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587화 (565/712)

587화. 밀담

감정은 감정이고, 사천감은 사천감이었다. 감정이 아는 걸 사천감의 다른 술사가 꼭 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들이 만약 왕비의 아름다운 기질을 발견한다면, 어쩌면 돌아서서 궁에 보고할지도 몰랐다.

비록 허칠안이 막을 수 있지만, 동시에 그가 회왕의 미망인을 몰래 숨긴 사실도 드러날 것이다.

비밀이 한번 알려지면, 지키기 어려워졌다.

또한 말할 수 없는 작은 비밀이 하나 더 있었다. 그는 왕비의 본 모습을 보는 게 두려웠다. 감춰진 그 여인은 지나치게 눈부시고, 인간 세상의 속된 인물 같지 않게 완벽했다.

허칠안은 설령 평범한 자태의 부인을 마주한다고 해도 그녀를 향한 자신의 호감이 날이 갈수록 커진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허칠안은 만약 절세미인을 다시 본다면 자신이 오늘 밤 그녀한테 무슨 짓을 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기 어려웠다.

예컨대 그는 그녀에게 오이가 익으면 꼭지가 저절로 떨어진다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할 수도 있었다.

비록 낙옥형을 향한 허칠안의 추앙이 대봉 제일 미인의 마음을 편치 않게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그녀는 오늘 아주 즐거웠다.

그래서 이튿날 새벽녘, 허칠안이 떠나기 전에 그녀는 허칠안에게 음식을 먹였다.

* * *

“찐득찐득하고 끈적이는 게 너무 익어 보이던데? 치킨스톡을 이렇게 많이 넣다니 나를 자극해서 죽일 셈인가……? 나중에 그녀에게 내 솜씨를 맛보게 해야겠어. 제대로 배워야지.”

허칠안은 빈정대면서 기루에 들어가 용모를 바꾸고 옷을 도로 갈아입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두 시진을 수행한 뒤 암말을 타고 몹시 고급스러운 기루로 다그닥다그닥 갔다.

그가 익숙한 별실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송정풍과 주광효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그들은 야경꾼 제복 차림으로 동라를 동여맨 채 패도를 들었다.

그들은 오늘 공적인 업무를 논해야하기 때문에 낭자를 부르지 않았다. 세 사람은 탁자에 둘러앉아 아래쪽 대당의 희곡을 보면서 술을 마시고 땅콩을 깠다.

“자네들에게 조사하라고 한 일은 어떻게 됐는가?”

허칠안이 송정풍을 발로 찼다.

“어젯밤, 확실히 검은 장포를 입은 한 무리가 내성에 진입하였네. 남성 성문으로 들어왔어. 성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발설하지 말라고도 경고하였네. 허, 초주에서 온 북방 놈은 경성이 누구의 근거지인지 전혀 모르는군. 내가 은자 일 전을 써서 어젯밤에 당직 서던 병사한테서 정보를 물어 알아냈네.”

송정풍이 술을 한 모금 마시고 혀를 끌끌 차더니 말했다.

“그들은 황성에 들어오지 않고 내성에 들어온 뒤 사라졌네. 오늘 아침 황성을 순찰하는 은라들에게 알아보라고 부탁했는데 그 밀정 무리가 황성에 들어온 걸 본 자가 없더군.”

‘황성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항원이 내성 어느 곳에 감금돼 있나? 아니다, 비밀 경로를 통해 황성에 보내진 뒤 황궁에 이르렀을 가능성도 있다. 마치 평원백이 납치한 사람을 몰래 황성에 들여보낸 것처럼 말이다. 도사께서 말씀하시길 항원 대사는 단기간 내에는 생명의 위험이 없을 거라고 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상당히 넉넉하니 너무 조급해서는 안 된다. 만약 항원을 황궁에 데리고 들어갔다면 우리가 그를 구출하는 동시에 반드시 원경제와 관계를 끊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먼저 퇴로를 확보하고 준비를 마쳐야 한다. 허둥지둥 사람을 구해서는 안 되지…….’

허칠안이 생각이 번뜩이는 사이 말했다.

“거리를 순찰하는 형제들에게 통지하게. 만약 내성에 이상한 기운이 나타나거나 검은 장포를 입고 가면을 쓴 밀정을 본 자가 있다면 반드시 제때 나에게 통보해야 한다고.”

주광효는 고개를 끄덕이니 ‘응’하고 소리 냈다.

송정풍이 갑자기 말했다.

“참, 내가 듣자 하니 3일 후에 북방 요족과 오랑캐 사절단이 경성에 들어온다더군.”

‘요족과 오랑캐 사절단에 경성에 들어온다니? 요족과 오랑캐 두 종족이 막 손을 잡고 초주성을 무너뜨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그들이 감히 경성에 들어온다고?’

