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596화 (574/712)

596화. 각 측

이때 국자감에서 어떤 서생이 큰 소리로 말했다.

“자네들 잊지 말게. 허 은라는 시괴네. 애당초 그가 자손 대대로 전해질 뛰어난 작품을 한 수 한 수 만들어낼 거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었겠나?”

그의 말은 즉시 서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마치 감히 믿지 못하는 다른 동료를 설득시키려는 듯 큰소리로 외쳤다.

“허 은라는 지식인이 아니지만, 시도 지었는데 어찌 병법을 논할 수 없단 말인가? 게다가 자네들 잊었는가? 허 은라는 전장에 나가본 자이네. 그날 운주에서 그가 홀로 반란군 팔천을 막다가 힘이 다해 죽지 않았는가.”

다른 서생들은 이 말을 듣자 철저히 깨달았다. 허 은라는 전장에 나가본 적 없는 병아리가 아니었다. 그는 운주에서 홀로 반란군 수천을 막았더랬다.

“허 은라는 정말이지 당대 제일 재주꾼이야.”

“그러게. 허 은라가 지식인이 아니라는 점은 더욱이 그의 재주가 남다르고 세상에 보기 드문 귀재라는 걸 설명하지.”

“괘씸하군. 이런 사람이 왜 무도를 걸었는가. 그 허씨는…… 사람 구실 못하는군.”

한순간에 국자감 서생들의 찬사가 천지를 뒤덮었다.

심지어 한 서생은 한참을 참은 끝에 큰소리로 도발했다.

“배만서루, 네 자신이 독학으로 재능을 갖췄다고 말했는데 공교롭군. 우리 허 은라 역시 독학으로 재능을 갖췄다. 네 천부적인 자질이 뛰어나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겠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는 법. 우리 대봉의 허 은라가 바로 네가 영원히 뛰어넘을 수 없는 높은 산이다.”

사람들이 즉시 맞장구쳤다.

무표정을 한 배만서루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세로 눈동자 소년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얼굴 근육은 씰룩였다. 그는 인족들을 마구 죽이고 싶지만, 최선을 다해 참는 듯했다.

그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분명히 기세가 좋았다. 모든 일이 배만 형님의 계획대로 흘러갔다. 극소수의 덕성과 명망이 높은 저명한 학자들을 빼면 당대 지식인 중에 배만 형님의 적수는 한 명도 없었다.

그는 이름만 들었을 뿐, 만나본 적도 없었던 허칠안이 뜻밖에도 배만 형님의 계획을 꺾어 그들의 노력을 헛되이 할 줄은 몰랐다.

황선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부드러우면서도 매혹적인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가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알고 보니 그의 형이 쓴 병서였구나. 허칠안이 틀림없이 이 기서(奇書)를 그에게 줬을 거야. 형제간의 정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두텁구나…….’

왕사모는 깜짝 놀랐을 뿐, 실망스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신년과 그의 형 사이의 정에 감개무량하면서도 흐뭇했다.

아버지의 눈에 허신년 본인의 능력 자체는 다소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만약 그의 뒤에 가지고 있는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여 그를 떠받치고 있는 형이 있다면, 아버지는 신년을 얕잡아 보지 않을 터였다.

그녀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아버지를 힐끔 보았다. 역시나 왕 재상은 허신년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

왕사모는 속으로 남몰래 기뻐했다. 게다가 오늘 문회 일로 신년의 명성도 더 높아질 터였다.

그 순간 회경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어느 시위를 쳐다볼 뻔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여 목을 뻣뻣하게 세운 채 앉은 자세를 유지했다.

그녀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가 병법을 안다고? 병서를 썼다고? 내가 그를 안 이래로 지금껏 그가 병법에 관해 견해를 내비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위 공이 쓴 책인가? 위 공이 그의 손을 빌려 허신년에게 전해준 거지…….’

총명한 황장녀는 더 많은 걸 추측했다. 그녀는 이 병서를 위연이 썼다고 의심했다.

회경은 입을 오므리고 즉시 장진의 손에 있는 병서로 시선을 옮겼다. 호수의 맑은 물처럼 도도한 두 눈에 보기 드물게 지식에 대한 열정과 갈망이 불타올랐다.

