출정했던 고참들은 길가 백성들의 말을 듣고는 저도 모르게 그해를 떠올렸다.

산해관전역 때, 대봉은 전국의 병력을 전쟁에 투입하였다. 그해 용포가 직접 성벽 위에 서서 북을 치며 배웅하는데 얼마나 굉장했겠는가.

만약 폐하께서 다시 북을 치며 배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해 그 노장들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다만 폐하는 그해의 그 명군(明君)이 아니었다. 그 당시 원경제는 영명하고 위풍당당하며, 또 부지런하여 선황으로부터 비롯된 고질병을 쓸어버렸다.

지금의 폐하는 도를 닦는 데 빠져 여러 해 동안 정무에 태만하였다.

강산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이미 달라졌다.

성벽 위, 왕정문을 필두로 한 문관과 몇몇 공작을 필두로 한 무장 그리고 태자를 필두로 한 종실들이 성벽 위에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아래쪽의 널찍한 간선도로 끝자락에서 천천히 전진하는 대오를 주시했다.

“그해, 위연이 출정하고 폐하께서 직접 성벽 위에 올라 북을 치며 배웅했던 일이 생각나는군. 경성 위아래로 모두가 한마음이 되었었지.”

왕정문은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산해관전역을 겪은 늙은 대신들은 살짝 아련했다.

“왜 성벽 위에 북을 치는 사람이 없나 했더니 자격을 갖춘 사람이 더는 없는 것이었군.”

병부상서가 문득 말했다.

20년 전, 그는 경성 관리가 아니라 타지에서 벼슬을 했다.

태자, 사황자 등은 이 말을 듣자 눈빛이 약간 뜨거워졌다. 그들은 만약 그해의 부황을 흉내내어 북을 치고 배웅할 수 있다면, 명성을 크게 떨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실은 그저 되는대로 생각만 할 뿐, 진짜 이렇게 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현장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두 사람뿐이었다. 한 사람은 동궁 태자고 한 사람은 황후 배 속에서 나온 적자 사황자였다.

태자 곁, 붉은 궁장을 입은 임안이 입을 오므린 채 그 장면을 상상하다 순간 좀 멍해졌다.

“그해 아바마마께서는 분명히 더할 나위 없이 늠름하셨겠어요.”

그녀는 부황이 북을 치며 배웅하는 장면을 다시 보고 싶었다.

회경 역시 다소 기대를 드러냈다. 만인이 주시하고, 눈부시게 빛난다는 게 무엇인가?

과거에 급제한 장원랑이 말을 타고 거리를 거니는 것, 시회에서 후세에 전해질 만한 걸작을 낸 것! 이때의 위연, 그해 아바마마가 용포를 입고 성벽 위에 올라 군대를 위해 북을 친 것 역시 포함되었다.

태자와 사황자는 다소 동요했다.

“아바마마께서 오지 않으시니 그럼 본 태자가 직접 북을 치겠다. 대군이 출정하는데 어찌 북을 치는 자가 없을 수 있겠나?”

태자는 신나서 말했다.

그는 이렇게 하면 살짝 주제 넘는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런 일은 어쨌거나 예법상의 금기는 아니었다. 설령 부황이 안다고 해도 기껏해야 언짢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엄청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태자는 경중을 저울질하자, 해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사황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막 반박하려던 참에 회경의 전음이 들렸다.

“넷째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자격이 부족해요.”

사황자가 성을 내며 전음했다.

“그럼 누가 자격이 있지?”

말하자면 사황자는 모든 황자들 사이에서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다. 그는 7품 무사였다.

회경은 고개를 젓더니 대답하지 않았다.

“태자 전하!”

왕정문이 막았다. 그는 태자가 큰 북으로 걸어가는 길을 막아서고 부드러운 말로 만류했다.

“신분으로 보자면 전하께서 이렇게 하시는 건 타당하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언짢아하실 겁니다. 명성으로 보자면 전하께서는 자격이 좀 부족합니다. 위연에게도 전하께서는 자격이 좀 부족합니다.”

태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재상 대인이 보기에 누가 자격이 있습니까?”

왕정문의 시선이 그의 어깨를 스쳐 계단 쪽을 향했고, 그는 웃기 시작했다.

“자격 있는 자가 왔군요.”

사람들이 고개를 홱 돌리니 허리춤에 긴 칼을 찬 한 젊은이가 보였다. 그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걸어왔다. 양쪽의 시위는 강적을 맞닥뜨린 듯 온몸을 벌벌 떨었으며, 칼을 뽑으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리 해도 뽑을 수가 없었다.

회경과 임안의 아름다운 눈동자 속에 약속이나 한 듯 빛이 반짝였다.

“허칠안!”

훈귀들 사이에서 누군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허칠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왕정문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큰 북을 향해 걸어갔다.

사황자의 눈빛이 약간 흔들렸으나 침묵을 지켰다.

태자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주시하면서 앞을 가로질러서 가는 길을 막았다.

“태자 오라버니, 얼른 길을 양보하세요.”

임안이 허칠안을 두둔하며 그를 힘껏 밀쳤다.

‘신분으로 보자면 그는 아무리 해도 아바마마를 꺼릴 필요가 없다. 명성으로 보자면 경성 백성은 그를 환호하고 칭송한다. 위연을 놓고 보자면, 그는 자격이 넘친다…….’

태자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더니 옆으로 걸어갔다.

허칠안은 북채를 뽑아 힘껏 북을 두드렸다.

* * *

둥!

둥둥!

둥둥둥…….

성벽 위에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북은 묵직한 소리를 내더니 뒤이어 두 차례 울렸다. 그런 뒤 북소리가 빗소리처럼 빽빽하게 하늘가에서 메아리쳤다.

위연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고개를 들거나 고개를 옆으로 돌려 성벽을 바라보았다.

성벽 위에서 누군가 북을 쳤다!

“봐, 허 은라야!”

인파 속, 놀람과 기쁨이 교차한 외침이 들려왔다.

“허 은라가 북을 치고 있어.”

“허 은라가 대군을 위해 북을 쳐서 배웅하고 있어.”

백성들은 감정이 단번에 달아올라서, 큰소리로 외치며 사방으로 열정을 내뿜었다.

임안은 때로는 밑에 있는 백성들을 쳐다보다가 때로는 허칠안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찬란하면서도 순수하게 웃고 있었다.

회경의 입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강율중 등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성벽 위의 젊고 굳센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백성들의 격앙된 환호를 들으면서 웬일인지 좀 아련해졌다.

그해 그 용포가 성벽 위에서 북을 치자 성 안 백성들의 환호가 들끓었더랬다.

20년이 순식간에 지나 북을 치는 사람이 바뀌었고, 백성들의 환호는 여전했다.

그들은 잠시 침묵하다가 갑자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었다.

위연은 고개를 들어 성벽 위의 젊은이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의 온갖 풍파가 서린 눈빛 속에 흐뭇함이 스쳤다.

20년 전에 위연이 있다면, 20년 후에는 허칠안이 있었다.

‘훌륭해! 이때, 시 한 수가 더해진다면 더 좋을 텐데!’

그래서 위연은 소리 높여 웃었다.

“허칠안, 송별시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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