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591화 (569/712)

591화. 대유 배만서루 (3)

오후가 막 지나고 국자감에서 한 가지 소식이 들려왔다. 요족과 오랑캐 사절단 지도자인 배만서루가 국자감을 방문하여 대제주와 학문을 겨뤄 이겼다고 했다.

나는 이 자의 박식함에 못 미친다……. 이게 대제주의 평가였다.

그는 바로 떠나지 않고, 떳떳하게 국자감에서 학문을 논하고 자신이 쓴 《북재대전》을 국자감에 남겼다.

일개 오랑캐가 책을 편찬한다니?

국자감 서생은 우선 분노를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하지만 《북재대전》이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면서 경멸과 매도는 점점 잦아들고 오랑캐의 학문에 감탄하는 이가 더 많아졌다.

《북재대전》은 그 양이 방대하였는데 대강 훑어보아도 그 방대함과 정교함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책은 하루아침에 편찬해낼 수 있는 게 절대 아니었다.

이런 규모의 책은 통상적으로 조정에서나 편찬하였다. 오랑캐 젊은이가 혼자 편찬했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 책만으로도 배만서루는 당대 대유 반열에 들어설 수 있었다.

가장 놀라운 점은 《북재대전》 중 몇 권은 요족과 오랑캐 두 종족의 역사를 상세하게 기록했다는 것이었다. 두 종족의 유래, 변천 특히 근대 800년 역사를 빠짐없이 기록하였는데 대봉에서 집필한 사서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이는 국자감과 대봉 지식인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배만서루는 한순간에 명성이 자자해졌다.

“믿기 어렵군. 저속한 오랑캐에게 이런 독서 혈통이 있다고?”

“그 배만서루는 백수 부대인데 백수 부대는 지혜롭기로 유명하다네. 하지만 그와 같은 자는 아주 극히 드물지.”

“내가 만약 이 책을 쓸 수 있다면, 틀림없이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길 테지. 이 오랑캐 정말 대단한걸.”

“부끄럽군, 부끄러워. 노인네도 그처럼 젊었을 때는 학문을 탐구하였는데. 지금은 나이가 너무 많아 더는 책을 쓸 여력이 없네.”

“이자는 가증스럽더군. 먼저 대제주와 학문을 겨룬 뒤 일부러 대범하게 《북재대전》을 남겼네. 이건 우리 대봉 지식인들의 체면을 깎은 게지.”

마침 상대방이 요족 신분이고, 이런 학문을 지녔으니 대봉 지식인의 ‘무능함’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왜냐하면 대다수 지식인은 그처럼 쾌거를 이룰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젊은 세대 중에 그자와 견줄 만한 학식을 지닌 자가 누가 있는지 묻는다면 회경 공주뿐이겠군.”

“회경 공주께선 차례대로 국자감, 운록서원에서 학문을 탐구하셨네. 하지만 이 자는 오랑캐 출신으로 스승 없이 혼자 터득하였지. 누가 높고 누가 낮은지는 한눈에 훤히 보이네.”

요족과 오랑캐 사절단이 경성에 들어와 한껏 주목받는 건 관리 사회와 지식인 사회가 눈여겨볼 뿐만 아니라 경성의 백성들 역시 이 큰일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이야깃거리는 본래 조정이 오랑캐와 요족을 지원할 군사를 출동시켜야 하는지 아닌지였는데 차츰 북방 오랑캐에 학식이 뛰어난 자가 있다는 소식이 주루, 기루 등의 장소를 통해 퍼져나갔다.

“쓸데없는 소리, 저속한 오랑캐한테 어디 논할 만한 학식이 있겠는가. 국자감 대제주가 패배를 인정했다고? 어떤 멍청한 놈이 꾸며낸 소문인가.”

이런 뜬소문을 들은 사람 중에 이를 진실로 믿는 이는 없었다. 모두 코웃음을 쳤다.

국자감은 백성들의 눈에 관학(官學)이자 대문장가가 많이 나는 곳이었다.

지식인의 지위가 아주 높았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소식이 진짜라고 알려진 후에는 시정에서 욕을 퍼붓는 소리가 바다를 이루었다. 경성 백성들은 한가한 휴식 시간에 출병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더는 토론하지 않고, 다 같이 국자감을 규탄하였다. 그들이 나라의 체면과 대봉을 부끄럽게 했다고 욕했다.

