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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605화 (583/712)

605화. 묘책 (1)

허칠안은 두 요족과 오랑캐 사자를 대청으로 안내한 뒤 하인에게 차를 내오라고 분부하였다. 그는 주인석에 단정하게 앉아 빈정거렸다.

“황제와 제가 껄끄러운 사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저를 찾아왔다는 건 저를 사지로 내몰려는 겁니까?”

그는 이 두 요족과 오랑캐 때문에 미리 집안 안식구들에게 오늘 바깥뜰로 나오지 말라고 경고했다.

배만서루는 예의상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똑같이 미소를 가득 머금고 빈정거렸다.

“그대와 대봉 황제의 원한은 이미 모두가 다 아는 바지요. 저는 허 은라가 어떻게 대처할지 아주 궁금합니다만.”

허칠안은 웃더니 다른 부분을 지적했다.

“저는 이미 은라가 아닙니다만.”

배만서루는 여기서 멈추고 화제를 돌렸다.

“그날 문회에서 허 공자님의 병서를 보았습니다. 크나큰 깨달음을 얻은 듯하였죠. 사실 소생은 허 공자님의 명성을 흠모한 지 이미 오래입니다.”

황선아가 아름답게 말했다.

“저 역시 허 공자님을 흠모한 지 이미 오래여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애교가 철철 넘쳤다. 그녀는 말하는 게 꼭 애교를 부리는 것 같았다.

허칠안은 호족 미인의 아양 떠는 모습을 못 본 척하고 미소를 지었다.

“배만 공자의 재능에 저 역시 깜짝 놀랐습니다. 이민족에 이렇게 재능이 뛰어난 대유가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지요. 공자님께서는 자신의 재능으로 대봉의 존중을 받은 겁니다.”

황선아는 입을 삐죽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저는요? 저는 공자님의 존중을 받지 못했나요?”

‘너? 너네 호족 요녀는 애진작에 관리 사회 늙은 색마들의 존중을 받았지…….’

허칠안은 속으로 빈정댔고, 이런 자극에는 그저 살짝 웃기만 했다.

호족의 호녀(狐女)는 지금 대봉 관리 사회에서 일관된 호평을 받으며 경관들이 사석에서 수시로 논하였기에 허신년조차도 듣고 한담을 나눌 때 큰형에게 언급했더랬다.

“하지만 제가 정국의 정예 기병을 마주한다고 해도 유달리 까다롭다고 느낄 겁니다. 저희 신족의 정예 기병이 용맹하다는 건 구주 전부가 아는 일이지요. 하지만 필부의 용맹함으로는 큰 인물이 되기 어렵습니다.”

배만서루가 개탄했다.

“이번에 찾아뵌 건 이 서루가 허 공자님께 가르침을 청하기 위함입니다.”

‘나한테 가르침을 청한다고? 나는 그저 짐꾼일 뿐인데. 손자병법은 내가 쓴 게 아니라 손자가 쓴 거잖아. 책 이름이 아주 명확하지 않나……. 병법에 정통한 대유가 나한테 가르침을 청한다고?’

허칠안은 속으로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으나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하지 않은 채 태연하게 웃을 뿐이었다.

“제가 병서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썼지요.”

배만서루는 그의 대답을 듣자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는 허 은라의 수준을 일차적으로 인정한 뒤 천천히 말했다.

“제가 너무 안달 냈습니다. 음, 정국에는 두 종류의 기마병이 있습니다. 한 종류는 화갑군(火甲軍)이라고 불리는데 특수한 재질의 갑옷을 입어 유명해졌지요. 그들이 타는 말은 일각수(一角獸)로, 우수한 품질의 군마를 정국에서 괴수라고 불리는 것과 교배하여 기른 품종입니다. 이 짐승은 지구력이 어마어마합니다. 깜짝 놀랄 만한 비늘 조각의 방어력과 머리 위의 뿔이 호응하여 돌격하면 무조건 승리합니다. 설령 오랑캐의 가장 강한 중장기병일지라도 그들과 맞닥뜨리면 승패를 장담하기 어렵지요. 게다가 화갑군은 무려 4만에 이릅니다. 다른 종류는 보통 기마병이고요.”

‘기이한 짐승 4만으로 구성된 중장기병이라니. 어쩐지 그래서 요족과 오랑캐를 쓸어버릴 수 있었던 거군…….’

허칠안은 속으로 남몰래 중얼거렸다.

