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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590화 (568/712)

590화. 대유 배만서루 (2)

황선아는 의아해하며 허신년을 살폈고, 호기심에 가득 찼다.

‘고작 서길사의 신분으로는 인족 백성이 이렇게 존중하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어쩌면 그에게 또 다른 신분이 있을지도? 인족 백성들만이 알고 있는 신분이겠지…….’

배만서루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속으로 추측했다.

허신년은 허허 웃더니 말했다.

“그들은 저를 배려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신경 쓰는 건 말 위에 걸려 있는 팻말입니다.”

‘팻말?’

황선아는 어리둥절했다. 그녀와 배만서루는 그제야 말 목 위에 정말 나무 팻말이 걸려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었다.

허신년은 몸을 구부려 팻말을 떼어내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팻말 위에는 다섯 글자가 써 있었다.

<허 은라 아우>

‘허 은라의 아우?!’

황선아는 마치 애교 부리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응석을 부렸다.

“이게 무슨 뜻이지요?”

배만서루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드디어 모든 걸 깨달았다.

“어쩐지, 어쩐지! 알고 보니 허 대인이 대봉 은라 허칠안의 아우였군요.”

백수 부대에는 전문적으로 기밀 권종을 보관하는 밀실이 하나 있었다. 이 밀실의 배후가 백수 부대의 방대한 정보 조직이었다. 이 정보 조직의 대장이 바로 오랑캐에게 책벌레라고 불리는 배만서루였다.

그는 일찍이 직접 그 대봉의 전기적인 은라에 대해 책을 썼더랬다.

그는 경찰이 있던 해 연말에 급부상하여 지금까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평범하기 그지없는 장락현 쾌수에서 대봉의 가장 반짝이는 신예로 도약하였다.

그의 천부적인 자질은 아주 무시무시했지만,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건 그의 전투력이 아니라 많은 이가 좇는 그의 명성이었다.

초주성 백성 대량 학살 사건 후, 그의 명성은 누구나 감탄할 정도로 최고봉에 이르렀다.

이 명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당시 배만서루의 평가는 이러했다. 경성의 백만 백성 중 그를 추대하지 않는 이가 없다. 그리고 지금 나무 팻말의 위력을 목격한 뒤 그는 돌아간 뒤에 다시 한 획을 더하기로 마음먹었다.

<집안사람까지도 복이 미쳤다.>

황선아 역시 그 전기적인 은라가 떠올라 깜짝 놀란 얼굴을 하였다.

‘우리 신족 중에 우두머리만이 이런 위엄과 명망을 지녔을 텐데…….’

황선아는 경성행에 점점 더 기대가 차올랐다.

그들은 오랑캐가 지닌 신마 혈통을 줄곧 신족이라고 자칭하였다.

경성 백성이 길 양쪽에 늘어서서 환영하는 가운데 허신년은 요족과 오랑캐 사절단을 이끌고 역참으로 들어왔다.

사절단을 데려온 뒤 고생스러운 일을 하라고 원경제가 파견한 허신년은 배만서루가 강하게 만류하는 바람에 반 시진 머물렀다가 그제야 황급히 물러났다.

그는 관아로 돌아가 보고하지 않았다. 반나절을 무단결근할 작정으로 유유자적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 * *

“형이 이미 보기 드문 인재인데 이 아우도 영리하게 말을 잘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군. 재능도 뛰어나던데.”

배만서루는 허신년을 배웅한 뒤 마당에 앉아 차를 마셨다.

상대는 반 시진 동안 그가 말한 모든 이야기를 이어받아 역사를 논하고 경서를 논할 수 있었다. 허신년이라는 자는 입담이 좋았다. 그는 대봉과 북방 신족의 오랜 원한을 얘기할 때 거친 말을 내뱉기까지 했다. 그는 말속에 가시를 담고 차가운 조소를 날리고 신랄하게 풍자했다.

황선아는 돌의자에 앉아 일부러 사람을 꼬시는 자세를 취했다. 그녀는 주변 역졸들을 넋이 나갈 정도로 꾀어내다가 이 말을 듣고서는 사랑스럽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못난 서생일 뿐이야.”

그녀는 도중에 끊임없이 암시하고, 끊임없이 유혹했으나 누가 알았겠는가. 그 못난 서생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말 장님에게 윙크한 꼴이었다.

황선아는 탁자 위의 말린 과일과 육포를 먹으면서 물었다.

“내일 인족 황제를 만나러 궁에 들어가는데 무슨 계획이 있어? 만약 단기간 내에 지원군을 빼낼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빨리 내게 통지하는 걸 잊지 마.”