백성들은 그들이 제 역할 못 하고 차리만 차지하면서 봉록을 축내는 머저리들이라고 욕했다.

“허 은라는 일개 무사여도 대봉 시괴가 될 수 있던데. 국자감 지식인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식충이인지 알겠군.”

“자네 방금 한 말, 듣자 하니 허 은라를 얕보는 듯한데.”

“나는 그 뜻이 아니네. 나는 국자감 폐물들한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고.”

“큰 치욕이지. 뜻밖에도 학문으로 오랑캐에게 지다니. 크나큰 수치야. 우리 대봉에 인재가 없는 건가?”

* * *

세로 눈동자 소년 현음이 밖에서 역참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깨 위에 책 상자를 메고 일부러 힘껏 내려놓아 기척을 내더니, 마당 안에 있는 배만서루와 황선아를 향해 큰 소리로 웃었다.

“국자감 이 쓸모없는 서생들! 제가 배만 형님을 대신해 책을 빌리겠다고 말하니 막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데요. 밖에서는 형님을 독하게 욕하니 바로 그들이 두려워한다는 걸 의미하는 거지요. 형님의 학식이 두려운 거예요.”

비록 그는 독서가 쓸모없다고 생각했지만, 이 부분에서 인족의 기세를 약화시킬 수 있어 정말 기분이 상쾌하고 의기양양했다.

“책을 바꿨을 뿐인데, 책을 바꿨을 뿐인데…….”

배만서루는 지보를 얻은 것처럼 상자 안의 책을 골랐다.

“그 무슨 대제주가 가장 학식 있는 자라면서, 그조차 형님의 한 수 아래인 걸 보니 인족 지식인은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하군요.”

현음이 크게 웃었다.

“대제주는 학식이 깊고 두텁지만, 그가 인족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다. 황궁에 특별한 여인이 있는데 그녀의 학식이야말로 대단하다더군.”

배만서루는 사서주해(四書注解)를 한 권 고르더니 흥미진진하게 읽기 시작했다.

국자감에서 ‘도리를 논한’ 지 이미 사흘이 지났다. 사절단의 요족과 오랑캐들은 그들의 우두머리 배만서루가 명성을 떨친 일이 놀라우면서도 기뻤다.

그는 화제의 중심이 되어 인족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황선아는 점포에서 사 온 연지를 계속 만지작거리면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물었다.

“지금 네 명성은 이미 충분하니 그다음은 담판인가?”

요 며칠, 그녀 역시 한가하지 않았다. 적잖은 대봉 관원에게 최고로 아름다운 호녀(狐女)를 쑤셔 넣었다.

“아직 충분치 않아.”

배만서루 역시 고개를 들지 않고 책을 보면서 말했다.

“내가 듣자 하니 모레 황성에서 문회를 개최하는데 마침 북방 전쟁과 관련이 있다더군. 문회 좋지. 문회에서 명성을 떨치기 좋아. 선아, 네가 말을 전해줘. 내가 문회에서 운록서원 대유 장진에게 병법에 대해 가르침을 청할 것이니 그가 문회에 출석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이야.”

“운록서원의 대유가 너를 상대할 거란 보장이 없는데.”

황선아가 나른한 어조로 말했다.

“선전포고했는데 오지 않고 공연히 나를 헐뜯으면 더 좋지 않겠는가?”

배만서루가 웃으며 말하더니 이내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

“참, 우리는 청운산에 올라갈 수 없어. 가도 제압당할 거야. 그 허신년을 찾아가. 내가 알아보니 그가 운록서원의 서생이래.”

“좋습니다!”

세로 눈동자의 소년이 흥분하였다. 그는 배만 형님이 이 인족들 눈에 ‘강대’해지기 시작했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배만 형님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 * *

일이 숨돌릴 새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식인 사회는 여전히《북재대전》을 연구하고 필사했다. 그들이 이 걸작의 묘연함에 깊이 빠졌을 때 별안간 배만서루가 대유 장진에게 병법에 대해 가르침을 청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이 오랑캐는 무슨 속셈이지? 국자감의 체면을 망치고, 또 뒤이어 운록서원에게 망신을 주려는 건가?’

