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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601화 (579/712)

601화. 놀란 왕사모 (2)

“허 부인!”

왕사모는 나긋나긋하게 예를 갖췄다.

“왕 소저, 예의 차리지 마셔요. 얼른 앉으세요.”

숙모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왕사모에게 앉으라고 눈짓했다.

그녀는 당연히 너무 열정적으로 관심을 표현해서는 안 됐다. 어쨌거나 그녀는 허락하는 입장이었기에 그래도 시어머니 티를 냈어야 했다.

왕사모는 자리에 앉은 뒤, 수행 여종을 쳐다보며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방금 저택에 들어올 때, 문 앞에서 자를 하나 보고 여종더러 주우라고 했습니다.”

여종이 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숙모는 어리둥절했다.

“엇, 영월, 이건 네 자 아니니? 어째서 문 앞에 버려져 있지?”

허영월이 눈여겨보니 역시나 자신의 자였다. 그녀는 ‘아이고’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틀림없이 영음이 그곳에 버렸을 거예요. 방금 그녀가 제 자를 가지고 놀았거든요.”

‘정말 대단한 수법이다. 말문이 턱 막히네…….’

왕사모는 억지로 웃었다. 여기서 자신이 어느 아이 물건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뒤이어 왕사모는 수행원더러 선물을 내오라고 했다. 여기에서 식사할 것이기 때문에 유명한 떡과 숙모와 영월에게 선물할 장신구를 좀 챙겨왔다.

이 장신구는 보통 장신구가 아니었다. 황성의 후궁 비빈만을 위해 만든 장신구로 장인의 작품이었다.

물론 왕사모는 일부러 장인의 신분을 들추지 않을 셈이었다. 그렇게 하면 너무 급이 떨어져 천박하고 뽐내기 좋아하는 여인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녀는 그저 황성에 있는 장인이 만든 장신구라고만 말했다. 무릇 좀 식견이 있는 호족 소저, 부인이라면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음속으로 다 알 수 있을 터였다.

“왕 소저, 세심하시네요.”

숙모는 장신구를 받고 아주 기뻐했다.

왕씨 집안 적녀는 이 모습을 보고 자신의 수법이 이 안주인을 놀라게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걸 깨달았다.

* * *

내청 밖, 허영음은 복도에 있는 긴 의자 위에 앉아 귀를 기울여 무언가를 듣고 있는 큰 오라버니를 발견했다. 그녀는 엉덩이를 씰룩이며 뛰어갔다.

“큰 오라버니, 뭐 해요?”

“큰 오라버니 구경하지……. 아니, 듣고 있구나.”

허칠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도 들을래요.”

허영음이 양팔을 흔들었다.

허칠안은 여동생을 끌어안고 다리 위에 올려두었다.

허영음 역시 거드름을 피우며 귀를 기울였다.

‘왕씨 소저의 전투력이 고작 이거? 아, 어쨌거나 시집온 게 아니니 예의 차리고 잘 드러내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너무 웃는 얼굴을 하는 건 아닌지……. 왕씨 소저에 대한 내 판단에 따르면, 그녀는 아주 주관이 뚜렷하고, 강한 사람이다. 숙모의 수준을 떠보지 않을 리가 없어……. 그녀가 왜 아직 작업에 착수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녀가 숙모의 숨통을 조이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 * *

왕사모는 내청 안에서 조금의 허점도 없이 허씨 집안 안주인 그리고 허영월과 한담을 나누었다.

왕사모는 한동안의 탐색 끝에 놀라운 발견을 하였다. 허씨 집안 안주인은 그녀가 상상한 것과 달리, 그렇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하지 않았다.

왕사모는 그 자체로 집안 싸움의 달인으로, 같은 부류를 민감하게 감지했다. 하지만 그녀는 허씨 집안 안주인한테서는 같은 부류로서의 특징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는 성격이 비교적 솔직했고, 마치 아귀다툼을 전혀 모르는 듯 왕사모가 떠보아도 아예 무관심하게 나왔다. 게다가 허씨 집안 안주인은 재상 딸이라는 그녀의 신분 때문에 아주 예의를 차리느라 제대로 대접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

예컨대 왕사모가 연지나 물분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하면, 그녀는 금세 웃어른의 티를 거둔 채 소저처럼 쉴새 없이 재잘거렸다.