‘개자식이 쓴 책이라니…….’

임안은 꽃처럼 아름답게 웃는 얼굴을 하였다. 매력적인 달걀형 얼굴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는 허신년이 주제넘게 나설 때 그가 분을 풀려고 든다고만 생각했으며, 마침내 누군가 방자한 오랑캐를 제압할 수 있겠다고만 여겼다. 그녀는 이를 제외하고선 더는 떠오르는 바가 없었다.

임안은 병서를 허칠안이 쓴 것이라는 말을 듣자 돌연 힘이 솟았고, 속으로 싱글벙글 웃었다. 긍지와 희열이 들끓었다. 장소가 적절하기만 했다면, 그녀는 푸드덕거리는 참새 한 마리처럼 재잘거리면서 허칠안에게 달라붙었을 것이다.

태부는 흐뭇하게 웃었다. 늙은이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우리 대봉은 걸출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지. 놀라운 후배가 있었군.”

그는 말을 마친 뒤 조각상 같은 장진을 바라보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장진, 병서를 이 늙은이에게 좀 보여주게.”

장진은 정신이 번쩍 들자 병서를 태부의 손으로 허공을 가로질러 보냈다.

태부는 지팡이를 짚고 돌아서서 탁자에 앉은 뒤, 침침한 노안을 가늘게 뜬 채 병서를 훑어보았다.

태부는 반 각이 채 되기도 전에 두 편을 다 보았다. 그가 갑자기 ‘탁’하고 책을 덮더니 흥분하여 두 손을 덜덜 떨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이 책은 널리 퍼지면 안 되네. 오랑캐가 베껴 쓰게 해서는 안 돼. 이건 우리 대봉의 병서이니 절대 밖으로 빼돌려서는 안 되네.”

이건…….

한순간 훈귀와 무장들, 국자감 서생들, 한림원 공부벌레들이 모두 침묵하였다. 회경 역시 침묵하며 태부가 손에 쥔 병서를 점점 더 탐내고 갈망하였다.

* * *

젊은 환관이 미친 듯이 내달려 침전 앞으로 왔다. 그들은 두 눈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뿜더니, 평소처럼 고개를 숙이는 대신 열심히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들은 마음속의 절박함과 설렘을 여실히 드러냈다.

늙은 태감은 눈을 감고 좌선하는 원경제를 전전긍긍하며 쳐다보더니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그가 침전 밖에 이르러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일인가?”

젊은 환관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몇 마디 귓속말하였다.

늙은 태감은 아주 복잡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원경제 곁으로 돌아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폐하, 노비, 노비가 아뢸 일이 있사옵니다.”

원경제는 눈을 뜨지 않은 채 간단하게 ‘응’하고 소리 내었다. 그는 딱히 흥미가 없어 보였다.

“문회 쪽에서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장진이 패배를 인정한 뒤 뜻밖에도 한림원 서길사 허신년이 나서서 배만서루와 병법을 논하려고 했습니다…….”

원경제가 눈을 떴다.

늙은 태감은 계속해서 말했다.

“배만서루가 진심으로 탄복하였다고 합니다.”

원경제는 아주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선 몇 초간 침음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허신년은 장진의 제자로 병법을 전공했지. 그에게 이런 조예가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군. 좀처럼 보기 드물어. 이 자가 비록 허칠안의 사촌 동생이지만, 한림원의 서길사이기도 하니 그가 배만서루를 이겼다는 건 그래도 받아들일 수 있다.”

허칠안은 자발적으로 관직에서 물러났지만, 나중에 원경제 역시 그의 작위와 관직을 박탈하고 그를 조당에서 쫓아내라고 하명하였더랬다.

허신년은 그 자식의 사촌 동생으로 지금 배만서루를 이겼다. 그러니 외부인들은 그에 관해 논할 때 틀림없이 마찬가지로 재주가 남다른 허칠안을 언급한 뒤 그가 충신을 ‘박해’했다고 비난할 것이었다.

이는 현 상황의 유일한 나쁜 점이었다.

