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577화 (557/712)

577화. 절세 신병

허칠안이 허부에 돌아오니 저 멀리 처마 위에 앉은 소소가 보였다. 소소는 붉은색 우산을 쓰고 있으니 매우 농염한 산속 귀신이 산길을 걷는 사람을 유혹하는 듯했다.

아니, 그녀는 원래 귀신이었다.

‘그녀들이 돌아왔군…….’

허칠안은 처마로 뛰어올라 여자 귀신 옆에 앉았다.

“뭐예요!”

소소는 불쾌해하며 그에게 눈을 부라렸다.

허칠안이 그녀를 쿡쿡 찌르니 ‘슉’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그녀의 어깨가 찢어졌다.

그는 갑자기 좀 실망하더니 말했다.

“이제 사천감에 송경을 찾아가 육신을 달라고 할 차례지?”

“퉤, 색마!”

소소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가슴을 한번 쳐다보더니 그에게 침을 뱉고 콧방귀를 뀌었다.

“저는 육신을 달라고 하지 않을 거예요. 주인님이 말씀하셨어요. 지금 육신을 달라고 하면 분명히 허칠안이 저를 방으로 끌고 가서 잠자리할 거라고요. 저는 이 말이 매우 일리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인께서 우리 부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날 육신을 구하러 갈 거예요.”

“네 주인은 순전히 나를 모욕한 거야.”

“정말로요?”

“정말이지. 나는 여기서도 너와 잠잘 수 있는데 누가 굳이 방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고 한 거니?”

“이 쓰레기, 꺼져요.”

소소는 그에게 한바탕 욕을 날렸다.

* * *

허칠안이 처마에서 뛰어내려 마당을 가로지르니 부엌에서 거위를 죽이고 있는 취사부가 보였다. 허영음이 찐빵 두 개 같이 머리를 묶은 채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 광경을 눈이 빠지게 쳐다보았다.

남강에서 온 그녀의 사부, 리나 역시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 광경을 같이 쳐다보았다.

크고 작은 대비가 선명했다.

“영음아, 큰 오라버니 돌아왔다.”

허칠안이 소리쳤다.

콩알이는 그를 상대하지 않고 살해당하고 털이 뽑히는 거위를 전심전력으로 쳐다보았다.

‘어느 부위부터 먹기 시작할지 상상하는 거야? 이 미련한 꼬맹이 같으니라고. 먹을 것밖에 안 보이지…….’

허칠안은 속으로 구시렁거리고는 내청으로 들어갔다.

* * *

이묘진과 숙모는 대청 안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책상 위에는 먹다 남은 윤기 나고 투명한 떡이 몇 조각 놓여 있었다.

숙모는 조카가 돌아오자 뾰족한 아래턱을 치켜들더니 말했다.

“탁자 위의 떡은 너 먹으라고 영음이 남겨 놓은 것이다. 자기가 여기에 남아 떡을 보고 있으면 참지 못하고 먹을까 봐 밖으로 뛰어나가더구나.”

허칠안은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문밖을 쳐다보더니 웃기 시작했다.

“신년은? 오늘 휴가라고 너희 둘이 나가더니 걔는 왜 돌아오지 않았지?”

숙모는 고개를 내밀고 밖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왕 재상이 그를 대접한다고 연회를 베풀어 오늘은 아마 돌아오지 못할 거예요.”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해가 지면 황성 성문이 닫히기 때문에 허신년은 오늘 돌아오지 못할 것이었다.

“재상 대인께서 그를 대접한다고 연회를 베푼다니…….”

숙모는 깜짝 놀랐다.

비록 칠안이 얼마 전에 신년과 왕씨 집안 소저의 ‘사사로운 정’을 가차없이 까발렸지만, 숙모는 이렇게 빨리 진도가 나갈 줄은 예상치 못했다.

더욱이 그녀는 왕 재상이 연회를 베풀어 신년을 정성껏 대접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집안이 맞지 않는데, 에휴, 정말이지…….”

숙모는 좀 화가 나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재상 댁 소저가 시집오다니. 이건 보살을 데리고 오는 거 아니니?”

“숙모, 숙모는 주인마님이잖아요. 며느리가 집에 들어오면 숙모가 길들이는 일에 달렸다고요.”

허칠안이 불을 지폈다.

‘왕사모의 성격과 수단으로는 앞으로 집에 들어오면 매일 숙모를 괴롭혀서 울리겠지. 그럼 재미있겠군…….’

허칠안은 앞으로의 생활이 좀 기대되었다.

숙모는 가슴을 쫙 펴더니 만족해했다.

“그건 당연하지. 설령 그가 재상 댁 소저라도 허씨 집안으로 들어오면 얌전히 내 말을 들어야지.”