허칠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이 일을 못 들었네만.”

송정풍이 ‘헤’하고 소리 내더니 말했다.

“폐하께서 어제 소조회를 열어 이 일을 은밀히 논하셨네. 강 금라가 어젯밤에 우리를 데리고 교방사에서 술을 마실 때 털어놓았지.”

‘북방 전쟁은 내가 아는 바다. 소식 전달이 지체되는 점에 근거했을 때, 북방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북방 요족과 오랑캐가 사절단을 파견해 경성에 온다는 건 전쟁이 불리하다는 걸 설명하기에 충분한데…….’

허칠안은 침음하더니 말했다.

“요족과 오랑캐 두 종족이 아무래도 너무 떨어지나보군. 이렇게 빨리 도움을 청한다고?”

북방 요족 및 오랑캐, 대봉과 무신교는 상호 견제하는 관계였다.

송정풍이 말했다.

“정국의 기마병은 구주 최고네. 산해관전역 전에 오랑캐 기마병은 정국 기마병과 교전할 수 있었는데 산해관전역 후에는 오랑캐 강자가 거의 사라져 지금은 정국 기마병이 구주를 호령하지. 내 생각에 북방 전쟁은 너무 오래 끌지 않을 걸세. 북방 요족과 오랑캐는 올해를 넘기지 못할 거야.”

주광효가 덧붙였다.

“길리지고가 죽은 뒤 요족과 오랑캐 두 종족에게는 촉구밖에 없네. 게다가 무신교는 고품 강자가 부족하지 않지. 하물며 전쟁은 주술사의 주 무대이고, 무신교는 시체 병사를 조종하는 능력이 어마무시하다고.”

‘촉구가 초주성 전투를 겪고 난 뒤 치르고 난 뒤 중상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군. 이렇게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겠어…….’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광효가 탄식했다.

“대봉 국력이 나날이 쇠약해지는 데 비해 무신교가 통괄하는 삼국의 국력은 날로 강해지고 있네. 위 공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주광효와 송정풍은 야경꾼으로 문무백관을 감찰하여 식견이 나쁘지 않았기에 대봉 국력이 쇠약해짐을 똑똑히 눈치챌 수 있었다.

해가 갈수록 더했다.

허나 그들이 나라를 걱정하고 백정을 걱정하는 마음은 이내 젊은 여인들의 교태스러운 웃음소리로 대체되었다.

송정풍과 주광효는 각자 아름다운 여인을 한 명씩 골라 그녀들을 껴안고 방으로 들어가 죽으라고 매진하였다.

허칠안은 혼자서 탁자에 앉아 묵묵히 술을 마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대당 안의 희곡을 내려다보았다.

* * *

밤, 허신년의 서재에서 허칠안은 찻잔을 받치고 허신년의 낭송을 다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고작 이것뿐이라니?”

“요즘 한림원에 일이 너무 많아요. 조정에서 병서를 편찬하라고 해서 선황의 기거록을 외우러 갈 시간이 딱히 없다고요.”

허신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변명했다.

“병서 편찬?”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병서를 편찬하는 게 관례예요.”

허신년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제가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3일 후에 북방 요족과 오랑캐의 사절단에 곧 경성에 들어올 거예요. 북방 전쟁이 한창이라 이변이 없는 한 조정에서 요족과 오랑캐를 지원할 군사를 파병할 거예요. 사실 일찍이 초주에서 정보가 전해졌을 때 조정은 이 결정을 내렸어요. 그저 더 뜸 들일 필요가 있었던 거죠. 허, 까놓고 말해서 인심을 선동하는 거잖아요. 내일 국자감이 황성에서 문회를 개최할 건데 그 목적이 바로 전쟁을 주장하는 사상을 전파하기위해서예요.”

‘이 일을 회경이 나한테 얘기해줬지. 맞네, 나는 그녀와 함께 문회에 참가해야 하잖아…….’

허칠안은 기억이 났다.

그는 전생에 전쟁을 겪은 적이 없었지만, 고대·근대 역사서는 적잖이 봤기에 허신년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전쟁 때마다 백성을 동원하는 건 예로부터 자주 쓰던 방법이었다. 백성들에게 우리가 왜 전쟁을 해 하는지 싸우는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 알리고자 했다.

물론 이 시대에 조정에서 동원하려는 건 일반 백성이 아니라 관리 계층이었다.

“그럼 제가 외운 이 기거록들이 형님에게 쓸모 있나요?”

허신년이 물었다.

“있지!”

허칠안은 긍정적인 답을 주었다.

