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3화. 충격
점심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숙모는 왕 소저와 집안의 안식구들을 데리고 내청에 가서 밥을 준비하였다.
매일의 식사가 어떠한지 역시 허부의 기반을 가늠하는 기준 중 하나였다. 손님이 있는 식탁에 반찬이 풍부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왕사모는 요리가 아니라 도자기와 그릇을 보았다.
숙모는 자리에 앉으라고 왕 소저를 불렀다. 왕사모가 탁자 위 요리를 보니 전부 막 내왔으나 손대지 않은 음식이었다. 지금 막 밥때가 되었고, 여기는 또 주(主) 탁자였다. 그리고 현재, 집안에 분명히 남자가 있는데 왜 그녀들이 먼저 먹는 상황이 되었을까?
왕사모는 떠보았다.
“어째서 허 은라는 보이지 않나요?”
숙모는 손사래를 치더니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
“저택에 남자는 그뿐인데 소저와 동석하기에는 불편하니 제가 그더러 자기 방에서 먹으라고 했어요.”
……왕사모는 가슴이 뛰었다. 그녀는 허씨 집안의 안주인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속으로 말했다.
‘그대는 또 어째서 그녀를 두려워하나요, 허 은라!’
이때, 숙모가 옥 술주전자를 들고 극진히 대접하였다.
“이건 저택에서 빚은 감주니 드셔보세요.”
왕사모는 무의식적으로 술잔을 받았다. 이 순간 그녀는 비로소 술잔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술잔은 황옥색을 띠면서도 은은한 진홍색을 약간 머금은 상태였다.
왕사모는 잔을 처음 봤을 때, 평범한 옥잔인 줄 알았는데 손을 댄 뒤에야 유리 재질임을 발견했다.
‘빛깔은 옥 같은데 안은 피 같은 진홍색을 띠고 있다니…….’
왕사모가 손을 흔들자 숙모의 감주가 갑자기 기울어 탁자 위에 쏟아졌고, 그녀의 치마에 튀었다.
“아이고, 어쩜 그렇게 부주의하셔요.”
숙모는 얼른 술주전자와 잔을 한쪽으로 내던지고, 손수건을 꺼내 왕사모 옷의 얼룩을 닦아주었다.
‘용혈 유리?!’
왕사모는 놀라서 멍해졌다. 유리는 본래도 진귀했는데, 용혈 유리는 서역에서 매우 보기 드문 흙으로 구워 만든 것으로 생산량이 극히 낮았다.
서역과 중원의 관계가 친밀할 때 용혈 유리는 종종 하사품으로 중원에 유입되었다. 용혈 유리는 통상적으로 그릇과 술잔으로 만들어졌다. 폐하가 연회를 베풀어 군신을 초대할 때에야 꺼내어 사용하곤 했다.
서역과 중원의 관계가 점점 소원해짐에 따라 용혈 유리는 여러 해 동안 중원에 유입되지 않아 경성 귀족들이 구하기 어려워졌다. 귀족들은 이를 대부분 집에 소장하면서 이따금 직접 꺼내 사용하였다.
하지만 누구든 절대 손님을 초대할 때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녀가 재빨리 한 번 훑어보았는데, 탁자 위의 유리잔이 전부 용혈 유리잔이었다. 그 가치가 허부 두 채를 살 정도로 충분했다.
숙모는 그녀의 치마를 깨끗이 닦아준 후, 다시 한 잔을 가득 채운 뒤 말했다.
“힘들지요?”
그녀의 어조에 관심이 섞여 있었다.
‘뭐, 자극은 자극이니까. 하지만 이건 입장 싸움인가? 허 부인 자신은 사실 나를 아주 중시한다. 허 부인. 표현하고자 하는 게 이 의미인가요……?’
왕사모는 입을 오므리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향한 허 부인의 존중과 중시를 깨달아 속으로 좀 감동했다.
“자, 이 요리들 좀 맛보세요. 전부 우리 허부에만 있는 음식이라 밖에서는 못 먹어요.”
숙모는 탁자 위의 요리를 열정적으로 소개하면서 여주인 겸 미래 시어머니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왕사모는 확실히 먹어보지 못한 요리를 몇 가지 보더니 눈이 번뜩였다.
