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5화. 항원의 비밀 (2)
이묘진은 갑자기 고개를 들고 아름다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극도로 놀란 표정으로, 자신이 그 뒷 내용을 짐작했음을 예고했다.
[일: 자네의 말은 항원이 폐하가 손에 쥔 도구가 되어 평원백을 죽였다는 거군.]
리나를 제외한 천지회 구성원들의 IQ는 수준 이상이었다.
물론 리나의 전투력도 수준 이상이었다. 남강의 꼬마 패왕의 힘은 산을 뽑을 만큼 세고 기개는 세상을 압도할 만큼 웅대했다.
[사: 그렇다면 회왕 밀정이 이번에 항원을 겨냥하는 건 원경제가 사람을 죽여 멸구하기 위함인가? 옳지 않네. 만약 사람을 죽여 멸구하고자 했다면 진작에 죽였겠지. 왜 하필 지금까지 기다렸을까?]
[삼: 아니, 초 형이 틀렸습니다. 사람을 죽여서 멸구하는 것 역시 시기를 봐야 하고 필요한지 아닌지 봐야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항원이 누구입니까? 청룡사의 무승일 뿐입니다. 그는 평양군주 사건에서 그저 보잘것없는 바둑돌이었지요. 내막을 알지 못하는 바둑돌인데 사람을 죽여 멸구할 필요가 있을까요?]
[사: 하지만 현재 원경제는 사람을 죽여 멸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지.]
초원진이 전서로 말했다.
[삼: 맞습니다. 그럼 무슨 이유로 원경제는 사람을 죽여 멸구하기로 마음먹었을까요? 여러분, 항원 대사가 최근에 무슨 일을 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궁의 금군을 저지하고 검주에서 연밥을 수호했지!
천지회 구성원들은 공포에 질려 놀랐다.
[삼: 항원 대사는 여러분과 너무 가깝게 지냈고, 제 큰형과 너무 가깝게 지냈습니다. 제 큰형이 어떤 사람입니까? 위연의 심복으로 세상에 그가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은 없습니다. 초주성 백성 대량 학살 사건에서 원경제는 사실 많은 걸 폭로했습니다. 이때 그는 항원 대사와 여러분이 함께 뒤섞여 있는 걸 알아차렸고, 그는 걱정되고 두려운 탓에 사람을 죽여 멸구하기로 마음먹은 겁니다. 또한 그가 사람을 죽여 멸구하려는 이유는 제가 짐작했을 때 항원 대사가 사제 항혜의 행방을 추적 조사할 때 중요한 단서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은 깨닫지 못했겠지만, 원경제는 그가 폭로할까 봐 두려운 거지요.]
[일: 자네의 말에 일리가 있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두 가지 의문이 드네. 첫째, 폐하께서 왜 암암리에 성안의 백성을 납치하려 하는가. 둘째, 궁 안은 호위가 삼엄하여 어떠한 왕래든 전부 기록하네. 궁 안의 세력은 얽히고설켜 각자 감시자가 있고, 감정이 있고 국사가 있고 위연이 있고 각 당파가 있지……. 폐하께서 누군가를 들이고 싶다고 해서 들일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네. 하물며 일정 수의 사람은 더욱 그러하지.]
‘까놓고 말해서 운송 경로가 불합리하다는 거잖아…….’
허칠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때 리나가 전서로 말했다.
[오: 에이, 단순하지 않은가? 비밀 통로를 파면 그만이지.]
이 어리석은 계집애가 한 마디로 급소를 찔렀다…….
지서 단체 채팅방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비밀 통로라면 평원백은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평원백은 이미 죽었으니 또 누가 알고 있지? 거간꾼 조직의 중간 우두머리? 만약 그렇다면 위 공, 위 공께서는 너무 무섭습니다……. 음, 꼭 그렇지도 않다. 비밀 통로는 무조건 극비일 텐데 평원백이 어찌 부하에게 알려주겠는가…….’
허칠안은 미간을 문지르더니 전서로 말했다.
[삼: 우리가 지금 고려해야 하는 건 원경제의 비밀이 아니네. 항원 대사는 어떡하는가?]
모두가 답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아무도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금련 도사가 침묵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전서로 말했다.
[금: 우선 그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자고. 그의 안위에 관해서라면 자네들 너무 걱정할 필요 없네. 항원은 죽지 않을 거야.]
‘무슨 근거로 이렇게 확신해?’
