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562화 (595/712)

562화. 칼에 이름을 지어주다 (1)

“듣자 하니 선조께서 그해 고조 황제와 약조를 하셨다고요?”

허칠안은 서둘러 정보를 취득하고자 했다.

“허허, 그저 구두 약조일 뿐이네. 그해 대주가 전멸한 뒤, 각 의용군이 중원을 두고 쟁탈전을 벌였지. 나는 그때 사실 이미 황위를 빼앗을 마음이 없었네. 왜냐하면 나는 2품으로 승직할 길을 찾았거든. 황위와 비교했을 때 나는 장생을 더 갈망했네. 성격이 그렇기도 하네. 나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 어릴 적에 강호를 떠돌며 은혜가 있으면 은혜를 갚고, 원수가 있으면 원수를 갚았지. 강호 기질이 너무 강해서 아무런 구속도 당하지 않는 생활을 훨씬 갈망했네.

반역을 일으킨 이유는 그해 백성들이 정말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이네. 생활에 희망이 없으니 당연히 반역하려 들지. 그와 나는 달랐네. 그는 야심이 있고, 웅대한 계획이 있었으며 중원을 통일하길 바랐네. 오히려 장생에는 관심이 없었지. 나는 그가 인생은 장생이 아니라 원대하고 위대한 업적을 염두에 두고 추구해야 한다고 자주 말했던 걸로 기억하네. 장생은 의미가 없고, 황제 노릇이야말로 의미가 있었지.

그 전투에서 나는 패배했네. 고의로 져준 게 아니라 철저하게 패배했어. 당시에 그와 구두 약속을 했었네. 장차 그의 불초 자식이 대주 멸망의 전철을 밟으면 내가 먼저 반기를 들어 부패한 조정을 갈아엎겠다고 말일세.”

‘모든 개척자는 열성적인 마음을 품고 있지만, 후대 자손은 종종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몰락하고 마는군…….’

허칠안은 속으로 개탄했다.

“선배님은 지금 2품으로 승직하셨습니까?”

허칠안이 떠보았다.

그는 질문을 던진 뒤 황급히 덧붙였다.

“무례했습니다.”

“만약 진북왕처럼 백성을 도살하지 않고, 자신에게만 의존하여 2품으로 승직하려면 지나치게 어렵지. 나는 오백 년을 홀로 정진하였기에 여전히 마지막 한 발을 디디지 못했네.”

노인은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청양이 나를 도와 관문을 깨기 위해 지종의 연뿌리를 빼앗아 와 내게 먹이고 싶어 했네.”

허칠안은 즉시 조청양을 쳐다보았다.

‘너는 각 문파한테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잖아. 무림맹을 위해 연뿌리를 빼앗아 오면 앞으로 모두 60년마다 먹을 연밥이 있다고 말했지.’

조청양은 그의 시선에 화답했다.

“제가 연뿌리 한 토막을 기를 수 있습니다.”

“기르지 못합니다.”

허칠안이 일깨웠다.

“그럼 저와 상관없는 일이군요.”

조청양이 담담하게 말했다.

“…….”

허칠안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석문을 쳐다보았다.

“연뿌리는 선배님이 2품으로 승직하게끔 도울 수 있습니까?”

노인이 대답했다.

“확률이 아주 높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는 직접 나서지 않은 채 그저 조청양에게 정혈 한 방울을 주었다.

‘이 무림맹 선조는 태도가 아주 이상해!’

허칠안의 눈빛이 번쩍였다.

“언젠가 선배님에게 조그마한 힘을 보탤 수 있길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그는 무림맹 선조와 작별하고 조청양을 따라 주봉으로 돌아왔다.

* * *

황혼 후, 견융산에서 크게 연회를 베풀었다. 각 방주, 문주가 연회에 참석했다.

허칠안은 당연히 연회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 허칠안은 물 만난 고기 같았다.

그는 전생에 지도자를 모시고 술 접대를 적잖이 했다. 사업에 뛰어들어 떠돌면서도 역시나 술자리를 떠난 적이 없었다. 이 세계에 온 뒤에는 궁문에서 도를 닦고, 교방사 내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술자리 접대의 수련 품계는 1품과 견줄 만했다.

조금 지나자 무림맹의 문주, 방주가 한데 뭉쳐 만화루 루주 소월노를 따스하게 불렀다.

양최설 등 역시 아주 기뻐했다. 허 은라가 이렇게 도가 텄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술자리에 정통한 자로, 술을 따르기만 하면 다 마셨으나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거리낌 없이 모두에게 조정의 비밀을 얘기할 수 있었다.

예컨대 한 나라의 국모인 황후가 경국지색인데 허 은라를 아주 총애하여 그를 부마로 삼을 의향도 있다고 말이다.

예컨대 그는 두 공주마마 저택의 단골손님이라, 공주 저택의 구조와 두 공주의 사적인 일들을 얘기할 수 있었다.

