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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582화 (605/712)

582화. 부향의 이야기

벼랑의 아래쪽에는 위험한 밀림이 우거져 있었는데 밀림 속에는 호랑이가 한 마리 있었다. 호랑이는 병이 들어 더는 사냥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수하의 여우를 보내 작은 동물을 산굴로 들어오게끔 속여 자신의 입맛을 충족했다.

여우는 호랑이가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으니 점점 방만해졌다. 여우는 늑대 무리와 연합하여 고귀한 신분의 흰 토끼를 잡아먹었다.

호랑이는 나중에 이 일을 알았지만 못 들은 척 여우를 감싸주기를 택했다.

숲속, 지혜가 충만한 원숭이 왕이 뭔가 이상함을 알아차리고 수하의 원숭이를 파견해 여우를 조사하였다. 호랑이는 여우가 작은 동물을 기만한 일을 까발리지 않으려 구렁이에게 명령했다.

“너 흑곰을 찾아가서 그의 새끼가 여우한테 잡아먹혔다고 말하거라.”

흑곰은 사실을 안 후 매우 분노하여 여우 집에 뛰어 들어가 여우를 죽였다.

“무슨 뜻이야?”

허칠안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한참을 생각하였으나 이 이야기가 드러내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짙은 기시감이 들었지만, 순간적으로 무엇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는 더 생각하지 않고 안뜰로 돌아가 도의를 연마하고 천지일도참을 수련하였다.

* * *

허칠안은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암말을 타고 다그닥다그닥 기루로 갔다. 그는 기루 안에서 역용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약속한 사택에 도착하여 임안의 마차로 들어갔다.

그는 황실 공주의 마차를 탔다. 수레바퀴는 힘차게 달려 황성으로 진입하였다.

그가 종실이 모인 구역에 가까워졌을 때 맞은편에 자색 단향목으로 만든 화려한 마차가 보였다.

“멈춰라!”

정면에서 달려오던 마차 안에서 회경의 도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차 두 대가 멈춰 섰다. 창가에 앉은 회경은 차창을 열고 청아하면서도 아름다운 얼굴을 반쯤 내밀더니 말했다.

“임안, 너 요 근래 몸이 좋지 않다고 하지 않았니? 지금 어디 가니?”

‘제기랄…….’

허칠안은 마차 안에 앉아 있다 얼굴이 경직되었다.

그는 여동생과 몰래 데이트하던 도중에 언니와 마주쳤다.

회경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어째서 말을 하지 않니?”

‘내가 원하는 건 나 대사 시간 관리학이라고, 나 대사 전복학이 아니라…….’

허칠안의 머릿속에는 온통 집 생각뿐이었다. 그는 목을 쥐고 힘껏 목청을 가다듬은 뒤 회경에게 대답하지 않고 마부에게 태연하게 분부하였다.

“가자.”

그는 5품이 되었기에 목소리를 포함한 자신의 신체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 임시로 가느다란 여인의 목소리를 내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기침 소리로 밑밥을 깔아주어서 몸이 편치 않은 임안의 목소리에 변화가 좀 생겨도 괜찮았다.

‘회경이 눈치채지 못했기를 바라야지…….’

그는 오후 내내 임안과 빈둥거렸다. 그녀와 함께 대화하고, 바둑을 두고, 차를 마시고 이따금 스킨십도 있었다. 점점 더 조화롭고 자연스러워졌다.

* * *

그는 신시 초, 임안부를 나서 여우의 마차를 타고 황성을 떠났다. 허칠안은 막 성문 입구를 나가는데 익숙하면서도 도도한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멈춰라!”

‘제기랄…….’

허칠안은 하마터면 표정 관리 능력을 잃을 뻔했다. 그는 회경이 말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목을 쥐고 힘껏 기침하고, 힘껏 기침하였다…….

그런 뒤 그는 회경을 불러들였다.

그림처럼 수려하고 꽃처럼 우아한 황장녀가 흰 궁군을 입은 채 마차 문을 밀어젖혔다. 그녀는 찻간으로 비집고 들어와 차디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늦가을 깊은 못처럼 맑고 깨끗한 두 눈에는 분노가 서린 상태였다.

