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558화 (549/712)

558화. 국사 (2)

* * *

허칠안의 눈앞에 눈부신 빛이 반짝이더니, 낙 미인의 아리따운 몸이 금빛에서 현화(現化)하였다.

“국사!”

허칠안의 얼굴에는 희색이 역력했다. 그녀가 나타났다는 건 전투가 이미 끝났고, 승리는 우리 편이라는 걸 의미했다.

낙옥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아랫배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몇 가지 물건이 빛을 뚫고 나왔다. 각각 연밥, 성인 팔뚝 길이만 한 연뿌리 한 마디, 손바닥 길이만 한 연뿌리 한 마디였다.

이 연뿌리는 잘린 것이었다.

“이 자의 영혼이 내 수중에 있네. 자네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가?”

낙옥형이 손바닥을 펼치니 그 안에는 포켓형 소인이 떠다니고 있었다. 얼굴은 다소 흐릿했으나 어렴풋이 조청양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국사,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깔끔하게 3품을 해결하시다니요. 1품 달성이 머지않아 실현되겠군요. 시야를 구주에 두어도 국사 같은 위인을 다시는 찾을 수 없지요.”

허칠안은 아낌없는 말솜씨를 발휘해 다채롭고 맥락 있는 아부를 떨었다.

“3품의 힘을 지니고 있지만, 원신은 여전히 4품이었다. 심검 한 번에 혼비백산했지.”

낙옥형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이런 상대를 물리친 게 자랑할 가치가 있는 일은 아닌 듯했다.

그녀가 잠시 멈칫하더니 물었다.

“어떻게 처리할까?”

‘악, 국사가 이렇게 내 의견을 중시한다고? 좀 몸 둘 바를 모르겠는걸…….’

허칠안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우선 그를 제게 주시는 편이 낫겠습니다. 이 자는 저에게 은혜를 베풀었거든요.”

조청양은 다섯 손바닥으로 그를 쳐 5품 화경에 들어서게 했다. 이 은혜는 갚아야 했다.

낙옥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조청양이 어떻게 되든 개의치 않았다.

“이 분신은 이미 고갈되었으니 본좌는 먼저 돌아가겠네. 자네들은 알아서 조심하게.”

그녀는 말을 마치고 순수한 금빛이 되어 흩어졌다.

“금련에게 이 연뿌리를 구걸하게…….”

허칠안은 금빛이 흩어지기 바로 전에 또 낙옥형의 전음을 받았다.

‘연뿌리를 구걸하라고? 국사가 내게 준 임무인가?’

허칠안은 어리둥절했다.

* * *

월씨 산장 내 전투는 산사태와 해일 같은 움직임을 선보였으나, 그리 오래가지 않고 일각이 채 되지 않아 끝났다.

각 측 군대는 사방으로 흩어진 뒤 한참을 더 기다렸다. 하지만 시종일관 기척이 없었다. 그들은 더는 전투가 발발하지 않는 걸 보고는 조심스럽게 되돌아갔다.

4품 고수가 선봉을 맡았으며 그 뒤를 따르는 부하들은 멀리 쳐져 있었다.

무림맹의 문주와 방주는 함께 모여 천천히 산장으로 들어갔다. 지종은 회왕 밀정과 먼 곳에서 호응하며 진영을 구축했다.

소월노 등은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들은 물론 자신들의 맹주를 믿었다. 다만 상대측에서 보낸 건 분신이긴 해도 베테랑 2품이었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승패를 헤아릴 수 없었다.

“안심하게. 조 맹주는 3품 고수야. 인종 도사가 아무리 신통하다고 해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맹주를 물리치기란 불가능하네.”

부정문이 침착하게 입을 뗐다.

“하지만 전투는 확실히 끝났어.”

천기문의 문주가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조 맹주가 이겼네.”

소월노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보기 좋게 눈을 깜박였다.

그녀가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같은 급으로 놓고 봤을 때 무사가 가장 죽이기 어려운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맹주와 인종 도사의 분신이 모두 3품인 이상, 맹주를 물리치는 일은 단시간 내에 할 수 있는 게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월씨 산장 깊은 곳의 전투는 이미 끝났다. 결과가 어떠한지는 가히 짐작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양최설이 개탄했다.

