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9화. 고양이의 본능
소월노는 깊이 숨을 들이쉬더니 사뿐사뿐 나와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도사께서 가르쳐주시지요. 만약 도사께서 조 맹주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무림맹의 은인이십니다.”
양최설이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
“도사께서는 악감정은 잠시 제쳐두고, 조 맹주의 목숨을 구해주십시오.”
부정문은 즉시 태도를 바꾸고 금련 도사를 주시하며 말했다.
“늙은 도사, 아니, 도사님. 만약 조 맹주를 살려주실 수 있다면, 오늘 저 부정문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도사님을 빈틈없이 보호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즉시 맞장구치며 금련 도사에게 조 맹주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정중하였다.
금련 도사는 고개를 저었다.
“자네들이 부탁해야 할 자는 내가 아니라 허칠안이네.”
소월노는 아름다운 눈을 살짝 뜨더니 의아해한 기색을 내비쳤다.
“허 은라요?”
‘이, 이게 어떻게 또 허 은라와 관계가 있는 거지? 그는 그 자리에도 없었는데…….’
문주와 방주들은 어리둥절하여 서로 쳐다만 보았다.
“도사님, 빨리 말씀하십시오. 급해 죽겠습니다. 왜 허 은라가 맹주를 구할 수 있지요?”
부정문은 궁금하면서도 다급해했다.
다른 사람들도 금련 도사를 뚫어지게 주시했다.
“인종 도사는 성정이 단호하고 똑 부러져 적과 싸울 때 지금껏 사정을 봐준 적이 없네. 그러나 빈도가 방금 그녀가 조 맹주의 영혼을 빨아들여 데리고 가는 걸 직접 보았네…….”
지종 도사들 역시 방금 인종 도사는 단호하고 똑 부러져 절대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소월노는 이 말을 듣자 눈빛을 반짝이더니 마음속으로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허 은라 때문입니까?”
금련 도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이 허 은라가 인종 도사를 부르기 전에 이미 조 맹주를 위해 아쉬운 소리를 했을 걸세.”
부정문은 성격이 급하여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갑시다, 허 은라를 찾으러 갑시다.”
하지만 양최설이 그를 막아섰다. 그는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지종과 회왕 밀정을 훑어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허 은라는 의협심이 강하고 성품이 고결하네. 만약 맹주의 영혼이 그의 손에 있다면, 우리가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어.”
천기문의 문주가 맞장구쳤다.
“맞네, 지금은 이 도사님을 보호하자고.”
무림맹 사람들은 맹주를 ‘잃었다가 되찾은’ 기쁨에 젖었다. 하지만 그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지종 도사와 회왕 밀정을 경계하면서 천천히 금련 도사에게 다가갔다.
바로 이때 기운이 재빠르게 다가와 천지회 사람들을 향해 돌진하였다.
“빌어먹을!”
천기가 슬그머니 욕을 퍼부었다. 그는 일을 이렇게 처리하면 안 된다는 걸 잘 알았다.
만약 무림맹 사람들만 있다면, 그들은 지종 도사와 손을 잡고 한 판 붙을 수 있었다. 하지만 초원진과 이묘진 등이 더해져 사투를 강행한다면 죽는 길밖에 없었다.
“가자!”
천추는 더 단호하게 직접 부하들을 데리고 다른 방향으로 후퇴했다.
지종 요도들이 그 뒤를 바짝 따랐다.
“그들을 막아라!”
천지회와 무림맹에서 동시에 누군가 소리쳤다.
이묘진은 비검을 밟고 앞장섰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검은색이 벗겨지더니, 눈동자가 순수한 유리 색으로 바뀌었다. 그녀가 도망치는 무리를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순식간에 회왕 밀정과 지종 요도들은 자신의 옷에 붙잡혔고, 그들의 비검과 패도는 잇따라 반란을 일으켰다. 그것들은 스스로 칼자루에서 뛰쳐나와 주인에게 칼을 겨누었다.
다행히 이런 공격은 강한 편이 아니었다. 밀정과 지종 제자들 역시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니고 있기에 다친 이도 있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이묘진이 원하는 효과는 이미 달성했다.
쭉쭉……. 천추는 기기로 외투와 바지를 찢어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복대를 찬 그녀는 마치 암표범처럼 이묘진에게 달려들었다. 천추는 천종 성녀에게 접근하여 그녀를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이고자 했다.
