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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561화 (594/712)

561화. 의혹을 품다

“저는 조금 이따가 견융산에 다녀오려고 합니다. 술 마시고 고기도 먹고 여인과 잠도 자려고요. 대장은 무슨 계획입니까?”

허칠안은 빙그레 웃으며 남궁천유를 쳐다보았다.

남궁천유는 정교한 미간을 찌푸리더니 피식 웃었다.

“강호 조직에 무슨 접대할 일이 있다고.”

허칠안은 웃음을 거두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이미 은라가 아니라고요.”

남궁천유는 눈빛의 농담과 경시를 서서히 거두었다. 마치 대화할 흥미를 잃은 듯했다.

그는 한참 뒤에 태연하게 말했다.

“구경하러 가지.”

‘엇? 이거 남궁 둘째 형의 스타일 같지가 않은데. 설마 나를 걱정하나? 무림맹이 짠 홍문연(*鴻門宴: 초청객을 음해할 목적으로 차린 연회)일까 봐?’

허칠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 * *

운무가 감도는 가파른 견융산은 검주의 유명한 명승지였다. 이곳은 초목이 우거져 쓸쓸하면서도 적막한 광경이었다. 산허리부터 시작해서 뜰, 각루가 바둑알처럼 붙어 있었는데 산꼭대기까지 길게 뻗어 나갔다.

“견융산은 검주의 명승고적입니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웅장하고, 그 옆의 봉우리는 수려하지요. 주봉에는 수십 장(丈) 길이의 거대한 폭포가 있는데 우기에 홍수가 나면 설령 6품 고수라고 해도 폭포의 침식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듣자 하니 무림맹 본부에 팔천 기병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해 중원을 놓고 쟁탈전을 벌인 무사의 친혈육 부하들이지요.”

허칠안은 산기슭의 높고 큰 패방(牌坊)을 지나친 뒤 혀를 내두르며 개탄했다.

“팔천 기병이면 검주를 소탕할 수 있겠군요. 왜 이렇게 수년간 조정은 무림맹의 존재를 줄곧 용인했을까요?”

남궁천유는 그가 재잘거리는 걸 들으면서도 대부분 화제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마지막 화제를 듣더니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해 그 필부와 고조 황제가 약조했기 때문이네.”

“무슨 약조요?”

허칠안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어찌 알겠는가. 의부님께서는 말씀해 주지 않으셨네.”

남궁천유가 그를 흘겨보았다.

허칠안은 계속해서 잡담을 늘어놓았다.

“검주 만화루의 미인은 하나같이 자태가 아름답던데 데리고 가서 첩으로 삼을 생각은 없으신가요? 소 루주가 아주 좋아할 겁니다.”

남궁천유는 아예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만약 제가 소 루주를 경성으로 데리고 돌아가 첩실로 삼을 수 있다면, 완벽하겠어요.”

“자네는 장가가지 않은 듯한데 만약 여전히 야경꾼 관아의 은라였다면, 강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건 적합하지 않았지. 지금이라면 그녀가 자네 본처가 된다 해도 아주 여유롭네만.”

남궁천유가 말했다.

“바람직하지 않아요, 바람직하지 않아.”

허칠안은 연신 손사래를 쳤다.

“왜지?”

남궁 미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본처의 자리는 임안 마마나 회경 마마에게 남겨놓을 겁니다.”

허칠안은 진지했다.

“꺼지게!”

남궁천유가 화를 냈다.

‘못 믿겠으면 말아라…….’

허칠안은 괜히 구시렁거렸다.

* * *

이내 두 사람은 견융산 주봉의 안뜰에 이르렀다. 그들은 무림맹 관사의 통전을 거친 후 응접실로 안내받았다. 응접실에는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위엄한 자태의 자색 장포 맹주 조청양이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조청양이 간단하게 인사말을 나눈 뒤 말했다.

“남궁 금라는 잠시 기다리십시오. 허 은라와 따로 할 얘기가 있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없이 앞으로 나가 응접실을 떠났다.

* * *

허칠안이 그의 뒤를 따라 같이 나가서는, 생활 구역을 지나 뒷산을 향해 가니 건축물들과 서서히 멀어졌다.

“선조께서 그대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조청양은 그를 데리고 밀림으로 들어가더니 오솔길을 따라 깊이 들어가며 말했다.

