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7화. 보호 (2)
위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초대 감정이 죽지 않았다는 건 내 예상 밖의 일이군. 자네가 나를 일깨워주었네. 그해 무종 황제가 황위를 찬탈한 후에 암암리에 심복을 파견하여 온 세상을 뒤지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지. 이 때문에 배를 띄워 바다로 나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네. 이 일은 정사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어느 대유가 전기에 기재했네. 초대가 이렇게 오랫동안 참고 있었던 건 첫째로 진북왕과 나를 제거하지 않아서고, 둘째로는 당분간 자네 몸속의 기운을 거두어들일 수 없어서겠지……. 엇? 자네 탁자 밑으로 뚫고 들어가서 뭐 하려고?”
위연은 웃는 듯 마는 듯 물었다.
“위 공의 다리를 찾고 있습니다. 제가 잠시 안고 있을 수 있게 허락해주십시오…….”
허칠안은 우스갯소리를 하며 마음속에 출렁이는 감정의 파동을 감추었다.
툭툭! 위연은 탁자를 두드리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나오게!”
허칠안은 탁자 밑에서 나와 옷깃을 바로하고 단정하게 앉았다.
“위 공, 다 아셨군요. 위 공은 뭐든지 아시는군요.”
위연이 탄식하더니 말했다.
“자네는 내 마음에 드는 자야. 무릇 내가 양성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주 찬찬히 조사하고 감시하지. 자네는 평범한 수행 속도를 넘어섰네. 자네에 대한 감정의 호의, 자네에 대한 영룡의 태도, 불문과 두법할 때 등장한 유가 조각칼, 호국공을 죽일 때 등장한 조각칼. 음, 자네가 계속해서 꽉 찬 숫자의 주사위를 흔드는 것 역시 증명 아닌가? 그리고도 훨씬 많이 있네.
자네에게는 결점이 너무 많아. 이렇게 흩어져 있는 정보를 단독으로 꺼내어 보면 별 게 아니지. 하지만 나는 자네를 아주 잘 아네. 모든 단서를 긁어모아 내가 원래 알고 있던 비밀들과 결합하여 간단하게 복기해보면 거의 다 짐작할 수 있지. 그날 자네가 천인 간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달려와 산해관전역의 상세한 상황에 대해 내게 물었지. 나는 자네에게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네. 나는 자네가 내게 솔직할 줄 알았는데 자네는 은폐를 선택하더군.”
허칠안은 입을 벌렸다. 그는 더 설명하고 싶었지만, 또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에 다소 낙담했다.
“그럼 상백 밑 봉인물 일은요?”
“불문과 두법하는 동시에 몸에 달라붙은 자네의 기운 그리고 몸에 봉인물을 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했지. 다른 증거가 있어야 했네. 예컨대 북행할 때, 자네가 어떻게 4품 오랑캐의 우두머리를 죽이고 왕비를 도로 빼앗아 왔을까?”
위연은 비웃었다.
“내가 자네 몸에 기운이 있다는 사실을 안 이상, 진국검을 사용할 수 있는 초주의 신비로운 고수가 누구인지는 짐작할 필요가 없었지. 사실 북행하기 전까지 나는 자네 몸에 ‘봉인물’이 있는지 확신하지 않았네. 자네, 아주 잘 숨겼더군. 그렇게 감정을 신뢰하고, 불문의 이단을 신임하는가?”
허칠안이 고개를 저었다.
“감정은 신선 인물이니 제가 믿든 믿지 않든 크게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봉인물에 관해서라면, 그의 법호는 신수입니다. 저는 비밀을 지키겠다고 그에게 약조했습니다.”
그는 ‘신수의 과거를 찾겠다’라는 신수와의 약속 역시 내뱉었다.
위연은 침음하더니 말했다.
“감정은 상백 봉인을 해제하려는 요족을 묵인했네. 아마 자네를 염두에 두고 안배하여 그를 이용해 초대에게 겁을 주려 했겠지. 그 신수가 자네 몸속에 하루라도 있다면, 초대는 자네를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네. 예상대로 그는 지금 파헤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지. 이 불문 이단의 신분이라면 내가 몇 가지 짐작해보았네. 아마 만요국 그리고 그해 갑자탕요와 관련이 있을 게야. 앞으로 자네가 강호로 멀리 떠나면 남강의 십만대산(十萬大山)에 가보게. 그곳에 진상을 찾으러 가게.”
‘엇? 신수와 그해 갑자탕요 전역에 관계가 있다고?’
이는 허칠안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위 공께서는 저를 어떻게 처치할 작정이십니까?”
