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화. 용솟음치는 암류 (2)
형제 둘은 한참을 침묵하더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셈 치고 계속해서 토론하였다.
허칠안이 침음하더니 말했다.
“반드시 방법을 찾아서 이부에 다녀와야겠다. 이건 아주 중요해. 신년아, 네가 큰형을 도와 선황의 기거 기록을 조사해주렴.”
역대 황제의 기거록은 역사를 쓰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한림원이 바로 역사 편찬을 담당했다. 허신년이 기거 기록을 조사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허신년은 이유를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부에 어떻게 들어가지? 이 일은 위 공이라도 처리하지 못할 거야. 명분을 만들어 출동하지 않는 이상, 위 공도 이부에 들어가 권종을 조사할 권한이 없다고……. 그리고 나는 이부에 인맥이 없단 말이야. 앗, 가까스로 한 분 있기는 한데 그분의 조카를 내가 이미 풀어줘서 다시 그를 협박할 방법이 없다.’
허칠안은 근심에 잠겨 눈썹을 문질렀다.
“참, 허주를 아니?”
허칠안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화제를 바꾸었다. 그는 초대 감정이라는 줄을 잊지 않고 학식이 풍부한 아우에게 정보를 캐내었다.
허신년은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을 돌이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들어본 적 없어요. 짬이 생기면 한번 찾아볼게요. 황조가 바뀔 때마다 주(州) 이름을 바꾸는 상황이 있었거든요. 또한, 민간에서 주(州)를 부르는 명칭도 달랐어요. 예컨대 검주의 별칭은 무주(武州)예요. 이는 검주에서 무림맹의 세력이 거대하여 관아를 압도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맨 처음에는 우스개로 무주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이 명칭이 점점 공식적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요. 대주(大洲)는 그래도 괜찮아요. 명칭이 변해도 찾기 쉽거든요. 주(州) 중에 소주(小州)는 그 수가 너무 많아서 긴 시간이 필요해요.”
‘검주의 별칭이 무주라면 허주도 다른 주(州)의 별칭인 건 아닐까?’
허칠안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수고 좀 해줘.”
* * *
이튿날 허신년은 말을 타고 한림원에 갔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서길사는 관직이 아니라 공부하고 일한 경력이었다.
허신년은 서길사가 된 후에 계속해서 공부해야 했고, 한림원 학자가 지도를 맡았다. 그 기간에 서적 편찬 업무, 학자를 도와 서적에 주석 달기, 황제를 대신해 조서 초안 잡기, 황제, 황자, 황녀들에게 경서에 관해 설명하기 등등에 참여하였다.
허신년은 허칠안 때문에 앞길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래서 조서 초안 잡기 및 황제에게 경서에 관해 설명하는 업무는 그와 인연이 없었다.
역시나 그는 허칠안 때문에 한림원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대접받았다.
한림원 관원은 청귀 중의 청귀로, 스스로가 아주 높다고 여겼는데 허칠안의 행위를 아주 높이 평가하니 허신년에게까지도 굉장히 예의를 갖추었다.
허신년은 한림원 대학사 마수문(馬修文)의 학술 강연을 들은 후, 안독고에 들어가 선황의 기거 기록을 조사하였다.
황제의 기거 기록은 결코 기밀이 아니었다. 자료의 일종으로, 한림원의 누구라도 조사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기거 기록은 사서에 써 넣어야 했다.
그리고 사서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장차 사서에 공보다 과실이 많고, 논쟁이 아주 많았다고 기록될 원경제와 비교했을 때, 선황의 일생은 평범하기 그지없다고 할 만했다. 우매하지도 않고, 유능하지도 않아 재위 49년 동안 두 차례 대외 전쟁을 일으켰을 뿐이었다.
아니면 남북 오랑캐가 너무 옥죄어 어쩔 수 없이 출병하여 토벌했을 뿐이었다.
허신년은 한참을 뒤적거리던 중 대화 한 단락을 보았다. 정덕 28년에 발생한 일로 대화의 주인공은 선황과 선대 인종 도사였다.
선황이 말했다.
“자고로 하늘의 명을 받은 천자는 영원히 살 수 없네. 도문의 장생법으로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가?”
인종 도사가 말했다.
