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8화. 요족·오랑캐 사절단
마차가 서서히 궁문 밖에 멈췄다.
남궁천유는 말고삐를 늦추고 차문을 밀어젖힌 뒤 말했다.
“의부님 도착했습니다.”
그는 찻간을 한번 살펴보았다. 위연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마차를 몰 때 무사의 본능적인 직감이 이상함을 포착했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남궁천유는 큰 우산을 받치고 위연이 차에서 내리도록 안내하였다. 빗방울이 기름종이 우산 위를 툭툭툭 두드렸다.
위연이 우산을 받고 태연하게 말했다.
“여기에서 기다리게.”
그는 우산을 받치고 혼자 궁으로 들어갔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청의는 마치 홀로 세상의 사나운 기세를 마주하는 듯했다.
* * *
허칠안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암말을 타지 않았다. 어쨌거나 암말 같은 준마는 사람들이 쉽게 알아봤다.
그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사이로 허부의 마차를 타고 황성으로 힘차게 몰았다.
마차는 황성 문밖에서 저지당했다. 성을 지키는 병사가 차체에 ‘허(許)’ 글자가 쓰여 있는 걸 보자 감히 소홀히 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검열하였다.
경성을 통틀어서 황성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허씨 집안에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이 허씨 집안의 어떤 자가 국공을 칼로 베어 황실, 종실 그리고 훈귀 집단의 미움을 샀다.
그가 황성에 들어가서는 안 되었다.
허칠안은 발을 젖히고 관패를 건넸다.
병사들은 한 차례 조사하더니 여전히 통행을 허가하지 않은 채 우림위 백호에게 통지하였다.
우림위 백호를 비를 맞으며 황급히 달려왔다. 그는 관패를 받아 몇 번 살펴보더니 찻간 안에 단정하게 앉아 있는 준수한 젊은이를 쳐다보았고 그의 얼굴을 잠시 관찰한 뒤에 말했다.
“허 대인께서 오늘 휴가이십니까?”
허칠안은 신년의 관포를 입지 않고 평상복 차림으로 외출했다.
허신년은 한림원 서길사로 한림원 관아는 황성 내에 있었기에 그는 황성을 출입할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늘 휴가였기 때문에 우림위 백호는 이렇게 물어봤다.
‘황성 수비가 우리 집에 경계심이 아주 높네. 내가 감히 확신하는데 만약 나라면, 설령 회경이나 임안이 데리고 왔다고 해도 황궁에 들어가지 못했을 거야. 오문에서 욕지거리 하고 두 국공을 납치한 사건의 후유증이지 뭐…….’
그는 허신년의 목소리를 빚어내어 차분하게 말했다.
“본관은 재상 대인을 찾아뵈러 가는 것이네.”
‘재상 대인을 찾아뵙는다라…….’
우림위 백호는 그를 다시 몇 차례 살피더니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허 대인을 들여보내거라.”
마차는 성문의 통로를 지나 황성에 들어섰고 왕 재상 저택 방향을 향해 갔다.
성벽 위의 우림위는 멀어져가는 마차를 주시했다.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
* * *
허칠안이 일각을 가더니 말했다.
“왼쪽으로.”
마부는 말에 따라 방향을 바꾸었고, 마차는 본래 가고자 한 길을 벗어났다. 허칠안의 지휘 아래 여태껏 황성에 온 적 없는 마부는 뛰어난 운전 솜씨로 허칠안을 영보관 앞에 성공적으로 데려다주었다.
허칠안은 우산을 받치고 마차에서 내렸다. 문을 지키는 꼬마 도사가 통전한 뒤 이변 없이 순조롭게 영보관으로 들어섰다.
그는 마차가 옆문을 통해 영보관에 들어가도록 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리고 눈에 띄게 영보관 입구에 세우지 않았다.
만약 원경제 그 노인네가 마침 도를 닦으러 왔다가 마차를 본다면 상황이 심상치 않아질 터였다.
그는 인종 창시자를 모시는 전당, 소원을 지나쳐 영보관 깊은 곳에 이르렀다. 외딴 뜰 안, 정실 내부에 아름다운 국사가 보였다.
그녀의 표정은 무심했다. 도도한 기질에는 속세에 물들지 않은 우아함이 깃들어 있어 마치 천상의 선녀 같았다.
