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6화. 묘책 (2)
“정국 병력이 어떠합니까? 기마병, 화포, 보병이 총 얼마나 있지요?”
허칠안이 물었다.
배만서루가 침음하더니 말했다.
“산해관전역 때 화갑군의 수는 5만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역에서 거의 다 잃었지요. 20년 동안 원기를 회복하고 있는데 제가 짐작건대 화갑군은 5만을 넘을 리가 없습니다. 기마병이나 전투 짐승을 기르는 일이나 성공하기가 극히 어렵습니다. 경기병이라면 그 수가 오히려 많지 않습니다. 정국은 화갑군을 키우기 위해 재력을 다 써버려서 더 많은 경기병을 키우기는 어렵습니다. 사실상 경기병의 존재는 화갑군의 단점을 어느 정도 보완하기 위함이지요. 현재 경기병 8만 모두 북방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습니다.”
‘정국의 모든 재력을 군마를 키우는 데 썼군…….’
허칠안은 차를 받치고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는 준비한 대사를 내뱉어 이 오랑캐를 내쫓으려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멍해졌다. 방금 대화가 슬라이드처럼 스쳤다.
정국은 기껏해야 중장기병 4만에 경기병이 총출동하여 북방에서 요족 및 오랑캐와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그는 삼십육계 중에 한 계책이 갑자기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침착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두 사람을 훑어보았다.
“왜 정국 도읍 습격을 시도하지 않습니까?”
콰당!
손 옆에 있던 찻잔이 바닥에 떨어졌다. 배만서루는 갑자기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의 가슴이 격하게 뛰었다.
허칠안의 일장연설은 마치 배만서루의 정수리에 지혜를 들이부은 듯 사고의 흐름을 열었다.
동북 세 나라, 그중 정국의 도읍은 최북방에 있었다. 본래 북방 요족의 영토와 인접해 있었다. 현재 정국 정예 기병이 거의 총출동했으니 내부 수비가 허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확실히 습격의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만약 길을 우회하여 정국 도읍을 기습하려면 한 가지 조건을 더 만족시켜야 했으니, 바로 그들이 성을 공격할 무기를 소유했는가 하는 문제였다.
배만서루는 전에 이 전술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요족과 오랑캐 두 종족은 공성전에 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대봉 군대의 합류로 화포, 차노 그리고 공성차가 생겼다.
수비군이 약한 정국 도읍을 돌파하는 건 결코 어렵지 않았다.
배만서루는 허칠안을 쳐다보면서 아주 흥분했다.
“이 계책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시기를 잡아야 합니다. 정국 역시 도읍의 수비가 비어 있다는 걸 알 테니 틀림없이 방비하였을 겁니다. 강국과 염국의 군대가 아직 출동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제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들이 지금 총동원한 정국의 보호세력일 겁니다.”
‘엇? 이 계획이 안 된다고?’
허칠안은 어리둥절하였고, 배만서루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만약 대봉 군대가 두 갈래로 나뉜다면? 한쪽은 우리 신족과 합류하고 한쪽은 대봉에서 동북 방향으로 돌진하여 강국, 염국의 군대와 교전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양국은 자기 일만으로도 힘에 부쳐 반드시 정국에 안배한 병력을 감축할 겁니다. 같은 이치로 무신교의 본부인 정산성 내부의 고품 주술사들이 국토를 침략한 대봉 군대를 상대하겠습니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정국 도읍을 지키겠습니까?
답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그들은 염국과 강국 양국 군대를 돌볼 틈이 없습니다. 고품 주술사가 거기에 개입한다면, 우리는 비로소 정국 도읍을 습격할 수 있습니다. 강국이든 염국이든 아니면 무신교 고품 주술사든 모두 단시간 내에 수천 리를 급습하여 정국을 구제하러 달려가기 어려우니까요. 그렇다면 도읍 함락이 가까워지면, 정국 기마병은 계속 북경에서 기승을 부릴까요 아니면 구하러 돌아올까요?”
배만서루는 얘기할수록 흥분하여, 머릿속으로는 심지어 지원 갈 정국의 후속 기마병을 위한 일련의 전략까지 세웠다.
배만서루는 정중히 일어나 공수했다.
