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583화 (606/712)

583화. 이야기의 해석

사람들은 삼호의 전서를 본 순간 잠시 침묵하였다. 그들이 삼호의 말을 이해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인종의 기명 제자 초원진과 천종 성녀 이묘진을, 표면적으로는 위연의 충견이나 사실상 그의 아들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저속한 무사지만 사실상 원장 조위의 마지막 제자인 허칠안과 비교해보자.

육호 항원은 확실히 손이 가는 대로 비틀어 죽일 수 있는 메뚜기였다.

원경제가 사람을 보내 그를 공격해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육: 삼호의 말이 맞네. 빈승 역시 그렇게 생각하네. 빈승은 다른 이를 선하게 대하기에 황제 말고는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산 적이 없네.]

[사: 항원 대사, 날이 밝은 뒤 자네 즉시 경성을 떠나게. 양생당 쪽은 내가 지켜보고 있겠네. 그들의 목표는 자네이니 만약 자네가 양생당에 없다면, 아이와 노인에게 별일 없을 걸세.]

초원진은 합리적인 제안을 했다.

이때 지서 단체 채팅방에서 오랫동안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일호가 갑자기 전서로 말했다.

[일: 폐하께서 자네를 겨냥한다고 쳐도 이유가 하나 부족하네. 그는 어쩌면 낙옥형을 생각해서라도 자네를 아주 난처하게는 하지 않을 거야. 자네가 만약 분수에 만족하며 본분을 지킨다면 그도 눈감아 줄 걸세. 만약 자네가 이 일에 개입한다면 그의 보복을 불러올 가능성이 농후해. 천종 성녀도 마찬가지야. 나는 자네가 나서지 않기를 제안하네.]

[이: 죽일 놈의 원경제, 이 몸이 1품이 되면 경성에 들어가 그를 찔러 죽이겠어.]

‘묘진아, 네 말은 내가 전생에 매일 내일부터 다이어트 시작한다고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랑 똑같아. 언제나 그저 말만 할 뿐이지…….’

허칠안은 속으로 빈정댔다.

이묘진의 4품 전투력으로는 황궁조차 뚫고 들어갈 수 없었다. 그녀는 1품이 될 때쯤이면 이미 속세의 사랑과 원한을 끊어 황제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터였다.

의외로 일호는 이묘진의 불경한 경멸을 무시한 채 아무 망설임 없이 전서를 보냈다.

[일: 양생당 쪽은, 내가 사람을 보내 지켜보고 있겠네. 음, 지켜보는 걸 도와주는 것에 지나지 않겠군.]

‘지켜보는 걸 도와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무슨 일이 발생하든 나서지 않을 거라는 말이잖아…….’

사람들은 일호의 의미를 이해했다.

일호는 조정 사람이었으니 그(그녀)가 원경제에게 대놓고 맞설 리 없었다. 만약 이 일로 원경제에게 약점을 잡히면 큰코다칠 가능성이 컸다.

허칠안은 천지회 내부 회의가 끝난 뒤 지서 파편을 잘 챙겼다. 그는 평상 위에 쪼그려 누운 채 동그란 눈을 치켜뜬 종리를 보니 저도 모르게 양천환이 떠올랐다.

‘양 사형은 그해 어떻게 온 걸까? 차마 돌이켜 볼 수 없는 그때의 인생 경험이 오늘날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그의 성격을 키운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종 사저도 앞으로 그럴까?’

허칠안은 종리의 미래를 그리다 보니, 갖은 고생을 견뎌내야만 비로소 큰 사람이 된다는 말처럼 종 사저는 그래도 계속 고생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항원 대사가 좀 성가시겠군. 그의 수련 경지는 약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아직 4품에 이르지 않았는데 이렇게 고급스러운 분쟁이 휘말리다니. 말하자면 천지회 내부에 신분을 모르는 일호를 제외하고 육호 항원이 가장 평범하네……. 금련 도사가 그를 아무런 이유 없이 천지회에 끌어들였을 리가 없다. 그저 항원 대사에게 무슨 특기가 있는지 모를 뿐이지……. 퉤, 특별함. 특별함은 아직 느끼지 못했지만, 불쌍한 건 사실이다. 어릴 때부터키운 사제가 살해당하고, 청룡사에서는 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으니…….’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깊이 잠들었다.

