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8화. 천지회의 야담회 (2)
사천감, 팔괘대에서 감정은 동쪽에, 양천환은 서쪽에 앉아 있었다. 사제 둘은 등을 맞대고 포옹하지 않았다.
“좋아, 장악해야 할 진법을 자네 이미 1차로 파악하였네. 3년 정도면 자네 천기사 승직을 시도해볼 수 있겠어.”
감정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웃음기를 머금은 어조로 말했다.
“천기사 승직 요건은 무엇입니까?”
양천환이 몹시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그는 4품에 5년을 머물렀으니 확실히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차례가 되었다. 양천환은 지금껏 허칠안을 따라했다가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대신 한 가지 이치를 깨달았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었다. 그가 만약 허칠안을 뛰어넘으려고 한다면 평범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3년간 별을 관측하는 것이네. 만약 깨달음이 있으면, 바로 진법을 새기고 그뒤로 자신을 3년간 숨겨야 하네.”
감정이 천천히 말했다.
“6년 동안 외출할 수 없고, 사람을 만날 수 없다고요?”
“6년은 가장 빠른 속도야. 만약 자네의 깨달음이 부족하면 6년에 또 6년, 더 나아가서는 목숨이 다한다고 해도 승직하지 못할 수도 있네.”
감정은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개탄했다.
“범인(凡人)을 초탈하는 게 어디 그렇게 간단하겠는가?”
양천환은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스승님,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천기사는 하지 않겠어요!”
감정은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이때 나긋나긋한 발소리의 주인이 계단을 붙잡고 올라왔다. 노란색 치마를 입은 달걀형 얼굴의 미인이 팔괘대에 올라 기뻐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양 사형, 문회가 끝났어요. 저희 대봉이 이겼습니다.”
양천환이 태연하게 말했다.
“채미 사매, 지식인의 무료한 모임에 나는 관심이 없어.”
저채미가 눈을 깜박였다.
“허칠안도 나섰어요.”
양천환은 번쩍이더니 저채미 앞에 나타나 뒤통수로 그녀를 이글이글 노려보았다.
“허칠안이 나섰다고? 그가 시를 읊었는가? 허, 정말 부럽구먼. 허나 이번 문회는 병법을 겨루는 자리라 그도 조연일 뿐인데! 시 낭송을 강행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내가 보기에 부정한 방법이야. 허칠안은 이미 타락했네.”
‘시 낭송을 강행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사형 아니에요……?’
저채미는 속으로 미친 듯이 비웃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허칠안은 시를 읊지 않았어요. 그는 심지어 등장하지도 않았고요.”
양천환은 ‘음’하고 소리 내어 의문을 나타냈다.
저채미는 우렁차게 말했다.
“그가 병서를 한 권 썼는데 허신년더러 문회에서 꺼내라고 했나 봐요. 배만서루가 본 뒤에 진심으로 탄복하였고, 급기야는 제자의 신분을 자처하였지요. 지금 그 병서는 따끈따끈한 희귀 서적이 되었어요……. 엇, 양 사형 왜 그러세요?”
“사,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는 허칠안의 솜씨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구나.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는 데 그치지 않아. 하! 대성했어, 대성했어…….”
양천환은 흥분했다.
‘사형 뭐라고 하는 거예요!’
저채미는 그의 뒤통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는 폐하의 미움을 샀기에 어쩔 수 없었던 거예요. 아니었으면 허칠안의 성격으로는 도처에서 뽐내지 못해 안달이었을걸요.”
“아, 아니, 너는 몰라!”
양천환은 격하게 반박하였다. 그는 흥분하여 양손을 휘둘렀다.
“남들 앞에서 뽐내는 수준이 진정으로 최고에 이르렀다는 게 바로 이런 거야. 본인이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주변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다니. 본인이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오랑캐를 굴복시킬 수 있다니.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경성을 떠들썩하게 만들지 않았니.”
그가 연신 중얼거렸다.
“허칠안아, 허칠안. 자네는 정말이지 내 평생의 적이구나. 언젠가 내가 자네를 뛰어넘어 발밑에 둘 것이다. 나는 자네의 모든 능력을 익힐 것이다. 자네가 남의 이목을 끌수록 내가 배울 게 더 많아지지. 장차 후회하게 될 것이다.”
