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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579화 (559/712)

579화. 춤

허칠안이 나간 뒤, 부향은 붉고 아름다운 매화가 수놓인 화려한 치마로 갈아입었다. 매아가 그녀를 위해 머리를 다듬어 주었다. 그녀는 쪽을 지고 화려한 머리 장신구를 꽂았다.

그녀는 눈썹 먹으로 정교한 선을 그려내고, 순지(脣脂)로 강렬한 붉은 입술을 칠한 다음 연지로 창백한 얼굴에 혈색을 더했다.

부향은 거울 속의 당대 제일 미인을 응시하면서 활짝 웃었다.

6년 전, 한 절세 미모의 소녀가 교방사에 왔다. 그녀는 죄신(罪臣)의 여식으로 기녀로 전락하였지만, 특별한 목적을 품었다.

그녀는 칠현금을 꾸준히 연마하고, 시문(詩文)을 깊이 연구하여 교방사의 기녀가 되었고, 명성을 널리 떨쳤다.

6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그녀는 이제 이 인생을 끝내려고 했다. 하지만 한 젊은이가 그녀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도광(道光)이 어두컴컴한 하늘을 쪼개듯이 말이다.

이 여정의 마지막은 그 젊은이가 빠지고, 그녀에게 원만한 마침표를 찍어주는 일이 될 터였다.

부향은 재빨리 일어나 치맛자락을 들고 방문을 뛰쳐나갔다. 그녀는 안방부터 바깥 대청까지 긴 복도를 씩씩하게 달려갔다. 마치 6년이라는 시간을 달려 종점에서 그를 만난 것 같았다.

* * *

대청 안, 관현악기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붉은 치마가 홀로 춤을 추었다.

부향은 날아오르는 기러기처럼, 승천하는 용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마지막 가락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허칠안의 품에 쓰러졌다.

품속의 미인이 고개를 들었는데, 이미 얼굴이 눈물범벅이었다. 허칠안은 슬픔을 금할 길이 없었다.

“허랑, 제가 가게 되면 나중에…….”

‘내가 바라는 건 그저 당신의 마음속에 흔적을 남기는 일입니다. 또, 제가 두려워하는 건 당신이 보잘것없는 나를 금세 잊는 일입니다…….’

허칠안은 그녀를 껴안고선 목소리를 낮추었다.

“앞으로 교방사에 오지 않겠소.”

‘당신으로 인해 시작하였고, 당신으로 인해 끝이 난다.’

허칠안에게 이 역시 인생의 어느 여정 중 종착역이기도 하였다.

부향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어느 때보다도 빛나고 매력적이었으며 매화처럼 은은한 정취를 풍겼다.

한 줄기 영혼이 높이 날아올라 하늘하늘 멀리 떠나갔다.

대청 안, 명연, 소아 등의 기녀는 목소리를 낮추고 슬피 울었다. 고운 뺨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 * *

부향 낭자가 죽었다. 한때 명성이 자자했던 명기는 완전히 사라져 교방사의 일생과 작별 인사를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말로는 결코 처량하지 않았다. 허칠안이 오늘 교방사에 나타나 팔천 냥 백은을 들여 부향을 속신함으로써 그녀가 천민에서 벗어나도록 도왔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온 교방사에 퍼졌다.

팔천 냥을 들여 중태에 빠진 기녀의 자유를 되찾아 주었다니, 화본이라도 이런 이야기를 써낼 수 없었다.

고작 미인의 염원을 위한 허칠안의 거금에 비하면, 화본의 그 똑똑한 서생들은 한심했다. 그들은 걸핏하면 배신을 때렸으며 대개 창백하고 무력하다고 묘사되었다.

교방사 여인들은 한동안 허칠안, 이 전기적 색채가 충만한 대봉의 예전 은라에 관해 논하였다.

교방사는 원래 소문이 퍼지는 환승역이었다. 단 이틀 만에 교방사에서 소비할 자격이 있는 손님들은 거의 다 이 일을 들었다.

이 시대에는 재능이 뛰어나나 빈곤한 서생과 부잣집 딸의 사랑 이야기, 재자와 명기의 사랑 이야기는 오래 지나도 시들지 않을 양대 소재라고 할 만했다.

무릇 이 일을 들은 사람들은 허칠안이 정과 의리가 있다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이 점을 흥미진진해하며 널리 퍼뜨렸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시정 백성, 상인 계층, 관리 사회 모두 이 일을 식후 이야깃거리로 삼았다.

