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594화 (572/712)

594화. 문회 (3)

배만서루는 나지막이 말했다.

“그때 가면 우리 신족의 오늘이 바로 대봉의 앞날이다.”

허신년은 묵묵히 방관했다.

‘이 얼간이들이 어느새 상대한테 주도권을 빼앗겼군. 너희들, 설마 토론에서 이기려고 이러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출병의 필요성을 토론한다고 해도 결국은 반드시 출병해야 한다고. 이건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지……. 악, 승부수를 논하는 건 협상 테이블에서 해야 할 일이고, 제공들의 일인 것 같으니 확실히 지금 논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이 문회의 핵심은 사실 대봉 쪽에서 배만서루의 명성과 허세를 무너뜨리려는 데 있었다.

하지만 형세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았다. 이 자식은 본래 언변이 훌륭하고 말재주가 뛰어났다. 거기다가 반드시 출병해야 하는 ‘대의’를 근거로 들었다.

허신년이 눈알을 굴렸다. 그러자 여러 무장들이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듯 안달헀지만 결국에는 눈살을 찌푸리며 침묵했다.

‘그래도 자기 자신을 잘 아는 편이네. 이 무장들은 남을 욕하는 것도 엉성한데 논쟁? 그들에게 풍부한 군대 통솔 경험이 있다고 해도 배만서루를 말로 이길 수는 없지. 퉤, 저속한 무사들 같으니…….’

“평소에 제공들이 조당에서 말을 신랄하게 하지 않나? 태부께서 본 공주의 손바닥을 때리실 때, 그들의 말솜씨가 좋다고 했었는데. 그런데 어째서 그들도 그렇고 태부마저 말을 하지 않지?”

임안은 마음을 졸였다.

“태부께서 어떻게 등판하실 수 있겠니? 그는 덕성과 명망이 높은 웃어른으로 서열이 너무 많이 차이나잖니. 이겨도 영예롭지 않아. 남들은 우리 대봉이 소국(小國)을 깔본다고 얘기할 뿐이야. 제공들 역시 같은 이치지. 게다가 만약 제공들이 등판하면 내가 감히 장담하는데 배만서루는 자발적으로 그들과 학식을 겨루고자 할 거야…….”

회경은 좀처럼 드물게 일장연설을 하더니 어리석은 여동생에게 설명해 주었다.

“제공들의 학식은 몇몇 대학사를 제외하고, 이미 전부 황폐화되었어.”

임안은 눈을 크게 뜨고 중얼거렸다.

“그럼 어떡해? 화가 나 죽겠어.”

국자감 서생들은 표정이 심각했다. 한림원의 공부벌레들 역시 강적을 마주한 듯 표정이 보기 좋지 않았다.

왕 재상이 탄식하였다.

“배만서루는 재주가 출중하여 정말 놀랍군.”

한림원의 젊은 관원들은 입장할 때 자신만만했다. 그들이 숙연하게 침묵하는 지금, 과거와 현재의 태도 차이가 어느 때보다도 현저하게 드러났다.

왕사모는 허신년을 연신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가 나서서 자신을 드러내길 바랐다.

왕 재상은 딸의 눈빛을 알아채고선 말했다.

“신년이 어찌 오늘은 이렇게 조용할까?”

왕사모가 눈살을 찌푸렸다.

모두가 말문이 막혀 대책을 고심하고 있을 때 로호 상공에서 청광이 반짝이더니 유포를 입고 유관을 쓴 장진이 허공이 나타났다.

그런 뒤 그는 호수를 향해 낙하했다.

청광이 다시 반짝이더니 장진이 차양막 안에 나타났다. 그는 표정과 태도에 아직 약간의 두려움이 보였다.

‘그는 분명 그가 있는 곳이 운록서원이 아니라 로호라, 하마터면 호수에 빠질 뻔했다고 허풍을 떨겠지…….’

허칠안은 속으로 미친 듯이 구시렁거렸다.

“장진 대인, 오셨습니까.”

“장 선생님 드디어 오셨습니까. 저는 장 선생님께서 빠지지 않으실 거라는 걸 알았습니다.”

주위에 있던 서생들이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 환호하였다.

제공들은 드디어 웃었다. 장진과 친분이 있는 자들이 잇따라 입을 열었다.

“장 형, 드디어 왔는가.”

장진은 미지근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즉시 태부를 보고 황급히 읍을 올렸다.

“서생 장진, 태부를 뵙습니다.”