저채미는 눈을 깜박이더니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그럼 사형, 우선 병서 한 권을 쓰셔야 해요.”
양천환이 갑자기 생기 없는 조각상처럼 굳었다.
한참 뒤, 그는 중얼거렸다.
“평범한 자는 역시나 한계가 있구나. 스승님, 저, 저는 범인 노릇을 하지 않을래요…….”
‘인간 세상은 부질없구나!’
감정은 쓸쓸하게 탄식하였다.
* * *
깊은 밤, 허칠안은 침상에 엎드려 있었다. 그의 등 위에는 작고 아담한 종리가 앉아 있었다. 종 의원은 출중한 혈 안마 기법을 써서 허칠안 대신 인체 내의 혈액 순환을 도왔다. 이는 간단하게 말해서 대봉 마사지였다.
“아이고, 좋네요…….”
허칠안은 반은 탄식하고, 반은 신음하면서 한 마디 칭찬하더니 말했다.
“이야기하자면 저도 혈 안마 기법에 아주 정통했어요. 다만 부향이 떠난 뒤 한동안은 이런 호사를 누릴 여인이 없을 뿐이죠. 종 사저, 이 행운의 사람이 되길 원하나요?”
종리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고개를 젓는 편이 좋았다.
허칠안은 좀 화가 났다.
“그럼 제 몸 위에 앉지 마세요. 엉덩이가 크니까 저를 누르고 있잖아요.”
“아!”
종리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그의 몸 위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자수 신발을 질질 끌면서 자신의 평상으로 돌아갔다.
허칠안은 종리를 내쫓은 뒤 지서 파편을 꺼냈다. 그는 탁자 위에 비친 어슴푸레한 촛불 아래에서 전서를 보냈다.
[삼: 우리 형님이 오늘 야경꾼 관아에 갔는데, 그날 평원백부 수하의 인신매매 상인이 이미 참수되었다는 걸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 허허, 자네 형님 정말 대단하군.]
초원진은 이묘진의 비웃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가 허칠안의 재능을 칭찬하는 줄 알고 전서로 말했다.
[사: 사실 나는 병서를 위연이 쓴 게 아닐까 의심되네. 그저 허칠안의 이름으로 신년에게 전달하여 오랑캐를 제압한 것이지. 음, 항원에 관한 일은 내가 여러 번 생각해봤는데 원경제가 항원 대사를 잡았지만, 금련 도사는 항원이 죽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지. 내가 만약 원경이라면, 나는 틀림없이 그를 내가 볼 수 있는 곳에 봉인할 것이네. 물어보겠네. 원경제가 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찾지 못하는 곳이 어디인가?]
[이: 황궁!]
비연 여협객이 기지 넘치게 대답했다.
초원진은 계속해서 전서를 보냈다.
[사: 묘진이 한 말이 맞네. 하지만 허칠안의 정보에 의하면 그날 회왕 밀정은 궁에 들어가지 않았어. 심지어 황성에도 들어가지 않았지.]
허칠안은 자극을 받았다.
[삼: 자네 말은 황궁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내성에 있다는 뜻인가?]
초원진이 전서로 말했다.
[사: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의문점이 있어. 자네들 모두 경성 감여도를 본 적 있겠지. 내성은 황궁으로 통하는데 중간에 황성을 두고 있네. 내성의 어떤 성문에서 출발하여도, 말을 채찍질하여 내달려도 이 각은 되어야 황성에 도착할 수 있지. 다시 황성에서 황궁으로 들어가려면 길이 요원하네. 나는 이렇게 긴 지하도가 있을 거라고 믿지 않네.]
‘그러면 지하도가 아니라 터널이니, 확실히 불가능하네…….’
허칠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터널 하나를 파려면, 그것도 몰래 파야 한다면 어쨌거나 원경제라고 해도 떳떳하게 터널 만드는 작업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이에 소모되는 인력과 물자는 실로 무시무시했다. 게다가 경성에 사람이 많은데 당신이 집 아래부터 터널을 파서 지나간다면 진작에 감지되었을 것이다.
초원진이 전서를 보냈다.
