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9화. 대유 배만서루 (1)
이후 이어진 이틀 동안 조정의 의도대로 북방 전쟁 및 요족과 오랑캐 사절단에 관한 얘기가 경성에 퍼지기 시작했다. 먼저 사대부 계층에 전파되고 그러고 난 뒤는 상인과 시정이었다.
한순간에 관리 사회, 지식인 사회, 학원, 찻집, 주루, 기루, 교방사에서…… 세찬 조수처럼 열띤 토론이 일었다.
시정 백성들은 오랑캐·요족 사절단에 한을 품었기에 대봉이 오랑캐와 요족을 지원하는 군대를 보낼 계획이 있다는 것에 반대 태도를 고수했다.
백성의 애증은 노골적이었기에 대세를 고려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저 북방 요족과 오랑캐는 대봉의 철천지원수이며 건국 600년 이래로 대규모, 소규모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고만 알았다.
예전 일은 둘째 치고 최근 일만 해도 그랬다. 초주성 백성 대량 학살 사건 전후로 수개월 동안 북방 요족과 오랑캐는 끊임없이 변방에서 소란을 피우며 불태우고 죽이고 약탈하였다.
하지만 귀족 계층은 훨씬 더 식견이 높고, 이성적이며 객관적이었다. 주전(主戰) 사상과 관망 사상이 격하게 충돌하였다. 시정 백성처럼 일방적으로 반대하는 건 아니었다.
사실 경성뿐만 아니라 조정에서 출병을 결정했을 때 이미 각 주(州)에 관보를 보낸 상태였다. 너무 오래 걸릴 필요 없이 현지 관아는 주전 사상을 추진하고 널리 알릴 것이었다.
이렇게 온 국민이 열띤 토론하는 환경 속에서 북방에서 온 사절단 대오가 관선을 타고 운하를 따라 경성 부두에 이르렀다.
요족과 오랑캐가 결성한 사절단은 오랑캐 12부대의 정예병 및 요족 6부대의 고수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대오를 이끄는 두 사람은 젊은이로, 그중 한 청년은 백발에 준수한 외모로 오랑캐에서 인재에 속했다. 그는 얼굴에 항상 미소를 머금고 눈은 시종일관 가늘게 떴다.
배만서루(裴滿西樓)는 오랑캐 12부대 중 백수(白首) 부대 우두머리의 장자였다.
백수 부대는 지혜롭기로 유명하였다. 오랑캐 중에서 인재라고 하면 무시하기 일쑤나 이 배만서루는 인재 중의 인재였다.
그는 중원 문화를 상당히 깊이 연구하였다. 오랑캐가 초주 변방을 약탈할 때, 빼앗은 건 전부 여인과 식량이었다. 유독 그만이 식량과 여인을 탐하지 않고 책만 약탈하였다.
사서오경, 문인 전기 심지어는 영양가 없으나 재미있는 화본까지 무릇 어떤 것이든 거절하지 않고 독서를 목숨처럼 좋아했다.
다른 한 사람은 요족 호부(狐部)의 공주 황선아(黃仙兒)였다. 그녀는 가죽 재질 옷을 입고 있었는데 치맛자락이 무릎까지밖에 오지 않아 가늘고 곧게 뻗은 두 다리가 드러났다.
옷은 중요한 부분만 가려서 밀색 피부, 동그란 어깨, 복근이 단단한 아랫배가 드러나 야성미를 내뿜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무척 요염하였기에 찡그렸다가 웃을 때는 사람을 꾀는 매력이 엿보여, 섹시하고 야성미 넘치는 몸과는 정반대로 사람의 넋을 뒤흔드는 아름다움이 뒤섞인 듯했다.
요족 호부 여인의 자태가 가장 아름다웠다.
두 사람이 갑판 위에 서서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는 대봉 관병을 바라보았다. 황선아가 교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어이, 책벌레. 이번에 만약 지원군을 데리고 가지 않고 빈손으로 돌아가면 우리만 처참해져.”
배만서루가 강풍을 맞으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지원군을 데리고 갈 수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가 얼마나 바치느냐에 달려있을 뿐이야.”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경성을 멀리 바라보면서 웃었다.
“경성에는 운록서원이 있는데 유가 성인의 수제자가 만든 서원이야. 200년 전, 유가가 가장 눈부실 때 온 천하가 굴복하였지. 우리 신족(神族)은 둘째 치고 서역 불국도 유가가 이랬다저랬다 하는 걸 견디고 중원에서 서역으로 옮겨 가야 했어. 경성에는 국자감이 있는데 비록 유가 체계를 수련하지는 않지만, 국자감 덕분에 지식인은 학문을 연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을 수 있었어. 천문지리, 사농공상(士農工商) 등등 아주 많은 지식과 사상을 탐구했지. 만약 국자감의 장서각을 북방으로 옮길 수 있다면, 나는 평생 남하할 필요가 없을 거야.
