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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564화 (597/712)

564화. 천하태평

석문 안, 노인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우선 당대 감정이 무엇을 꾸미는지 확실하게 알아야 하네. 초대 감정이 자네를 죽이지 않는 이유는 기운을 빼앗기 위함이지. 그 희겸이라는 자가 만약 자네가 죽으면 기운은 대봉에게 반환될 것이라고 말했겠지. 맞는가?”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이 얘기에는 허점이 존재하네. 만약 그렇다면 당대 감정은 자네를 죽이기만 하면 상대방의 음모를 좌절시킬 수 있거든.”

허칠안은 ‘음’하고 소리내더니 말했다.

“그러므로 당대 감정에게 다른 목적이 있거나 희겸의 인식에 오류가 있다는 거군요.”

노인이 지지했다.

“자네는 역시나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군. 우리는 무사네. 무사들은 이런 일을 맞닥뜨리면 근본적으로 망설일 필요 없이 바로 사건을 들추지.”

“들추지 못하면요?”

허칠안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럼 힘을 축적해 먼저 틈새로 파고들어야지. 양대 감정이 얼마나 강한가에 관계없이 한 가지는 사실이네. 기운이 자네 몸속에 있다는 것이야. 그것이 자네의 힘이고 장차 자네의 버팀목이 될 게야. 이건 감정 역시 바꿀 수 없는 사실이네. 자네는 똑똑하니 내 의미를 이해하겠지.”

노인이 말했다.

“선배님께서 힘을 축적하는 과정에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허칠안이 웃기 시작했다.

노인이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자네가 연회에 참석하러 견융산에 온 게 바로 이 때문이겠지.”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고개를 저었다.

“기운을 건드렸을 뿐입니다. 마침 제 온몸이 전부 운이거든요.”

노인이 웃었다.

“가능하네. 자네가 만약 나를 위해 구색 연뿌리를 찾아올 수 있다면, 내가 나서서 자네를 도와주겠네!”

허칠안이 침음하더니 말했다.

“작은 마디면 됩니까?”

노인이 반문했다.

“작은 연뿌리가 내가 2품으로 승직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보아하니 연뿌리 전체를 원하는구나. 적어도 대부분을. 이렇게 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연뿌리는 소용이 없는데……. 게다가 구색연화는 지종의 지보인데 금련 도사가 절대 나에게 선물하지 않을 거야. 이건 생각할 필요도 없어.’

“다른 물건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까?”

허칠안은 연뿌리에 집착하지 않았다.

“어쩌면!”

노인이 말했다.

허칠안이 잠시 침묵하더니 물었다.

“오백 년 전의 그 감정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그렇네만!”

노인은 확실한 답을 주더니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때는 그가 아직 술사 체계를 창설했을 때가 아니네. 말하자면 재미있지. 그해 그 자식은 꽃미남 소년이었네. 음, 자네가 데리고 산을 오른 그 젊은이처럼 말이야. 매일 대봉의 고조 황제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지. 더할 나위 없이 똑똑하고 지혜로운 자였네. 우정을 중시하고, 신용을 중시하였지. 하지만, 약간 고집이 셌네. 참, 두 사람은 포부도 같았네. 역시 장생을 추구하지 않았어.”

‘이렇게 말하는 걸 듣자니 어째 초대와 선조의 감정이 남달랐다는 것 같네…….’

허칠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자처럼 예쁘고 우정을 중시하고 신용을 중시하며 약간 고집이 세고 장생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는 이 요점들을 묵묵히 기억하더니 읍하고 예를 갖추었다.

“만약 별일 없으시다면, 저는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뒤에서 노인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차 자신이 맞이할 액운에서 어떻게 벗어날지 잘 생각했는가?”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어쩌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허 은라는 역사가 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는 장차 구주를 놀라게 할 큰일을 벌일지도 모르고요.”

허칠안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허풍을 떨었다.

“간절히 바라는 바이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 * *

그는 금홍색의 태양이 산봉우리를 쫙 내리쬐는 뒷산에서 나온 뒤 자신의 뜰로 걸어갔다. 이때 조청양은 이미 사람들을 해산시킨 다음 양최설 등 4품 고수를 데리고 뜰 입구에서 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선조께서 뭐라고 하던가요?”

“허 은라, 방금의 도기는 어찌 된 일인지요…….”

“허 은라, 패도를 제게 좀 보여줄 수 있습니까?”

문주, 방주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만화루 루주 소월노는 분홍색 옷을 걸치고 어색하게 옆에 서서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기품 있는 아름다운 눈으로 기대감을 가득 안은 채 허칠안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선조께서 제게 말씀하신 정보는 기밀이라 외부인에게 말하면 안 됩니다. 패도라, 그 얘기라면…….”