“이 기거록을 통해 선황이 인종의 장생법에 대해 가르침을 청한 빈도수가 많지 않으나 적지 않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지. 이는 그가 장생에 어느 정도 환상을 품고 있다는 걸 의미해. 하지만 어떤 이유로 그는 장생에 필요 이상의 환상을 품고 있지 않아. 지금으로서는 도를 닦고자 하는 선황의 생각이 보이지 않았거든.”

“선황은 원래 도를 닦지 않았어요.”

허신년은 말을 마치고 눈살을 찌푸렸다.

“어떤 이유에서요?”

‘선황은 똑똑한 사람이니 자신의 깜냥을 알았겠지…….’

허칠안은 웃더니 설명하지 않고 돌아서서 말했다.

“선황은 서거하실 때까지 도를 닦은 적이 없지만, 도를 닦는 것에 확실히 환상을 가지고 있었어. 내가 추측하기로는 아마 선황이 원경제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너는 계속 기거록을 보러 가서 최대한 빨리 기억하렴.”

* * *

이튿날, 폭우가 후두두두 쏟아지고 다소 서늘한 기운과 빗방울을 머금은 바람이 불었다.

빗물은 처마를 따라 흘러내리면서 물방울 커튼을 형성하였다.

여름이 점차 끝나가자 덜 여문 밭의 농작물 역시 누리끼리해질 기미가 보였다.

오늘 휴가인 허신년은 처마 아래 서서 매우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보아 하니 문회는 갈 수 없겠어요.”

허칠안은 방 안에서 걸어 나와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비를 보면서 웃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러니 신년아, 네 관패(官牌)를 좀 빌려 쓰자꾸나.”

허영음이 형제 둘의 맞은편에 있는 동쪽 사랑채 처마 밑에 서서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그녀는 처마 밑의 물방울 커튼을 끊임없이 ‘쪼개면서도’ 피곤한 줄 모르고 몰두하였다.

그녀의 신발, 바짓단 모두 빗물에 젖었다.

이 시점에 리나는 여전히 쿨쿨 자느라 바빴다. 이묘진은 방에서 좌선하며 수련했으며, 숙부는 도롱이를 걸치고 삿갓을 쓰고 눈물을 머금은 채 당직을 서러 갔다.

허칠안은 오늘도 일이 있었다. 그는 영보관에 가서 두 가지 일을 해야 했다. 첫째로 그를 대하는 낙옥형의 진짜 태도를 떠보아야 했다. 둘째로 지난 세대 인종 도사의 일을 물어봐야 했다.

* * *

위연의 마차는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비의 장막 너머를 다녔다. 빗방울이 끊임없이 마차 천장에 부딪히면서 ‘툭툭’하는 소리를 내었다.

위연은 차창을 열고 말없이 비를 바라보았다. 세상이 흐릿해졌다.

그는 어느 순간 마치 빗물이 굳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빗물은 먼지를 씻어 낼 수 있지만, 인심을 깨끗하게 씻을 수는 없지.”

개탄하는 소리가 마차에서 울렸다. 목소리에서 세월의 거친 흔적이 전해졌다.

위연은 여전히 비의 장막을 바라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청운산의 비 오는 정경이 설마 내가 있는 곳보다 아름답지 않다는 말인가?”

소리 없이 나타난 원장 조위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산해관전역 이후, 대봉은 날로 진보해야 하거늘 그 일 때문에…….”

조위는 몇 번 입을 열고 싶었으나 자신이 기억해내지 못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 사이에 변고가 생겼지. 경찰이 있던 해 연말에 극연 속의 그 조각이 갈라지고, 동북의 그 조각 역시 갈라졌네. 결국, 자네는 그저 대봉과 인족을 위해 20년이라는 시간을 벌었을 뿐이네. 요 몇 년 동안 나는 줄곧 생각했지. 만약 감정이 애당초 수수방관하지 않았다면 결말은 달라졌을 게야.”

위연은 여전히 무표정을 하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일의 계획은 사람이 하지만, 그 성패는 하늘에 달려 있지. 이 세상에 어떤 일이든 자네 조위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내 뜻대로도 흘러가지 않을 걸세. 감정과 우리는 본래 같은 길을 걷지 않으니.”

조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고신은 상고의 신마이지만, 뿌리 없는 부평초네. 하지만 무신은 달라. 동북에 주재하면서 수백만 백성을 통치하고 있지. 인족의 기운이 적어도 1/3을 차지하네. 만약 봉인이 해제된다면, 구주에는 막을 수 있는 자가 없네. 유성이 부활하지 않는 이상.”

위연이 탄식했다.

“내가 막겠네. 내가 작년부터 포석을 깔기 시작했어.”

조위는 그를 주시하면서 물었다.

“만약 실패한다면?”

위연이 웃었다.

“자네는 내가 진 걸 본 적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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