“응.”

태부가 대답했다. 시종일관 정색하던 얼굴에 드디어 웃음꽃이 피었다.

“장진, 백수부의 젊은이가 자네에게 가르침을 청했으니, 자네가 그에게 병법을 좀 알려주게.”

차양막 안의 분위기가 별안간 고조되었다.

장진은 한 바퀴 둘러보더니 눈처럼 흰 머리를 한 배만서루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바로 《북재대전》을 쓴 배만서루인가?”

배만서루가 처음으로 일어나 읍했다.

“소생 배만서루, 장 선생님을 뵙습니다.”

장진은 손사래를 쳤다.

“인사치레할 필요 없네. 자네 나와 병법을 겨루겠다고?”

차양막 내부가 순간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손꼽아 기다렸다.

황선아는 몸을 살짝 곧게 펴더니 눈을 가늘게 뜬 채 운록서원의 지식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세로 눈동자 소년은 오만한 기운을 거두었다. 이 유가 체계의 4품 고수가 바로 이번 문회 때 배만 형님의 ‘적’이었다. 비록 그는 지식인을 얕보았지만, 운록서원의 지식인은 경멸하는 범위 내에 속하지 않았다.

유가 체계는 몰락한 지 여러 해 되었지만, 오랫동안 쌓아 온 위엄은 여전히 존재하였다.

“소생, 식견이 부족하고, 학문도 깊지 못하여 선생께 가르침을 청하고자합니다.”

배만서루가 온화하게 웃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장진이 눈을 희번덕였다.

“자네 날 농락하나? 이 늙은이는 이십여 년 간 군사를 거느리지 않아 무기를 베고 자는 재미를 잊을 판이네. 내가 장황하게 지껄였지만 어쨌든 이십여 년 전의 그 수법인데 자네는 나와 무슨 병법을 논한다는 건가? 자네는 어찌 위연과 병법을 논하지 않는가? 이 늙은이는 조당에 자리하고 첩자를 온 천하에 퍼뜨렸네. 20년간 후방에서 책략을 세우기를 멈추지 않았지. 언젠가 충분히 다져온 결실을 천천히 방출하기를 기다렸네.”

배만서루가 웃었다.

“선생님 역시 소생을 농락하시는 거 아닙니까?”

세로 눈동자 소년이 참지 못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말참견을 하였다.

“왜 배만 형님더러 감정과 두법하러 가라고 하지 않소?”

이번에는 배만서루가 소년을 꾸짖지 않고 웃으며 물었다.

“사실 소생은 선생님의 병서를 흠모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듣자 하니 선생께서 병법에 정통하였다지요. 선생님의 《병법육소》는 널리 퍼져 모두가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 후학은 재주가 없지만, 병서 한 권을 편찬하였습니다. 이 책은 제가 수년 동안 걸쳐 쓴 것으로 중원 병법을 녹였을 뿐만 아니라 오랑캐 기마병의 병법도 담았습니다. 그래도 선생님께서 가르침을 주시길 청하는 바입니다.”

그는 말을 하면서 곁에 있는 세로 눈동자의 소년을 쳐다보았다.

현음은 발 옆의 작은 나무 상자를 열고 두꺼운 서적 한 권을 꺼냈다. 《북재병법》이었다.

대봉 쪽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들은 이 자가 병법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병서를 썼다고는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다.

지식인은 책을 써서 자신의 견해를 펼치는 걸 중시했다. 설령 학식이 높고 깊은 사람일지라도 책을 쓰는 것에는 아주 신중했다. 그들은 책 한 권을 여러 해 동안 다듬고서야 세상에 공포하고 널리 알렸다.

수필, 필기들은 사실 이 시대에 ‘책’이라고 할 수 없었다.

예컨대 허칠안이 운록서원에서 봤던 《대주습의》가 바로 필기였다. 이는 책이라고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배만서루의 말에 반신반의했다.

태부의 표정이 확연히 굳었다.

왕 재상 등 관리 사회 노인들의 표정 역시 이에 따라 굳었다. 그들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장진은 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게 두 손으로 책을 받았다. 호수에서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자 책장이 솨르르 소리를 냈다. 그가 재빠르게 훑어보았다.

장내 사람들은 장진의 표정 변화를 지켜보았다. 그는 처음에는 놀라더니 이내 흐뭇해했고, 결국에는 흥분하였다.

배만서루가 물었다.

“선생께서는 이 책이 어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장진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침음하더니 탄식했다.