[사: 내 생각엔 무슨 토둔(*土遁: 은신술 중 하나로 땅속으로 잠적하는 비법) 법술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
[이: 우선 토둔 법술은 수련하기에 어렵네. 이 법술을 파악한 자는 아주 드물지. 그리고 지맥을 갖춘 환경에서만 시전할 수 있네.]
[오: 지맥이 뭔가?]
리나가 앞잡이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이: 지맥은 곧 지맥이지. 내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술사는 가능하네. 술사는 풍수에 정통하였으니 무엇이 지맥인지 알지. 어쩌면 우리의 박학다식한 삼호도 뭐가 지맥인지 알지도.]
‘묘진은 종리가 내 방에 있는 걸 알고 그녀에게 물어보라고 암시한 거다……. 비연 여협객은 정말 의협심을 중시하는군. 어색함을 참으며 나를 까발리지 않는다니. 쪽…….’
허칠안은 고개를 돌려 평상 위의 종리를 쳐다보았다.
“뭐가 지맥인지 알아요?”
종리는 머리를 치켜들고 고개를 갸우뚱한 채 몇 초간 생각하더니 말했다.
“지맥은 사람의 경맥과 같네. 산천 하류의 흐름은 전부 지맥의 영향을 받지.”
그녀는 멈칫하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지맥은 통칭이야. 열두 가지로 나뉘는데 인체의 십이정경(十二正經)과 우연이나 일치하지. 그건 풍수학에서 아주 중요하네. 지맥이 있는 토지야말로 길지로, 집을 짓고 묘지를 선택하는 데는 더욱이 지맥을 중시하는데…….”
허칠안은 이 설명을 듣자니 두피가 저려서 지서 단체 채팅방에 간결히 대답했다.
[삼: 지맥은 인체의 경맥과 같은데 십이정경(十二正經)과 일치하네.]
끝.
천지회 사람들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다음 전서를 보지 못했다. 순식간에 침묵이 감돌았다. 이건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과 같지 않은가?
하지만 허칠안은 사소한 일이 한 가지 떠올랐다. 새 저택을 살 당시에 저채미를 데리고 풍수를 보았는데, 허부 우물에 여자 귀신이 있었다. 그 귀신은 이 세상에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
당시에 저채미가 우물에 내려가서 살펴보니 우물 바닥에서 음맥 한 줄기를 발견하였더랬다.
생각건대 음맥도 지맥의 일종이었다.
허칠안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시 물었다.
“종 사저, 황성 안에 지맥이 있습니까?”
종리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황성 안에는 당연히 지맥이 있지. 그 이름은 용맥(龍脈)이라고 하네.”
그녀는 허칠안이 캐물을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다정하게 설명했다.
“용맥은 기운의 연장선이네. 600년 전, 대봉이 이곳에 도읍을 세웠지. 경성의 지맥은 상서로운 기운이 공급하는 영양분을 받았네. 한 나라의 기운 그리고 원력(愿力)이 뒷받침되어 시간이 오래 흐르자 경성의 지맥이 용맥으로 탈피하였고.”
‘용맥은 지맥의 일종이지만, 용맥은 또 기운의 연장선이구나…….’
허칠안은 침음하더니 말했다.
“용맥은 어떠한 역할을 합니까?”
종리가 침음하더니 말했다.
“마치 조상 무덤의 풍수가 무너지면, 후세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지. 용맥과 진국검의 효과는 비슷하게 한 나라의 기운을 억누르는 것이네. 대주 말년에 운록서원 대유 전종이 백성들의 원망을 받으며 대주 경성으로 들어가 죽음을 대가로 대주의 마지막 국운에 부딪혔네. 그렇게 기운을 흐트러뜨렸지. 그가 부딪힌 게 바로 용맥이네. 우리 술사들 사이에 용맥을 얻는 자는 천하를 얻는다는 속담이 있어.”
‘잘 이해되진 않아도 아주 대단한 듯하긴 해…….’
허칠안이 전서로 말했다.
[삼: 황성 안에 용맥이 있네.]
그런 뒤 또 종리에게 물었다.
“용맥을 조종할 수 있나요?”
종리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연약하게 대답했다.
“용맥은 한 나라의 국운을 억누르고 있네. 설사 감정 스승님일지라도 쉽게 건드릴 수 없지.”
허칠안은 바로 용맥의 특징을 천지회 사람들에게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