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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608화 (586/712)

608화. 새로운 기능을 개통한 지서

[사: 허, 좌우간 나는 그해 장원이었네. 비록 병법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병서는 적잖이 보았고, 여러 큰 전투를 연구한 적이 있지. 예를 들면, 산해관전역이야. 내가 군대를 따라 출정할지 말지는 실력이 아니라 오로지 내가 가고 싶은지 아닌지에 달려 있네. 설령 내가 병법을 전혀 모른다고 해도 나는 적어도 4품 고수와 필적할 수 있잖나. 나는 일찍이 강호를 떠돌아다녔지. 지금은 일개 백성으로, 다시 벼슬하는 데에는 전혀 흥미가 없네. 그러니 오히려 나에게 군대를 따라 출정하라고 청한 게지. 위연, 참 가소롭지 않은가.]

‘악, 위 공의 생각은 정말 종잡을 수 없다…….’

허칠안이 전서를 보내 물었다.

[삼: 그럼 응했는가?]

[사: 응했네.]

모두가 침묵했다.

초원진은 어거지로 설명하였다.

[사: 물론 다시 벼슬아치가 되기 위해서가 아닐세. 나는 검에 의지해 강호를 다니며 악행을 뿌리 뽑았는데 제거한 게 고작 소악(小惡)이었다는 생각이 드네. 미약한 힘으로 악인을 얼마나 제거할 수 있겠는가? 사실 결국에는 대봉 백성을 위해서야. 만약 전장에 힘을 보태어 무신교를 격파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대공덕이지.]

‘너나 나나 똑같다…….’

이묘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네가 방금 일장연설한 게 고작 자신의 존엄을 되찾기 위함이라는 거야?’

허칠안은 말없이 빈정댔다.

초원진은 사람들이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는 걸 보자 전서로 말했다.

[사: 자네들 생각은?]

허칠안은 생각하더니 대충 얼버무렸다.

[삼: 아주 좋네.]

[이: 아주 좋네.]

[일: 아주 좋네.]

[오: 아주 좋네.]

‘너희 셋 나보다 더 대강대강 이잖아…….’

허칠안은 눈을 희번덕였다.

초원진은 말없이 잠수타더니 더 이상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이때 한참 잠잠하던 금련 도사가 오랜만에 얼굴을 내밀고 전서를 보냈다.

[구: 나는 한동안 홀로 정진하며 연밥을 소화해야 해서 한동안 자네들의 전서를 받을 수 없을 걸세. 자네들 사이의 교류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빈도는 일부 권한을 자네들에게 개방하기로 했네. 오늘부터 자네들이 지서 파편에 원신을 주입하기만 하면, 사적으로 전서를 보내고자 하는 대상을 저절로 선택할 수 있네. 더는 나를 부를 필요 없어.]

금련 도사 역시 말을 마친 뒤 잠수 타더니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도사님, 드디어 호구 역할에 싫증을 느끼셨나 봐요…….’

허칠안은 생각을 떨치고 정신력을 지서 파편에 쏟았다.

그는 다시 한 번 흐릿한 거울 속 세계에 진입하였다. 빛깔과 광택이 다른 빛이 그의 앞에 한 글자씩 펼쳐져 있었다. 여덟 개의 빛은 각각 적, 흑, 청, 백, 황 그리고 탁해서 구체적인 색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네 가지 빛이었다.

애써 식별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명색이 지서 파편 소지자로서 즉시 왼쪽의 첫 번째가 일호임을 구분해냈다.

‘일호는 신비로워. 내가 그(그녀)를 타진해보는 것도 무방하겠어. 그(그녀)의 신분을 확실히 해야지…….’

허칠안은 원신을 다잡고 일호의 지서 파편이 대표하는 빛을 알아보았다.

탁!

갑자기 일호의 파편이 강한 정신력을 응집하여 그의 원신 한 줄기를 흩뜨렸다.

씁……. 허칠안은 뇌가 바늘로 찔린 듯했다.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좀 아팠다. 지서 버전 따귀였다.

<상대가 너랑 말하고 싶지 않아서 너한테 원신 따귀를 날린 건데?>

“상대하지 않을 거면 상대하지 말지, 나를 때려서 뭐 하려고…….”

허칠안은 상스럽게 욕을 퍼부으며 원신을 퍼뜨렸다. 그는 마치 촉수 같은 정신력으로 지서 파편에 손을 담가, 흐릿한 거울 속 세계로 다시 진입했다. 이번에 그는 팔호의 전서에 촉수를 뻗고자 했다.

