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9화. 용솟음치는 암류 (1)
허칠안은 허부에서 검은색 경장을 입고 암말을 끈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 비단옷은 기루에서 갈아입었다.
그도 다시 갈아입기가 귀찮았다.
식탁 위, 숙부는 술을 마시면서 물었다.
“이번에는 어디에 갔었느냐.”
허칠안은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으며 말했다.
“검주요. 친구를 도와 한판 했어요.”
“천종 성녀와 리나, 그들도 갔지?”
“네.”
숙부는 기회를 잡아 조카를 훈계하였다.
“허구한 날 때리고 죽이지 말아라.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검주는 대봉 무도의 성지라 고수가 부지기수란 말이다. 네 꼴을 보아하니 그 친구들이 강자를 건드리지 않았음을 알겠구나. 그렇지 않았다면…….”
허신년은 쌀밥을 삼키고 말했다.
“검주라면 무림맹이 있는 그 주(州)요?”
“그렇고말고. 검주 무림맹은 세력이 거대하여 현지 관아도 고개를 숙여야 하지. 게다가 그들은 아주 사이가 좋아 한 놈을 건드리면 한 무리를 데리고 나올 거야.”
“무림맹의 맹주는 조청양이라고 하는데 강호 무방 3위예요. 맞지요, 아버지?”
“그렇다. 검주는 강호 악인의 금지 구역이야. 운주와 딱 정반대지. 그 조청양은 강호에서 당대 영웅이고.”
부녀자인 숙모는 흥미진진하게 듣더니 물었다.
“그럼 칠안보다 더 대단하니?”
숙모의 마음속에 재수 없는 조카는 천하제일의 고수와도 같았다. 그녀는 입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진심으로 수긍했다.
숙부는 잠시 침음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칠안은 아직 멀었소. 5년 더 연마하면 어쩌면 그 맹주와 맞서 싸울 수 있을지 모르겠소만. 게다가 그들은 관아의 체면을 살려주지 않소.”
그는 조카가 6품이라는 걸 알았다.
숙모는 듣더니 황급히 말했다.
“칠안이 그자를 건드리지 않아 다행이네요. 어째서 공연히 검주에 싸우러 갔을까요.”
허영월이 큰 오라버니를 대신해 부드럽게 말했다.
“아버지, 큰 오라버니는 정도를 지켜서 일을 처리한다고요. 무림맹이 그렇게 대단하다니 그가 건드릴 리가 없어요.”
허칠안은 입을 꾹 닫고 밥을 먹었다.
허신년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그릇과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말했다.
“형님, 제 서재에 다녀가셔요.”
형제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바깥 대청으로 들어가 서재로 들어갔다.
* * *
허신년은 문을 닫고 곧장 서재 옆으로 걸어가 두꺼운 종이를 꺼내며 말했다.
“원경제가 제위에 오르고 원경 20년까지 스무 해 동안의 모든 일상 생활 기록이 여기에 있습니다.”
허칠안은 훑어보더니 눈을 감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너 이거 초서인데……. 아니, 고작 닷새 동안 20년간 원경제의 일상생활 기록을 수집했다고?”
허신년은 큰형의 놀란 눈을 마주하며 아래턱을 치켜들고 득의양양하지만 애써 담담한 모습을 유지했다.
“저 7품으로 승직했습니다. 유가의 7품은 인자(仁者)라고 합니다. 이 품계에 들어서려면 반드시 인의(仁義)를 깨달아야 합니다. 인자는 천하를 두루 사랑하는 도덕적 모범이지요. 인자야말로 호연정기를 기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7품 인자는 4품 군자경의 기초이지요. 물론 저는 4품과는 아직 멀었지요. 그래서 이건 전혀 기뻐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저한테는 그저 소소한 걸음일 뿐이지요.”
‘기뻐할 만한 일이 아닌데 왜 이렇게 다다다 얘기를 늘어놓는 거니…….’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린 다음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인자는 추가된 전투력이 뭐가 있지?”
허신년은 갑자기 굳은 얼굴로 말했다.
“없어요. 그저 제 기억력과 그리고 신체와 정신이 더 강해졌을 뿐이지요.”
‘풉, 여전히 약골이잖아…….’
허칠안은 웃음을 참으며 일상생활 기록을 들어 자세히 읽었다.