허칠안은 허리에 맨 태평도를 쥐고 바닥에 세운 뒤 눈썹을 치켜뜨고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께서 이걸 뽑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해 보시지요.”

“칼 한 자루일 뿐입니다.”

칼을 쓰는 4품 방주 하나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을 하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손을 비비고 칼자루를 쥔 뒤 힘껏 뽑았다.

뽑지 못했다.

다시 힘을 주었다.

여전히 뽑지 못했다.

‘이건…….’

사람들은 놀랍고도 이상하게 여기며 웅성거렸다.

“비키게, 비켜.”

그 방주는 좀 창피하다고 생각하여 사람들을 물리쳤다. 그의 팔 근육이 부풀어 오르자 기기가 갑자기 폭발했다.

쨍!

태평도가 칼집에서 나왔다. 억지로 뽑혔다.

다음 순간, 그 방주는 감전된 듯 손을 움츠렸다. 손바닥이 더없이 쿡쿡 쑤셨다.

태평도는 약간 분노한 듯 칼끝을 돌려 그 방주를 겨누더니 ‘슉’하는 소리와 함께 그를 찌르려 했다.

사람 한 명과 칼 한 자루가 추격전을 펼쳤다.

“절, 절세 신병이다…….”

“이 칼이 절세 신병? 전에는 어째서 느끼지 못했지?”

“신병에는 혼이 있어서 주인이 아니면 뽑을 수 없고, 주인이 아니면 쓸 수 없지. 손 형이 무식하게 힘으로 칼을 뽑아 칼이 격노했네.”

사람들은 아연실색하여 이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들은 허칠안의 패도가 절세 신병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었다. 비록 방금 기이한 현상을 직접 보았지만, 패도와 연관 지은 사람은 없었다. 전부 허 은라가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줄로만 알았다.

몇몇 4품 무사는 하나같이 태평도를 바라보며 군침 도는 표정을 보였다.

절세 신병이었다.

이건 법기 위의 무기로, 모든 절세 신병은 독립적인 의식을 지니고 있기에 어느 정도는 이미 무기의 범주에서 벗어났다.

동반자에 더 가까웠다.

동시에 절세 신병은 스스로 도기를 비축하여 적과 맞서 싸울 수도 있었다.

허칠안 전생의 말을 응용하자면, 여기에는 ‘나는 이미 성숙한 무기니까 스스로 싸울 수 있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강호 산수들은 법기 하나를 가보로 삼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해주었으며, 아들이 손자에게 전해주었다. 그리고 강호 조직은 절세 신병을 문파의 보물로 삼을 수 있었다.

절세 신병 위에 또 법보가 있었다.

절세 신병과 법보를 구분하는 건 공격 수단이 아니라 특수성과 유일성이었다.

태평도는 오직 무기로만 쓸 수 있었기에 법보가 아니라 절세 신병이었다.

진국검은 절세 신병이면서도 법보였다. 진국검이 한 나라의 기운을 제압할 수 있는 이유는 거기 남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또 예컨대 지서 파편의 효능은 현재 두 가지뿐이었다. 바로 전서와 수납이었다.

하지만 이는 ‘지서’의 진정한 효능이 아니라 파편의 효능이었다.

금련 도사는 온전한 지서에 무슨 신통력이 있는지 파편 소지자에게 여태껏 알려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허 은라가 뜻밖에 절세 신병을 지녔다니…….

“돌아와.”

허칠안이 담담하게 말했다.

태평도는 말을 듣지 않는 시베리안 허스키처럼 또 손 방주를 쫓아다니며 한동안 괴롭히더니 그제야 억울해하며 허칠안의 곁으로 돌아와 그의 주변을 빙빙 돌았다.

“처음 생긴 영지는 아직 성장할 여지가 큽니다. 앞으로 기기로 많이 온양하세요. 그걸로 양의(養意)할 수 있으면 가장 좋고. 서서히 변화할 겁니다.”

조청양의 눈에 부러움이 번쩍였다.

무림맹에는 법기가 적지 않았으나 절세 신병은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그가 수련한 건 도의로, 마침 그의 요구와 부합했다. 설령 고귀한 맹주라고 해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때 소월노가 부드럽게 그를 존대하며 말했다.

“내가 듣기로 절세 신병은 이름을 하사해야 한다더군요. 이름은 칼과 뗄 수 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지. 허 은라가 이 칼을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양최설 등은 바로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소 루주께서는 박식하시군요.”

허칠안은 칼자루를 쥐고 칼등을 튕기더니 말했다.

