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571화 (601/712)

571화. 임안의 부탁

‘의부님이 처음에 무신교를 치자고 제안하신 이유는 허칠안이 운주에서 죽었기 때문이겠지.’

남궁천유는 추측했다. 당시에 의부는 두텁게 신임했던 심복을 잃은 탓에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또한 의부는 무신교가 너무 빠르고 강대하게 발전한 것을 고려하여, 그들을 제압할 생각도 있었을 듯했다.

나중에 허칠안이 경성에 돌아와 부활했고, 무신교 역시 줄곧 분수를 지켰으니 이제 그들은 전쟁을 일으킬 필요가 없어졌다.

무신교는 한 차례만 제압하면 되었다.

하지만 의부는 규모가 큰 국전(國戰)을 일으키려 했다.

“의부님, 너무 과격하지 않을까요?”

남궁천유는 직접적으로 얘기했다.

대봉의 국력이 쇠약해진 지금 수년에 걸친 대규모 국전은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었다.

“양연이 북쪽에서 급보를 전해왔는데 무신교가 북방 오랑캐와 요족을 공격한다고 하더구나. 촉구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워 원래 영토로 물러난 뒤 요족과 오랑캐가 합류하여 서북 쪽으로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다.”

위연은 고개를 숙이고 감여도를 연구하면서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회왕의 계획이 실패했으나 무신교의 목적은 이루었다. 촉구와 길리지고 중에 누구라도 전사하면 북방 요족과 오랑캐는 전례 없이 허약해질 것이다. 하지만 초주 역시 중상을 입어 3품 한 명을 잃었기에 북진할 힘이 없으니 무신교를 이롭게 해준 게지.”

남궁천유는 깜짝 놀랐지만 문득 모든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의부님께서는 조당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으시는 거군요? 폐하께서 의부님을 북경으로 보내실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동시에 그는 속으로 짐작했다. 이 시기에 폐하가 왕 재상을 제압하는 건 언뜻 보면 균형을 고려하지 않는 일인 듯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알맞게 균형을 잡는 일이었다.

조당에 위연이 없으면 왕 재상 일가가 독점하는 셈 아닌가?

“설령 의부님의 중심이 조당에 있지 않다고 해도 추수 이후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왜 이번 왕당의 위기를 틈타 이득을 취하려 하지 않으십니까? 장차 출정하시게 되면 더욱이 뒤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텐데요.”

남궁천유가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위연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 생각에는 왕당이 무너지는 게 좋은가 아니면 무너지지 않는 게 좋은가?”

남궁천유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무너지는 게 가장 좋습니다.”

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무너지면 가장 좋고, 무너지지 않아도 좋네. 만약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낙정하석(*落穽下石: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도와주기는커녕 도리어 괴롭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할 것이다. 왕정문이 몰락하면 나는 적어도 5년 동안 일을 할 수 있으니. 폐하께서는 나와 적대 관계인 새로운 당파를 돕고 싶어 하시겠지만 하루 아침에 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 왕당이 몰락하지 않아도 그만의 장점이 있지. 왕정문과 나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다투었으니 서로 속내를 잘 아는 셈이야. 조당에 익숙하지 않은 행인이 있는 것보다 익숙한 상대가 있는 편이 낫네.”

이때 하급 관리가 보고하러 와서는 공손하게 말했다.

“위 공, 무영전 대학사 전청서께서 뵙길 청하십니다.”

‘전청서는 왕정문의 심복인데…….’

남궁천유가 위연을 쳐다보았다.

위연은 손사래를 쳤다.

“만나지 않을 것이니 그에게 돌아가라고 하거라.”

하급 관리가 허리를 굽히고 예를 갖췄다.

“네.”

“의부님?”

남궁천유는 속으로 말했다.

‘의부님께서 결국에는 수수방관을 선택하신 겁니까?’

“내가 나서면 재미없어지지.”

위연이 웃으며 말했다.

“이 호의는 적임자에게 넘겨줘야지.”

남궁천유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함께 지내다 보니 의부의 언어 습관에 익숙해졌다.

“자네 먼저 나가게.”

위연이 갑자기 말했다.

남궁천유가 나가자 그는 서신 봉투 몇 장을 꺼내더니 붓을 들고 글을 썼다.

* * *

황궁, 경수궁 안에서 태자 전하는 얼음으로 차게 한 매실을 먹고 있었다. 그는 발 옆에는 얼음덩이 대야를 놓고 궁녀가 부채질해주는 차가운 바람을 즐기면서, 조금도 홀가분하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날 제가 왕 재상에게 아바마마와 겨루지 말고 위연과 한 패거리가 되지 말라고 권했었는데 절대 듣지 않더군요. 지금 아바마마께서 그를 응징하려고 하시니 잘 됐습니다.”