* * *

한밤중이 되었는데 갑자기 번개가 밤하늘을 가르더니 천지를 밝게 비추었다. 이어 귀청을 찢을 듯한 우레 소리가 동반되었다.

허칠안은 깜짝 놀란 나머지 벌떡 일어나 몸을 돌려 앉았다.

종리 역시 우레 소리에 놀라서 깼다. 그녀는 마치 경계하는 토끼처럼 머리를 들고 좌우를 살피며 전전긍긍하였다.

그런 뒤 그녀는 보석처럼 빛나는 검고 밝은 눈동자로 헝클어진 머리카락 너머로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허칠안은 재빨리 신발을 신고 침상에서 내려와 탁자 위의 초에 불을 켰다. 따뜻한 귤색 빛이 방 안을 은은히 밝혔다.

투두둑…….

여름철 폭우가 세차게 내리치며 처마 위, 창문 위에 부딪혀 툭툭 소리를 냈다.

온 세상이 빗소리로 가득 찼다.

여름철 깊은 밤, 집 밖에는 폭우가 억수로 쏟아졌으나 집 안은 고요하였다. 어두운 촛불은 따뜻한 색채를 띠었다. 종리는 참지 못하고 허리를 비틀어 탁자에 앉은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까닭 없이 안정적인 기분이 되었다.

반면 허칠안의 기분은 딴판이었다. 그는 탁자에 앉아 부향이 남긴 남색 표지의 책을 펼쳐 놓았다. 머릿속에는 온통 세 글자뿐이었다. 제기랄!

그는 그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는지 깨쳤다.

상백 사건이었다!

상백 사건은 요족이 개입하여 음모를 꾸몄다. 부향의 시각에서는 더 많은 걸 볼 수 있었다. 그가 보지 못하는 세부 사항과 내막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상백 사건은 마침 부향이 중점적으로 개입한 사건이었다.

호랑이는 산속 짐승으로 밀림의 왕이었다. 그 병든 호랑이는 원경제를 은유했다.

작은 동물을 기만한 여우가 가리키는 건 거간꾼 조직을 조종해 인신매매를 사주한 평원백이었다.

평원백은 야심에 불타 양당과 결탁하여 평양군주를 살해하고 예왕에게 심한 타격을 주어 예왕이 병부상서 자리다툼에서 물러나게 했다.

따라서 고귀한 흰 토끼가 가리키는 건 평양군주였다.

“호랑이는 보고도 못 본 척 여우를 감싸주는 걸 택했다……. 알고 보니 원경제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알았어…….”

허칠안은 중얼거렸다.

“지혜로운 원숭이 왕이 가리키는 건 위연이다. 맞다, 틀림없이 위연이다.”

허칠안은 예전에 소홀히 했던 보잘것없는 세부 사항이 떠올랐다. 평원백이 죽은 뒤 위연이 즉시 야경꾼을 파견하여 거간꾼 조직의 중간 두목을 체포하였었다. 잽싼 행동이 의외였다.

당시 허칠안은 위연의 수가 뛰어나며, 야경꾼의 능력이 출중하다고 개탄했더랬다.

지금 생각해보니 위연은 애초부터 평원백과 거간꾼 조직을 조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호랑이는 일이 까발려지지 않도록 사람을 죽여 멸구하기로 결정하였다. 큰 구렁이더러 흑곰에게 알리게 했다. 흑곰의 새끼가 여우에게 먹혔다고 말이야. 항혜는 흑곰이 아니다. 항혜 역시 평원백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원수가 누구인지 알았기에 큰 구렁이더러 알리게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흑곰은 여우를 죽인 거지 여우 일가를 죽인 게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여우 평원백을 죽였는가? 항원이다. 흑곰이 항원이다. 흑곰의 새끼는 항혜다. 항원은 항혜의 실종을 조사하기 위해 평원백부에 난입하여 그를 죽였다.”

허칠안은 몸서리쳤다. 그가 상백 사건의 다른 진상을 파헤쳤기 때문이었다. 아니, 평양군주가 살해당한 사건의 다른 진상이었다.

평양군주 사건은 요족과 전 예부상서가 합작한 승부수였다. 그리고 부향의 신분은……! 따라서 그녀야말로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내막을 볼 수 있었다.