이묘진은 그녀를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황혼, 교방사 영매소각의 안방에서 격렬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여종은 처마 밑에 앉아 화로를 지키고 있었는데 낭자의 기침 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부향 낭자는 한동안 앓았다. 보름도 더 전부터 영매소각은 다도회를 하지 않았는데 낭자는 그때부터 앓아눕더니 점점 초췌해졌다.

어머니가 여러 명의를 초대해 부향 낭자의 병을 진찰했지만,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도 서서히 의원을 부르지 않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녀는 딸에게 아주 관심을 쏟았지만, 나중에는 냉담해지더니 마지막에는 아예 병문안도 오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뜰 안의 아름다운 여종과 정원을 지키는 수행원까지 옮겨버렸다.

그들더러 얼마 남지 않은 약골을 지키고 있으라고 할 필요도 없었다.

‘예전에 낭자가 얼마나 어마어마했나. 교방사의 명패이자 최고 기녀로 허 은라와 정분을 나누었잖아. 지금은 실의에 빠져 그녀를 보러 오는 사람도 없네. 허 은라도 소식이 끊겼어. 아주 오랫동안 교방사에 오지 않으셨으니 말이야. 분명히 어떤 계집애나 그 종이 인형이 우리 소저를 제치고 들어간 거야.’

여종은 화로 옆에 앉아 화가 나 눈물을 훔쳤다.

* * *

이묘진과 리나가 돌아오자 숙모는 그때서야 주방에 거위를 죽여서 맛있는 음식을 풍성하게 차리라고 했다.

환한 촛불 아래, 내청의 네 귀퉁이에는 더위를 식히는 데 쓰이는 얼음덩어리 대야가 몇 개 놓여 있었다. 식전 디저트는 사람마다 얼음 감주 한 사발이었다. 달짝지근하면서도 개운하였다.

콩알이 역시 한 사발 받치고 호로록 마셨다. 이 아이는 리나를 따라 역고부의 단련법을 수행하다 보니 식사량이 더 늘었다. 위장의 소화 계통이 어마어마하게 강했다.

콩알이는 감주는 둘째 치고, 독한 술도 여러 사발을 마실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은 일부러 아이에게 독주를 주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 불가피하게 검주 일을 토론했다.

허신년은 자신의 풍부한 ‘학식’과 경험을 이용해 후배들에게 검주의 역사적 배경을 들려주었다. 검주가 가장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사실 검주에 대한 조당의 통제력은 불쌍할 정도로 약했다.

그곳에 강호 필부가 한데 모여 있었는데, 당대 맹주 조청양도 그들을 전부 상대할 수는 없을 정도였다.

숙모는 한참을 듣더니 기회를 찾아 얘기에 끼어들었다.

“나리, 칠안의 그 칼이 절세 신병인데 신년이 말하는 걸 들어보니 아주 값지다던데요.”

허평지는 감주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절세 신병은 당연히 값지지……. 풉!”

그는 옆에 있던 콩알이 얼굴에 감주를 내뿜더니 눈을 부릅떴다.

“부녀자가 뭐가 절세 신병인지 아오? 칠안의 그 검은 더할 나위 없이 날카롭지만, 절세 신병은 아니오. 단어 하나 아무렇게나 듣고 함부로 쓰지 마시오.”

콩알이는 통통한 손을 뻗어 얼굴 위의 감주를 닦아내더니 참지 못하고 손바닥을 핥고 또 핥았다. 이윽고 그녀는 묵묵히 핥기 시작했다…….

숙모는 굴복하지 않고 아름다운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씩씩거렸다.

“신년이 그렇게 얘기했어요. 그건 날 수도 있거든요. 못 믿겠으면 나리가 신년에게 여쭤보시든가요.”

숙부는 즉시 허칠안을 보더니 죽일 듯이 그를 주시하였다.

허칠안은 손가락을 튕기더니 칼을 소환하였다.

“태평!”

슉……. 태평도가 내청 안으로 날아들어와 사람들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허신년은 고개를 치켜들고 멍한 표정으로 태평도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움직일 줄 모르는 돌조각 같았다.

“정, 정말 절세 신병이네…….”

숙부는 한참 동안 탄식하듯이 중얼거렸다.

“모두가 값지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우리 허씨 집안의 가보예요.”

숙모가 흐뭇해했다.

“맞아, 맞아, 가보. 이게 바로 가보지.”

숙부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릇을 제대로 잡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묘진은 고개를 숙이고 사발을 받친 채 작은 입으로 요리를 먹으면서 온 가족이 쉴 새 없이 나불거리며 왈가왈부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녀는 허칠안이 좀 부러웠다. 비록 이 자식이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자신은 남한테 얹혀살며 숙모는 그리 잘해주지 않는다고 늘 비꼬지만 말이다.