“회, 회경 마마…….”

허칠안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거울이 없지만, 그는 지금 자신이 난감하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으려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음을 알았다.

“허 공자, 능력이 좋네. 사사로이 황성에 들어가 공주와 밀회하다니. 아바마마께서 네 보잘것없는 머리를 참수할 꼬투리가 없을까 봐 심심한 거냐?”

회경의 목소리는 살을 에는 듯 차가웠다. 갸름한 얼굴은 서리가 덮인 듯했다.

“본래는 저도 조심합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건 아우 허신년의 얼굴이었다.

그는 임안과 입을 맞추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녀가 공부하다가 경서를 해설할 서길사를 찾았다는 핑계를 대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사적인 수업.avi》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어쨌든 모든 궁녀를 물리쳤으니 아는 이가 없었다.

회경은 냉소를 지었다.

“자네와 임안이 만날 때 궁녀와 시위를 물리쳤는가?”

“당연하지요.”

“번번이 그렇게 하는가?”

“네.”

회경은 맑고 아름다운 눈동자로 그를 차분하게 쳐다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임안은 본 공주보다 못해. 그녀 저택의 시위, 궁녀 중에 누가 진비의 사람인지 아마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황실 구성원이 경서를 해설할 서길사를 찾는다는 게 온당치 않은 건 아니지만, 번번이 하인을 물리친다면 내가 감히 단정하는데 진비가 이미 이 일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 지켜보고 있을 뿐이지. 자네가 복비 사건 때 이미 진비를 궁지로 몰았다가 그녀가 약점을 잡게 하여 돌아서자마자 아바마마한테 일러바쳤지. 자네는 죽고 싶은 건가, 아니면 허신년더러 대신 벌을 받으라고 떠미는 건가?”

‘오늘 막 데이트 빈도수를 줄이자고 말했는데…….’

허칠안은 겸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깨워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회경은 만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이후로 임안을 다시 만나서는 안 되네.”

……허칠안은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회경은 진지하게 설명하였다.

“본 공주가 말했잖나. 그녀는 본 공주만 못하다고. 자신 곁에 얼마나 많은 감시자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해. 자네가 그녀와 사적으로 만나는 건 위험이 너무 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본 공주가 전달해줄 수 있네. 음, 굳이 만나야겠다면 회경부로 오게. 본 공주가 자네를 도와 임안을 불러내지.”

‘이렇게 하면 모든 게 네 눈앞에서 이뤄지는데 내가 어떻게 여우의 작은 손을 잡겠어…….’

허칠안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마마 저택에는 다른 감시자가 없습니까?”

회경은 그를 쳐다보더니 경멸하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마마께서는 아주 지혜로우시고, 계책이 뛰어나십니다. 임안 마마보다 백배 천배 나으셔요.”

허칠안은 바로 아부를 떨었다.

회경은 그의 아부에 가타부타 뭐라 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3일 후, 국자감이 황성의 로호(蘆湖)에서 문회를 개최하네. 북방 전쟁 및 대봉과 무신교의 역사적 원한과 관련 있지. 자네 허신년의 신분으로 본 공주와 함께 참석하게.”

“좋습니다!”

허칠안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경은 만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미소를 지었다.

“20일 뒤에는 여름이 지나가네. 조정은 아마 전쟁을 벌일 테고, 전쟁 때마다 향신(*鄕紳: 퇴직 관리로서 향촌의 실질적인 지배자)은 은과 식량을 기부하는 것이 관례지. 허 공자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원경제가 도를 닦은 이래로 백성을 혹사시키고 물자를 낭비하자, 회경은 휑한 국고를 메우기 위해 향신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어? 나한테 무슨 생각이 있을 수 있겠어? 나는 향신도 아닌데…….’

허칠안이 막 이렇게 생각하는데 회경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렸다.

“허 공자는 아주 부유하니 좀 기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얼, 얼마나 기부해요?”

“팔천 냥은 어떠한가?”

허칠안의 표정이 갑자기 멍해졌다.

한 방 먹었다.

* * *

‘기부금은 기부할 수 없는 거야. 평생 기부할 수는 없어…….’