“허 공자님, 공자님께서는 진정한 병법의 대가십니다. 원대한 식견에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나의 돌발 아이디어가 알고 보니 이렇게 대단했다니. 설마 내가 정말 병법 기재인가?’
허칠안은 듣더니 어리둥절했다.
배만서루가 또 말했다.
“해가 진 뒤에 성 안의 천향거(天香居)에서 연회를 베풀어 단독으로 허 공자님을 환대하고자 합니다. 허 공자님께서 방문해주시길 바랍니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는 따라서 일어나 요족과 오랑캐가 떠나는 걸 배웅하였다. 황선아는 의도했는지 아닌지닌 모르겠으나 허리를 유달리 고혹적으로 비틀더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호선으로 엉덩이를 흔들었다.
‘용모와 몸매가 일류 미인이군…….’
허칠안이 기루의 상전으로서 묵묵히 평가하였다.
* * *
어서방 내, 원경제는 노란색 비단이 깔린 탁자에 낮았다. 손 옆에는 두꺼운 상소문 더미가 놓여 있었다.
그는 그저 그중에 한 부만 펼쳐 놓았는데 바로 위연의 것이었다.
위연이 이번 출정의 총책임자라는 점은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
지금은 대봉에 군대를 통솔하는 일에 능한 사람이 없는 게 아니었다. 다만 한 세대의 군신이 있는데 구태여 신인을 발굴하는 그런 번거로움을 감수할 필요가 있겠는가?
위연은 접본에 자신의 생각을 제시하였다. 그는 12만 군대를 소집한 뒤 그중에 2만 군대를 북상하게 하여 초주 각 소위의 5만 병력과 합류시킬 생각이었다.
7만 군대는 북방 요족 및 오랑캐 지원을 책임지고 정국의 수많은 정예 기병에 맞서면 되었다.
다른 10만 군대는 그가 직접 인솔할 생각이었다. 그는 동북 삼주(三州)에서 출발해 강국과 염국의 배후지에 뛰어들어 정산성을 곧바로 공격하려 했다.
물론 10만 군대는 각 주마다 고루 배치해야 했다. 경성 3대 진영에는 기껏해야 1만 정예병을 배치할 수 있었고, 더 많은 건 불가능했다.
경성을 수호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원경제는 말없이 이 상소문을 보면서 한참 동안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잔 속의 차가 식으면 다시 데우고, 뜨거워졌다가 또 식으면 다시 데우기를 세 번 반복한 뒤 붓을 들고 의견을 표시했다.
조정이라는 방대한 조직은 담판을 마친 뒤 재빠르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병부와 위연은 병력 이동 배치를 책임졌으며 호부는 전량(錢糧) 조달을 맡았다.
지금의 조당 제공들은 그해 전부 산해관전역에 참가하였었기에 전쟁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사실 이 거물들은 북방에서 전쟁 정보가 경성에 전해졌을 때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묵묵히 예열했더랬다.
원경제는 두 번째 상소문을 펼쳤다. 상소문은 병부에서 온 것으로 위에는 출정 장수의 명단, 직위가 적혀 있었다. 그는 대략 훑어본 뒤 비웃었다.
“뜻밖에도 이 기회를 틈타 공적을 빼앗으려는 부잣집 자제들이 있다니. 그래, 위연을 따라 출정하면 공적은 거저먹기로 줍는 셈 아닌가?”
그는 무표정으로 붓을 들고 의견을 표시하려다 갑자기 멈추었다.
“허칠안의 그 사촌 동생이 장진의 제자로 병법을 전공한다는 게 맞는가?”
늙은 태감은 몸 둘 바를 몰랐다.
“노비, 노비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원경제는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짐이 기억하니 문제는 없다. 운록서원의 인재가 연구하는 것이 병법이라니. 인재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짐이 그에게 군대를 따라 출정할 기회를 줘야겠다. 허, 그가 만약 원치 않는다면 짐은 그의 서길사 칭호를 내치고, 그를 구석에 내버릴 것이다.”
그는 즉시 ‘허신년’이라는 세 글자를 덧붙였다.
* * *
사천감, 감정은 탁자에 앉아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알딸딸한 상태로 인간 세상을 바라보았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렸다. 청의가 홀로 팔괘대에 올라왔고, 널찍한 소매는 발걸음을 따라 가볍게 흔들렸다.