배만서루는 마당 안의 역졸을 내보낸 뒤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너는 어떻게 대응할 건데?”

황선아가 하품하는 모습은 나른하면서도 어여뻤다.

“그럼 나는 북방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경성에서 고관대작 하나 골라서 첩 노릇을 하는 게 북방으로 돌아가 벌을 받는 것보다 더 낫지 않겠어? 족인이 보복할까 봐 무서워할 필요도 없고, 안 그래? 경성에서는 감정이 내려다보고 있으니 우리 신족에서 감히 올 자는 없어.”

배만서루가 웃더니 말했다.

“대봉이 우리 신족을 돕기 위해 출병하게 하려면, 이익을 나누는 건 불가피해. 우리가 다가가는 목적은 반드시 ‘가격 흥정’ 네 글자여야 해. 신족이 대봉에게 부탁하니 이미 기선제압은 잃었어. 서로 대등하고 싶으면, 우리는 먼저 그들의 예기(銳氣)와 오기를 꺾어야 해. 그들이 너희를 어느 정도 존경해야만 담판 탁자 위에서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는 거지. 물론, 너희 호부가 담판 탁자 밖에서 힘을 보태야지. 주(酒), 색(色), 재(財) 세 가지 독 중에 색(色)이 제일 먼저야.”

세로 눈동자의 소년 현음은 말참견할 기회를 잡고 콧방귀를 뀌었다.

“개미처럼 비천한 인족들. 상고 시대에는 우리 신마 선조가 가두어 사육하던 제사 음식이었잖아요. 신마 시대가 끝난 지금도 인족 백성은 여전히 먹을거리죠.”

그가 이번에 사절단으로 대봉에 온 건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으나 여전히 약소한 개체인 인족을 무시했다.

배만서루가 그를 쳐다보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웃기 시작했다.

“이런 말은 남몰래 하면 된다. 만약 감히 밖에서 거침없이 말한다면 내가 네 껍질을 벗길 것이다.”

현음이 입을 삐죽거렸다.

“알아요. 역졸이 간 다음에야 얘기했잖아요.”

배만서루가 이번에 가지고 온 헌상품 중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는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상자를 열었고 안에는 서적이 놓여 있었다.

이 책들은 모두 공통된 이름이 있었다.

《북재대전(北齋大典)》

“북재는 내 서재야. 나는 어릴 때부터 독서를 좋아했어. 다만 깊이 파고들지 않고 무턱대고 외울 뿐이었지. 나중에 족인을 따라 남하해서 인족 지식인을 약탈할 때 앞서 3년 동안은 그들이 학문 강의하는 걸 들었어. 그다음 3년 동안은 그들과 도리를 논했고. 마지막 3년은 도리를 논하고자 했으나 북경 지식인 중엔 더는 나와 학문을 논할 수준의 지식인이 없었지.

그해 나는 18살에 남하하여 학문을 탐구하려고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것도 아까워하지 않았어. 20살이 되던 해에 나는 갑자기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원에서 10년 동안 학문을 탐구한 뒤 내가 배운 걸 책으로 편찬하고 수정하였어. 그때는 아직 책에 무슨 이름을 지어줄지 생각하지 못했네. 그러다 내가 부락으로 돌아오고 북재 서재로 돌아오자 갑자기 뭐라고 지어야 할지 깨달았지. 그 후 6년간, 피땀을 흘려 마침내 《북재대전》이세상에 나온 거야.

이 책은 총 308권으로 사농공상 역사와 천문지리를 망라하여 그 양이 방대하지. 대봉이 우리 요족과 오랑캐는 역사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사실 있는데 말이야. 그건 그들이 아직 북재대전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지. 대봉의 사관이 만약 이 책을 본다면, 틀림없이 미친 듯이 기뻐할 거야. 물론, 내 평생 가장 득의양양한 건 그래도 병서야. 대봉의 병서는 내가 거의 다 봤는데 옛사람이 만든 건 둘째 치고, 당대에 진정으로 내로라할 만한 병서는운록서원 대유 장진이 쓴 《병법육소(兵法六疏)》 정도야.

잘 지었지만 전쟁 중 수행자의 역할에 지나치게 치중했어. 전쟁에서 평범한 병사의 중요성을 간과했지. 만약 수행자를 골라내면, 보통 병사만 남고 그렇게 되면 그의 《병법육소》는 쥐뿔도 안 먹히는 거지.”

황선아는 들으면서 끄덕끄덕 졸다가 병법 얘기가 나오자 드디어 흥미가 좀 생겨서 물었다.