배만서루는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경기병(*輕騎兵: 민첩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가볍게 무장한 기병)도 얕잡아봐서는 안 됩니다. 불같이 세차지요. 중장기병이 돌격한 후에 경기병은 흩어진 적군을 거두는 임무를 맡습니다. 양자가 협력하면 대적할 자가 없지요. 하지만 북방은 대부분이 평야 지대로 중원처럼 산천으로 빈틈없이 덮여 있지 않기 때문에 좋은 지세를 찾으면 정국 기마병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습니다. 허 은라께 여쭙겠습니다. 우리 북방 신족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내가 어떻게 알아. 만약 나라면 바로 빠지지, 뭘 그렇게 많은 걸 신경 써…….’

허칠안의 머릿속에 갑자기 허신년의 원고가 번뜩였다. 그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만약 대봉의 군대가 북방에서 이런 정예 기병을 마주한다면 화포와 차노(車弩)로 번갈아 폭격하면 되지요.”

배만서루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한 이유로 정국에는 경기병이 있는 겁니다. 달리는 속도가 매우 빨라 진영을 분산하여 앞선 두 대의 폭격을 막기만 하면 대봉의 화포 군단을 때려 부술 수 있거든요.”

허칠안이 말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화포병의 백 보 밖에서 철가시와 녹채(鹿砦)를 치거나 함정을 파는 겁니다. 주먹만 하게 지면을 쑤셔 깊은 구덩이를 파기만 하면 기마병의 돌격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지요. 경기병은 중장기병만 못하기에 아무것도 아니지요. 일단 돌격 속도가 느려지면, 화포와 차노의 공격을 몇 차례 더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허허, 군대는 정해진 양식이 없기에 지형적인 우세가 없는 이상 스스로 우세를 창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함정을 파고, 녹채(鹿砦)를 친다라……. 나 역시 비슷한 계책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어떻게 평원에 지리적으로 우세한 방법을 만들겠는가. 또 두 개가 늘었군…….’

배만서루는 눈을 반짝이더니 이 정보를 묵묵히 새긴 뒤 활짝 웃었다.

“허 공자께서 모르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국에도 마찬가지로 화포와 차노가있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이것들 모두 대봉의 전 병부상서가 무신교에게 전달해 준 것이지요. 고작 구덩이와 녹채로는 정국 기마병을 상대하기가 어려울까 걱정됩니다.”

‘미친! 왜 진작 얘기하지 않았어? 가르침을 청하러 온 게 아니라 행패를 부리러 온 거지……?’

허칠안은 참지 못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이 배만서루는 가르침을 청하러 왔을 뿐만 아니라 그의 깊이를 떠보러 온 것이기도 했다. 그는 문회에서 ‘일격에 치명타’를 입었는데 마음속으로는 굴복하지 않은 건가?

‘어젯밤에 신년의 책략을 봐서 다행이군…….’

허칠안은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요족과 오랑캐 두 종족의 기마병이 지금 딱 유용하게 쓰일 참이지 않습니까?”

그는 재빠르게 발상을 전환하여 요족 및 오랑캐 군대를 끌어들여 약점을 메우고자 했다. 그는 허신년의 책략에 존재하던 기존의 요족과 오랑캐 군대 역시 계산에 넣었다.

배만서루는 언쟁하는 듯 말했다.

“그렇게 되면 기껏해야 막상막하일 뿐이지요.”

“아니요, 막상막하가 아닙니다.”

허칠안이 고개를 저었다.

“만약 대봉과 요족, 오랑캐가 손을 잡는다면 그 기세는 단연 정국 군대를 짓누를 겁니다. 병종(兵種)이 많을수록 조작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많습니다. 허, 제가 작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듣자 하니 오랑캐 금목부의 모든 용사가 기이한 짐승인 우주(羽蛛)를 한 마리씩 기르고 있다지요. 열두 부족에서 유일한 비수군(飛獸軍)이라고요. 또한, 금목부의 용사는 사격에 능하다고 들었습니다.”

배만서루는 다소 실망했다.

“금목부의 비수군이 사격에 능하긴 하지만, 화살로는 화갑군의 갑옷을 뚫기 어렵습니다. 일부 고수는 어쩌면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형 전투에서는 달걀로 바위 치기죠.”

허칠안이 웃었다.