‘껍질을 바삭하게 구운 오리구이를 얇게 썰어서 얇은 만두피로 싸면 맛도 좋고 허기를 채울 수도 있지. 겉모습은 못생겼지만, 입에 들어가면 말랑말랑하면서 간이 딱 알맞은 고기완자. 향이 진하고 바삭바삭해서 질리지 않는 돼지고기조림……. 허부는 비록 신진 세가지만, 재력은 얕잡아봐서는 안 되겠어…….’
왕사모는 막 이렇게 생각하다가 갑자기 눈빛이 굳어지더니 탕이 담긴 자기 항아리를 뚫어지게 주시하였다.
‘이상해!’
왕사모는 관리 집안 출신으로 재능이 아주 출중하고, 감상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그녀는 아주 빠르게 이 자기들이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전부 골동품이었다.
소장 가치가 아주 높은 골동품…….
‘이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야, 절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지. 어떻게 골동품을 일상에서 사용하는 식기로 쓸 수 있지?’
조용히 식사하는 분위기 속, 왕 소저의 마음속에서 거대한 충격이 일었다.
왕사모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돌아서서 모인 자리의 안식구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소소 낭자는 탁자에서 밥을 먹지 않았는데 이는 그녀가 허씨 집안에 시집온다고 해도 첩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이묘진은 천종 성녀의 신분에 걸맞게 성격이 담박한 게,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허영음과 남강 소저는 왕사모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녀는 속으로 말했다.
‘이렇게 밥을 먹는 사람이 어디 있어? 목이 멜까 봐 무섭지 않나? 데일까 봐 무섭지 않나? 내 앞에서 연기를 하나? 만약 이렇게 어린아이도 연기할 줄 안다면 너무 무서운걸. 하지만 만약 연기하는 게 아니라면, 허 부인처럼 엄하게 집안일을 다스리는 사람이 어찌 그녀들이 이렇게 실례하는 걸 참고 견딜까……?’
왕사모가 끊임없이 상상하는 사이에 한 끼 식사가 끝났다. 그녀는 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허 부인은 고단수지만, 너무 몰아붙이는 편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대부분은 여자아이처럼 아주 온화하고 솔직하였다.
그녀는 정말 무서운 여인이었다. 허영월은 기껏해야 그녀 모친의 일부 수준만 물려받았을 뿐이었다. 그녀는 왕사모가 보기에 고수였지만 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허씨 집안 막내에 관해서는 한동안 떠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왕사모는 점심밥을 먹은 뒤 정원에서 노는 콩알이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단독으로 나설 기회를 찾자 손에 떡 한 접시를 받치고 손짓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영음, 언니한테 오렴.”
허영음은 먹을 걸 보자 엉덩이를 씰룩이며 왔다.
‘그녀는 역시나 먹을 걸 좋아하는구나. 먹을 것만 있으면 통제하기 아주 쉽겠어…….’
왕사모는 속으로 기뻐하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언니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서당에 있을 때 사람들한테 괴롭힘당했다고?”
허영음은 떡에 정신이 팔린 채, 먹으면서 억울해했다.
“어떤 뚱땡이가 제 먹을 걸 빼앗았어요…….”
그녀는 즉시 큰소리로 선언했다.
“큰 오라버니가 저를 도와 복수해줬어요.”
‘허영월이 속이지 않았네. 정말 누군가 그녀를 괴롭혀서 그녀가 학교에 가지 않은 거였어. 가엾은 아이야…….’
왕사모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아직도 학당에 가고 싶니?”
콩알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언니가 너를 가르쳐 주면 어때?”
콩알이는 떡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왕사모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아이에게 속성으로 지식을 가르칠 수 있었다. 그녀가 저택으로 돌아가면 아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부모 앞에서 새로 배운 지식을 드러낼 터였다.
허 부인은 분명히 어디서 배웠는지 물을 것이고, 허영음은 자신이 묵묵히 그녀의 공부를 가르친 일을 얘기할 터였다.
‘생각건대 허 부인이 이 일을 알면 나한테 감격할 테지만, 내가 또 공을 가로채는 격은 아니니까…….’
“자, 언니가 네게 산수를 가르쳐줄게.”
* * *
허신년은 한림원 식당에서 점심밥을 먹은 뒤, 말을 타고 황성을 떠나 집으로 내달렸다. 그는 줄곧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왕사모는 성격이 아주 세고 주관이 뚜렷한데 어머니도 기쁨과 분노를 얼굴에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만약 왕사모가 어느 정도 떠보다가 어머니를 불쾌하게 하면 어머니는 아마 그 자리에서 얼굴을 찡그릴 터였다. 그리고 저택에는 전부 요괴 귀신뿐이었다. 영음, 리나, 천종 선녀, 여자 귀신 소소 그리고 가장 괴상야릇한 큰형까지…….