순식간에 사방이 떠들썩해졌다. 국자감 지식인들은 배만서루의 행동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기대하였다.

운록서원은 절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 오랑캐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운록서원의 대유 장진에게 병법에 대해 가르침을 청했다. 스스로 사서 고생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운록서원의 대유가 당분간 오만함을 내려놓기를 바랄 뿐이었다. 만약 거들떠볼 가치가 없다고 오랑캐의 지도편달을 거절한다면, 오랑캐가 명성을 떨치는 디딤돌이 될 것이었다.

* * *

원경제는 어서방 소조회에서 큰 탁자에 앉은 뒤 무정한 표정으로 아래에 있는 신하들을 훑었다.

“경들은 최근에 발생한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가 가리킨 건 당연히 배만서루가 한 일련의 과시 행동이었다. 학식으로 국자감을 제압하고 《북재대전》을 내던져 유림에 명성을 떨치고, 문회에서 대유 장진에게 가르침을 청하고자 한 수법 말이었다.

“이자가 경성에서 명성을 떨치려는 계획인지요? 단지 명성을 날려서 담판에 승부수를 더하려는 거 아닙니까?”

“흥, 이렇게 하면 조정에서 양보할 줄 아는가? 망상이 따로 없군.”

“그가 설사 정말 장진을 이긴다고 해도 저희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을 겁니다.”

원경제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이 이렇게 말할수록 점점 더 배만서루를 두려워한다는 뜻이 되었다. 이는 그를 거물로 여기고 대유로 여긴다는 의미였다.

심리 상태에 일단 문제가 생기면 변화가 생길 테니, 담판 지을 때 영향을 받을 터였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자식과 담판을 짓는 일이 천하에 명성을 떨친 대유와 담판을 짓는 일로 바뀐다면 누가 한결같은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왕 재상이 대열에서 나와 나지막이 말했다.

“그 기세를 꺾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건 그의 기세를 꺾고, 그가 만들고자 하는 권세를 타파하는 겁니다.”

원경제가 콧방귀를 뀌었다.

“이제 장진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겠군.”

위연은 고개를 저으며 실소하였다.

* * *

우아한 궁군을 입은 회경은 국자감에서 빌려서 읽은 《북재대전》을 한 권 손에 쥔 채 회경부에 있었다. 그녀는 피곤한 줄 모르고 꾸준히 책을 읽었다.

허칠안과 임안은 탁자에 같이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으며 한 사람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임안은 회경이 신경 쓰지 않는 틈을 타 포도 한 알을 까서 허칠안의 입에 쑤셔 넣었다. 허칠안이 씨를 뱉더니 물었다.

“이 거지 같은 책이 정말 그렇게 신통합니까?”

회경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머리도 들지 않고 말했다.

“배만서루가 만약 대봉에서 태어났다면, 틀림없이 저명한 학자가 되어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 것이다.”

허칠안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 자가 《북재대전》을 쓸 수 있었으니 틀림없이 병법에 아주 정통했을 겁니다. 감히 장진에게 도전한다는 건 그가 상당히 큰 자신감이 있다는 걸 의미하지요. 장진의 《병법육소》가 세상에 널리 퍼졌으니 배만서루는 장진을 알지만, 장진은 그를 모를 겁니다.”

허심탄회하게 말하자면 그는 오랑캐가 이익을 얻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대봉이 군사를 출동시키는 건 피할 수 없는 추세지만, 이렇게 북방 요족과 오랑캐를 의기양양하게 해서는 안 됐다.

지난 20년 동안 요족과 오랑캐는 빈번하게 변방을 약탈하고, 계율을 무시했으며, 심지어는 사람을 먹었다. 초주 때 허칠안은 피난 가는 백성이 살 곳을 찾아 헤매며 거리에 나앉은 걸 직접 보았다.

또한 그는 전쟁이 끊이질 않아 빈민들이 아주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도 보았다.

대봉을 보면 초주가 가장 빈곤한 주(州) 중 하나였다. 일 년 내내 전쟁에 시달렸고, 이 모든 건 전부 오랑캐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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