“왔는가.”
감정은 나이 들어 보이는 목소리로 웃었다.
“출정 전에 이 늙다리를 보고 싶어서 왔네.”
위연은 걸어와서 감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치에 멈췄다. 그는 아름다운 경치의 경성을 내려다보면서 개탄했다.
“500년을 봤는데 지겹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지겹지!”
감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500년 동안 시야에 들어온 자는 손에 꼽을 정도네. 위연 자네가 그중 한 사람인 셈이지. 강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궁에 들어온 건 별것 아니네. 3품 무사는 잘린 사지를 재생할 수 있으니 자네를 남자로서 회복하게 하는 건 식은 죽 먹기야. 위연, 자네는 사람이 살면서 가장 뛰어넘기 어려운 게 뭔지 아는가? 자신이네. 자네는 한평생 사랑 때문에 힘들어하고, 가련하고, 서러웠으며, 한탄했지. 자네가 수련을 스스로 그만둔 건 내가 보기에 본래의 규칙을 깨고 새로운 법칙을 창조할 기회네.
자네가 나를 스승으로 삼지 않는다고 해도 무도의 마음을 포기하지 않기만 한다면, 나는 자네가 1품이 되는 것도 도울 수 있어. 1품 무사는 자고로 몇 없잖나. 하지만 자네는 궁 안의 그 여인을 지키느라 자신의 천부적인 자질을 헛되이 낭비하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잃었네.”
위연은 높은 곳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웃었다.
“애당초 왜 자네를 스승으로 삼길 원치 않았는지 아는가? 왜냐하면, 자네와 나는 같은 길을 걸을 수 없어서야. 이 세상에 누군가는 장생을 추구하고, 누군가는 부귀영화를 추구하며 누군가는 무도의 정상을 추구하지. 그리고 내가 좇는 건 젊은 시절, 나무 그림자 아래 나와 마음이 통했던 소저네.”
감정은 더 말하는 대신 고개를 들어 쪽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평범한 사람은 설령 수도사라도 하늘의 높은 곳을 볼 수 없었다. 어느 별에서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 * *
“정말 예쁘군. 당대에서 위연의 본명성(*本命星: 북두칠성 중, 그 사람이 출생한 해의 별을 가리킴)이 가장 눈부신 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 그는 본래 더 눈부셔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사랑 때문에 힘들어하니 애석해.”
어느 산봉우리, 백의를 입은 남자가 산봉우리 꼭대기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백의 술사 곁에는 자색 옷을 입은 남자가 선 채, 부귀한 자태와 긴 수염으로 높은 지위의 위엄을 내뿜었다.
“만약 위연을 휘하로 거둘 수 있다면 어찌 대업을 이루지 못할까 걱정하겠는가.”
자색 옷의 남자가 탄식했다.
“원경은 명색이 제왕으로서 장생을 꿈꾸다니. 이렇게 하늘의 뜻을 거스르니 대봉이 멸하지 않는 게 이상할 따름이네.”
백의 술사가 웃었다.
“원경을 얕잡아보면 안 되네…….”
그는 멈칫하더니 뒷짐 지고 서서 말했다.
“대봉, 나아가 구주를 놓고 봤을 때 군대를 통솔하여 무신교 본부를 칠 수 있는 자는 위연 한 사람뿐이야. 그가 가장 적합해, 그가 아니면 안 되지. 살륜아고 그 늙은이는 너무 오래 살았어. 위연이 이번에 그를 죽일 수 있다면 속이 후련하겠구먼.”
자색 옷의 중년이 백의 술사를 쳐다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겸이가 죽었네, 허칠안의 손에 죽었어. 이건 자네 혼자서 안배한 일이지?”
백의 술사는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던 중 이 말을 듣고는 가볍게 웃었다.
“희겸은 본디 얼마 배우지 않았으면서 부잣집 공자의 습성은 거의 다 갖추었더군. 이런 자가 황제를 할 수 있다고? 자네의 후계자가 될 자격이 있나? 나는 그가 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네. 남겨 두면 방해가 될 게야. 자네의 후계자는 반드시 인망이 높고 따르는 사람이 많으며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겨야 하네. 이건 희겸이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자색 옷의 중년은 대답하지도 반박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