예컨대 사천감의 감정 역시 고민이 있었는데 감정의 다섯 제자가 하나 같이 인재이며 말도 듣기 좋게 하여 감정은 그들 때문에 마음을 쓴다고 말이다.

예컨대 왕 재상의 적녀가 허 은라의 사촌 동생에게 마음이 깊어 헤어나올 수 없으며, 그를 위해서는 왕 재상과 사이가 틀어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래도 물론 가장 많이 얘기한 정보는 교방사의 놀라운 소문과 우스운 일이었다.

부향 낭자는 칠현금 솜씨가 좋지만, 퉁소 솜씨가 더 좋았다. 명연 낭자는 춤을 추는 모습이 세상 둘도 없고, 자태가 부드러웠다. 소아 낭자는 책을 많이 읽고 인정이 두텁고 정의감이 넘쳤다…….

그는 약간 취할 때까지 마신 뒤, 술자리를 파했다.

* * *

허칠안은 자신의 패도를 들고 비틀비틀한 발걸음으로 그가 배치받은 뜰로 들어가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는 눈의 취기가 바로 사라졌다.

“경성 일을 다 처리하고, 원경제를 다 조사한 뒤 검주에 와야겠다. 사전에 인맥을 잘 쌓았으니 앞으로 검주에서 그런대로 살 수 있겠어…….”

그는 등잔에 불을 붙이고 탁자에 앉은 뒤 흑금장도 꺼내 탁자 위에 가로놓았다.

이어 옥석경을 꺼내 연밥 한 알을 쏟아내어 벗긴 뒤 연밥을 칼끝에 살짝 끼웠다.

그는 옥합이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해도 4척(尺) 길이의 칼을 둘 수는 없었다.

종리가 그의 칼은 기령이 부족하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연밥으로 기령을 점화하면, 이 칼을 절세 신병 대열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연밥을 칼끝에 끼우니, 마치 칼 위에 붙은 것 같네. 이렇게 하면 옥합이 필요하지 않겠어…….’

허칠안은 ‘훗’하고 소리 내었다.

‘나는 정말 기지가 있나 봐.’

시간이 1분 1초 지나갔다. 허칠안은 탁자에 앉아 눈이 빠지게 주시하며 연밥이 탁자로 떨어지는 걸 방지하였다. 만약 탁자를 점화하면 일이 아주 우스워진다.

그는 앞으로 암말을 탈 필요가 없어진다. 탁자에 앉아 외출하면 네 발 달린 탁자가 재빠르게 산을 넘고 고개를 넘지 않겠는가?

그는 팔꿈치로 탁자를 괴고 뺨을 받친 채 멍하니 넋을 잃었다.

그는 한 손으로 뺨을 괸 채, 다른 손의 손가락으로 한가로이 탁자를 두드렸다. 그는 자신이 놓인 상황이 꼭 이런 분위기인 듯했다.

‘자정이 지났는데 약속한 손님이 아직 오지 않아, 한가하게 바둑돌을 두드리니 불똥이 떨어지네.’

높이 걸린 보름달, 적막한 달빛은 사창(紗窓)에 막혀 집 밖을 비추었다. 날카로운 벌레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일어나 고요한 밤을 부각하였다.

창가의 나무 선반 위에는 짐승 머리의 향로가 놓여 있었으며, 모기를 쫓는 향료가 타고 있었다. 산에는 모기가 많아 밤에 모기향을 피우지 않으면 그는 근본적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물론 6품 이상의 무사는 모기가 물든 말든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어느새 세 시진이 지났다. 달빛은 사라져 보이지 않고, 창밖에는 동이 텄다.

허칠안은 이 과정 중에 연밥이 조금씩 시들고, 흑금장도가 서서히 탈바꿈하는 걸 지켜보았다. 흑금장도는 끝이 날카롭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더는 사물(死物) 같지가 않았다. 마치 새로 살아난 것 같았다.

희고 보드라운 연밥이 아예 시들어 오그라들더니 땅에 떨어졌다.

윙!

흑금장도가 소리를 내며 진동하더니 저절로 날아올라 허칠안 주위를 맴돌며 난무했다.

흑금장도는 마치 새끼가 제 부모에게 친밀하게 굴 듯 허칠안을 아주 친밀하게 대했다.

‘아주 기묘한 기분이다. 비록 칼 한 자루지만, 내가 살아 있다는 기분을 체감하게 주네. 아이 같고 애완동물 같다…….’

허칠안은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치켜 올라갔다.

허칠안은 흑금장도가 방 안에서 춤추듯 이리저리 나는 광경을 보자니 저도 모르게 자신이 전생에 키웠던 시베리안 허스키가 떠올랐다. 시베리안 허스키는 지금처럼 날뛰면서 기분 좋을 때는 쉴 새 없이 머리를 자신에게 들이댔더랬다.