팔호는 거절하지 않았다.

[삼: 듣자 하니 일체 접촉을 끊고 독거 수행한다지요? 각하께서는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소생은 운록서원의 서생으로 대봉 한림원 서길사 허신년입니다.]

팔호는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팔호는 관문을 깨지 못했나 보군.’

허칠안은 약삭빠르게 말 거는 걸 포기하고 다시 촉수를 칠호에게 뻗었다.

[삼: 듣자 하니 각하께서는 쫓기신다고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군요.]

칠호 역시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한평생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허칠안은 이어 이묘진에게 전서를 보냈다.

[삼: 묘진, 내 전서를 받을 수 있소?]

[이: 그렇네!]

[삼: 우리 기능이 어떠한지 시험해보는 게 어떻소?]

[이: 어떻게 시험하지?]

[삼: 초원진은 위선자요. 퉤! 그와 한패라는 게 부끄럽소. 리나, 나한테 맛있는 게 있소.]

한동안 인기척이 없었다.

[삼: 금련 도사가 속이지 않았나 보오. 앞으로 개인적으로 얘기를 나누기가 편해졌소.]

[이: 참, 나 방금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랐네.]

허칠안은 말을 하지 않았고, 몇 초 기다린 뒤 이묘진은 두 번째 전서를 보내왔다.

[이: 사천감을 제외하고 지맥에 대해 가장 정통한 건 아마 지종일 걸세. 천지인 삼종은 각각 자기만의 장점을 갖고 있네. 인종은 검술을 제외하고 가장 강한 게 연단술이네. 지종은 공덕과 풍수, 진법 등의 방면을 수행하는데 아주 정통했지. 지맥은 풍수 중 하나네. 그리고 우리 천종은 비바람을 부르는 등의 법술에 더 능하지.]

‘그래서 지맥에 관한 이해가 그렇게 미천했나? 그래서 심지어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허칠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모두의 교양 과목이 다르지 않은가.

[이: 물론 진법, 풍수 방면에 대한 지종의 지식은 술사와 비교했을 때 얕아 보이지. 내가 방금 지서 파편에 진입한 후에 갑자기 이 일이 떠올랐네. 풍수와 진법에 대한 지종의 업적은 전부 지맥에 대한 그들의 이해로부터 비롯되네. 그리고 지맥에 대한 지종의 이해는 지서로부터 비롯되고.

상고 시대에 지서는 산천을 상징했어. 천종의 안독고에 《구주신령록(九州神靈錄)》이 한 권 있는데 거기에는 상고 시대의 구주에 산신(山神), 하신(河神) 등의 신령이 널리 분포했다고 적혀 있네. 그들은 구주 산천 지맥의 힘을 응집하여 산신인(山神印), 수신인(水神印)으로 변화시켰네. 어느 해, 도존이 ‘구주 신령’을 멸하고 구주의 모든 산신인과 수신인을 하나의 지보로 정련하였지. 이 지보가 바로 ‘지서’라고 불리지.]

‘지서에 이렇게 큰 내막이 있었어? 내가 그 당시 야경꾼 관아에서 관련 자료를 조사할 때는 지서가 도존의 법보라고만 하면서 내력을 고증할 수 없다고 했는데……. 구주 신령은 신마가 몰락한 후에 인황이 굴기하던 시기에 나타난 고수인가?’

허칠안은 끊임없이 공상을 펼쳤다.

[삼: 하지만 왜 지서가 내게 주는 느낌은 수납 법보이면서 대봉 버전의 QQ(*중국의 메신저) 단체 채팅방이오?]

[이: 지서가 깨졌기 때문이지 않은가. 그리고 뭐가 00 단체 채팅방이지?]

‘00이 아니라 QQ(*중국의 메신저)야…….’

허칠안은 인내심을 가지고 그녀에게 양자 간의 차이를 설명하였다. 그런 뒤 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왜 나와 이묘진은 한 처마 아래 살면서 파편을 끼고 대화를 나눠야 하지?’

[삼: 내 방에 와서 얘기하시오.]

[이: 됐어. 이렇게 하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지서 파편을 꺼내기만 하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단둘이 교류하는 걸세.]

이묘진은 이렇게 온라인으로 사담을 나누는 것의 신기함에 연연했다.