“칼의 이름은 태평으로, 우의는 천하태평이지요. 만약 태평하지 않으면 태평도가 벨 것입니다.”

사람들은 경건하게 옷깃을 여몄다.

‘천하태평, 세상의 불공평한 일을 다 베어버리겠다…….’

소월노의 표정이 살짝 황홀해졌고, 약간은 복잡한 눈빛으로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 * *

허칠안과 남궁천유는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무림맹 사람들과 작별을 고하고 말 두 필에 올라타 여유롭게 관도에 올랐다.

“남궁 대장은 저보다 견문이 넓지 않습니까. 허주를 들어본 적 있는지요?”

“들어본 적 없네.”

남궁천유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렇게 빨리 대답하다니. 딱 보니 성의가 없어…….’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두 사람은 관도 위를 한참을 달렸지만 끝내 이묘진과 초원진이 돌아오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이 두 사람이 나를 잊은 건 아니겠지? 말을 타고 경성으로 돌아가려면 보름이라는 시간을 써야 한다고. 어찌 비검보다 빠르겠어…….’

허칠안은 자신의 투명 날개에 의지하여 날아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러므로 말했다.

“말을 타는 건 너무 느리니 저희 날아서 돌아가는 게 낫겠습니다.”

남궁천유가 비웃었다.

“자네의 보잘것없는 칼에는 사람을 태울 수 없네만.”

‘사람을 깔보면 안 되지.’

허칠안은 남궁 미인 앞에서 유가 법술 서적을 꺼내 한 페이지 찢더니 손을 털어 불을 붙였다.

“저한테 투명한 날개가 한 쌍 있습니다.”

남궁천유는 주변의 공기가 일렁이더니 어렴풋이 날개가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나는 걸 똑똑히 눈치챘다. 마치 날개 한 쌍이 갑작스레 펼쳐진 듯했다.

“자네는 왜 바로 순간 이동하지 않지? 경성 성문 입구로 곧장 가면 될 텐데.”

남궁천유는 잠시 주저하더니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제가 똑똑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날개 한 쌍을 불러오면 저는 기껏해야 며칠 목이 기울어질 뿐이죠. 하지만 만약 대장이 말한 대로 한다면, 저희는 확실히 바로 경성에 도착할 수 있지만 족인(族人)이 다시 우리 집에 밥을 먹으러 와야 할 겁니다. 제 장례식에 말이에요.”

허칠안이 익살맞게 자조했다.

그는 남궁천유의 어깨를 잡고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두 사람은 날다가 멈추다가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이튿날 새벽녘에 중원 최고의 도시에 도착했다.

허칠안의 목은 피할 길 없이 비뚤어져서 사람을 곁눈질로 보았다.

허칠안은 이런 모습으로 위연을 만나러 가면 체통을 잃으리라는 생각에, 먼저 집에 돌아가 하루 쉬고 내일 다시 위연과 진실게임을 할 작정이었다.

* * *

그가 막 저택으로 돌아오자 허영음이 소식을 듣고 오더니 기뻐했다.

“큰 오라버니, 큰 오라버니…….”

허영음은 허칠안의 양손이 텅텅 빈 걸 보자 열정이 반감되었다.

허영음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큰 오라버니, 선물 가지고 돌아온 거 아니에요? 예전에 큰 오라버니는 놀러 나가면 늘 선물을 가지고 돌아왔잖아요.”

허칠안이 고개를 갸우뚱한 채 말했다.

“이번에 큰 오라버니에게 일이 있어 선물을 챙기지 못했구나. 너는 왜 고개를 갸우뚱하니?”

“저는 큰 오라버니를 따라 하는 거예요.”

허영음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한 모습을 유지했다.

허칠안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허영음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못 참겠어. 정말이지 바보 같은 꼬맹이야. 그녀에게 연밥을 한 알 먹이면 똑똑해질까 모르겠네? 안 돼. 그러면 너무 낭비야.’

“우리 사부님이 왜 돌아오지 않을까요? 제가 닭다리를 아주 많이 숨겨주었다고요. 큰 오라버니도 있어요.”

허영음이 고개를 기울인 채 물었다.

이때 숙모가 대청에서 나와 언짢아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네가 신발 안에 숨긴 닭다리, 내가 버렸다. 그걸 먹을 수 있니? 설사할까 봐 무섭지 않아?”

콩알이는 고개를 비스듬히 한 채 달가워하지 않으며 펄쩍 뛰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어디에 버렸어요? 도로 주워와서 사부님과 큰 오라버니에게 먹여줄 거예요!”

‘네 효심은 이미 변질되었구나…….’

허칠안이 말했다.

“큰 오라버니는 됐으니 도로 주워서 리나 소저에게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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