“배만 형님은 머리가 잘 안 돌아가시는군요. 왜 꼭 화살로 상해를 입히길 바라야 합니까? 관통하여 상해를 입히는 게 화갑군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왜 방식을 바꾸지 않지요? 예컨대 화살에 등유를 묶는 겁니다. 중장기병은 갑옷과 투구를 벗기 어렵지요. 일단 등유가 붙어 활활 타오르면 짧은 순간에 갑옷과 투구를 태워버릴 수 있습니다. 달려들어도 꺼지지 않고 벗으려고 해도 벗을 수 없지요. 그때 가면 그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중갑(重甲)이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겁니다.”

이 수 역시 신년의 생각에서 나왔다.

배만서루는 약간 동요하였고, 더는 차분함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고 중얼거렸다.

“그래. 화살로 상처를 입히기 어려운데 왜 화공(火攻)을 시도하지 않았을까? 중장기병의 갑옷은 혼자 벗기 어려우니 일단 등유가 붙으면 그들이 죽지는 않아도 화상으로 중상을 입을 것이다. 금목부의 비수군이 높은 곳에서 굽어보며 화살을 쏘면 화갑군은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면 된다, 완전히 된다…….”

그는 생각할수록 흥분했고 감격했다. 그는 지금 세상에 둘도 없는 고수에 의해 생각이 트인 듯했다.

“허 공자님은 역시 병법 대가답습니다. 병종, 도구 이용에 능하고 저의 병도와 일치합니다. 이 대화는 무지몽매한 저를 깨우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신족에는 병법에 정통한 자가 너무 적어요. 만약 좀 일찍 누군가 저와 탐구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어쩌면 진작에 이 수를 생각해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신족은 왜 하필 이렇게 딱할까요.”

병법을 잘 모르는 황선아라도 이 수의 이점을 이해했다.

그녀가 허칠안을 바라보는 눈빛에 인정이 더해졌다.

이제 그녀는 순전히 남자를 탐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이 남자를 볼 때 마음속에서 약간의 순수한 감정이 솟구쳤다.

“추태를 부렸습니다, 추태를 부렸어요!”

배만서루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이 기회에 마음속의 흥분을 억눌렀고, 동시에 그를 더 ‘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쌍방의 대화가 한참 무르익었고, 허칠안 역시 감출 생각이 없는데 왜 이 기회를 틈타 한 시대 병법대가에게서 더 많은 전술을 얻어내려 하지 않는가?

예를 들어 그의 이상 속, 일격에 필승할 수 있는 전술 말이다.

지금 배만서루는 그 《손자병법》이 허칠안의 손에서 비롯되었으며, 전혀 거짓이 없다는 점을 이미 완전히 믿었다.

그렇기에 그는 잠시 침음하더니 말했다.

“이 계략은 훌륭하지만, 이번에 무신교의 기세가 등등합니다. 정국 정예 기병만 있는 게 아니에요. 촉구 대요의 실력으로라면 설령 부상을 입었다고 해도 하후옥서가 그렇게 광기를 부릴 정도는 아니지요. 정국 군단에 3품 주술사가 한 명 있고, 4품 주술사는 그 수가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시병(尸兵)을 조종할 수 있고, 인간과 짐승의 혈기를 광범위하게 불러일으켜 순간의 전투력을 치솟게 할 수 있지요. 이번에 정국 정예 기병이 날뛰는 이유죠. 허 공자께서는 박식하고 경험이 많으니 아실 겁니다. 전장은 주술사의 주 무대입니다. 전쟁터에서 3품 주술사의 역할은 3품 불멸지구(不滅之軀)를 뛰어넘지요. 소생이 대담하게 묻고 싶습니다. 급소를 바로 공격해 한 번에 치는 전술은 없나요?”

‘불멸지구’는 3품 무사의 명칭이었다.

‘과하네. 한 번에 치는 전술을 원하기까지 한다고? 이거 뭐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구먼…….’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그는 배만서루와 황선아를 훑어보았다가 그들의 표정이 진지하고 시선이 또렷한 걸 알아차렸다. 그들은 마치 정말 그가 대단한 대전술을 내뱉을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듯했다.

‘신년의 원고에는 이런 전술이 없는데…….’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몇 마디 아무렇게나 지껄인 뒤 완곡하게 탄식하고 나서 자신이 무능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사까지 다 생각했다. 그는 곧 전쟁터는 극히 짧은 시간에 많은 변화가 생기는데 어찌 탁상공론으로 해결할 수 있겠냐고 말할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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