지서 단체 채팅방 사람들은 동시에 속으로 질문했다.
[구: 이건 항원의 비밀과 관련 있는데 그의 허락을 얻지 않고서는 내가 까발리기는 어렵네. 하지만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줄 수 있는 건 그게 내가 그를 지서 파편 소지자로 삼은 이유라는 거야. 물론 그를 찾아야 하니 찾을 걸세. 지금 별 탈 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별 탈 없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으니.]
‘만약 그렇다면 나는 단기간 내에 신분이 노출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가족들을 데리고 경성을 떠날 필요도 없겠어…….’
허칠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전서로 말했다.
[삼: 이 방면은 우리 큰형이 처리하도록 맡기세. 야경꾼은 거리 순찰을 담당하니 오늘 회왕 밀정의 출입 기록을 조사할 수 있을 걸세.]
금련 도사가 덧붙여 말했다.
[구: 회왕 밀정을 유인해내 성 밖에서 그들을 죽이고 묘진이 영혼을 불러 심문하게끔 방법을 생각하자고.]
천지회는 몇 마디 더 상의한 뒤 기나긴 논의를 마쳤다.
* * *
날이 밝은 뒤, 이묘진과 허칠안은 내성으로 돌아왔다. 허칠안은 야경꾼 관아에 가서 송정풍과 주광효에게 어제 내성 및 황성의 출입 기록을 열람하게끔 부탁하였다.
그리고 그는 내일 기루에 가서 노래를 듣기로 약속한 뒤에야 야경꾼 관아를 나섰다.
허칠안은 애지중지하는 암말을 타고 다그닥다그닥 저택으로 돌아온 후 혼자 나와 기루에서 옷을 갈아입고 변장한 뒤 나섰다. 그는 여기저기 전전하다가 미망인 모남치의 정원에 이르렀다.
그가 한참을 두드렸지만 응답하는 이가 없었다.
그가 다시 한참을 두드리니 정원에서 마침내 발소리가 들려왔다.
끼익!
뜰 문이 열렸다. 민낯의 왕비가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잠에서 막 깨어나 게슴츠레한 눈으로 문턱에 서 있었다.
“이렇게 늦게 문을 여는데, 마당 안에 간통남이라도 있나요?”
허칠안은 콧방귀를 뀌었다.
왕비가 그를 흘겨보았다.
허칠안이 뜰 문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갑자기 미약한 영기에 이끌렸다. 그는 깜짝 놀라 뜰 안의 물항아리를 쳐다보았다.
항아리 안의 맑은 물에는 진흙이 옅게 침전되어 있었다. 연뿌리의 작은 마디는 진흙 속에 반쯤 잠겼으며 거기에는 촘촘한 수염뿌리가 자라나 있었다.
그것이 정말 살아났다.
‘고작 며칠 지났다고 바로 살아난 거야? 역시 환생의 화신(花神)답게 엄청 대단한걸? 그녀가 살리지 못하는 천재지보는 없나?’
구색연화는 지종의 지보로 어쩌면 세상에 한 그루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그건 60년에 한 번 여무는데 맺히는 연밥으로 만물을 점화할 수 있었다.
태평도는 이 덕분에 절세 신병의 대열로 올라갔다.
그리고 지금 구색 연뿌리는 두 마디 있었다. 한 마디는 천지회에게 한 마디는 그한테 있었다.
‘진귀한 정도를 따지자면 내 보물과 비장의 카드 중에서 구색 연뿌리는 3위라고 할 수 있지. 태평도는 연뿌리와 동일 취급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해도 말이야. 지서 파편은 그저 파편이야. 현재 전서와 수납 말고는 다른 효과가 없다고……. 그래도 기운과 신수가 연뿌리보다 서열이 높지. 앗, 아니다. 물어봐야겠다. 계속해서 자랄 수 있는지 연밥을 맺을 수 있는지…….’
허칠안은 조용히 침을 삼키고 미친 듯이 기쁜 감정을 억눌렀다. 그는 물항아리 옆에 엎드려 한번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왕비마마, 마마께서 꽃을 기르고 가꾸는 능력이 이렇게 대단한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런 보물조차도 키울 수 있다니요. 음, 자랄 수 있습니까? 연밥을 맺을 수 있나요?”
왕비는 담담하게 말했다.
“초목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건 자연법칙이지.”
‘그녀의 말은 연뿌리는 열매를 맺을 수 있고 한 마디에서 큰 뿌리로 자랄 수 있다는 뜻이야?’