그녀는 모두가 같이 전서를 보낼 때는 전혀 이렇지 않았다. 그건 마치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법보를 통해 상의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일단 언제 어디서든 사담을 나눌 수 있을 때면 이런 신기함에 집중했다.

‘이, 이거…… 아주 강한 기시감이 드는데. 그해 했던 멍청한 일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우회 접속하여 QQ로 여자 후배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했었지. 이유는 반려 동물이랑 생일을 보내야 한다는 거였고…….’

허칠안은 말없이 얼굴을 감쌌다.

이때 리나의 전서가 왔다.

[오: 허칠안, 허칠안. 오늘 주루에 가서 원숭이 뇌를 먹은 거 어땠어?]

[삼: 원숭이가 그렇게 귀여운데 왜 뇌를 먹으려는 거지? 너 분명히 내 왼쪽 다섯 장(丈)밖에 있으니 직접 불러도 될 텐데.]

[오: 이렇게 해야 재미있거든. 내가 단둘이 너와 교류할 수 있잖아.]

이때 초원진이 그에게 DM을 보냈다.

[사: 신년, 그 병서를 내게 좀 보여줄 수 있는가? 소위 벼락치기라고 하지. 그리고 나는 언제 어디서든 단둘이 전서를 보낸다는 게 아주 재미있다는 걸 알았네. 다른 사람이 볼까 봐 염려할 필요도 없고.]

[삼: 다른 사람한테 들키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알지요? 시험해 봤습니까?]

[사: 묘진 그리고 리나와 사적으로 줄곧 대화를 하고 있기 때문이네.]

[삼: 리나, 묘진, 초원진과 사적으로 줄곧 전서를 보내고 있지?]

[오: 엇? 어떻게 알았지?]

‘충분해!!!’

허칠안은 입가에 경련을 일으켰다.

바로 이때,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청포 관복을 입은 허신년이었다.

허신년은 마치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다가 허칠안을 본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 형님,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허칠안은 즉시 다가갔다. 허신년이 점심 휴식 시간에 직접 말을 타고 돌아오게 할 수 있었던 건, 지난번에는 왕사모 때문이었다.

“형님, 원경제가 저더러 군대를 따라 출정하라고 합니다.”

허신년의 표정은 진지했다.

“!!!”

허칠안은 벼락을 맞은 듯했다.

그는 대규모 전쟁을 직접 겪은 적이 있었다. 초주에서 사건을 조사할 때 촉구가 요족 부대를 거느리고, 길리지고는 청안부 정예병을 이끌고 쌍방이 협력하여 초주성을 공격하였다.

그 공성전(攻城戰)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위험하고 격렬했다. 상노와 화포 아래에서는 인족이든 오랑캐든 지푸라기보다 딱히 강인하지 않았다.

‘이 개 같은 황제가 허신년을 출정시키고 싶다고? 이건 그에게 죽으라는 거 아닌가!’

“꾀병은?”

허칠안이 떠보았다.

“폐하께서 이미 결재하셨습니다. 그러니 울화가 있다고 해도 떠맡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형님과 상의하려고 찾아온 겁니다.”

허신년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거절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거지?’

허칠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뭘 상의하자고? 황제의 명령을 어떻게 거역할지 상의하자고?”

허신년은 말문이 막혀 한참을 침묵하다가 말했다.

“제 말은 어떻게 싸울지 상의하자는 거예요. 사실은 저, 저도 가고 싶어요.”

착!

허칠안은 아우의 따귀를 때려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싸운다고? 너를 때린다면 모를까.”

허신년은 허둥대며 일어나 속으로는 큰형이 저속한 무사라고 빈정대면서 겉으로는 얌전하게 굴며 말대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는 또 싸대기를 한 대 맞을까 봐 무서웠다.

허칠안은 그를 한참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직접 가서 숙모랑 얘기하렴.”

허신년은 입꼬리를 씰룩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 * *

이내 내청에서 숙모가 꽥꽥꽥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름다운 부인은 내청을 뛰어나와 좌우로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허칠안에게 시선을 고정하였다.

“칠안!”

숙모는 큰소리로 외치더니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힘껏 손짓하였다.

“신년이 전쟁터에 나간다는구나. 너, 너 어서 방법을 좀 생각해 봐.”

지금 집안에는 기둥 노릇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허칠안뿐이었다. 숙모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맞닥뜨리면 제일 먼저 조카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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