“맹주가 새로 3품으로 승직하여 국사의 분신을 물리쳤네. 이 일이 퍼져나가면 우리 무림맹 그리고 맹주의 명성이 한껏 높아질 거야.”

“대봉의 13개 주(洲)의 강호가 우리 무림맹을 지존으로 받들겠군.”

다른 문주가 덧붙였다.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그들의 마음도 가뿐해졌다. 다들 더는 긴장하지 않았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젠장…….”

먼 곳에 있던 천기가 은근슬쩍 욕을 했다. 국사 때문이 아니라 조청양이 3품에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이는 결코 조정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강호 세력이 강할수록 이 지역에 대한 조정의 장악력은 더 약해졌다.

태평성대일 때는 무방하지만, 일단 난세가 도래하면 단언컨대 이 지역이 가장 먼저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 * *

그들이 무너진 집들을 지나고, 난잡하게 어질러진 뜰을 지나 일각 가까이 걸으니 드디어 차가운 연못가에 다시 돌아왔다. 저 멀리 자색 장포의 사람 형체가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종 요도 중 누군가가 피식 웃었다.

양최설 등은 얼굴에 희색이 막 돌기 시작하다가 갑자기 안색이 변했다. 십여 명의 문주와 방주들은 당황하여 노란 얼굴로 뛰어가 조청양 앞에 섰다.

조청양은 이미 호흡, 심장 박동 등 모든 생명 반응이 사라진 채였다.

지종 요도는 조청양의 원신이 소멸했다는 걸 미리 눈치채고 고의로 비웃는 소리를 냈다.

“맹, 맹주님!!!”

천기문의 문주가 큰 충격을 받아 슬피 울부짖었다. 이 결과는 그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어찌 이럴 수 있는가, 어찌 이럴 수 있어!”

부정문은 두 무릎에 힘이 풀리면서 조청양의 앞에 쓰러졌다. 그가 오른 주먹으로 끊임없이 바닥을 두드렸다.

“조 맹주가 몰락했다니……!”

소월노의 가냘픈 몸이 휘청했다. 그녀의 얼굴에 조금씩 핏기가 사라졌다. 면사 아래 본래 불그스름했던 입술 역시 같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은 조청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거대한 망연함과 상실감 그리고 당황스러움이 솟구쳤다.

무림맹의 맹주가 월씨 산장에서 쓰러졌다. 게다가 새로운 맹주 후보는 아직 정해지지도 않았다. 조청양이 아직 젊고 기력이 왕성한 전성기였기 때문이었다.

이는 검주의 각 문파 및 무림맹 본부가 맹주 자리를 쟁탈하는 혼란에 빠질 거라는 의미였다.

“무림맹이 성립된 지 육백 년인데 맹주가 도중에 죽은 사례는 셋이 되지 않네. 이걸 어찌하면 좋은가? 어찌하면 좋아?”

묵각 각주 양최설은 입술이 덜덜 떨렸다.

이때 무림맹의 제자, 방(幇) 사람들이 달려와 이 광경을 보았다. 통곡 소리가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무림맹 본부의 제자들은 잇따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펑펑 울었다.

그들은 얼마 전만 해도 조청양이 3품으로 승직하자 기뻐하며 깡충깡충 뛰었다. 그들은 무림맹의 휘황찬란한 전성기가 도래했고, 그들의 세력과 명망이 한 층 더 높아지리라 여겼다.

그런데 고작 얼마나 지났다고?

상황이 급박하게 변했다. 조 맹주가 몰락하였고, 희소식이 흉보로 변했다. 그들은 산꼭대기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쯧쯧, 낙옥형은 지난날과 다름없이 살벌하고 과단성 있어.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는군.”

백발의 적련 도사가 괴상 야릇하게 말했다.

조청양이 죽은 이상, 그들은 달리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무림맹의 각 파벌은 분노를 머금고 나섰다. 이는 마침 그의 뜻에 부합하였다. 지종의 연화 도사는 한바탕 사람들을 살육하여 검주를 피로 물들이려 했다.

“쯧, 구색연화가 보이지 않는군.”

천기는 잠시 사방을 수색했으나 연밥을 발견하지 못했다.