허칠안이 떠보았다.
그는 말을 마친 뒤 위연을 뚫어지게 주시하였다. 허칠안은 그의 눈에서 살기를 볼까 봐 두려웠다.
“나는 자네를 죽이고 싶네, 가능하다면.”
위연은 두 손을 소매 속에 모으고 시선을 낮게 드리운 채 탁자를 쳐다보면서 나지막하고 온화하게 말했다.
“두 감정 사이에 끼어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모르겠으니 차라리 내게 솔직하게 털어놓게. 자네 목적은 맞붙어 싸워 내 비호를 얻고 싶은 게지.”
일침이었다!
허칠안은 좀 부끄러웠다. 그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감정이 신뢰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묻고자 한다면 나는 답을 줄 수가 없네. 나 역시 모르거든. 초대 감정 그쪽이라면, 더욱이 두려워할 필요 없네. 그와 도박하는 건 당대 감정이지, 수를 내고 대처하는 사람은 자네가 아니네. 자네가 지금 해야 하는 건 품계를 끌어올리고 자본을 축적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위연은 잠시 멈칫하더니 부드러운 눈빛을 띠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내가 자네를 도와줄 것이네.”
허칠안은 이 말을 듣자 그제야 진정으로 홀가분해졌다. 그는 마음이 순식간에 안정되는 듯했다.
그는 웃음을 띤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마침 위 공께 가르침을 청할 일이 있습니다만.”
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칠안은 쑥스러워하며 물었다.
“4품으로 어떻게 승직합니까.”
순간 위연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깜짝 놀랐다.
“자네 5품으로 승직했는가?”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1년도 되지 않아 5품 화경이라니…….’
위연은 순간 넋이 나갔다. 한참 뒤 그는 눈동자를 살짝 움직이더니 기세를 회복하였다. 그는 감개가 깊어 탄식했다.
“하긴. 몸에 대기운을 짊어지고 있다면, 1품도 가능성 있지. 애석하게도 장차 고조, 무종의 옛길을 걸을 수밖에 없겠군. 자네는 아마 모를 걸세. 기운은 양날의 칼이네.”
“기운을 얻은 자는 장생할 수 없지요.”
허칠안이 말했다.
“꽤 적잖이 알고 있구먼!”
위연은 표정이 복잡했다.
‘위 공, 지금 모습은 마치 너 몰래 나를 속이고 보충 수업했지! 라고 말하는 듯하다고요.’
허칠안은 웃었다.
“4품은 무사에게 아주 중요한 품계네. 장차 자네가 가야 할 길을 결정하거든. 검에 정통한 자는 검의를 깨닫고, 칼에 정통한 자는 도의를 깨닫지. 바꿀 수 없네.”
위연이 말했다.
“4품의 핵심은 ‘의(意)’라는 글자에 있네. ‘의’는 ‘도(道)’라고도 할 수 있는데 무사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지. 따라서 무사 2품은 합도(合道)라고도 하네. 허칠안, 자네는 가야 할 길에 대해 잘 생각해 봤는가?”
‘위 공, 실례지만 이 세상에 색마라고 하는 의는 없나요…….’
허칠안이 그를 떠보았다.
“천하의 불공평한 일을 모조리 베는 것도 포함됩니까?”
“그건 포부지!”
위연은 언짢아했다.
“자네 사람을 만나거든 소리쳐보게. ‘천하의 불공평한 일을 모조리 베겠다!’ 그러면 그자가 자네의 포부에 굴복하겠는가?”
“…….”
“소위 ‘의’는 무사의 폭력에 의존해야 하네. 정확하게 말하자면, 칼, 검, 창, 주먹 등등의 공격 수단이지. 자네가 칼을 쓰니 당연히 도의겠군.”
“어떻게 도의를 수련해냅니까?”
허칠안은 허심탄회하게 가르침을 구했다.
“내가 전에 자네에게 말한 적 있지. 5품이 되면 모든 건 깨달음에 의존해야 한다고! 자네의 천부적인 자질이 훌륭하고, 이해력도 높으니 아주 단시간 내에 자신을 장악하여 5품으로 승직할 수 있을 걸세. 하지만 어떤 이들은 타고난 자질이 부족해 평생을 해도 육신의 힘을 전혀 장악할 수 없어 승직하지 못하지.
