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3화. 칼에 이름을 지어주다 (2)
땅! 땅! 땅!
멀고 아득하면서도 빽빽한 종소리가 천지 사이와 견융산 구석구석에 울려 펴졌다.
이는 가장 높은 경계 단계 종소리였다. 산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의 습격을 방비하라고 알리는 의미였다.
무림맹의 고수가 잇따라 방에서 뛰쳐나와 넓디넓은 곳에 이르러 무서운 현상을 직접 목격했다. 천지간에 광풍만이 남은 듯 기류가 자갈, 푸른 잎, 마른 나뭇가지 등등을 휩쓸었다.
이런 상황은 이미 보통 사람의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소월노는 분홍색의 장포를 걸쳐 매혹적인 몸매를 가렸다. 그녀는 이런 갑작스러운 일로 화려한 비단 치마를 입을 시간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장신구도 배제한 채 담황색 머리끈 하나로 까만 머리카락을 묶었다.
그녀가 민첩하게 지붕 위로 뛰어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양최설 등 낯선 사람이 몇몇 보였다.
“어찌 된 일인가?”
소월노가 손안의 은색 살 쥘부채를 꽉 쥔 채 도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조께서 관문을 돌파하셨거나 적의 습격이겠지.”
부정문이 나지막이 말했다.
“나 역시 방금 나왔네.”
모든 문주와 방주는 진지한 얼굴로 진지를 정비한 채 적을 기다렸다.
“지종 도사인가?”
소월노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부채를 꽉 쥐었다.
부정문 등의 안색이 동시에 어두워졌다. 만약 지종이 습격하러 왔다면 틀림없이 월씨 산장 때문일 터였다. 그러나 월씨 산장이 비었음을 바로 발견하면 화가 나 무림맹에 보복하러 올 것이었다.
무림맹은 강호에서 대단한 조직이었지만, 도문 3종에 비하면 여전히 열세였다. 선조가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말이다.
하지만 선조가 나선대도 전봉 강자의 전투는 대재앙이었다.
이때 양최설이 말했다.
“맹주님!”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자색 옷을 입은 조청양이 보였다. 그는 뜰에서 뛰어나와 용마루를 몇 차례 오르락내리락하더니 사람들 앞에 멈춰 섰다.
“옛 맹주님께서 관문을 깨셨습니까?”
“적의 습격입니까, 조 맹주님?”
문주와 방주들은 잇따라 앞으로 나가 질문하였다.
조청양이 굳은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옛 맹주님이 아니네…….”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들은 더는 어떠한 요행 심리도 품지 않았다.
조청양은 더는 말하지 않은 채 이내 폭풍우의 발원지를 확실시한 뒤 앞장서서 바람을 타고 갔다.
양최설 등이 따라갔다.
이내 그들은 건축물들에서 멀어져서 주봉 왼쪽으로 돌았는데 그곳에는 절벽이 있었다.
절벽 위에 힘 있는 젊은이가 우뚝 서서 손에는 긴 칼을 들고 있었다. 도기(刀氣)가 하늘 끝을 관통하니 천자의 위엄처럼 번쩍번쩍 빛났다. 도기 주위에는 기류가 흘렀다.
“허 은라?!”
헉 하고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무림맹 사람들은 경악하면서도 망연자실하게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큰 기척을 허 은라가 만들었다니?
‘그, 그의 손 안의 칼이…….’
조청양은 물끄러미 어두운 금빛의 긴 칼에 시선을 고정하였다.
“꿀꺽…….”
누군가 침을 삼키고 탐내는 얼굴로 긴 칼을 쳐다보았다. 눈빛에 부러움이 스쳤다.
누구라도 이것이 절세 신병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강호 사람들은 신병의 매력에 저항할 수 없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절봉에 우뚝 서 하늘을 찌를 듯 떠받들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발견했다.
“적의 습격이 아닌가?”
“허, 허 은라 뭐 하는 거지…….”
군중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지만, 그들에게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부터 강호에는 소문이 하나 늘어날 터였다. 원경 37년, 음력 5월, 허칠안이 견융산에서 갑자기 깨달음을 얻으니, 자연으로부터 이상 현상이 일어났다.