허칠안은 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했다.
‘그럼 빨리 자라도록 촉진할 수도 있나…….’
그는 묻지 않고 참았다. 이렇게 너무 적나라하면 환생 화신인 왕비의 신분을 명시하는 셈이나 다름없었다.
이러면 미망인은 당황할 터였다.
“얼마나 있어야 자랄지 모르겠네. 얼마 지나지 않아 써야 하는데…….”
허칠안은 일부러 감개한 척했다.
그가 곁눈질로 힐끗 보니 왕비는 좀 망설이며 붉은 입술을 오므리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자라는 추세가 나쁘지 않으니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나의 미망인은 역시나 연뿌리 성장을 촉진할 방법이 있는 거야. 이 왕비 물고기가 갑자기 내 어항에서 물고기 왕이 되었는걸…….’
허칠안은 흐뭇해하면서 농담조로 비웃었다.
‘현재 구색 연뿌리의 영력(靈力)은 미약하지만, 성장함에 따라 영력이 점점 강해질 것이다. 나는 양천환에게 곤령(困靈) 진법을 설치해달라고 도움을 청하러 가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이곳을 지나치는 고수가 있다고 해도 영력을 감지하지 못한다…….’
허칠안은 속으로 말했다.
그는 뜰과 집안을 한 바퀴 돌았다. 부족한 것 없이 있을 건 다 있었고 고장 난 것도 없었다.
* * *
그는 왕비의 안방에 이르렀다. 본래 그는 가구와 대들보에 흰개미가 있는지 없는지 보고자 했다. 얼마 전에 숙모가 막 집안의 하인에게 대들보, 가구 등 목제 용품에 개미를 쫓는 가루약을 바르라고 지시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일은 여인이 할 수 없었기에 허칠안이 직접 나서서 해야 했다.
막 방에 들어가자 왕비가 뒤에서 쫓아왔다. 그녀는 황급히 병풍 위에 걸린 옷과 복대 몇 벌을 거두고 이불 안으로 구겨 넣었다.
젊은 부인인 왕비는 얼굴이 좀 빨개지더니 애써 태연한 척했다.
‘내가 네 복대를 보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뭐…….’
허칠안은 생각하더니 물었다.
“참, 어째서 마마께서 옷 말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지요?”
마당 안에는 옷이 한 벌도 없었다. 이치대로 말하자면 누구든 찌는 듯한 여름에는 당연히 자주 씻고, 옷을 자주 갈아입어야 했는데 마당 안에 어찌 옷 한 벌이 없단 말인가.
“장 아주머니한테 빨아달라고 했어.”
모남치는 한숨을 내쉬더니 침상에 앉아 엉덩이를 치켜들고 이불 밑에 옷을 누르고 치맛자락을 정리하는 척했다.
“그녀의 아들이 이미 두 달 동안 은자를 주지 않았다네. 아니, 한 푼도 없대. 내가 보니 그녀의 형편이 정말 곤란하길래 나 대신 옷을 빨아주고서는 동전 2할을 더 준다고 했네.”
“제가 돈 있는 티 내면 안 된다는 이치를 알려준 걸 아직 기억하십니까?”
허칠안이 일깨웠다.
“당연히 기억하지. 자네가 내게 가르쳐준 거잖나.”
왕비는 콧방귀를 뀌더니 교활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일부러 그녀에게 장롱 속에 숨겨둔 돈 상자를 보여줬네. 고작 은자 한 냥뿐이었고, 전부 부스러기 은전과 동전이었지.”
‘많이 늘었네. 예전보다 훨씬 똑똑해졌어…….’
허칠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성에서 홀로 사는 부인이 은자 한 냥을 저축한다고 하면, 이는 많지도 적지도 않게 중간에 속하는 편이었다.
* * *
오전에 허칠안은 그녀를 데리고 외출하여 한가로이 걸어 다녔다. 번화가를 돌아다니면서 장신구 점포, 비단 점포를 구경하였는데 그 사이에 그녀는 은비녀에 꽂혔다. 은 다섯 냥짜리였다.
하지만 그녀가 머리에 한 장신구는 은자 일 전짜리 싸구려였다.
그녀는 장신구 점포를 떠날 때, 맹목적으로 허칠안의 뒤를 따라다녔다. 그녀는 한걸음에 세 번씩 뒤를 돌아보았지만, 사달라고 입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