경성에는 대봉 개국 600년 이래에 손꼽을 만한 병도(兵道) 대가라고 불리는 위연이 있어. 원경 6년, 북방에서 주재하던 독고(獨孤) 장군이 세상을 뜨자 우리 신족 십여 만 기마병이 남하하여 약탈하였는데 그는 고작 석 달이라는 시간 만에 기마병들을 줄행랑을 치게 했지. 20년 전, 산해관전역 때 만약 그가 없었다면 구주 전체의 역사는 다시 쓰였을 거야. 경성에는 중원을 오백 년간 내려다본 감정이 있어. 생각이 마치 하늘의 뜻과 같아 어떠한 것도 예측할 수가 없지. 경성에는 시괴가 있는데 200년 이래 시단 일인자라고 불리지. 설령 200년 전의 대봉이라도 두 번째는 찾기 힘들 거라더군. 나는 경성을 동경한 지 이미 오래야.”
배만서루는 숨을 내뱉더니 웃었다.
“경성에 호걸이 무수하고, 나는 지식으로 가득하니 드디어 적수가 생긴 거지.”
‘책벌레…….’
황선아는 입을 삐죽이고 요염한 눈빛으로 웃었다.
“그들과 논쟁을 벌이는 건 네 일이야. 우리 호부의 여인은 침상에서 대봉 남자를 꺾는 것만 담당하거든.”
사절단에는 호부 미녀가 50명 있었는데 각자 외모가 출중하고 몸매가 아름다웠다.
그들은 원경제가 도를 닦아 장생을 갈구한다는 얘기를 익히 들었다. 비록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은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생각건대 직접 선사한 향로를 거절할 리는 없었다.
이때 황선아가 아름다운 눈을 굴리더니 의아해했다.
“엇? 멋진 인족 녀석이네.”
청색 관포를 입은 한 젊은이가 부두 위에 서 있었다. 그의 피부는 하얗고, 두 눈은 반짝였다. 입술이 붉고 이가 하얘 아주 보기 드문 꽃미남이었다.
배만서루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말했다.
“청포계칙(靑袍溪敕), 7품 관리군.”
관선이 해안과 가까워지고 요족과 오랑캐 사절단이 배에서 내렸다. 그 준수한 젊은이가 그들을 맞이하며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본관 허신년, 명을 받들어 여러 사신 대인을 영접하옵니다!”
배만서루는 정식으로 읍례(揖禮)하고 눈을 가늘게 뜬 채 미소 지었다.
“허 대인께서는 어느 관아에서 관직을 맡고 계시는지요?”
허신년은 예의를 차리고 대답하였다.
“한림원입니다.”
“대봉 조정에서 7품 관리 하나를 파견해 우리를 접대하는 건가?”
냉소 소리가 들려왔다. 배만서루 뒤, 유순한 기질에 세로 눈동자를 한 소년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쪽은 누구신지요.”
허신년이 반문하였다.
유순한 기질의 세로 눈동자 소년이 아래턱을 치켜들고 막 말하려고 하는데 허신년이 하는 말이 들렸다.
“아, 잊었군요. 그쪽은 사람이 아니지요.”
세로 눈동자 소년은 쌀쌀맞고 비웃는 듯한 그의 어조에 격분하여 콧방귀를 뀌었다.
“이 몸이 상고 시대 신마의 혈통을 짊어지고 있는데 어찌 너희들 같이 평범한 자들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그럼 그쪽은 어찌 승천하지 않았지요? 속세에 남아 무얼 하는 겁니까?”
허신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너…….”
세로 눈동자의 소년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북방에서 누군가 감히 그에게 이렇게 얘기했다면 지금쯤 이미 배 속의 먹잇감이 되었을 것이다.
“현음(玄陰), 무례하게 굴면 안 되지.”
배만서루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미소를 지었다.
“현음은 대요(大妖) 촉구의 혈통입니다. 안하무인이 습관이 되어서 그러니 허 대인께서 욕하셔도 좋습니다. 그는 정말 훈계를 덜 받았어요.”
배만서루가 흘겨보자 세로 눈동자의 소년은 입을 다물고 말을 않았다.