회경 역시 도도하고 오만한 미인이지만, 그녀의 기질은 교만과 오만에 가까웠다. 하지만 낙옥형의 도도함에 그녀의 차림새 그리고 미간 사이의 붉은 주사를 곁들이면 신성함과 비범함이 돋보였다.
허칠안은 이 순간 국사의 아름다운 얼굴을 다시 보니 마음 상태에 다소 변화가 생겼다. 그는 그녀가 감히 침대에서도 모독하기 아까운 여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으로 그는 다행히 국사가 불문의 타심통을 이해하지 못하니 자신이 그 자리에서 죽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낙옥형은 탁자 옆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따뜻한 차 두 잔이 진작에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허칠안은 약속이나 한 듯 자리에 앉아 차를 받치고 한 모금 마시더니, 별안간 눈에서 정광을 내뿜었다.
“좋은 차군요!”
입으로 들어갈 때는 약간 씁쓸했지만, 혀로 3초간 굴리자 즉시 단맛이 돌았다. 배 속으로 삼킨 뒤에는 뒷맛이 입술이 남아 오랫동안 흩어지지 않았다.
“애석하군.”
낙옥형이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탄식하였다.
“뭐가 애석합니까?”
허칠안은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이 차는 본좌의 벗이 재배한 것으로 일 년에 딱 한 근 생산하네. 나한테 나눠주었어도 고작 서너 량뿐이야. 애석한 건 그녀가 실종된 지 오래되어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이지.”
낙옥형이 말했다.
‘이모, 왜 말 속에 또 다른 뜻이 있는 듯하지? 음, 이 차는 왕비가 재배한 것이군……. 내가 또 왕비의 묘한 구석을 발견했네. 앞으로 그녀를 캄캄한 방 안에 가두고 차를 재배해내지 않으면 밥을 주지 말아야겠어…….’
허칠안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감탄하였다.
“그렇다면 정말 애석하군요.”
낙옥형은 그를 가볍게 쳐다보더니 부드럽지만 감정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
“무슨 일인가?”
“소생 전 인종 도사와 선황의 일에 관해 좀 묻고 싶습니다만.”
허칠안이 말했다.
“내 부친과 선황의 일을?”
낙옥형은 좀 의아해하며 반문하였다.
“제가 선황의 기거록을 조사해보았는데 선황께서는 도를 닦으신 적이 없지만, 역시 장생법에 대해 아주 관심이 지대하시더군요. 저는 그가 도를 닦았는지 아닌지 알고 싶습니다.”
허칠안은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뗐다.
낙옥형은 잠시 침음하더니 말했다.
“내 부친은 천겁으로 돌아가셨네.”
‘이게 내가 한 질문과 무슨 관계지…….’
“그는 원래 죽을 필요 없었네. 그저 인종이 황성으로 들어오는 걸 감정이 허락하지 않는 바람에 내 부친의 몸에 업화가 달라붙게 되었고, 천겁으로 자멸의 길에 이르렀네.”
낙옥형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선황은 도를 닦지 않으셨지.”
‘선황이 도를 닦지 않았다라…….’
허칠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 원경을 조사하는군. 어떠한가?”
낙옥형은 아름다운 눈으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허칠안은 몇 초간 망설이더니 이를 악물고 나지막이 물었다.
“국사, 국사께서는 기운을 얻은 자가 장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낙옥형이 그를 쳐다보았다. 허칠안은 이 순간이 되니 비로소 국사가 진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을 실감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몸에 기운이 달라붙은 자는 장생할 수 없지.”
그녀가 바로잡았다.
‘낙옥형은 역시나 이 일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원경제가 허황된 망상을 하며 도를 닦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걸까?’
허칠안은 이 의문점을 드러냈다.
“누구나 현실적이지 않은 환상을 품는 법이지. 세상에 도를 닦는 자는 부지기수고, 대부분이 1품 고수가 되어 품계를 초월하는 존재에 이르기를 바라곤 하네.”
낙옥형이 태연하게 말했다.
“원경은 어쩌면 자신이 희망을 보았다고 여기거나 무슨 속사정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가 무슨 계획을 하든 나랑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나는 나의 도를 닦고, 그는 그의 장생을 닦는 거지.”
‘그녀는 원경제에게 어쩌면 비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지만, 깊이 캐내지는 않았다. 그녀는 대봉의 기운을 빌어 수행하는 것이고, 원경제와는 협력 관계다. 협력 파트너의 비밀을 깊이 캐내는 건 양측의 관계를 대치 상태로 빠지게 할 뿐이지. 심지어는 등을 돌릴지도…….’
