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600화 (578/712)

600화. 놀란 왕사모 (1)

왕부에서 왕 소저의 지위는 마치 산꼭대기에 앉은 고독한 고수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는 쓸쓸한 거문고 연주가 충분히 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집안에 남녀를 통틀어 적수가 없자 바깥에서 부잣집 소저들과 ‘장난질’을 하며 훈귀의 딸을 제압하거나 종실 군주를 억눌렀다. 경성 고관 여식들 사이에서 왕 소저를 부끄럽게 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두려움을 자아내는 인물은 황장녀 회경뿐이었다.

하지만 현재, 그녀는 이제야 작디작은 허부에 가볍게 볼 수 없는 여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여인은 어쩌면 그녀의 미래 시어머니가 될지도 몰랐다.

왕사모는 그저께 허씨 집안 첫째 소저가 건넨 초대장을 받은 뒤 허씨 집안의 마님이 정식으로 자신을 만나볼 계획임을 알았다.

이는 좋은 일이면서도 나쁜 일이었다.

좋은 부분은, 허씨 집안의 마님이 드디어 자신을 만족스러운 아들 며느리라고 인정했다는 점이었다.

나쁜 부분은, 이번 초대에는 아마 살기가 가득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도 같은 상황이리라는 점이었다. 만약 그녀가 잘 대처하지 못하고 열세에 놓이면 미래에 제압당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지만 바로 이렇기 때문에 재미도 있었다.

왕 소저는 호전적인 사람으로, 평소엔 그녀의 차고 넘치는 총명함과 지혜를 시전할 길이 없었다. 만약 미래 시어머니가 아주 평범한 인물이어도 너무 재미없을 것이었다.

겉은 유약하지만, 실제로는 속이 의뭉스러운 허씨 집안 소저.

재주가 넘쳐흐르고, 말을 번지르르하게 잘하는 허신년.

그리고 조당 전체의 훈귀, 제공들이 꺼리고, 폐하마저도 치가 떨리도록 적대시하는 허칠안.

이런 자손을 기를 수 있는 허씨 집안 마님은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전율이 느껴지는 상대였다.

“하지만 바로 이렇기 때문에 기대할 가치가 있지.”

왕사모는 시녀와 수행원을 데리고 씩씩하게 마차로 들어갔다. 그녀는 마치 천군만마를 데리고 출정하는 장군 같았다.

* * *

허칠안은 대청에 앉아 졸인 돼지 다리를 먹었다. 리나와 허영음도 와서 얻어먹었다.

숙모는 마침 정원을 청소한 다음, 거미줄을 걷으라고 지시하며 집안의 하인을 부리는 중이었다…….

“전부 좀 깨끗하게 치우거라. 그녀는 재상 대인 댁 아가씨로, 신분이 고귀하니 예절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고, 무시하게 해서는 안 돼. 허칠안, 허영음!”

숙모는 고개를 돌렸다가 조카가 딸을 데리고 그녀가 주루에서 산 요리를 몰래 먹는 걸 발견했다. 그녀가 갑자기 벌컥 화를 냈다.

“너희 둘 나를 화가 나 죽게 하려는 거니? 잘한다, 허칠안. 혼자 온종일 건들거리니까 지금까지도 마음 맞는 소저가 없지. 신년이 너보다 한발 앞서서 질투하지?”

‘숙모, 오해예요. 다음에 숙모를 데리고 제 어장에 가서 배를 탈게요. 그 안은 전부 사나운 상어랑 악어라고요…….’

숙모는 조카와 딸을 대청에서 쫓아낸 다음, 계속해서 사람을 데리고 일을 했다.

숙모는 왕씨 집안 소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평화로운 관계를 설립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콩알이는 숙모에 의해 대청에서 쫓겨나, 어쩔 수 없이 혼자 쓸쓸히 정원에서 놀아야만 했다.

숙모가 기침 소리를 내더니 조카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 칠안아. 네가 지난번에 부엌에서 요리를 몇 가지 했는데 양식이랑 맛이 아주 독특했던 걸로 기억한다. 음, 숙모가 생각하기에 왕씨 소저는 재상 댁 소저니 산해진미는 익숙할 것 같거든. 가끔 색다른 걸 좀 먹어야…….”

“아아, 제가 부엌에 가서 취사부에게 가르쳐줄게요.”

허칠안은 조금 뒤에 있을 볼거리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서 지금 숙모가 뭘 요구하든 간에 다 승낙하였다.

* * *

다른 한편, 콩알이는 대청에서 쫓겨난 뒤 혼자 정원에서 잠시 놀더니 무료하다고 생각했는지 언니 허영월의 방으로 뛰어갔다.

곧 입추였다. 허영월은 아끼는 큰오라버니에게 가을옷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가 사용한 옷감은 애당초 원경제가 하사한 비단이었다.