“장생은 가능하나 영원히 존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선황이 또 말했다.
“듣자 하니 도존은 일기화삼청(*一氣化三淸: 일종의 분신술로, 각기 다른 환영을 만들어냄)으로 3종의 시작이라지. 세 사람에 한 사람인지 아니면 세 사람에 세 사람인지 모르겠군?”
대화는 여기서 끝났다.
“엇? 왜 뒤가 사라졌지?”
허신년은 중얼거리더니 계속해서 뒤적였다.
듣자 하니 이백 년 전, 유가가 대성할 때 황제는 기거록을 보지 못했고, 수정할 자격은 더욱 없었다고 했다. 국자감이 성립되고, 운록서원의 지식인이 조당에서 물러나자 황권이 모든 걸 장악하였다.
그때부터 황제는 기거록을 훑어보고 수정할 수 있었다.
물론 국자감 출신 지식인 역시 아무런 지조가 없는 건 아니었다. 황제와 힘껏 논쟁하여 어느 정도까지는 진실된 내용을 살리곤 했다.
허신년은 이렇게 사소한 부분까지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보면서 기억했다.
* * *
어느새 점심 식사할 시간이 되었다.
허신년은 안독고에서 나와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는 자리에서 오경(五經) 박사 몇몇이 밥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오늘 조당은 정말이지 다채로웠네.”
“좌도어사 원웅이 왕 재상을 뇌물 수수 혐의로 탄핵하고, 병부시랑 진원도는 왕 재상이 군인의 급료 및 지급품을 횡령했다고 탄핵하였지. 그리고 육과 급사중 몇 명도 상소를 올려 탄핵하였네. 마치 미리 상의한 듯 말이야.”
“허, 왕 재상은 진북왕 백성 도살 사건의 일로 폐하를 매우 화나게 했네. 이 일은 폐하께서 왕 재상을 겨냥하려 한다는 걸 명확히 밝힌 것이야. 그 스스로 사직을 청하게끔 강요하고 있지.”
“위연이 아주 기뻐하겠는걸. 그와 왕 재상은 줄곧 정견이 일치하지 않았잖나.”
“오늘은 그저 시작일 뿐이네. 묘수는 아직 뒤에 있다고. 이번에 왕 재상은 위험해. 그가 어떻게 반격하는지 보자고.”
“그가 조당 제공과 연합할 수 있지 않은 이상……. 하지만 조당에서 왕당이 쥐락펴락할 수는 없지.”
허신년은 왠지 모르게 좀 초조해져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우선 왕사모가 떠올랐다. 그는 경찰이 있던 해에 당쟁이 격렬했다는데, 경찰 이후 반년이 지나도 당쟁이 여전히 격렬하다고 생각했다.
당쟁 이후에 또 당쟁이고, 당쟁 이후에 또 당쟁이었다.
진정으로 백성을 위해 일하고, 조정을 위해 일하는 자가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건 도를 닦는 데에 깊이 빠진 그 제왕이었다.
* * *
이튿날, 아니나 다를까 일이 커졌다.
좌도어사 원웅은 다시 상소를 올려 왕 재상을 탄핵하였다. 왕 재상이 뇌물을 받고 6대 죄악을 저질렀다고 일일이 걸고넘어졌다. 또한, 명단 한 부를 나열하니 관련된 왕당 관원이 총 12명이었다.
병부시랑 진원도는 왕 재상이 군인의 급료 및 지급품을 횡령했다고 계속해서 탄핵하였고, 역시나 명단 한 부를 나열하였다.
원경제는 ‘벌컥 성을 내며’ 엄격하게 조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 풍파는 아무런 조짐 없이 일었고, 빠르고 매서웠다. 마치 검객 손에 쥔 검 같았다.
왕당은 미처 손을 쓸 새가 없이 당했고, 관리 사회에 암류가 용솟음쳤다.
허신년은 반나절 휴가를 냈다. 그는 왕씨 집안 소저 왕사모를 만나기 위해 말을 타고 다그닥다그닥 왕부로 향했다.
* * *
왕부의 문지기는 이미 허신년을 잘 알았기에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쏜살같이 저택으로 들어갔다. 그가 한참 뒤, 종종걸음으로 돌아와서는 말했다.