허나 허신년의 서길사 신분은 그가 직접 선정한 위치였다. 뛰어난 재주 역시 그의 혜안으로 진주를 알아보았다는 근거가 될 테니 문제가 크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원경제는 그래도 아주 기쁘고 위안이 되었다. 그런 근거 없는 소문에 비하면, 배만서루에게 패배하는 일이야말로 진정으로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다.

조정의 체면이 깎이면, 한 나라의 군주 역시 체면이 깎였다.

황제는 두 가지를 가장 중시하였다.

권력과 체면.

원경제는 미간 사이의 우울함을 거두더니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과정을 자세히 좀 얘기해보거라. 짐은 그가 배만서루를 어떻게 이겼는지 알아야겠다.”

늙은 태감이 잠시 망설이더니 말없이 몇 걸음 뒤로 물러났고, 그제야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서길사 허신년이 병서 한 권을 꺼냈고, 배만서루가 본 후에 더할 나위 없이 탄복하며 기꺼이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병서?”

이는 원경제가 생각지 못했던 화제였기에 그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무슨 병서지?”

운록서원의 장진조차 자신의 《병법육소》가 배만서루 것만 못하다고 인정하였다. 그리고 한림원의 그 병서들 모두 낡은 형식에 조금 다른 새 내용을 담았을 뿐이었다.

늙은 태감이 침을 삼켰다.

“그 병서는 《손자병법》이라고 하는데 그, 그…… 허칠안이 썼다고 합니다.”

그가 말을 마치자 침전 안에서 다급한 호흡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어도 이 순간 폐하의 표정이 얼마나 보기 좋지 않은지 상상할 수 있었다.

몇 초 뒤, 감정이 섞이지 않은 원경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가라!”

늙은 태감은 마음이 놓여, 고개를 숙인 채 도망치듯 침전을 나섰다. 뒤에서 식기와 꽃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조정은 망신을 당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폐하께서는 철저히 체면이 깎이셨다…….’

늙은 태감이 탄식하였다.

그는 경성 위아래로 폐하에 관해 어떻게 논할지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황제가 사욕을 위해 충신을 박해했을 뿐만 아니라, 경성 지식인들은 오랑캐 한 놈에게 짓밟혔다. 그런데 결국에는 황제로 인해 관리 사회에서 내몰린 그자가 애써 위험한 국면을 만회하였다.

버젓한 한 나라의 군주가 웃음거리고 전락했으니 폐하가 노발대발해도 당연한 일이었다.

* * *

문회가 끝난 뒤에도 병서는 결국에 허신년의 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병서는 태부가 ‘가차 없이 빼앗아’ 남겼다.

훈귀와 무장 및 현장에 있던 지식인은 불만이 많았지만, 누구도 유림에서 덕성과 명망이 높은 웃어른을 공공연히 거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회경조차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못내 서운해하며, 시위들을 데리고 곧장 회경부로 향했다.

각지의 군대가 흩어졌다. 배만서루의 표정은 다소 무거웠으며 황선아 역시 요염한 자태를 거두었다. 그녀의 갸름한 얼굴은 서리가 내린 듯했다.

성격이 난폭하고 충동적인 세로 눈동자 소년은 더욱이 말할 것도 없었다.

세 사람은 마차에 앉은 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분위기 속, 황선아가 자발적으로 정적을 깨고 물었다.

“무슨 계책이 또 있나?”

배만서루가 무표정으로 몇 초간 생각하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비록 문회는 졌고, 내 명성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는 없으며 적잖은 타격이 있었지만, 대봉 관원이 이로 인해 나를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어. 그저 그 허 은라가 중간에 끼는 바람에 후속 계획이 전부 물거품이 됐을 뿐이지.”

그는 길게 탄식하였다.

“이 자의 남다른 재주는 인정할 수밖에 없어. 전에 나는 그의 시에 감탄했다. 그의 천부적인 자질을 칭찬했으며 그의 명성을 부러워했는데 오늘부로 그에게 심지어 두려움마저 갖게 되었다. 그가 대봉 황제와 맞지 않아서 다행이야. 아니, 다행히 그와 대봉 황제는 철천지원수지. 장차 그가 군대를 장악하면 우리 신족은 위태로워져.”

황선아가 아름답게 웃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나는 자태가 뛰어난 미인 몇몇을 골라 보낼 계획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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