“허 대인께서는 벼슬이 높지는 않지만, 확실히 청귀 중의 청귀다. 한림원은 뛰어난 지식인이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데 어찌 너 같은 몹쓸 놈이랑 비교할 수 있겠니.”
배만서루는 과분한 칭찬을 했다.
“소생은 배만서루입니다.”
‘나는 그를 욕하지 않았다고. 내가 그를 욕하고자 한다면 너희들은 내일이 되어야 경성에 들어갈 수 있거든…….’
허신년은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황선아는 교활하게 웃더니 눈동자를 굴려 허신년을 쳐다보았다. 백수 부대 배만씨의 첫 번째 글자가 중원 인족의 배씨와 같았기에 대다수의 중원 사람은 배만씨를 배씨로 잘못 알았다.
그녀는 이 젊은 대봉 관원이 성을 헷갈리는 걸 보길 기대했다. 이로써 체면을 구기면 그녀는 이 기회를 틈타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유혹하여 이 젊은 관원의 마음을 동요하게 할 작정이었다.
허신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배만 대인, 본관이 여러분을 데리고 역참에 갈 테니 쉬십시오.”
황선아는 순간 좀 실망하였다. 이 젊은 대봉 관원은 재능과 학식을 갖춘 인재였기에 그녀가 계획한 유혹을 시전할 수 없었다.
* * *
배만서루는 지금껏 이러한 잔꾀로 한림원의 청귀를 망신 줄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말을 타고 사절단 대오를 데리고 대봉 관병 200명의 보호를 받으며 부두를 떠났다.
작은 거리를 지나 드디어 성안의 주도에 이르렀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요족과 오랑캐 사절단은 아연실색하였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도로가 널찍하였다. 기마병 50명이 나란히 질주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양쪽에는 집이 시야의 끝까지 빽빽이 늘어섰고 상점의 패방이 바람에 나부꼈다.
그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한평생 처음 보았다.
황선아는 부드러우면서도 아름다운 눈빛이 순간 흐리멍덩해졌다. 그녀는 마침내 선조가 왜 이렇게 중원으로 남하하길 갈망했는지, 이 토지를 빼앗기를 갈망했는지 깨쳤다.
하지만 황선아는 이어 이상함을 깨달았다. 도로 양쪽에 백성이 가득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손에 건 바구니 안에는 잎채소, 썩은 달걀 심지어 돌까지 있었다.
그들은 분노한 표정을 지었으며 눈에서는 증오가 타올랐다.
“오랑캐와 요족을 때려죽이자!”
누군가 포효하더니 오랑캐와 요족 사절단을 향해 썩은 달걀을 내던졌다. 그들은 마치 화약의 도화선에 불을 지핀 것처럼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오랑캐와 요족을 때려죽이자!”
“경성에서 꺼져라!”
“…….”
그들은 잎채소, 썩은 달걀, 돌멩이, 쉰 주먹밥 등등을 요족과 오랑캐 사절단을 향해 몽땅 내던졌다. 오물이 온 하늘에 어지러이 날아다녔다.
요족과 오랑캐는 성격이 충동적이고, 포악하였으며 도발을 가장 견디지 못했기에 바로 입을 일그러뜨리고 분노의 표정을 지었다.
“허 대인, 대봉의 백성이 아주 열정적이군요.”
배만서루가 기기를 뒤흔들어 양쪽에서 내리치는 오물을 막더니 빙그레 웃었다.
허신년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네요. 여러분이 배불리 먹지 못할까 봐 그런가 봅니다.”
배민서루는 말문이 막혀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요족과 오랑캐가 변방을 약탈하는 건 정상적인 일이었다. 먹을 걸 위해서 아닌가.
황선아는 약간 분노에 차 연거푸 눈살을 찌푸렸다. 비록 기기로 인족 백성이 내던지는 오물을 막을 수 있었지만, 이런 대접은 분노하기에 충분했다.
이때, 그녀는 배민서루가 질문하는 걸 들었다.
“이 백성들은 허 대인을 각별히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황선아는 이제야 주위의 백성이 잎채소와 썩은 달걀을 던질 때 일부러 이 젊은 관원을 피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수행하는 대봉 병사에겐 같은 대우를 하지 않았다.
황선아는 이를 발견한 뒤 눈을 가늘게 뜨고 한동안 관찰하였는데 더 많은 세부 사항을 알아차렸다.
백성들이 어찌 배려에서 그치겠는가. 심지어 던질 때 특별히 신경 써서 신중하게 그를 피했다.
인족 백성들이 그를 아주 존중하는 것 같았다. 유독 오물이 그에게 맞을까 봐 두려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