천추가 지종의 도사들에게 전음했다.

“구색연화는 틀림없이 국사가 가지고 갔을 것이네. 그녀가 분신으로 올 수는 있어도 되돌아갈 수는 없지. 연밥은 반드시 허칠안의 손에 있을 테지. 가세. 가서 허칠안을 죽이고 연밥을 빼앗자고.”

그녀는 전음을 마치고 무림맹 사람들을 꾀어냈다.

“국사의 분신은 허칠안이 불러온 것이네. 그는 국사가 2품 고수임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여전히 불러들였지. 조 맹주를 사지로 몰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밝혔어. 가엾은 조 맹주! 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고 직접 그가 5품으로 승직하게 도와줬거늘. 결과적으로는 은혜를 원수로 갚았어.”

무림맹 사람들은 서로 매섭게 쏘아보며 그녀를 표독스럽게 노려보았다.

천추는 콧방귀를 뀌더니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말을 이어갔다.

“왜? 설마 내 말이 틀렸는가? 무림맹의 여러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반성하게나. 허칠안이 은혜를 원수로 갚지 않았는가? 조 맹주가 억울하게 죽지 않았는가?”

무림맹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닥쳐라!”

양최설이 화가 나 노발대발하며 소리쳤다.

“다시 한 번 요사스러운 말로 이들을 현혹하면, 이 몸이 단칼에 너를 벨 것이다.”

천추가 냉소를 지었다.

“오기만 해라!”

회왕 밀정들이 칼자루를 쥐고 잇따라 앞으로 나섰다.

이때 적련 도사가 아무런 낌새도 내지 않고 나섰다. 그의 소매에서 비검 한 자루가 튀어나와 먼 곳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금련 도사를 기습했다.

윙!

비검이 보이지 않는 공기 벽에 부딪혀서 튕겨 돌아오더니 허공에서 춤을 췄다.

“여러분, 우선 우리가 이 늙은 도사를 죽이도록 도와주고, 이따가 허칠안을 찾아가 결판을 내는 게 어떻겠나?”

적련 도사가 소리 높여 말했다.

그가 말하고 있을 때, 지종 도사들은 끊임없이 비검을 조종하여 공기 벽을 공격하였지만 이 방어를 뚫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지종의 요도들은 금련의 진짜 신분을 잘 알았다. 지금 도사들은 그와 뒤엉켜, 좀처럼 승부를 가리기 어려웠다. 사실 그들이 이 교착 상태를 타파하는 일은 간단했다. 그들은 그저 금련의 육신을 베면 되었다.

이렇게 살펴보니 금련의 잔혼은 기반이 없어 기둥이 될 수 없었다. 이 기회를 틈타 중상을 입히거나 그를 없애버려야 했다.

만약 그들이 무림맹 사람들을 진영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계획이었다.

천기가 바로 맞장구쳤다.

“맞네. 모두 사소한 일로 고집 부릴 필요 없네. 우선 이 늙은 도사를 죽이고 얘기하세. 이 일은 전부 그 때문에 벌어졌으니 그더러 조 맹주와 같이 묻히라고 하지.”

그는 아주 영특하게도 허칠안을 상대하는 일은 언급하지 않았다. 무림맹 사람들을 망설이게 하고 반감을 일으킬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직설적인 성격의 부정문이 욕을 퍼부었다.

“개 같은 연밥 같으니라고. 만약 월씨 산장의 그 자식들이 없었다면, 맹주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몸이 맹주와 함께 늙은 도사를 묻어야겠다.”

이때 금련 도사가 눈을 뜨고 무림맹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조 맹주는 아직 죽지 않았네.”

부정문은 이 말을 듣더니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의심했다.

“이 추악한 도사! 방금 뭐라고 했는가?”

양최설과 소월노 등도 놀라 움찔했다.

“원신이 소멸했는데 어찌 살아있을 수 있단 말이지? 어이 늙은 도사, 사람을 속이지 말게.”

한 문주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확실히 떨리고 있었다.

“당연히 살 수 있지. 빈도는 자네들을 속이지 않았네.”

금련 도사가 말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는 흑련의 분신을 제압하고, 이 기회에 입을 열어 무림맹 사람들이 그를 한동안 보호하게끔 설득할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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