* * *

왕 재상은 오늘 아침에 식사할 때, 둘째 아들이 끊임없이 이 소문을 얘기를 하는 걸 들었다.

“팔천 냥 은자래요. 만약 저더러 경영하라고 하면 1년도 안 돼서 두 배로 늘릴 수 있어요. 형님, 허칠안, 바보 아니에요? 만약 미인을 품에 얻기 위한 거라면 그렇다 쳐요. 그런데 하필이면 이미 중태라 완치될 가망이 없는 사람을 속신하다니요. 팔천 냥을 낭비한 셈 아니에요?”

왕 이공자는 부친이 들어오는 걸 눈치챈 즉시 대화를 중단하고 고개를 숙인 채 죽을 먹었다.

왕씨 집안은 가정 교육이 엄하여 식사하거나 잠잘 때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제창했더랬다.

왕 재상이 탁자에 앉아 죽을 한 입 먹더니 둘째 아들을 보며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느냐?”

왕 이공자는 우물쭈물했다.

“별, 별일 아니에요…….”

왕 재상이 손사래를 쳤다.

“말하거라. 음, 허칠안과 관련 있느냐?”

왕 이공자는 부친이 전혀 불쾌해하지 않는 걸 확인하고는 말했다.

“교방사의 부향 낭자가 병이 깊어 약으로도 구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허칠안이 그저 미인의 숙원을 위해 팔천 냥을 써서 그녀를 속신하였다더군요. 정말 가소롭지요.”

그는 평가를 마친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왕 재상은 상대하지 않고 묵묵히 죽을 다 먹었다.

왕 이공자는 부친의 인정을 받지 못하자 좀 실망하였다.

음, 부친은 지금껏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논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마음은 분명히 그와 같을 터였다.

왕 재상은 죽을 다 먹고, 여종이 건넨 손수건을 받아서 입을 닦고 손을 닦은 뒤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만약 팔천 냥을 앞으로 죽을 한 여인을 속신하기 위해 쓸 수 있다면, 내가 너를 사내로서 공경하겠다.”

왕 이공자는 깜짝 놀라 꿀 먹은 벙어리처럼 멍하니 있었다.

* * *

호기루.

“몰랐는데 그가 아주 일편단심이었네요.”

남궁천유는 두 손으로 찻잔을 받치고 웃었다. 그는 지금 비웃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꼭 일편단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정한 건 사실이지.”

위연이 조망대에 서서 넓은 소매를 펄럭이며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한 마디 평가했다.

몇 초 뒤, 그는 벌떡 돌아서서 다소 울적하게 말했다.

“앞서 내가 그의 녹봉 석 달 치를 감했는데 어디서 그렇게 많은 은자가 난 거지?”

‘뭐하러 할 일 없이 그의 녹봉을 감하셨나요…….’

남궁천유가 의부를 힐끗 살폈다.

위연이 개탄했다.

“인생살이란 마음의 평안만을 구하는 일일 뿐.”

* * *

한림원 서길사들이 앉아 있었다. 한림원 대학사가 오지 않자 서길사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허 은라는 정말 정 있고 의리 있어. 팔천 냥을 써서 부향을 속신하다니.”

“부향은 일찍이 병이 깊어 약으로도 구할 도리가 없었는데 그런데도 허 은라는 그녀가 죽기 전에 천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꺼이 은자를 꺼냈어.”

허칠안은 이미 관직에서 물러났지만, 바깥에서는 여전히 습관적으로 그를 허 은라라고 칭했다.

‘무슨 팔천 냥? 뭔 속신?’

허신년은 동료들이 귀에 대고 소곤거리는 걸 들었다. 그는 영문을 몰랐기에, 마음속으로 형님이 또 무슨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일을 했는지 따져보았다.

‘우리 형님이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일을 했는데 나는 아우면서도 왜 전말을 알지도 못하지?’

허신년은 왕사모와의 감정이 급속도로 진전되면서 틈이 생길 때마다 데이트하느라, 진작부터 교방사에 발길을 끊었더랬다. 그렇기에 그는 소식이 뒤처져 허칠안이 팔천 냥으로 부향을 속신한 일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듣기로 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를 비웃더군. 곧 죽을 사람이 어떻게 팔천 냥의 가치가 있단 말인가? 허 은라는 충동적으로 굴었지만 지금은 아마 후회할지도 모르네.”

“내가 듣기로는 허 은라가 명성을 얻으려는 거라던데.”

누군가는 다른 생각을 했다.