“허 대인, 저를 따라오시지요.”
허신년은 안내를 받아 응접실에 가서 단정하고 온순한 왕씨 집안 소저를 만났다.
그녀는 여전히 전처럼 아름답고 생기가 넘쳤지만, 미간 사이에는 짙은 근심이 배어 있었다.
왕사모가 응접실 안의 하인들을 내보내자 허신년은 나지막이 말했다.
“요 며칠 조당의 일에 대해 들었소. 단순히 자극하려는 게 아닌 듯하오. 폐하께서 진짜 행동으로 옮기시려나 보오.”
“역시나 총명하고 지혜로우시군요.”
왕사모는 억지로 웃더니 말했다.
“아버지께서 어제 서재에서 하룻밤을 고심하시어 저는 일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재상 대인께서는 일 처리가 노련하고 경험이 풍부하시니 틀림없이 대책이 있을 것이오.”
허신년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왕사모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위기가 거세게 찾아와 사전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을 겁니다. 오늘 관원 한 무리가 하옥되었어요. 내일은 어쩌면 저희 아버지 차례일지도 몰라요. 폐하께서 저희 아버지에게 대응할 기회를 주지 않으실 거예요. 제가 아버지께 들으니 전날 폐하께서 병부시랑 진원도, 좌도어사 원웅을 부르셨다더군요. 그들은 준비해서 온 겁니다. 초주성 백성 도살 사건으로 아버지와 위연이 관리들과 연합하여 폐하께 죄기소를 쓰라고 핍박하였으니 지금 폐하께서는 사후에 보복하시는 겁니다.”
허신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재상 대인은 왜 위 공과 연합하지 않으시오?”
왕사모가 고개를 저었다.
“위 공과 저희 아버지는 정견이 일치하지 않아 원래 적대적입니다. 그가 엎친 데 덮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입니다.”
허신년은 순간 말이 없었다. 이건 애당초 문무백관이 동일 전선에서 황권에 대항하던 초주 사건의 형세가 아니었다.
위연을 포함한 다른 관원들에게 왕당 실각은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었다. 이는 장차 더 많은 자리가 공석이 됨을 의미하였다.
이것들 전부 눈에 보이는 확실한 이익이었다.
그는 왕당이 실각한 틈을 타 자신을 발전시켜야만 더 큰 발언권을 가질 수 있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단기간 내에 각 당과 연합해야만 한 가닥의 희망이 보입니다. 하지만 각 당은 폐하께서 아버지를 제압하는 걸 앉아서 기다리는 게 가장 큰 이익이지요.”
왕사모는 한숨을 내쉬더니 온유하게 말했다.
“신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허신년은 대답할 말이 없어 입을 벌렸다.
* * *
남궁천유는 호기루 찻상 옆에 앉아 말 상대를 해주었다. 차가운 기질의 미인이 이 순간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의부님, 이번에 왕당이 쓰러지지 않더라도 타격을 크게 입어야 합니다. 지금부터는 의부님의 길을 막을 수 있는 자가 더는 없습니다.”
왕정문과 의부는 정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정치를 널리 보급하려는 의부를 사사건건 막았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싸웠는데 마침내 이 걸림돌이 사라지게 되었다.
“나를 가로막은 건 지금껏 왕정문이 아니었네.”
위연이 고개를 숙인 채 감여도를 주시하면서 말했다.
“허나 몰락해도 괜찮네. 왕당이 실각하면 내게 적어도 5년이라는 시간이 있으니……”
그는 갑자기 말을 잇지 않더니 한참 뒤 가벼이 탄식했다.
“두 달 지나면 바로 추수군. 내 전쟁터는 더는 조당이 아니니 그들을 따르거라.”
‘의부님께서 다시 통수권을 장악하시려는 계획인가…….’
남궁천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바로 이상한 부분을 깨달았다. 추수 후에 무신교를 치는 건 의부가 진작에 세워놓은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는 앞으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조당에 있지 않으리라는 뜻이었다.
이는 소규모로 무신교를 치는 게 아님을 의미했다. 의부가 오랫동안 질질 끄는 전쟁을 치르려고 하는가?
남궁천유의 마음속에 의혹이 스쳤다.
그렇다면,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