심지어 그녀는 바깥 점포의 장부를 제대로 볼 줄 몰라서 허영월에게 관리를 도와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고 불평하며 자신의 단점을 드러냈다.

어떻게 봐도 그녀는 고단수 여인 같지가 않았다.

왕사모는 몹시 당혹스러웠다.

그런 뒤, 숙모는 허영월에게 왕사모를 데리고 저택을 좀 구경하라고 제안했다.

왕사모도 한동안 허씨 집안 안주인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기에 나가서 기분을 좀 전환하고 마음가짐을 바꾸고 난 뒤, 기회를 엿봐 다시 싸우고 싶었다.

허부는 규모가 왕부만 못했으나 그래도 세 채 딸린 대원(大院)이었으며, 안뜰과 바깥뜰에는 화원과 작은 연못이 갖춰져 있었다. 게다가 숙모는 꽃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화원에는 여러 가지 진귀한 화초와 수목이 심어져 있었다.

왕사모는 명색이 최고 명문가의 소저로 진짜로 가정 형편이 부유한 사람만이 진귀한 화초를 기를 여유와 재력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허씨 집안의 재력을 좀 높게 평가했다.

* * *

콩알이는 정원 안에서 권법을 연마했다. 리나는 돌의자 위에 앉아 돼지고기를 물어뜯으며 제자를 지도했다.

“쟤는 누이동생 영음이에요.”

허영월이 미소를 머금으며 소개했다.

‘신년이 언급한 걸 들은 적만 있어. 이 아이에 관해 더 소개하길 원치 않는 듯했어…….’

왕사모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말했다.

“영음 동생은 무술을 연마하니?”

“네.”

허영월이 탄식했다.

“저희 집은 둘째 오라버니만이 지식인이에요. 하지만 둘째 오라버니는 학업이 과중하여 그녀를 지도할 시간이 줄곧 없었어요. 그녀를 학당에 보내면 또 괴롭힘을 당하니 어머니도 어쩔 수 없어서 아예 무술을 연마하게 했지요.”

왕사모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러면 좋지 않았다. 여인은 그래도 책을 읽고 사리에 밝아야 했다. 누구든 교양이 있고 사리에 밝을수록 장차 좋은 집안에 시집갈 수 있었다.

그녀는 생각하더니 말했다.

“네가 싫어하지 않는다면 내가 영음 동생을 도와 계몽시킬 수 있어.”

허영월이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사모 언니, 감사해요.”

왕사모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만약 허영음의 스승이 될 수 있다면, 허씨 집안 사람들의 존중을 받을 수 있고 자신의 재능을 드러낼 수 있을 터였다.

허영월이 또 말했다.

“이 집에서 어머니가 가장 골치 아파하는 사람이 바로 영음이에요. 그녀는 어쩔 수 없어요.”

‘허영음이 허씨 집안 안주인의 약점이군…….’

왕사모는 재빨리 핵심 요소를 파악했다.

허나 허씨 집안 안주인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섭지’ 않은 듯했으므로, 왕사모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이때 그녀는 리나가 제자를 꾸짖는 소리를 들었다.

“정말 멍청하구나. 권법 몇 가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데 언제 돌탁자를 들어 올릴 수 있겠니?”

‘돌탁자를 들어 올린다고? 이렇게 작은 아이가 돌탁자를 들 거라고?’

그런 뒤 그녀는 리나가 두 손가락으로 돌탁자를 ‘쥐어’ 수월하고 편안하게 올리는 모습을 보았다.

“…….”

왕사모는 억지로 웃었다.

“저 소저는…….”

“아, 그녀는 리나라고 하는데 남강 고족의 아가씨예요. 당분간 저택에 머물 거예요. 영음에게 무술을 가르치고 있어요.”

허영월이 말했다.

“정말 능력이 뛰어나고 엄격한 스승이네.”

왕사모가 말했다.

* * *

두 사람이 복도 모퉁이를 돌자 허칠안과 종리가 처마 아래 앉아 태양을 쐬며 재잘재잘 대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왕사모는 마음이 동요하여 상대를 떠보았다.

“허 은라의 부모님이 일찍이 돌아가셨다고 들었어. 그를 재목으로 키우기 위해 허 부인께서 틀림없이 머리를 쥐어짜면서 심혈을 기울이셨겠지.”

“그럼요.”

허영월은 가볍게 탄식하더니 말했다.