한참 뒤, 도기가 사라지고 광풍이 잠잠해졌다. 마침 이때, 동쪽에서 첫 번째 아침 햇살이 허칠안을 비추었고, 그의 준수한 옆모습이 드러났다.
그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여인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허칠안이 칼을 도로 거두고 칼집에 꽂았다. 그는 소리 없이 숨을 내쉬었고, 문득 자신의 사명을 깨달은 듯 온몸이 상쾌해졌다.
그는 조청양, 양최설 그리고 먼 곳에서 구경하는 무림맹 사람들을 차례대로 훑어보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에 깨달은 바가 있어 여러분을 놀라게 하였군요. 또한…….”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뒷산에서 다소 촉박한 외침이 들려왔다.
“얼른 오게, 얼른…….”
허칠안과 조청양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무림맹 옛 맹주의 목소리임을 알아차렸다.
다른 사람들 역시 이 소리를 들었다.
“무슨 소리지? 누구인가?”
부정문이 사방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부 문주, 무례하게 굴지 말게.”
조청양이 꾸짖었다.
“선조시네.”
무림맹 사람들은 이 말을 듣자 소란스럽게 굴더니 흥분하여 왈가왈부하기 시작했다.
“선조? 선조의 목소리라고?”
“어릴 적에 부친께서 뒷산에 선조께서 살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태어난 이후로 선조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네.”
“선조께서는 오랜 세월 동안 무림맹을 비호하고 계셨네.”
무림맹은 줄곧 선조가 아직 살아 있다고 공언하였지만, 무림맹을 포함한 강호 사람 중, 나라와 나이가 같은 그 인물을 지금껏 본 사람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웃어른들은 뒷산이 금지(禁地)라고 말하며 선조가 수양하는 곳이라고 했다.
이 정보는 대대로 전해져왔지만, 지금껏 누군가 진짜로 그를 만난 적은 없었다. 심지어는 목소리조차 들은 적이 없었다.
“선조께서 조 맹주를 부르십니다. 조 맹주님, 빨리 가보십시오. 선조께서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시어요.”
사람들은 조청양이 제자리에서 맴도는 걸 보더니 초조한 마음에 재촉했다.
“조 맹주님? 선조께서 부르십니다.”
“조 맹주님, 빨리 가시지요.”
그의 부름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조 맹주를 향한 것이었다. 무림맹 안, 견융산 위에 조청양 한 사람만이 선조를 만날 자격이 있었다.
그는 맹주이자 이 시대의 결정권자이기 때문이었다.
조청양은 그래도 움직이지 않고 허칠안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허칠안은 즉시 뒷산으로 걸어갔다. 예전과 비교했을 때, 그는 기운의 비밀이 까발려질까 봐 두렵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이 순간, 하늘에 가득한 구름을 보자 마음이 넘실거리고 소탈해졌다.
사람들은 다소 멍한 시선으로 허칠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선조께서 부른 사람이 조 맹주가 아니라고?’
‘선조께서 수백 년간 기별이 없다가 처음으로 모든 이의 앞에서 목소리를 내 부른 사람이 허 은라라고?’
* * *
석문 앞, 허칠안이 패도를 들고 공손하게 말했다.
“선배님,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는지요?”
“자네는 누구인가? 몸에 왜 기운이 있는 거지?”
나이 든 목소리가 조금도 질질 끌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무사스러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는 결코 돌려 말하지도 뜸 들이지도 않았다.
‘나는 역시 무사와 함께 노는 게 좋아. 감정, 금련, 위연이든 의도가 아주 불순하잖아. 그들과 동료라는 게 부끄럽군…….’
허칠안은 마음속으로 개탄했다.
“저는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대봉의 백성입니다. 허나 제 몸에 확실히 기운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국운이지요.”
선문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마치 그가 계속 얘기하길 기다리는 듯했다.
“20년 전 산해관전역 때 한 신비로운 술사가 고족 천고부의 수령과 한패가 되어 대봉의 국운 절반을 훔쳐 갔습니다. 그 국운이 결과적으로는 제 몸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왜 선택되었는지는 전혀 모릅니다…….”