‘이 초서는 정말이지…… 별 볼 일 없군.’
허칠안은 기록을 잠시 보다 보니 상스러운 말을 내뱉고 싶었다.
고대의 초서는 전생의 스타 사인과 비슷했기에, 남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었다. 물론 초서에는 고정적인 형체가 있기에 지식인은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허칠안은 지식인이 아니었다.
“네가 읽어주려무나.”
“……알겠습니다.”
형제 둘 중에 한 사람은 말을 듣고 한 사람은 읽는 사이, 그들은 양초를 두 개나 교체했다.
그러는 동안 허신년은 끊임없이 차를 마셔 목을 축이느라 화장실을 두 번이나 갔다.
황제의 기거록(起居錄)은 일상생활 중, 정무를 논의하는 과정 중의 언행을 기록한 것이었다.
허신년은 전부 기록하지 않았다. 딱 봐도 의미가 없는 일상 대화는 그가 알아서 삭제하였다.
그들은 기거록을 한밤중이 되어서야 다 읽었다.
허칠안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장장 일주향의 시간 동안 내용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런 뒤 눈을 뜨고 다소 실망스러운 듯 말했다.
“별 가치가 없구나. 적어도 나는 지금 알아내지 못하겠다.”
허신년이 물었다.
“형님은 도대체 원경제의 무엇을 조사하려는 거예요?”
“모르겠다. 나는 그저 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야. 음, 짐작이 아니라 확실히 문제가 있다. 검주에서 돌아온 뒤 나는 우리의 폐하께서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거라고 더 확신이 든다. 하지만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단언하기는 어렵구나. 명확한 방향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그와 관련된 사적을 가능한 한 수집하여 그 속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는지 없는지 봐야지.”
허칠안이 말했다.
“원경의 권모술수는 최고봉에 달했는데 어디 간단하겠어요?”
허신년이 한마디 비아냥거렸다.
“그에게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 기거록에 문제가 있다는 건 알아요.”
허칠안은 어리둥절했다.
“기거록에 무슨 문제가 있지?”
‘기거록의 가장 큰 문제는 네 글자가 너무 형편없다는 거거든…….’
허칠안은 질문을 한 뒤 속으로 빈정댔다.
허신년은 차를 한 모금 마셔 목을 축이더니 설명했다.
“기거랑은 보통 1갑 진사가 맡습니다. 진정한 천자의 근신(近臣)으로 청귀 중의 청귀지요. 과거는 3년에 한 번 치르기 때문에 기거랑은 기껏해야 3년 하면 바뀝니다. 어떤 이들은 1년도 채우지 못하지요. 제가 한림원에서 이 기거록을 뒤질 때 아주 이상한 일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일부러 뜸을 들이려고 했다. 그러다 큰형이 곁눈질로 자신을 흘겨보자 황급히 기침 소리를 내어 뜸 들이겠다는 생각을 접고 말했다.
“크흠. 원경 10년과 원경 11년의 기거 기록에는 기거랑의 이름이 명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는 아주 비정상적이에요.”
허칠안은 잠시 침음하더니 물었다.
“기록하다가 실수하여 서명을 잊은 건 아닐까?”
허신년이 고개를 저었다.
“기거랑 관직은 한림원에 속합니다. 저희는 책을 편찬하고, 사서를 편찬하는 자들인데 어찌 이런 실수를 하겠습니까? 형님이 아무래도 저희 한림원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네요. 게다가 역대 기거랑들에게는 전부 기명이 있는데 하필 원경 10년과 11년에만 없다고요? 이 역시 너무 이상합니다. 제가 추측하기로는 10년과 11년에 동일인이었습니다.”
‘원경 10년과 11년의 기거 기록에 서명이 없으니 상응하는 기거랑이 누구인지 모른다……. 만약 이게 실수가 아니라면 왜 인명을 지워야 했을까? 만약 기거 기록에 문제가 있다면 기거랑의 이름을 지울 게 아니라이 기거 기록을 수정했어야 한다.’
허칠안은 머리를 굴리다가 분석했다.
“기거 기록에 문제가 있는데 네가 베껴 쓴 게 나중에 수정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기거랑이 이 내용을 기록하면서 어떤 정보를 알아내, 누군가가 멸구하기 위해 죽이고 제명했다면?”
허신년은 고개를 저었다.