“훌륭하네.”

“전서가 3권으로 나뉘어졌는데 첫 권은 병도로, 무엇이 병법이고 무엇이 전쟁인지 서술하였군. 설령 전쟁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무엇이 전쟁인지 알 수 있게 요점만 간단하게 설명하였어. 두 번째 권은 지략을 논하는군. 전쟁은 고정된 방식이 없고, 물은 고정된 형태가 없다라. 아주 잘 비유하였네. 열두 가지 공격 책략은 탁자를 치며 훌륭하다고 소리치게 하는군. 더 보기 드문 건 세 번째 권이네. 군사 배치와 포진을 상세히 연구하여 여러 무사와 보통 병사들에게 협조적인 공격진을 제공하고, 보통 병사들의 쓰임을 극대화했어.”

배만서루는 확실히 재주가 뛰어난 지식인이었다. 장진이 병법 도리에 있어서는 패배했다. 유가는 마음의 평온함을 연구하기에 고집부리며 잘못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일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번 문회에서 패배하면 가장 망신스러울 이들은 원경제와 조정 대신들이었다. 운록서원은 진작에 조당에서 내몰렸기에 국자감 식충이들의 체면을 위해 본심을 외면할 필요가 없었다.

장진은 감개무량하여 탄식했다.

“늙은이의 《병법육소》는 확실히 자네의 《북재병법》만 못하네. 진심으로 탄복하네.”

“모두가 운록서원의 지식인은 품성이 고결하다고 했는데, 실로 그렇군요.”

배만서루는 아주 통쾌하게 웃었다.

그가 왜 발판으로 삼을 사람으로 장진을 골랐을까? 이유는 세 가지였다. 장진은 명성이 충분히 대단했으며 이십여 년간 은거했다. 또한 장진은 운록서원의 지식인이라 인품과 덕성이 보장된 사람이었으며 속마음을 솔직하게 밝힐 줄 알았다. 그는 배만서루의 병서가 그를 납득시킬 수만 있다면, 양심을 속이지 않을 터였다.

군자는 악인의 합리적인 방법에 속아도 개의치 않을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이치였다.

차양막 안에 적막이 흘렀고, 모든 이가 표정을 잃었다.

세로 눈동자 소년, 현음이 목청이 찢어져라 깔깔 웃었다.

“모두가 대봉은 문도가 왕성하여 전부 책벌레라고 말하던데 보아하니 전부 우리 배만 형님에 미치지 못하는 군요! 형님, 북방으로 돌아가면 형님은 우리 신족의 허 은라예요.”

이는 그가 허칠안처럼 모두의 추앙을 받는다는 의미였다.

차양막 밖의 국자감 서생들은 이 말을 듣고, 수치와 분노에 젖었다. 그들은 반박하며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입을 떼기가 부끄러웠다. 여기서 그를 매도하면 더 창피해질 뿐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분노를 참았다.

한림원의 공부벌레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영역의 학문이라면 그들은 주고 받으며 토론하고 논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란 이 분야는 예외였다. 공부벌레들은 전장조차 가본 적이 없었으니 아무런 발언권이 없었다. 탁상공론은 사람들의 웃음거리만 될 뿐이었다.

황선아는 애교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기쁜 건지 아니면 비웃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번 문회는 하나도 재미가 없네요. 진작에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텐데.”

어떤 안식구가 불평했다.

그녀들은 기대와 열정을 품고 왔다. 그녀들이 보고 싶은 장면은 오랑캐가 굴복하는 모습이었지, 대봉 지식인이 격파당하는 순간이 아니었다.

회경은 탄식하였다. 그녀는 여인의 몸으로 이런 장소에 등판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병법은 그녀 역시 병서로만 좀 봤을 뿐이었다.

배만서루는 백수부의 젊은 우두머리로 오랫동안 전쟁을 치러 경험이 풍부했기에 틀림없이 그녀보다 수준이 훨씬 더 높을 터였다.

“나를 부축하거라, 돌아가자!”

태부는 지팡이를 쥐고 세 차례 힘껏 발을 구르더니 낮게 고함쳤다.

노인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 * *

침전 안에서 늙은 태감이 안절부절못하며 빠른 발걸음으로 뛰어 들어왔다.

휘장이 낮게 드리워진 평상 위, 원경제는 그를 쳐다보더니 말을 하지 않았다.

늙은 태감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장진이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탁!

원경제는 책을 늙은 태감의 얼굴로 던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