그러나 어디 이묘진이 그녀가 이렇게 쉽게 접근하게 하겠는가. 그녀는 비검을 밟고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고도를 높여 비행하였다.
천추는 계속해서 추격하는 대신, 관성을 무시하고 갑자기 돌아서서 도망쳤다.
허칠안이 달려드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자식은 막 5품으로 승직했기에 근접전 능력이 아주 강했다. 만약 그와 얽히면 정말 달아날 수가 없었다.
착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천추는 이 자식의 눈이 반짝이는 걸 보았다. 그는 복대를 찬 자신과 한바탕 몸싸움을 벌이고 싶어 안달 난 듯했다.
무림맹 쪽, 소월노 등은 바짝 추격했다. 만화루의 소 루주는 양최설 등보다 훨씬 더 몸놀림이 민첩했기에 앞장서서 지종 요도를 가로막았다.
적련 도사는 휙휙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르는 비검으로 맞이하였다.
소월노의 소매 속에서 은색 살 부채가 미끄러져 나왔고, 가볍게 비검을 받아쳤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얼굴에 홍조를 띠더니 비틀거렸다.
적련 도사는 냉소를 짓더니 소매를 한 번 휘둘러 그녀를 날려 보냈다.
소월노가 든든한 품에 부딪혀 안긴 순간, 귓가에 다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 루주, 괜찮습니까?”
그녀가 혼미하면서도 촉촉한 눈을 치켜뜨자 준수하고 남성적인 얼굴이 보였다. 그는 바로 복대를 입은 천추와 육탄전을 벌이지 못하는 것이 한인 허칠안이었다.
소월노는 감전된 듯 그의 품에서 튕겨 나왔다. 그녀는 얼굴이 취한 듯 벌겋게 달아올랐으나 애써 정상적인 목소리를 유지하며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소. 고맙네, 허 은라.”
‘지종 요도는 사람의 마음을 더럽히고, 욕망을 건드리는 수법이 아주 강하군…….’
허칠안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남녀 간의 정사를 오래 경험한 남자로서 소 루주의 이상함을 한눈에 알아챘다.
‘방금 적련의 그 검이 만약 내 몸에 맞았다면, 내가 가볍게 허리를 꼬았을 테고 음, 생각도 하기 싫군. 끔찍하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람들을 거느리고 계속해서 추격했다.
그가 막 월씨 산장까지 쫓아가니 지종 도사가 회왕 밀정을 데리고 검을 부려 고공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뻥!
활시위 소리가 맑고 힘 있었다. 활시위를 당기는 데에 능한 무림맹 고수가 나타나서는 비검 두 자루와 제자 네 명에게 활을 쏘았다. 그가 세 번째로 활시위를 당길 때 지종 제자들의 비행 고도는 이미 화살의 사정 거리를 넘어섰다.
지종의 도사들은 검을 부려 비행할 수 있었고, 그들 측에는 이묘진과 초원진만이 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전투력으로는 지종의 모든 사람을 잡을 수 없는 게 확실했다.
‘우리 편에 고수 쪽수가 상대보다 많지만, 무림맹은 전부 무사다…….’
허칠안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멀리 바라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들이 먼지투성이가 된 얼굴로 경성에 돌아가 원경제를 빡치게 해도 괜찮겠어.”
“허 은라…….”
소월노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그를 현실로 다시 끌어들였다. 허칠안은 검주의 보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조 맹주의 영혼은 저한테 있습니다. 제가 지금 바로 영혼을 돌려보내겠습니다.”
무림맹 사람들은 기대에 찬 얼굴을 했다.
“야옹…….”
이때 황갈색 고양이가 폐허를 가로질러 먼 곳에 멈춰선 뒤 푸른 눈으로 사람들을 그윽하게 쳐다보았다.
이 고양이가 운 좋게 죽지 않고 화를 피했는지, 아니면 막 밖에서 돌아와 자신의 집이 방금 폐허가 된 걸 발견했는지 알 수 없었다.
허칠안이 조청양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무림맹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향낭을 열고 조청양의 영혼을 풀어주어 신체로 돌아가도록 유도했다.