“평범한 자가 전투에서 발휘할 수 있는 역할은 본래 미미한데 수행자의 역할에 치우친 게 무슨 잘못이 있다는 거지?”

배만서루가 고개를 저었다.

“위연이 어떻게 산해관전역에서 이길 수 있었는지 아는가? 한 시대의 군신이라는 명성을 어떻게 얻은 줄 아는가? 위연만이 평범한 병사를 신의 한수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이야. 그는 진정으로 군대를 지휘하는 통솔자다. 수행자를 골라내고 평범한 병사만을 쓸 수 있다는 가정하에 위연에게 오십만 대군을 준다면 그는 구주를 쓸어버릴 수 있어. 내가 그해 그 전투를 연구해보았는데 각층 병력이 백만 이상 투입되었고, 평범한 병사의 수는 상당히 무시무시한 정도로 축적되었더군. 이 군사들이 완벽하게 통제되고 관리될 때, 무적이 되는 셈이야.”

‘아주 대단해 보이지만 못 알아듣겠어…….’

황선아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말했다.

“네가 보기에 내가 위연을 꼬시는 건 어때? 만약 그를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리 이번에 일을 원만하게 처리하는 셈인데.”

“살고 싶지 않아?”

배만서루가 반문했다.

황선아는 깔깔깔 애교스럽게 웃더니 계속해서 아양을 떨었다.

그녀는 당연히 생각 없이 얘기했을 뿐이었다. 사절단 지도자 중 하나로 선택받을 수 있는 그녀는 아주 지혜로운 여요(女妖)였다.

* * *

이튿날 요족과 오랑캐 사절단은 황제를 알현하러 궁에 들어갔다. 그들은 오문을 지나 금수교(金水橋)를 건너 금란전에서 황제를 만났다.

황선아는 가는 길에 한 나라의 군주를 눈앞에서 본다는 자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녀는 수줍어하는 자태로 조신하게 시위, 대신, 등 도중에 마주친 모든 남자를 유혹하였다.

그녀가 금란전에 들어갔다. 양쪽에 제공들이 늘어서 있고, 원경제는 용의에서 군림했다.

황선아는 그제야 요염한 자태를 차츰 거두었으나 여전히 콧소리를 내며 황제를 알현하였다.

그런 뒤 요족과 오랑캐 두 종족은 원경제한테 공물을 바쳤다. 공물 외에도 매우 아름다운 자태의 호족 여인 셋이 있었으니 상급 중의 상급이었다.

이민족이 조공할 때, 공물에 미인이 있는 건 정상적인 일이었다.

늙은 태감이 목록을 다 읊자 원경제는 만족스럽게 입을 떼고 말했다.

“북방 전쟁의 기세가 맹렬하다고 들었소. 짐 역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오. 하지만 추수가 임박하여 백성들이 추수로 바쁘기에 병력을 선발하여 북상할 수가 없소. 한림원에서 병서를 편찬하고 있는데 그대들이 외적을 막아 낼 수 있길 바라오.”

먼저 그는 추수가 곧이니 쉽사리 전쟁을 시작하는 건 좋지 않다며 조정의 어려움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는 병서를 하사하여 대봉 병도의 강대함을 과시하였다.

“감사합니다, 폐하! 대봉과 저희 신족의 우의와 동맹이 영원히 변치 않기를 바랍니다.”

배만서루가 아주 공손하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황제와의 알현을 마친 배만서루는 곧장 나섰고, 지원을 청하는 일은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조당 제공들은 의아해하기도 하고, 냉소를 짓기도 하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들이 보기에 요족과 오랑캐는 무사보다 더 저속한 존재였다. 조당에서 군사를 파견해 지원해달라고 간절히 요청해야만 옳은 타개 방식이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하게 배만서루는 인내심이 강한 자였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는 결국 입을 떼야 했다. 배만서루가 조당에서 자신의 깊이를 보여주는 일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 * *

세로 눈동자의 소년 현음은 궁에서 나오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황급히 물었다.

“배만 형님, 대봉 병법이 형편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분야에서 그들을 격파하여 존중을 받고자 하지 않았습니까? 방금은 왜 말하지 않았죠?”

황선아가 껄껄껄 웃었다.

“그자들에게 과시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니? 하늘에다가 과시해도 그들은 보고도 못 본 척할 거야. 너를 밟고자 하면 어떻게든 밟을 거야.”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배만서루를 쳐다보았다.

“우선 누구를 본보기로 착수할 계획이지?”

배만서루가 담담하게 말했다.

“국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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