“어릴 때 아버지는 굳이 큰 오라버니에게 무예를 연마하라고 했고, 어머니는 동의하지 않으셨어요. 둘째 오라버니처럼 그에게 공부를 시키고 싶어 했죠. 이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여러 해 동안 다투셨어요.”

‘대단해!!’

왕사모는 속으로 경탄하였다.

대봉 전체가 허칠안이 독서 종자임을 알았다. 부친 왕정문조차 ‘이 자가 만약 지식인이라면 좋을 텐데’라며 개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허씨 집안 숙부가 굳이 무술을 연마하게 했기 때문에 출중한 재능을 지닌 독서 종자를 헛되이 낭비하였다.

생각지도 못하게 허씨 집안 안주인이 일찍이 여러 해 전에 혜안을 가지고 진주를 알아보았다.

허영월이 계속해서 말했다.

“어린 시절, 큰 오라버니와 어머니는 사이가 좋지 않아서 때때로 말다툼을 했어요. 한 번은 화가 나서 집을 나가 바로 옆 소원(小院)에서 지냈는데 그게 5년이 되었지요. 내성으로 이사 온 뒤에야 온 가족이 함께 살 수 있었어요.”

‘뭐라고?! 허칠안조차 허 부인을 이기지 못한다고? 오문을 막아선 뒤 제공에게 욕을 퍼붓고 채시구에서 국공을 칼로 베고! 포악하고 고집이 센 허 은라조차 허 부인한테 핍박당해 어릴 적에 허부를 나갔다니…….’

왕사모는 허 부인이 보여준 이전의 모습이 전부 위장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소위 솔직함과 겨루기에 능하지 않은 모든 모습들은 허씨 집안 안주인이 일부러 자신에게 보여준 가면에 불과했다.

왕사모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더니 전에 없던 진지한 태도를 드러냈다.

‘역시나 내가 너무 자부했다. 잠시 한담을 나눔으로써 허씨 집안 안주인의 깊이를 꿰뚫어 볼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그녀는 정말 대단하다. 만약 내가 허씨 집안의 다른 사람 일을 알아보지 않았다면, 나 역시 그녀의 겉모습에 속았을 거야…….’

왕사모는 강적과 마주한 듯했다. 그녀는 집안싸움 기술에 정통한 사람으로서, 진정한 고수가 여태껏 이를 드러내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어떤 여인들은 총애를 등에 업고 자만하여 자신의 처지를 잊은 나머지 방자함을 얼굴에 새기지 못해 안달을 내기도 했다. 그녀들은 본래 수단 없이 그저 남자의 환심을 사는 데 의지할 뿐이었다.

하지만 총애가 사라지면 그녀들은 빠르게 무너지고 재기할 기회를 잃었다.

자신을 가장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고수였다. 그리고 허씨 집안 안주인의 가면은 자신의 예리한 안목조차 속였다.

상대적으로 곁에 있는 허씨 집안 여동생은 그녀의 모친에 비하면 확실히 턱없이 모자랐다.

왕 사모는 그날 시회의 사고를 통해 그녀가 수가 있고 꾀를 겸비한 여인이라는 걸 진작에 알았다.

‘그녀가 점점 더 궁금해지네. 그녀는 어떠한 수단을 통해 거칠고 고집이 센 허 은라가 울분을 참고 집을 나가게 했을까. 게다가 허 은라는 출세한 후에도 이 집을 저버리지 않고 여전히 그녀를 공경하잖아…….’

왕사모는 그녀가 두려웠지만, 동시에 아주 강한 호기심이 샘솟았다.

마치 병서를 본 뒤에 간절히 배우고 싶어 하는 회경의 마음과 같았다.

왕사모가 오늘 허부에 온 이유는 세 가지 목적이 있어서였다. 첫째, 허씨 집안 안주인의 깊이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둘째, 저택, 재력, 그리고 여러 방면의 생활 장식을 포함한 허부의 속사정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셋째, 허씨 집안 구성원의 성격과 취미를 일차적으로 파악하여 앞으로 누구를 끌어들이고 누구를 제압할지 확인하려 했다.

한 여인에게 있어 이는 반드시 파악해야 하는 정보였다. 그녀는 장차 정말 신년과 혼례를 치르면 이 집에 들어와 살아야 했다.

그녀는 허씨 집안 안주인의 깊이를 차츰차츰 판단해 나갔다. 하지만 현재, 그녀는 그 깊이를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이제 그녀는 기회를 틈타 허부의 속사정을 볼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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