태자와 왕 재상은 아주 큰 교집합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왕당의 적잖은 사람이 확고부동한 태자당이었다.

왕정문이 만약 실각하면 이 사람들 역시 연루될 테니, 태자의 영향력은 다른 형태로 조당에서 약화될 터였다.

진비와 임안은 옆에서 듣다 보니 조금 걱정스러워졌다. 태자의 위치는 경찰이 있던 해부터 줄곧 흔들렸으며, 아무리 해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지지 않았다.

진비가 미간을 찌푸렸다.

“위연 쪽은 어떤 태도니?”

태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무영전 대학사 전청서가 오늘 아침 위연을 만나러 갔는데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진비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위연과 왕 재상은 정적이니 아마 낙정하석을 기다리겠지.”

태자가 친여동생을 바라보았다.

“임안, 허칠안은 네 심복 아니니? 그는 위연이 신뢰하는 자이니 그를 통해 돌파를 시도해보는 편이 낫지 않겠어?”

임안은 부드러운 평상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입은 눈부시도록 붉은 긴 치마는 복잡하면서도 화려했다. 그녀는 금빛 찬란한 관을 썼는데, 동글반반한 달걀형 얼굴선은 우아하고 아름다웠으며 도화안은 생기발랄했다.

임안은 말없이 있을 때는 마치 흠 없이 정교한 옥(玉) 미인 같았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저를 찾아오지 않았어요…….”

임안은 섭섭한 얼굴을 한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초주성 백성 대량 학살 사건 후, 보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허칠안은 지금껏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임안은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몹시 예민해진 상태였다. 그녀는 허칠안이 그 일로 황실을 철저하게 혐오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마저 미워하여 일부러 그녀를 멀리 하는 듯했다.

임안은 전에 그들이 유쾌하게 보내던 시절을 떠올리기만 하면 마음이 쓰라렸다.

“해법은 간단하단다. 네가 슬쩍 사람을 보내 허부에 서신을 전하여 만나자고 약속을 잡거라. 그가 만약 응한다면 그의 마음속에 아직은 네가 있다는 의미잖니.”

태자는 빙그레 웃으며 아이디어를 냈다.

진비가 덧붙였다.

“비밀로 해야 한다. 궁 안의 시위를 보내지 말고 임안부 하인에게 시키거라. 너와 허칠안 사이에 어떠한 왕래가 있다는 걸 네 아바마마께서 알게 하면 안 돼.”

임안은 힘껏 고개를 끄덕이더니 불안하면서도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지금 처리하라고 할게요.”

* * *

점심시간, 좌도어사 원웅과 병부 시랑 진원도는 내성에 한 주루에 들어왔다.

같은 진영의 관원 몇몇도 동행하였다.

점심은 한 시진 동안의 휴식 시간이었다. 경성 관아의 식당은 맛이 없기로 유명했다. 멀쑥한 국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생선 요리와 고기 요리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급 관원이 식당에서 식사한다면, 고관들은 모두 주루에 갔다.

원웅이 찻잔을 들고 웃었다.

“먼저 진 시랑 축하드립니다. 내각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군요.”

진원도가 찻잔을 들고 대답하였다.

“원 대인께서 도찰원을 독차지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그때가 되면 잊지 말고 저희를 돌봐주셔야 합니다.”

도찰원은 권력이 막강한 만큼 문무백관을 감찰할 책임이 있었다. 원웅은 줄곧 도찰원을 손에 쥐고 위연 패거리를 내쫓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진원도는 병부상서 자리에는 가망이 없었기에, 다른 방법을 개척하여 내각이 들어가고자 했다.

두 사람은 과거 부정행위 사건을 함께 도모하였으나 결국에는 실패로 끝이 났고, 지금은 세력을 회복하여 재기하고자 하였다. 그들에게 지난번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폐하가 수수방관하였지만, 이번에는 뒤에서 전적으로 지지해 준다는 점이었다.

“이번에 왕정문이 쓰러지지 않는다고 해도 치명상을 입을 겁니다. 그가 여러 해 동안 내각을 좌지우지하면서 이전에는 그에게 기대어 위연을 견제해야 했지요. 지금은 폐하께서 위연에게 초주 총병을 맡게 하여 초주로 멀리 보내버릴 테니 왕정문이 움직여야 할 차례입니다. 그리고 제가 듣기로 전청서가 오늘 아침에 위연을 만나러 갔는데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합니다. 지난번에 잡놈 허씨만 아니었다면, 저희 위치가 진작에 변경되었을 텐데요.”

진원도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한 관원이 잔을 들고 웃으며 말했다.