부향은 이야기의 매개체로 그에게 두 가지 정보를 알려주었다. 첫째, 평원백이 인신매매 조직을 조종한 건 원경제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함이었다.

둘째, 원경제는 ‘병’에 걸렸기에 끊임없이 ‘음식을 섭취’해야 했다.

“선황의 기거록 외에 나는 원경제를 추적 조사할 단서가 하나 더 늘었다. 하지만 평원백은 이미 죽고, 온 가족이 살해당했으니 내가 이 단서를 통해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항원?!”

허칠안은 몸이 떨렸다.

그는 다시 침상으로 돌아와 베개 밑에서 지서 파편을 더듬어 꺼냈다. 동작이 다소 급해 꽤 큰 인기척을 내는 바람에 깜짝 놀란 종리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허칠안은 붓 대신 손가락으로 전서를 보냈다.

[삼: 항원 대사, 여쭤볼 말이 있습니다.]

대답이 없었다. 지서 단체 채팅방은 고요했고, 항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허칠안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한밤중에 잠자지 않고 왜 시끄럽게 구는가?]

그는 지서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도 비연 여협객의 불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장포를 걸치고 탁자에 앉아 다소 나른하게, 또 다소 불쾌하게 전서를 살피는 게 틀림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초원진은 이묘진의 태도가 좀 부적절하다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어쨌거나 삼호 허신년과 이묘진의 친분이 조롱하고 욕하면서 마음대로 지적할 정도까지 다다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묘진은 허부에 기숙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묘진은 호탕한 기질이 너무 강하고, 본성에 따라 행동하는 게 습관이 되었기에 남과 어울려 살아가는 소양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사: 엇, 항원 대사가 대답하지 않았군…….]

잠시 더 기다렸으나 육호 항원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전에 항원이 양생당 주변에 누군가 매복했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던지라 사람들은 바로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허칠안이 전서로 말했다.

[삼: 항원에게 일이 생겼네. 그가 큰 사건에 휘말렸어. 원경제가 사람을 파견해 그를 체포했네. 보복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야. 사람을 죽여 멸구하려 했을 가능성도 농후하네.]

‘큰 사건에 휘말렸고, 사람을 죽여 멸구한다고? 이 일이 원경제와 관련 있다고?!’

천지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삼호가 왜 이렇게 판단하여 이런 말을 내뱉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초원진이 문자를 보냈다.

[사: 삼호, 항원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자네 뭔가를 발견한 건가?]

그는 천지회 사람들의 의혹에 관해 물었지만 답하는 이가 없었다. 성격이 급한 여협객, 먹보 까만 피부, 높은 지위에 앉아 있는 일호 및 염탐하는 금련 도사 모두 삼호가 입을 열어 설명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삼: 몇 마디 말로는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네. 지금 중요한 건 외성 양생당에 가서 상황을 살피는 것이네.]

[이: 좋네!]

허칠안은 즉시 지서를 내려놓고, 장포 하나를 쥐고 입은 뒤 말했다.

“저 나갔다 오겠습니다. 저와 함께 가시죠.”

종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평상에서 일어나 수놓은 신발을 슬리퍼 삼아 신고 그를 따라나섰다.

* * *

빗소리가 ‘솨아’하며 기와 위를 때렸고, 처마 끝을 따라 뚝뚝 떨어졌다. 번개가 칠 때는 마치 끊임없이 나부끼는 진주발 같고, 찬 바람이 불면 또 흩날리는 꽃잎, 잘게 부서진 옥석처럼 비스듬히 박혔다.

정원 안에 고인 옅은 물에 거친 빗방울이 내리치면서 자욱한 물방울이 일었다.

허칠안은 습한 물안개를 맞으며 정원의 다른 쪽을 보았다. 이묘진이 우의 장포를 입고 처마 아래 가만히 서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묘진은 쓸데없는 말 없이 비검을 내던졌고, 세 사람이 훌쩍 뛰어올라 비검을 밟았다.

천종 성녀가 한 손으로 결을 맺자 비검이 ‘슉’하고 소리를 내더니 비의 장막을 뚫고 하늘로 진입하였다.

그들이 경성 상공에서 비행하는 일은, 감정이 묵인하기만 하면 어떠한 문제도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