해 질 무렵, 허칠안은 지친 몸을 이끌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는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침상 위에 누웠는데 방문이 끽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종리가 목욕하고 돌아왔다.

“오늘 오후는 괜찮으셨어요? 다치지는 않았지요?”

허칠안이 물었다.

“다, 다치지는 않았어. 그냥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

종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허칠안은 즉시 일어나 앉아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종리는 순간 억울해졌는지 흐느꼈다.

“내가 방에서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데 자네의 그 망할 검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갑자기 발광하면서 나를 찌르려 들더라고. 1cm 차이로 내 머리가 이사 갈 뻔했어.”

허칠안이 그녀를 위로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끝난 게 아니야. 자네의 망할 검이 줄곧 나를 죽이러 쫓아오더라고. 이 도사가 나를 구하러 달려오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거야.”

“괜찮아요, 괜찮아.”

“끝난 게 아니야. 이 도사가 그 검을 제압하는 과정에 실수로 법술을 잘못 부려서 내 영혼을 흩뜨려버렸어. 그녀는 오후 내내 시간을 들여서야 나를 다시 불러올 수 있었어.”

“괜찮아요, 괜찮아.”

“끝난 게 아니야. 영혼을 다시 불러온 뒤에야 나는 자네 집안 아이가 찹쌀떡을 억지로 먹인 나 자신을 발견했지 뭔가. 하마터면 질식하여 죽을 뻔했어.”

“끝난 게 아니에요?”

“끝났네.”

‘내가 무엇으로 당신을 구원해야 할까요, 나의 오 사저여…….’

허칠안의 마음속에서 비통한 감정이 솟구쳤다. 그는 손짓하여 태평도를 부르더니 훈계하였다.

“너 왜 그녀를 괴롭히려고 하니!”

태평도가 윙윙거리며 진동하였다.

‘왠지 모르겠으나 갑자기 그녀를 보는데 기분이 언짢더라고…….’

이러한 생각이 허칠안에게 전해졌다.

‘나 순간 태평을 탓해야 할지 아니면 너를 탓해야 할지 모르겠잖아!’

허칠안은 다시금 마음속에서 비통한 감정이 솟구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종 사저, 제 침상에서 주무세요. 오늘은 제가 평상에서 잘게요.”

종리는 한사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작은 평상 위에 쪼그리고 누웠다. 그녀는 아주 안정적인 기분에 빠져들었다.

이때 익숙한 두근거림이 전해지자 허칠안은 무의식적으로 베개 밑에서 지서 파편을 더듬어 꺼냈다. 그는 촛불을 켜고 지서 정보를 살펴보았다.

[육: 양생당이 감시당하는 중이네. 누군가 빈승에 맞서고 싶나 보군.]

이건 항원의 전서였다.

‘누군가 항원 대사에게 맞서고자 한다고? 그는 아마 누군가에게 미움을 사지 않았을 텐데?’

허칠안은 몇 초간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반응이 왔다. 항원이 미움을 산 자가 바로 원경제 아닌가? 국공 둘을 베어 죽였을 때나 나서서 금군을 저지했던 검주에서 연화를 수호했을 때나 전부 원경제와 대적하지 않았는가.

[이: 양생당에 계십니까? 위험하지는 않았는지요? 제가 바로 가겠습니다.]

비연 여협객은 언제나 어려운 순간에 정의를 좇아 도움을 주는 일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육: 빈승은 양생당에 있지 않소. 오늘 누군가 남성 쪽에서 내 정보를 캐묻더구려. 내가 전에 도왔던 백성이 몰래 내게 소식을 알렸소. 나는 양생당을 떠나 근처 민가에 숨어 있소. 해가 진 후에는 누군가 양생당 근처에 매복했더군.]

[사: 그들을 상대할 필요 없네. 장소를 옮겨 몸을 숨기게.]

초원진이 건의하였다.

[육: 빈승은 그들이 양생당의 아이와 노인에게 손을 댈까 봐 걱정이오.]

[사: 상대가 누구인지 아는가?]

[육: 모르네.]

허칠안은 손으로 붓을 대신하여 전서를 보냈다.

[삼: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폐하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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