“진 시랑께서는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허칠안은 자신도 보전하기 어려워요. 폐하의 미움을 샀으니 조만간 숙청될 겁니다. 우선 큰놈을 먼저 치고, 작은놈을 정리하시죠. 그도 죽음이 멀지 않았습니다.”

“마시게, 마시게.”

그들은 마음껏 담소를 나누며 술잔을 주고받았다.

* * *

“큰 공자님, 밖에 누가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문지기 장씨가 바깥 대청에서 밀서를 올렸다.

허칠안은 마침 허영음을 제기로 삼아 위아래로 차대다가, 어린 여동생을 내려두고 손을 뻗어 서신을 받으면서 물었다.

“누가 보낸 서신인가?”

문지기 장씨가 고개를 저었다.

“밖에 있는 사람이 누구를 대신해 보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공자님의 답신을 기다린다고 말했어요.”

“큰 오라버니, 계속 놀아요!”

허영음은 나는 듯한 기분을 한번 누리고 나니 땅 위에서 생활하는 어리석은 아이가 되는 일이 더는 달갑지 않았다.

허영음은 문어처럼 허칠안의 다리를 붙들고 죽어도 놓지 않았다.

허칠안은 허영음을 걷어찼다. 하지만 허영음은 날아가지 않았고 허칠안은 속으로 이 바보 같은 아이의 힘이 점점 세진다고 중얼거렸다.

“태평!”

그가 소리쳤다.

바람이 휙휙 소리를 내더니 방 안에서 태평도가 날아왔다. 칼이 칼집을 달고 허칠안 앞에 매달렸다.

허영음은 깜짝 놀라 멍하니 작은 얼굴을 치켜들고 우둔한 표정을 지었다.

허칠안은 그녀를 안고, 마법 빗자루를 탄 마녀처럼 태평도 위에 올라타게 했다. 그런 뒤 그는 허영음의 엉덩이를 툭 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가라, 마법 소녀 콩알이!”

태평도는 그녀를 데리고 바깥 대청으로 날아갔다. 허공에서는 콩알이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허칠안은 서신을 펼쳐 읽었다. 임안이 보내온 서신에는, 요 며칠 조당의 논쟁 상황을 알리면서 위연의 의사를 알아볼 수 있는지 없는지 완곡하게 부탁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건 임안 스타일 같지가 않은데. 진비 아니면 태자가 종용한 모양이다……. 왕당에 태자의 지지자가 적잖이 있다고 위 공께서 말씀하신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니 두 국공을 벤 후에 줄곧 임안을 보러 가지 않았구나. 에휴, 일이 너무 많아서 그래. 한 건 다음에 또 한 건이 생기니 그녀를 소홀히 했어…….’

임안은 회경과 달랐다. 회경은 달랠 필요가 없었지만, 임안은 함께 있어 주길 바라는 여자아이였다.

“그더러 주인에게 전하라고 하게. 내가 알았다고 말하면 되네.”

허칠안은 문지기 장씨를 내보내고 원형 탁자에 앉으니 오늘 아침 위연이 한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나는 이 일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네.’

어제 허신년이 퇴근하고 저택에 돌아와 그에게 조당의 일을 얘기하였다. 허칠안은 의구심이 생겨 오늘 아침 야경꾼 관아로 위연을 찾아가 의사를 파악해본 뒤에야 이것이 평범한 싸움이 아님을 깨달았다.

원경제가 왕 재상을 치려고 했다.

‘사실 나한테는 기회다. 비록 신년이 왕 소저와 눈이 맞았지만, 왕 재상의 시야에 들어간 건 아니다. 게다가 운록서원 서생의 신분 그리고 나 때문에 왕 재상에게 빌붙지 않는 이상, 그가 관리 사회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왕 재상은 국자감 출신이라 운록서원 서생을 선천적으로 거부하니 지금이 바로 기회 아닌가? 내가 손에 여러 관원과 조국공이 율법을 어기고 뇌물을 받았다는 증거를 쥐고 있잖나. 이런 정치적인 사활패는 본래 일부는 위 공에게 줘야 하고, 일부는 신년에게 주어야 한다.

지금이 딱 재능을 발휘할 기회 아닌가? 게다가 만약 왕 재상의 호의를 얻을 수 있다면 내가 원경제를 조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마침 이부 안독고에 들어가 권종을 조사하고 싶으니까. 내가 이미 위 공에게 조국공의 밀서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는데, 그는 이 일에 신경 쓰지 않으리라 말했다. 이미 아주 확실하게 암시한 셈이다. 최근에 위 공은 조당의 일에 소극적인 편인 듯하다? 그가 또 뭘 꾸미는 걸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