그가 이 생각을 막 떠올리는데 흑금장도가 예쁘게 휘날리며 칼끝을 그에게 조준하더니 슉 날아왔다.

‘하지 마, 하지 마. 죽을 거라고…….’

허칠안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땅!

그는 미처 피할 겨를도 없어 어쩔 수 없이 금강신공을 개시하였고, 장도가 가슴에 ‘땅’하고 부딪혔다. 마치 바늘로 콕콕 찌른 듯 쿡쿡 쑤셨다.

‘흑금장도의 힘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네. 예전에 내가 나를 베려고 시도했었을 때는 전혀 아프지 않았는데…….’

허칠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서서 패도의 사랑을 묵묵히 견뎌냈다.

땅! 땅! 땅!

흑금장도는 마음껏 뛰노는 시베리안 허스키처럼 끊임없이 ‘머리’를 허칠안의 등에 들이밀며 친근함을 드러냈다.

‘내가 만약 금강신공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아마 첫 번째로 패도의 사랑에 죽은 주인이 되겠지. 나한테 신체를 보호하는 신공이 있어서 다행이야. 음, 이 역시 기운의 일부분이겠군.’

한참 지난 뒤 흑금장도는 충분히 다정함을 드러냈는지 탁자에 가볍게 떨어졌다.

허칠안은 칼자루를 잡고 몸 앞으로 가로지른 뒤 칼을 주시하며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다음은 너에게 이름을 하사하겠노라.”

종리의 말에 따르면, 칼에게 이름을 하사하는 일은 주인을 인식하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였다. 영혼이 있는 절세 신병에게 일단 이름이 생기면 다시는 변하지 않았다.

이름을 하사하는 자가 그것의 주인이었다.

진국검의 이름은 ‘진국’이었다. 이는 그 개국황제가 하사한 이름이었다.

그렇기에 진국검이 존재하는 의의는 국운을 억누르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허칠안이 그걸 사용할 수 있었다.

이름을 짓는 일에는 절세 신병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의의가 있었다. 이는 존재의 정의를 내린 셈이었다.

그리고 주인에게 이는 검을 한 번 양심에 묻고, 한 번 원대한 뜻을 펼치는 일이기도 했다.

‘무슨 이름을 지어야 좋을까…….’

허칠안은 한참 침음하였다. 그는 무슨 일인지 몰라도 갑자기 열정이 끓어오르는 듯했으며, 마치 어둠 속에서 천지와 교감하는 듯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 자신을 기다린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는 어쩐지 방이 너무 좁고, 지붕이 너무 낮아 제 의기를 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 * *

쾅!

그는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더니 줄곧 밖으로 걸어가 절벽 꼭대기까지 갔다.

이때 하늘은 푸르르고, 산바람이 휙휙 소리를 내어 그의 긴 머리와 옷자락을 흔들었다. 사람 전체가 마치 떠오르듯 수시로 바람을 타고 갔다.

“나는 다른 세계의 여행객으로 이 세계에서는 신을 공경하지 않고, 부처에게 절하지 않으며, 군왕과 세상을 숭배하지 않는다. 숙원만 있을 뿐인데 그건 바로 세상에 불공평한 일이 적어지는 것이다. 백성이 가축이 아니라 좀 더 사람처럼 살아가며 초주성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러니 너를 ‘태평’이라고 부르겠어. 나를 따라 불공평한 일을 철저하게 뿌리 뽑고 백성을 위해 태평을 열자! 후세를 위해 태평을 열자!”

그는 생각과 마음이 유리처럼 맑고 깨끗해지는 기분을 즐기며, 긴 칼을 높이 들었다.

처컥!

기운을 차단하는 데 쓰이는, 감정이 선물한 법기 옥패에 금이 갔다.

이 순간, 감이 온 태평도(太平刀)는 하늘을 찌를 듯한 도의를 폭발시키더니 곧장 하늘 끝으로 치솟아 견융산 꼭대기의 구름층을 뚫었다.

이 순간, 견융산에서 갑자기 이상한 현상이 생겨났다. 광풍이 일더니 일 년 내내 흩어지지 않는 운무를 흩뜨리고 무수한 마른 나뭇가지와 푸른 잎을 일으켜 밀림이 흔들렸다. 먼 곳에서 보면 마치 산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이런 움직임은 견융산 무림맹 본부의 모든 고수를 놀라게 했다. 산에서 쉬고 있던 양최설, 소월노 등 문주와 방주들도 포함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지?”

“적의 습격이다. 적의 습격이 있는 거 아닌가? 얼른 모든 이를 불러 깨우게.”

“이렇게 무서운 현상이 어쩜 이렇게 성스럽게 온 거지? 설마 3품인가?”

“지종 도사의 복수 아닌가!”

고수들은 심지어 미처 촛불을 켤 틈도 없이 방에서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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