허영월의 바느질 솜씨는 뭇사람보다 뛰어났다. 그녀가 만든 장포는 밖에 있는 점포에서 사는 옷보다 더 예쁘고 정교했다.

이묘진은 여자 귀신 소소를 데리고 도와주러 왔다. 천종 성녀는 당연히 부녀자의 일을 할 줄 몰랐지만, 소소는 살아 있을 때 그래도 착실한 대갓집 규수였다.

거문고, 바둑, 서예, 그림, 바느질, 부녀자라면 모두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었다.

요 몇 년간, 이묘진의 옷 심지어 복두(*腹兜: 앞가슴과 배를 가리는 가리개)까지도 전부 소소가 수하의 여자 귀신을 데리고 만든 물건이었다.

허영월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탁자에 기어 올라가 떡을 챙기는 여동생을 보았다. 그녀는 무늬를 수 놓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영음아, 새언니 있었으면 좋겠어?”

“새언니가 뭐야?”

“새언니는 둘째 오라버니의 아내야, 장차 집안의 은자를 관리할 거야.”

허영월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허영음은 ‘아’하고 소리 내었다. 그녀는 아직 경제 대권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나이였다. 오히려 소소가 냉소를 짓더니 말했다.

“영월 소저가 한 얘기는 둘째 오라버니의 그 봉록으로 허씨 집안의 지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거예요? 소저 어머니는 진귀한 화초를 사면서 툭하면 은자 십여 냥을 쓰던데 전부 누가 번 은자예요?”

허영월이 입을 오므리더니 미소를 지었다.

“큰 오라버니가 번 은자지요.”

허씨 집안은 총 세 차례 떼돈을 벌었다. 한 번은 영룡이 발광하던 때였다. 허칠안이 임안을 구해 공을 세워 원경제가 제물을 하사하였다. 다른 한 번은 작위를 부여받았을 때로, 거금과 좋은 밭도 생겼다.

허영월은 두 번 떼돈을 벌면서 점포를 여러 개 사들였다. 연지, 비단, 잡화 등을 파는 이 점포들의 명목상 관리자는 숙모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허영월이 점포들을 통제했다.

집안이 세 번째 떼돈을 벌었을 때는 바로 치킨스톡 작업장을 차렸을 때였다. 그들은 조정과 이익을 나누었다. 이 금액은 상상할 수 없는 거금이라 바로 허씨 집안에 금산(金山)이 생겼다.

은자가 정말 너무 많지 않았다면, 숙모처럼 알뜰하게 살림하는 여인이 꽃을 가꾸는 데 수시로 돈을 투자하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

물론 허씨 집안의 표면적인 재산에 허칠안이 지서 파편 안에 숨겨둔 비상금은 포함되지 않았다.

관은, 금괴 그리고 조국공이 소장한 보물은 금산을 한 채 쌓기에 충분했다.

소소가 ‘흥흥’ 소리를 내더니 큰소리를 땅땅 쳤다.

“그러므로 앞으로 저택의 은자를 관리하려거든 허칠안의 아내가 관리해야 하지요.”

허영월은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치더니 빙그레 웃었다.

“그럼 소소 낭자가 생각하기에 누가 우리 큰 오라버니와 가장 잘 어울리나요?”

소소는 허영월의 추궁을 교묘하게 피해 중얼거렸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소저 큰 오라버니는 방탕하고 여색을 좋아하여 기꺼이 팔천 냥을 들여 교방사 기녀를 속신하고자 하는데…….”

이 말은 허영월의 아픈 곳을 찔렀다.

‘허영월 이 계집애가 소소와 그녀의 큰 오라버니가 사통했다고 의심하네. 직감이 아주 예리해……. 소소 역시 괜찮아. 팔천 냥으로 허영월의 마음을 손쉽게 자극했으니…….’

천종 성녀는 옆에 앉아 한가로이 떡을 먹으며 구경했다.

허영음은 언니 방에서 잠시 떡을 먹었다. 그녀는 어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으므로, 무료하다고 생각하여 옷감을 재단하는 자를 가지고 뛰쳐나가 마당에서 자를 휘둘렀다. 마치 자신이 칼을 쥐고 강호를 떠도는 협객이라도 된 듯이 말이다.

그녀는 놀다가 허부 대문 입구까지 이르렀는데, 예전에는 닫혀 있던 중문이 활짝 열린 걸 보았다. 허영음은 자를 버리고 높은 문턱을 기어올라 두 팔을 펼치고 위에서 균형 잡기 놀이를 하였다.

“영음 소저, 얼른 돌아가세요, 얼른. 이따가 손님이 오잖아요.”

문지기 장씨가 손을 흔들었다.

허영음은 문턱 위에 서서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우리 둘째 오라버니 아내요?”