“안심하십시오. 선조께서는 흉악하게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허 은라의 사적을 들으신 뒤 아주 관심을 가지시더군요.”

허칠안은 우선 스스로 반성하였다. 감정이 준 옥패를 찼고, 신수는 깊이 잠들었다. 그는 지금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허 색마였다.

그러니 그가 대빵을 좀 만난다고 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을 터였다.

무엇보다 상대는 무사였으니, 약간 작은 문제가 있다고 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었다.

사실 그는 연회에 참석하러 견융산에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요행 심리를 안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 그는 무림맹 선조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훗, 나는 역시나 대기운이 있는 사람이야…….’

그는 복잡한 심정으로 자신을 조롱했다.

조청양은 밀림 사이 오솔길을 일주향 동안 왔다 갔다 하다가 그를 데리고 거대한 산 벽 앞에 이르렀다. 허칠안은 방금 밀림에서 빠져나온 탓인지 괜히 솜털이 곤두서며 두피가 저렸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위험의 근원을 쳐다보았는데 벼랑 위에 거대한 괴수가 머리를 축 늘어뜨린 상태였다. 괴수는 물 항아리 같은 선홍색의 흉악한 눈으로 두 사람을 그윽하게 주시했다.

그 괴물은 칠흑 같은 온몸에 굵고 짧은 털이 자라난 상태여서 형상은 개처럼 보였지만, 사람과 유사한 얼굴이었다.

‘기이한 짐승 견융이다……. 견융산이 이로 인해 이름이 붙여졌지……. 아주 강한 이류(異類)다. 이길 수 없겠어…….’

허칠안은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이때 견융이 머리를 움츠리더니 절벽으로 사라졌다.

“견융은 무림맹의 수호 신수(神獸)로, 그해 선조를 따라서 사방으로 출정을 나가 싸웠습니다. 마치 영룡과 인황처럼 말이죠.”

조청양은 미소를 지었다.

“영룡은 알 테지요. 경성에서 한 마리 키우고 있지요. 상서로운 기운을 삼켰다가 내뱉는 최상급 기이한 짐승입니다. 허나 그저 황실의 인친과 가깝지만요.”

‘이렇게 확실하게 설명할 필요 없어. 그건 그저 비천한 아부쟁이일 뿐이야…….’

허칠안이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그는 조청양을 따라 절벽의 석문 앞에 멈춰서 자색 장포의 맹주가 공손하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선조님, 허 은라가 도착했습니다.”

석문 안에서 나이 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뼈대가 튼튼하고, 신비로우며 함축미가 있군. 나쁘지 않아.”

허칠안은 내친김에 읍을 올리며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나이 든 목소리가 다시 문 안에서 울렸다.

“내가 자네의 일을 들었네. 똑똑한 자는 최대한 빨리 경성을 떠나야 하지. 우리 무림맹에 와서 일해볼 생각이 있는가? 이 몸이 자네를 제자로 거둘 수 있네. 허허, 자네는 이미 행동으로 자신의 품성을 증명했거든. 몇 년 더 수련하면 무림맹 다음 맹주로서도 차고 넘치겠어.”

‘어째 모든 사람이 내 아빠가 되고 싶어 한담…….’

허칠안은 의젓하게 거절하였다.

“경성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또한, 저는 이미 사부님이 계십니다.”

“위연이겠지.”

석문 안의 노인이 일침을 가했다.

허칠안은 말없이 있었다.

“자네 뭐 내게 묻고 싶은 게 있나?”

무림맹 선조는 아주 소탈하게도 제자가 되는 문제에 얽매이지 않았다.

‘선배님, 아주 도가 트셨네요.’

허칠안은 마침 의문점이 좀 있었기에 바로 입을 열었다.

“저는 선조님에 대한 권종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해 고조 황제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강자였다는 걸 압니다. 육백 년을 유구하게 지내오면서 고조 황제는 일찍이 돌아가셨는데, 선조께서는 어찌 나라와 나이가 같을 수 있습니까?”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침묵이었다.

허칠안이 상대방이 대답하지 않을 거라고 짐작했을 때, 석문 틈에서 나이 든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자네의 지금 품계로 이런 일들은 등급이 너무 높네. 사실 자네가 알게 하면 안 돼.”