바로 이때, 금련 도사의 미간에서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금빛과 검은 연기가 서로 뒤얽힌 혼체(魂体)가 튀어나오더니 조청양의 육신을 빼앗으려 했다.
변화가 너무 빨랐다. 사람들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게다가 무사는 도문 음신의 탈사(*奪捨: 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도망치는 것)를 막기 어려웠다. 효과적인 공격 수단이 부족했다.
사람들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야옹……!”
황갈색 고양이가 비명을 지르더니 등을 구부리고 털을 곧추세운 뒤, 금빛과 검은 연기가 서로 뒤얽힌 혼체를 보며 입을 일그러뜨렸다.
고양이는 음물에 아주 민감했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던 순간, 그 혼체가 눈에 띄게 굳어졌다. 그런 뒤 본능에 기인한 듯 방향을 틀어 황갈색 고양이 몸속으로 들어갔다.
황갈색 고양이는 갑자기 동작을 멈추더니, 등을 구부린 자세를 유지하면서 몇 초간 굳었다가 별안간 처참한 비명 소리를 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황갈색 고양이의 한쪽 눈동자가 시커멓게 변하더니 계속해서 순수한 적금색으로 물들었다. 그 모습이 괴이하면서도 신성해 보였다.
황갈색 고양이의 비명은 처량하면서도 쉰 듯한 소리였다. 사지를 마구 뻗대는 모습이 큰 고통을 겪는 듯했다.
허칠안은 더는 지체하지 않고, 손가락을 튕겨 조청양의 영혼을 미간에 넣은 뒤 돌아서서 황갈색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백련 도사는 그를 막아서더니 모든 제자를 둘러보면서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멍청하게 가만히 있지 말고 얼른 태상(太上) 진법을 걸어 공덕을 도송(渡送)해라.”
그녀는 말을 하면서 금실을 엮어 만든 줄을 내던져 황갈색 고양이를 꽁꽁 묶었다.
황갈색 고양이의 비명은 점점 더 처절해졌다.
천지회 제자들은 꿈에서 깨어난 듯 우르르 몰려가 황갈색 고양이를 가운데에 둘러싼 뒤 손으로 도결(道訣)을 빚고 입으로 주문을 외웠다.
“화와 복은 오직 사람이 스스로 부르는 것이니, 선과 악의 열매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네. 천지에는 선악을 관장하는 신이 있으니…….”
처음에는 소리가 제각기 소란스러웠으나 점점 같은 소리로 변했다. 잠시 후에는 온 천지에 주문을 읊는 소리만이 남은 듯했다.
허칠안은 천지회 제자들의 미간에서 아침 햇살 같은 금빛이 넘쳐흐르는 걸 똑똑히 보았다. 금빛이 봄비처럼 부드럽게 황갈색 고양이를 향해 쏟아졌다.
황갈색 고양이의 왼쪽 눈의 형형한 금빛이 오른쪽 눈의 어둠을 압도하였다. 고양이는 몸부림과 비명을 서서히 멈추더니 조용히 바닥에 엎드리고는 완벽하게 안정을 찾았다.
다른 한편, 조청양은 막 의식을 회복하였다. 그는 겹겹이 울리는, 웅장하게 읊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좀 망연하게 주변을 살핀 뒤 무림맹 사람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나는 결국 인종 도사에게 패배하여 혼비백산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는 순간 그전에 겪은 일이 환각인지 진실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무림맹 사람들은 그가 깨어난 걸 보자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했다.
만화루의 루주가 아름답게 말했다.
“조 맹주님, 허 공자가 맹주님을 지켰습니다. 국사는 그저 맹주님의 영혼을 빨아들인 거였고, 방금 허 공자가 맹주의 영혼을 가지고 왔습니다.”
양최설 등이 잇따라 설명했다. 그들은 말속에 허 은라의 ‘사정’이 중요한 작용을 하여 국사가 그를 철저하게 없애지 않고 살길을 열어주었음을 암시했다.
무림맹 사람들이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채 허칠안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감격과 인정이 충만했다.
그들은 비록 이번에 연밥을 손에 넣지 못하긴 했다. 하지만 싸움 끝에 정이 붙는다는 말처럼 무림맹과 허 은라는 친분을 맺었다. 암암리에 허칠안을 숭배하던 사람들은 마음이 뜨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