허칠안은 국사가 한 말의 의미를 음미하였다.
허칠안은 잠시 침음하더니 이 주제에 더는 집착하지 않고 돌아서서 말했다.
“검주에 있을 때는 부검을 사용했는데 앞으로는 제가 국사께 어떻게 연락합니까?”
이 말이 내포하는 의미는, ‘어서 내게도 부검 한 자루 선물해줘’였다.
부검은 낙옥형 검의 위엄이 내포되어 있어 제작하기에 상당히 어려웠다. 누군가에게 주고 싶다고 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허칠안은 그녀에게 부검을 달라고 떠보았다.
낙옥형은 이 말을 듣자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부검은 정제하기가 아주 어렵네. 하루아침에 완성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그녀는 멈칫하더니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내게 마침 한 자루가 더 있는데 남겨둬봤자 쓸모없긴 해.”
그녀가 소매를 휘두르자 부검 한 자루가 조용히 탁자 위에 누웠다.
‘정말 줬네…….’
허칠안은 복잡한 심정으로 부검을 바라보았다.
* * *
원경제는 어화원 각루 조망대에서 뒷짐 지고 서서 폭우 속의 어화원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짐의 궁에 꽃들이 비록 아름다움을 다투어 이루 다 감상할 수가 없지만, 지나치게 연약하여 비바람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는군.”
비의 장막 속, 산뜻하고 아름다운 꽃송이가 몸을 구부렸고, 꽃잎이 빗물을 따라 둥둥 떠다녔다.
위연은 뒤에서 차를 받치고 홀짝홀짝 마시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꽃은 본래 주인의 환심을 사는 것이지요. 부드러울수록 주인이 좋아합니다. 폐하께서는 그들의 연약함을 좋아하시면서도 그녀들이 박해를 견디지 못한다고 비웃으시다니 참으로 일리가 없습니다.”
원경제는 위연을 등진 눈에 날카로운 빛을 반짝이더니 허허허 웃었다.
“짐은 가장 아름다운 그 꽃을 보호하기만 하면 되네. 위 경, 자네 생각은?”
위연은 헛웃음을 지으며 입꼬리를 잡아당겼다.
원경제는 계속해서 비를 바라보며 탄식하였다.
“초주가 동요한 뒤 회왕이 전사하고 길리지고는 몰락하였으며 촉구 역시 중상을 입어 북경이 쇠약해졌다. 이번에 무신교가 밀려오는 기세가 등등하니 만약 북방 요족과 오랑캐의 영토가 함락되면 대봉은 북에서 동까지 이르는 모든 변방이 무신교에게 포위될 것이다. 위 경, 자네는 병법의 대가이잖나. 어떻게 생각하는가?”
위연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조정에서 당연히 군사를 파견해 동북을 지원해야 합니다. 하지만 요청해야 할 이익이 적어서는 안 됩니다. 북방 요족과 오랑캐는 일 년 내내 변방에서 소란을 피웠으니 이번에는 대봉이 그들의 살을 베고 피를 빨 차례입니다.”
원경제는 미소를 지었다.
“한림원에서 병서를 편찬할 걸세. 짐이 보니 여기저기 고치는 게 아무런 독창성이 없더군. 오랑캐와 요족 사절단이 경성에 들어온 후에 우리 대봉을 비웃을까 봐 두려울 뿐이지. 위 경은 백 년에 보기 드문 통솔자니 한림원에 가서 조금 가르쳐도 무방하네.”
병서는 오랑캐와 요족 사절단에게 내보이는 ‘국력’의 일부분이었다. 병서가 많을수록 대봉의 병법 대가가 많다는 걸 의미했다. 그 중요성은 화포 훈련에 버금갔다.
대봉이 지금 쓰는 병법은 운록서원 지식인이 예전에 남긴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당대 병법 대유 장진이 지은 《병법육소(兵法六疏)》였다.
오히려 위연처럼 공인된 희대의 통솔자는 일언반구도 남기지 않았더랬다.
위연은 고개를 저었다.
원경제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다.
“본래 오늘 국자감이 로호(蘆湖)에서 문회를 개최할 생각이었는데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문회에 지장이 생겼네. 짐은 사절단이 경성에 들어온 뒤에 다시 국자감에게 문회를 개최하라고 할 예정이네. 그때 가서 위 경이 자리를 함께해도 되네.”
위연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