다행히 허신년이 멍한 상태에 있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이 서길사들은 인생을 의심할 만큼 욕을 먹었을 것이다.

이때, 기침 소리가 문밖에서 울렸다. 고지식하고 근엄한 한림원 대학사가 책을 손에 쥐고 교실로 들어왔다.

서길사들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한림원 대학사 마수문은 융통성 없고 근엄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당을 결성하지 않고, 진영에 파고들지 않았다. 관리 사회에서의 수련 경지가 가히 최고봉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당쟁이 격렬한 조당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 역시 한림원 대학사 자리에서 수십 년간 한 번도 이동하지 않았다.

한림원의 관원, 서길사들이 알기로 그는 담박하고 차분하며 침착했다.

마치 그의 교실에 걸려 있는 ‘마음의 평안만을 구한다’라는 편액과 같았다.

한림원 대학사 마수문은 수업을 마친 뒤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좀처럼 보기 드물게 상냥한 얼굴을 하고 웃었다.

“지식인이 공부하는 건 책이 아니라 책 속의 이치다. 하지만, 이치는 책에 있을 뿐만 아니라 책 바깥에도 있지. 본관은 너희들이 허 은라가 팔천 냥을 들여 교방사 기녀를 속신한 일에 관해 토론하는 걸 들었다. 한참을 토론하던데 무슨 이치를 얻었느냐?”

‘여기에 무슨 이치가 있을 수 있어?’

“정 있고 의리 있다?”

“돈을 하찮게 여긴다?”

서길사들이 건너짚었다.

한림원 대학사 마수문은 웃으며 고개를 젓더니 허신년에게 시선을 옮겼다.

“신년, 자네 생각은?”

허신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애당초 큰형이 상급자를 칼로 베어서 자신이 감옥에 면회를 갔을 때, 큰형에게서 들었던 말이 이유 없이 떠올랐다.

‘나는 충동적으로 군 게 아니라 마음의 평안을 추구했을 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가 그 후에 했던 모든 일은 그저 마음의 평안을 추구했을 뿐이었다.

허신년이 나지막이 말했다.

“마음의 평안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한림원 대학사 마수문이 사람들을 훑으며 말했다.

“이 말을 기억하거라. 본관은 너희들이 앞으로 어떤 높이까지 올라가든간에 너희가 마음의 평안을 구한다는 말을 잘 새겨 두길 바란다.”

* * *

허신년은 퇴근한 후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는 낮에 들었던 소문을 염두에 두었다.

그는 내청에 들어가니 탁자에 멀뚱멀뚱 앉아 있는 어머니가 보이길래 물었다.

“어머니, 형님은요?”

어머니는 그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나 여기 있다…….”

옆 뜰에서 허칠안이 손짓하였다.

아우가 오자 그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너 집에서 부향의 일을 언급하지 마라.”

허신년이 큰형의 기색을 살폈다.

“부향을 언급하는 게 어때서요?”

“핵심은 부향이 아니야. 핵심은 팔천 냥이지. 숙모가 오늘 상림 아주머니(*祥林嫂: 중국 소설의 인물로 기구한 운명의 여인)처럼 종일 팔천 냥, 팔천 냥 중얼거리더라고…….”

허칠안은 말하면서 미간을 문질렀다. 그는 머리가 좀 아팠다.

‘상림 아주머니가 누구야…….’

허신년은 속으로 중얼거리더니 아래턱을 치켜들고 태연하게 말했다.

“저는 그저 형님에게 한 마디 하고 싶을 뿐이에요.”

“뭐?”

허칠안이 물었다.

“생사는 천명으로 정해져 있으니 너무 상심할 필요 없어요.”

허신년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사람을 위로할 줄 모르면 위로하지 마. 마치 비아냥거리는 말로 들리거든…….’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응’하고 소리 냈다.

그는 부향의 시체를 이미 고이 모셨다. 특별히 종리와 저채미를 데리고 경성에서 풍수가 좋은 묘지를 찾아 안장하였다.

그때 그는 우연히 저채미가 한 말을 들었는데 검주에서 돌아온 뒤 양천환이 수다쟁이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신이 검주에서 한 모든 행동을 주절주절 말했다.

사천감 사제들은 큰 소리로 갈채를 보내 호응하면서 그가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라고 칭찬하였다.

양천환은 아주 기뻐했다.

하지만 허칠안이 교방사에서 팔천 냥으로 부향을 속신한 일이 사천감에 퍼지면서 양천환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요 며칠, 교방사 사람들은 이따금 흰 형체가 나타나는 걸 보고 수군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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