허칠안은 기운에 관한 일과 자신의 처지를 간단하게 얘기했다.
아주 이상했다. 그는 위연과 금련과 마주할 때는 절대로 기운을 언급하지 않았다. 설사 금련 도사가 이에 대해 조금 안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이 노인네에게는 숨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원인을 따져보자면 대략 두 가지였다. 첫째, 상대방은 솔직한 무사로, 할 말이 있으면 그대로 얘기했다. 금련이나 위연처럼 꿍꿍이가 너무 많지 않았다. 허칠안은 그들과 함께 있으면 저도 모르게 너무 많은 걸 생각하고 고려하곤 했다.
둘째, 안에 있는 저 무사는 나라와 나이가 같아 박식하고 경험이 많았다. 방금 그 일은 근본적으로 속일 수 없었다. 그가 이렇게 몹시 초조하게 불렀다는 건 분명 무언가를 알아차렸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허칠안은 오히려 좀 대범하게 비밀을 털어놓았다.
“어쩐지 이십 여년 간 대봉 국력이 이렇게 재빨리 쇠약했더라니. 황제가 도를 닦아서기도 하겠지만 기운이 도둑맞은 것 역시 원인이겠군.”
노인이 문득 깨달은 듯 말했다.
“자네 방금은 어찌 된 일인가?”
허칠안은 연밥으로 패도를 점화하여 절세 신병으로 승직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걸 노인에게 말했다.
“칼의 이름은?”
“태평입니다. 의미는 천하태평입니다.”
노인은 웃더니 이해했다는 어조로 말했다.
“유가 3품을 입명이라고 하는데 승직할 때 자연적인 이상 현상을 동반하네. 그건 유가 대유가 몸에 인족의 기운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지. 물론 자네는 유가 체계 소속이 아니지만 본질은 같네. 그러니 방금 같은 기이한 현상을 만들어낸 것이지. 여기서 자네에게 충고하자면, 오늘 내 말을 명심하게. 자네가 장차 마도에 빠지면, 기운이 배반하여 죽을 것이네.”
“이해했습니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르침을 잊지 않고 말했다.
“선배님, 제 처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생각? 음, 자네 무림맹에 들어오지는 말게. 나는 자네가 필요 없네.”
노인네가 말했다.
‘쳇, 저속한 무사 같으니라고…….’
허칠안은 속으로 한마디 욕하더니 말했다.
‘태도를 너무 빨리 바꾸는 거 아닌가. 내가 감정과 신비로운 술사의 바둑돌임을 알자마자 바로 쪼네.’
“물론, 만약 자네가 2품으로 승직할 수 있다면, 무림맹이 자네를 비호할 수 있네. 허허, 2품 무사는 설령 다른 체계의 1품을 이길 수 없어도 겁이 없지.”
석문 안의 노인이 웃었다.
“자네는 나를 경계할 필요 없네. 나는 무도의 정상에 오르고자 하는 뜻이 있으니 절대로 기운을 건드리지 않을 걸세. 그럴 뜻이 있었으면 오백 년 전에 대봉의 선조와 결판을 내지 않았겠지. 지금은 또 반란을 일으킬 게 아니니 기운이 있어봤자 소용없네.”
“하지만 만약 대기운을 동반하고 있다면 어쩌면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선배님께서 2품으로 승직할 수 있지 않습니까?”
허칠안은 상대방의 의사를 떠보았다.
노인은 침묵하였다.
허칠안은 곧 자신이 어리석어, 자신에게 아주 불리한 화제를 꺼냈다고 남몰래 욕했다. 노인은 여유롭게 말했다.
“무엇이 자네에게 무사가 기운을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착각을 주었지?”
……허칠안은 허리를 굽히고 읍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설령 이 선조가 그의 기운을 탐낸다고 해도, 저속한 무사가 어떻게 기운을 흡수하는 법을 안단 말인가?
허칠안은 잠시 침묵하더니 달갑지 않아 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선배님께서는 지시하실 일이 더 있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