어떻게 도의를 깨닫는지 내가 자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건 경험뿐이네. 우선 자네는 인도합일(人刀合一)의 경지에 도달해야 하네. 간단하게 말하자면 도의 심오한 뜻을 깨닫는 것이네. 이는 도법에 대한 자신의 자각과 결합해야 하네. 세월이 쌓여야만 하지. 그다음으로 자네는 자신의 신념을 칼에 담아야 하네. 자네가 수행하는 건 천지일도참이니 이 공법을 쓰는 사람의 신념을 창조하는 것이지.”
위연은 의미심장하게 지도했다.
‘맞아, 나의 《천지일도참》은 도의의 일종이잖아. 그 원로의 신념은 이러하다. 단칼에 베어 버리지 못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만약 있다면 도망쳐라.’
“위 공, 제 스스로 도의의 절반을 깨우쳤다면요? 그럼 저는 《천지일도참》의 기초 위에 제 것을 더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오직 제게만 속하는 ‘의’가 되는 거 아닌지요?”
허칠안은 좀 놀라우면서도 기뻤다.
“어린이는 가르칠 수 있지.”
위연이 웃으며 말했다.
대화가 끝날 무렵, 위연이 갑자기 말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는가?”
“관성루에서 그때요?”
허칠안은 잘 몰랐다.
“그렇네!”
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그때 부른 곡이 아주 재미있어서 나는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네……. 나는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 서서 미어지게 아픈 가슴을 탕진하지 못하는 게 한스럽구나. 푸른 하늘을 멀리 바라보니 사방의 구름이 움직이고 있구나. 손에 검을 쥐고 천하의 영웅이 누구인지 묻네.”
그는 제법 그럴싸하게 흥얼거렸다.
“그 뒤는? 나는 이 곡이 아주 좋네만.”
위연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내가 어릴 적에 가장 두려워한 일이 선생님이 단상으로 올라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라고 한 건데…….’
허칠안은 말했다.
“나중에 위 공께서 황후마마와의 이야기를 알려주시면 제가 불러드리지요.”
* * *
허칠안은 야경꾼 관아를 나선 뒤 애지중지하는 암말을 타고 기루에 들어갔다. 그는 기루 안에서 물약을 이용해 외모를 바꾸고 그제야 암말에 올라 다시 길을 나섰다.
그는 한참을 돌며 미행하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다음, 살금살금 첩의 마당 문을 두드렸다.
끼익.
마당 문이 열리니 그 안에는 살찐 부인이 있었다.
“??”
허칠안의 머릿속에 일련의 물음표가 스쳤다.
‘나의 왕비는? 내가 아주 힘겹게 훔쳐 온 유부녀 왕비는? 우리 대봉의 제일 미인은? 어떻게 아줌마로 변했지?!’
“누굴 찾으시오?”
아줌마는 의심의 눈초리로 허칠안을 주시했는데 표정이 아주 불량했다.
……허칠안은 자신의 이름을 간소화한 뒤 말했다.
“저는 허천이라고 합니다. 아주머니, 왜 저희 집에 계시죠?”
“자네 집?”
아줌마는 눈빛이 더 의심스러워져서 말했다.
“잠시 기다리시오!”
그녀는 문도 닫지 않고 돌아서서 들어갔다.
대략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아줌마가 빗자루를 들고 노기등등하게 뛰쳐나와 욕을 퍼부었다.
“배은망덕한 개자식이 여기까지 쫓아왔구나. 세상은 이런 너 같은 이런 개자식이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아줌마는 빗자루로 내리쳤고, 허칠안은 머리를 숙여 피했다. 그러면서 뜰 안으로 뚫고 들어갔다.
아줌마는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그를 쫓으며 빗자루를 마구 휘둘렀다.
안채 문이 열리자, 손에 땅콩 한 그릇을 받친 왕비가 문에 기대어 이 광경을 희희낙락 구경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줌마는 꽃처럼 웃는 얼굴을 한 그녀를 보자마자 그 속의 꿍꿍이를 깨달았고, 빗자루를 짚은 채 허칠안을 의심스럽게 쳐다보더니 다시 왕비를 쳐다보았다.
“저는 정말 그녀의 남자예요.”
허칠안은 한 마디 설명하더니 흰 무명옷을 입고, 머리에는 저가의 옥잠을 끼운 젊은 부인을 쳐다보았다. 그는 걸어가서 그녀의 머리에 꿀밤을 때렸다.
“재미있어요?”
진북왕의 과부이자 대봉 제일 미인은 얻어맞더니 다시 정색하였다.
그녀는 고집스럽게 그를 상대하지 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장 어멈, 먼저 돌아가게.”
장 어멈은 몇 마디 중얼거리더니 빗자루를 벽에 기대어 놓고 뜰을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