몇 초간의 침묵 후, 무림맹 선조가 말했다.

“대봉 황실에는 고수가 아주 많은데 그중에는 고조 황제, 무종 황제 그리고 진북왕 같은 인물이 부족하네. 하지만 그들 중 지금까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 이유를 아는가?”

“제 의문을 풀어 주십시오.”

“기운이 몸에 달라붙은 자는 오래 살 수 없네.”

이 대답은 묵직한 망치로 허칠안의 머리를 내리친 듯했다. 그는 머리가 ‘웅웅’ 울렸다.

“무슨 이유입니까?”

그가 중얼거렸다.

“그건 나도 모르네. 어쩌면 천지 규칙일지도. 구체적인 연유는 유가나 사천감의 감정에게 가르침을 청해도 되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유가가 이 비밀을 안다니…….’

허칠안은 눈동자가 수축하더니 놀랐다.

“그래서 유가 성인이 정말 죽었습니까?”

그동안 허칠안은 마음속으로 줄곧 유가 성인이 사실은 죽지 않았고 그저 스스로 죽은 척하는 것뿐이라고 추측했었다. 어쨌거나 품계를 초월한 존재인데 어떻게 82세까지만 살겠는가. 모욕 아닌가?

“성인도 예외일 수는 없지.”

노인이 대답했다.

만약 이 선조가 말하는 게 진짜라면, 성인은 여태껏 살아있을 리가 없었다. 대봉 황실에 오래 사는 강자가 없다는 사실은, 선조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했다.

‘유가 성인이 정말 죽었구나…….’

허칠안은 속으로 애석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동시에 그는 마음속의 의혹을 풀었다. 어쩐지 원경제가 진북왕에게 이렇게 ‘관용을 베풀’었다 했더니! 기운이 몸에 가장 많이 달라붙은 인물을 말하자면, 당연히 황제일 것이다. 그리고 진북왕은 순수한 무사이니 틀림없이…….

“아니야!”

허칠안은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조청양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자네 무슨 일이 떠오른 듯하구먼?”

노인이 말했다.

전봉 무사의 말참견을 허칠안은 들은 체 만 체했다. 그는 눈동자를 내리깔고 얼빠진 표정을 했지만, 머릿속은 펄펄 끓는 물 같았다.

첫째. 기운이 몸에 달라붙은 자는 오래 살지 못한다. 이건 원경제가 진북왕을 신임하는 이유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진북왕은 3품 전봉 무사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기운을 가진 대봉 친왕이니 마찬가지로 오래 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역사가 이미 이를 증명했다.

따라서 원경제가 그토록 진북왕을 신임하는 데는 배후에 남모르는 이유가 더 있을 터였다.

둘째. 원경제는 한 나라의 군주로 귀한 몸이었으니 이 비밀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기운이 몸에 달라붙으면 장수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 여전히 20년간 끊임없이 도를 닦으며 장생을 갈망해 왔다. 여기에는 패러독스가 존재했다.

설마 그는 자신이 고조 황제나 무종 황제보다 더 우수하리라고 여겼을까? 설마 그는 유가 성인조차 거역할 수 없는 천지 규칙인데, 일개 원경이 유가 성인보다 더 뛰어나다고 여겼나?

원경제 이 자는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지혜로웠다.

생각이 분분한 사이, 그는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선배님은 원경제가 도를 닦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노인이 침음하더니 말했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장생할 수 있으면서 용의에 앉을 방법을 개척할 거라고 여기는 모양이지. 허, 그를 돕는 자는 아마 인종 도사겠지.”

‘낙옥형일 리는 없겠지…….’

허칠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이모를 편애해서가 아니라, 사소한 부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원경제가 처음 도를 닦을 때는 그 스스로 길을 모색하였다. 그는 몇 년 후에야 낙옥형을 국사로 봉하고, 인종을 국교로 봉했다.

허칠안은 명색이 경성 토박이로서 이 점을 아주 똑똑히 기억했다.

‘만약 낙옥형이 아니라면 누구지? 음, 낙옥형이 암암리에 원경제가 도를 닦도록 꾀어냈다는 걸 배제하지 않아야겠어. 경성에 돌아간 뒤에 위 공에게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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