“…….”

문지기 장씨는 대답할 말이 없어 다시 손을 흔들었다.

허영음은 고개를 갸우뚱하곤 높은 문턱에서 뛰어내려 엉덩이를 툭툭 털더니 신나게 뛰어갔다.

* * *

다른 한편, 덜컹거리는 차바퀴 소리와 함께 왕사모의 호화로운 마차가 천천히 허부 입구에 멈췄다.

여종이 마차 아래에서 의자를 꺼내 차에서 내리는 소저를 맞이하였다.

왕사모는 허부 대문을 보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비록 황제가 하사한 왕씨 저택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더라도, 내성처럼 번화한 지역에 이렇게 큰 저택을 샀다는 건 허씨 집안의 재력이 충분하다는 의미였다.

왕사모는 왕부 재정을 수년간 관리한 사람답게, 한 번만 보고도 이 저택이 적어도 7천 냥의 가치를 한다는 점을 예측하였다.

문지기 장씨는 귀빈이 이미 도착했다는 걸 알고선 황급히 앞으로 나아가 맞이한 뒤 왕사모와 수행 여종을 저택으로 안내하였다.

왕사모는 깊이 숨을 쉬고, 마음가짐을 가다듬고 문턱을 넘었다…….

왕사모가 갑자기 발밑에 무언가 밟혀 고개를 숙여 보니 자가 있었다.

‘자는 규칙을 상징한다. 허씨 집안 마님이 자를 문 앞에 둔 건 분명히 나를 위해서다. 이건 내게 규칙을 세우고자 함이다…….’

왕사모는 표정이 좀 변했다.

그녀는 속으로 이 허씨 집안 마님이 포악하고 지려하지 않아 사이좋게 지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여종이 그녀가 멈춘 걸 보고 물었다.

“소저, 왜 그러세요?”

“별거 아니야.”

왕사모는 무미조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자가 여기에 떨어져있구나. 주워서 가져다주자꾸나.”

‘꼭 자극하려는 의도가 아닐지도 몰라. 허씨 집안 마님이 나를 떠보려는 걸 수도 있어. 어쨌거나 우리 부친은 재상이니 내가 정말 신년에게 시집간다면, 신분이 낮은 자에게 시집가는 셈이니까.’

그녀는 자신의 성격이 포악하고 제멋대로라고 소문이 나서 자를 떨어트려 떠보려는 걸까 봐 무서웠다.

‘만약 내가 정말 제멋대로 교활하게 구는 딸이면, 틀림없이 크게 화를 내겠지. 하지만 딱 봐도 내가 그렇게 천박할 리는 없어 보이잖아…….’

그녀는 오늘 허씨 집안 마님과 겨룰 생각이 없었다. 소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그녀는 오늘 정보를 정탐하러 왔을 뿐이었다.

우선 허씨 집안 마님의 수완과 기질을 제대로 파악한 후에야 그녀도 앞으로 상생할 길을 결정하기가 쉬웠다. 보아하니 그 마님도 그녀와 같은 생각으로 떠보려는 듯했다.

마님은 역시나 고수였다.

* * *

장씨는 귀빈을 안으로 모시면서 허부 하인들에게 영월 소저에게 통지하라고 시켰다.

왕사모가 바깥뜰을 지나 안뜰로 들어섰을 때 마침 허영월이 웃으며 맞이하러 나왔다.

허씨 집안 아가씨는 담회홍색의 긴 치마를 입고 단순하면서도 우아하게 머리를 쪽지고 있었다. 갸름한 얼굴은 속되지 않고 청아하였으며 이목구비는 입체감이 뛰어났는데 또 남자들이 끔찍이 아끼는 연약함이 묻어났다.

“왕 소저, 지난번 시회(時會) 이후로 저택에 손님으로 초대할 시간이 줄곧 없었는데 오늘 드디어 소원을 이루네요.”

허영월이 맑고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얘기하자면 시회 때 동생을 물에 빠트려서 언니가 속으로 줄곧 미안해했어.”

여자 둘은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마치 서로를 몹시 아끼는, 정이 두터운 자매 같았다.

왕사모는 내청에 들어간 뒤 드디어 전설 속의 허씨 집안 마님을 만났다. 허 부인은 빙그레 웃으며 주인석에 앉아 자비롭고 인자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놀랄 만큼 아름다웠으며, 얼굴은 갸름한 데다 이목구비는 더할 나위 없이 정교하였다. 언뜻 보면 그녀는 곁에 있는 허영월의 모친이 아니라 언니처럼 보였다.

왕사모는 허 부인의 미모에 놀라면서도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곁에 있는 허영월과 사모하는 허신년을 참고하기만 해도, 안주인의 절세 미모를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놀란 부분은, 안주인이 잘 가꾼 덕에 세 아이의 엄마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