“옳지 않습니다. 형님 추측대로라면 설령 사람을 죽여 멸구할지라도 이름을 없앨 필요는 없지요. 기거 기록은 수정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네 말이 맞구나.”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중을 어지럽히면 안 됐다. 진짜 중요한 건 기거 기록이다. 내용을 수정하기만 하면 그 당시 기거랑이 관직을 파면당했든 멸구 당했든 이름을 지울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 기거랑 자체에 문제가 있겠군.”
허칠안이 결론을 내렸다.
“이 기거랑이 원경제의 비밀과 관련이 있나요?”
허신년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밤이 깊었지만 그의 두 눈은 밝게 빛나고 생기가 넘쳤다. 더할 나위 없이 흥분돼 보였다.
“그가 원경제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모르지만, 한 가지 일이 떠올랐어…….”
허칠안은 미간을 문질렀다. 그는 생각지도 못하게 무심코 또 술사와 관련된 일을 한 가지 발견했다.
만약 기거랑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그의 이름이 저절로 사라졌다면? 이렇게 익숙한 조작은 소소 부친의 사건과 똑같았다. 술사가 천기를 차단하는 조작과 똑같았다.
소항 사건의 배후에는 술사가 조종한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기거랑의 이름 역시 지워졌다……. 두 사람 사이에 틀림없이 연결고리가 존재했다.
그해 조당에서 틀림없이 무슨 일이 발생했다. 이는 게다가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사건이었다.
“어째 뭔가를 빠트린 것 같지? 맞다, 검주를 떠날 때 내가 대리사승과 형부 진 포두에게 소항의 권종을 조사해달라고 부탁했지…….”
허칠안은 깜짝 놀랐다. 만약 그가 신년의 기거 기록으로 다시 이 일을 살피지 않았다면 소항 권종을 거의 잊을 뻔했다.
그리고 5품 화경인 그의 수련 경지로는 기억력이 이렇게 나쁠 리 없었다.
‘보아하니 어렵사리 찾아낸 단서를 저절로 까먹지 않도록 수시로 일기를 써야겠네…….’
허칠안은 속으로 말했다.
“이 기거랑을 어떻게 조사하지?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빠른 방법이 뭘까.”
허칠안이 물었다.
“당연히 관리 사회의 원로들을 찾아가 알아보는 거지요.”
허신년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만약 천기를 차단했다면, 기억하는 이가 있을 리 없다…….’
허칠안이 고개를 저었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이부에 가서 조사해보세요. 이부 안독고에서 모든 관원의 권종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개국한 이래, 육백 년간 경관의 모든 자료 말이에요.”
허신년이 말했다.
그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이것들 모두 기밀인데 형님의 현재 신분은 아주 예민해서 이부가 형님에게 권한을 개방할 리도 없고, 엄두도 내지 못할 거예요.”
원경제가 이를 알면, 바로 이불 보따리를 말아서 꺼지게만 해도 자비를 베푸는 셈이었다. 무고한 죄를 뒤집어씌워 하옥시킬지도 몰랐다.
“이부 상서는 왕당 사람인 듯하다. 네 미래 장인이 나를 도울 수 있을까?”
허칠안은 농담조로 말했다.
“형님, 얼토당토않은 소리 마세요. 저와 왕 소저는 결백해요. 게다가 저와 왕 소저가 친분이 있다고 해도 왕 재상은 지금껏 저를 허락한 적도 없어요. 심지어 제 존재도 모를 거예요.”
허신년은 손사래를 쳐 큰형의 비현실적인 요구를 거절했다.
“네가 있어봤자 무슨 소용이니.”
허칠안은 아우를 비난했다.
“네가 진작에 왕씨 집안 소저를 꾀어내 잠자리를 갖고 친분을 기정사실로 했으면 이렇게 번거로울 일이 뭐가 있겠니. 내가 내일 이부에 들어가 권종을 조사하면 된다. 신년아, 이 점은 네가 큰형보다 못하는구나. 만약 큰형이었다면, 왕씨 집안 소저는 이미 내 여인이었을 것이다.”
허신년은 ‘허’하고 소리 내더니 불쾌해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형님은 교방사 기녀들과 잔 것 외에 어느 양갓집 규수와 자봤습니까?”
허칠안은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큰형은 둘째를 비웃고, 둘째는 큰형을 야유하여 무승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