이묘진은 허부에 이렇게 오래 살다 보니 그들의 속내가 다 보였다. 이 마님은 심리 상태가 너무 소녀스러워서 자애로운 어머니의 기질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녀는 사실 허칠안한테 정말 나쁘게 굴지는 않았다.

다만 성격이 좀 강할 뿐이었다. 허칠안이 그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그녀는 화를 냈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의 좋은 점은 묵살하였다. 그녀는 그가 재수 없는 놈이며 개자식이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사실 그녀는 먹고 입고 자고 다니고 쓰는 것까지 전부 늘 조카의 몫을 기억했다.

허평지는 영 숫기 없이 구는 성격이라, 아내와 조카가 입씨름하는 걸 듣자마자 머리가 아파 끙끙거렸다. 그는 이러한 이유로 대개 시치미 떼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이묘진은 그가 사실 집안에서 허칠안에게 가장 잘해준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허신년은 그의 모친과 성격이 비슷해서 말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그는 큰형과 부친을 저속한 무사라고 싫어하면서도 그들에게 아주 깊은 감정을 품었다.

허영월의 경우, 이묘진은 허칠안을 의지하고 동경하는 그녀의 마음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아마 나중에 시집가면 많이 좋아져서 부군에게 마음을 둘 테지만.

허영음 역시 허칠안에게 매우 의지했다. 그녀는 오후에 말굽떡을 보곤 눈물을 머금고 한 차례 핥더니 결국에는 이를 악물고 큰 오라버니 몫을 남겨 놓았다…….

음, 이 일은 허칠안에게 알리면 안 됐다.

‘이묘진아, 이묘진. 이것들 모두 죄업이다. 만약 하늘과 같은 나이로 오랫동안 흥성하고 싶으면 반드시 인간 세상의 사랑, 미움, 정, 원한에서 벗어나야 해. 적당히 무관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음, 감정이 깊어봤자 오래 살지 못하잖아.’

그녀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자신에게 경고했다.

그러나 몇 초 뒤, 그녀는 또 욕했다.

‘허칠안 이 미친놈, 조국공 사택에서 수탈한 재물과 보물을 아직 내게 나눠주지 않았잖아. 식량을 풀어 빈민을 구제할 거란 말이다…….’

숙모는 감주를 반 사발 마시더니 좀 느끼했는지 더는 마시고 싶지 않아져서 말했다.

“나리, 나리가 저 대신 마시세요, 낭비하지 말고요.”

숙부는 마침 정신을 집중하여 태평도를 관찰하던 중이었다. 그는 이 말을 듣자 생각도 하지 않고, 숙모의 감주 반 사발을 허영음에게 밀었다.

허영월은 입술을 닦고 기대하며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큰 오라버니, 저도 못 마시겠어요…….”

“큰 오라버니가 도와줄게.”

허칠안은 사발을 받아 콩알이 앞에 두었다.

“너를 도와 영음에게 주지.”

콩알이는 기뻐서 날아갈 지경이었다.

리나는 제자를 보면서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 * *

이른 아침, 태양이 아직 뜨기도 전에 날이 이미 밝았다. 교방사 안, 여종 소매(小梅)는 또 한 번 부향의 기침 소리에 놀라서 깼다.

그녀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더니 탁자 옆으로 가서 물을 한잔 따랐다. 그녀가 사뿐한 발걸음으로 침상 옆으로 걸어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낭자, 물 드세요.”

부향은 백지장처럼 창백한 안색으로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앉았다. 그녀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매아, 좀 배고프구나.”

“낭자, 먼저 쉬고 계세요. 제가 부엌에 가서 죽을 떠올게요.”

매아는 외투를 걸치고 안방을 나와 부엌에 갔는데, 솥 안이 텅 비어 있는 걸 발견했다. 일찍 일어나 밥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영매소각에는 무희 여섯 명과 술 시중을 드는 여종 여덟 명, 잡일 하는 여종 일곱 명, 뜰을 지키는 수행원 네 명, 문지기 사동 한 명이 있었다.

부향 낭자가 오랫동안 병을 앓으며 낫지 않자 수행원, 무희 그리고 술 시중을 드는 여종들은 다른 뜰로 보내졌고, 잡일하는 여종도 한 명만 남았다.

잡일 하는 그 여종은 요즘 잔꾀를 부렸다. 그녀는 곳곳에서 불평했으며 자신의 처지가 불공평하다고 원망하였다. 다른 뜰에 간 잡일 하는 여종은 시도 때도 없이 은자 몇 전을 상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영매소각에 남아 약골을 지키느라 아무런 이득도 얻을 수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