허신년은 자신이 돌아가서 현장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저택에 들어가 외청과 내청을 한 바퀴 돌았는데 왕사모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여종 둘이 청에 서 있는 걸 발견했다.
그가 물었다.
“너희 소저는?”
“정원에 계셔요.”
여종이 공손히 대답했다.
허신년은 내청을 나와 돌아서서 안뜰로 향했다. 역시나 돌탁자 옆에 앉아 있는 왕사모가 보였다. 그녀는 마치 생기 없는 종이꽃처럼 멍하니 있었다.
허영음은 옆에 서서 떡을 한 입 먹더니 다시 미래의 새언니를 쳐다보며 얼른 다 먹고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허신년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사이가 틀어진 건가? 내가 너무 늦게 왔어…….’
“사모, 사모…….”
그는 걸어가서 왕사모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왕사모는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생기가 부족한 눈동자로 그를 무뚝뚝하게 바라보았다.
몇 초 후, 왕사모는 슬픔에서 벗어나 그의 손을 꽉 잡고 눈물을 떨구었다.
“신년, 당신 여동생 때문에 화가 나 죽겠어요!!”
“영월과 사이가 틀어졌소?”
허신년은 미간을 곧장 찌푸렸다. 그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으로 과정을 그려보았다. 왕사모와 허영월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허영월은 ‘억울’해하며 큰형을 찾아가 하소연했다.
큰형은 분명히 사람을 화나게 하는 말을 했을 테고, 그래서 왕사모가 이렇게 화가 났으리라. 큰형이 가장 괴상야릇하니까.
왕사모는 고개를 저은 다음 생각 없는 허영음을 쳐다보더니 흐느꼈다.
“저 아이예요……. 제가 좋은 마음으로 그녀에게 산수를 가르쳤는데, 그녀, 그녀가 억지로 저를 화나게 했다고요.”
허신년은 깜짝 놀라 훅 숨을 들이켜곤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는 말을 더듬었다.
“그, 그대는 왜 구태여 사서 고생하려 하시오? 서원 선생, 이 도사, 초원진 그들 모두 영음 때문에 화를 냈는데 하물며 그대가?”
왕사모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하지만 영월이 말하길 영음이 공부하지 않는 건 학당에서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사실이니 제가 가르치고 싶었다고요…….”
그녀는 문득 알아차린 듯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 * *
먼 곳의 처마 위, 허칠안은 돼지 울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묘진은 그를 발로 찼지만, 자기도 웃음을 참느라 아주 고생했더랬다.
“나, 나는 드디어 초원진이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알겠소. 하하, 이놈도 영음에게 산수를 가르치려고 했었던 거였군. 안 되겠소, 안 되겠소. 웃어서 배가 다 아프네…….”
허칠안은 배를 움켜잡고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그는 드디어 운록서원에서 초원진이 뭘 마주했는지 알았다.
“자네 첫째 여동생이 정말 속이 검던데.”
이묘진이 웃으며 말했다.
“됐소, 그쪽이야말로 속이 까맣지.”
허칠안이 말했다.
이묘진은 정색하였다.
* * *
허신년이 주위를 둘러보니 주변에는 콩알이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앉아서 눈 딱 감고 웅얼웅얼 달콤한 말을 내뱉었다. 왕사모를 달래는 셈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허영월이 어젯밤에 몰래 그를 찾아와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모, 내가 어젯밤에 한참 생각했소.”
왕사모가 돌아보자 그는 숨을 깊이 들이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형님이 폐하께 미움을 산 뒤로 허씨 집안은 사실 벼랑 가장자리에서 배회하고 있소. 형님은 가족을 데리고 함께 경성을 떠나고 싶어 하오. 내가 경성에 남을지 말지는 나 자신의 선택이고. 십여 년간 힘들게 공부하여 어렵사리 지금의 관직을 얻었소. 어찌 되었든 나는 경성을 떠나지 않소. 하지만 좀 더 기다려줬으면 하오. 내가 더 높은 위치에 오르고 더 많은 재산이 생기면 그대를 아내로 맞이하겠소. 남들이 남자를 고르는 그대의 안목을 비웃게 둘 수는 없지 않소.”
왕사모는 그의 손을 잡고 있으니 모든 억울함이 사라졌다. 그녀의 눈빛은 전에 없이 부드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