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554화 (545/712)

554화. 주먹을 뻗다 (1)

양측은 대치하면서 움직이다가 이내 차가운 연못가에 이르렀다. 그들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건 연못 중앙에 노을빛이 하늘거리는 구색연화였다.

연못가에는 도사 하나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차가운 연못으로 통하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 위에는 한 젊은이가 검은색 경장을 입고 말총머리를 높이 묶은 채 서 있었다. 그는 한 손에는 칼자루를 쥔 채 조청양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는 기세가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이번 관문은 진법이 없는 듯하군? 허 은라는 어떻게 지킬 작정인가?”

조청양의 온화한 미소에는 반드시 승리할 거라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순식간에 ‘관중’ 수백 명의 모든 시선이 일제히 허칠안을 향했다.

조청양을 떠난 허칠안의 시선은 가장 먼저 그의 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양최설, 부정문 등에게로 향했다. 물론 거기에는 아름다운 자태의 미인 소월노도 있었다.

그는 무림맹 사람들을 스쳐 지종의 연화 도사들 및 검은 장포를 두르고 가면을 쓴 회왕 밀정들을 살폈다.

밀정들은 가면을 써서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에서는 적나라한 증오심이 불타올랐다.

바로 이 허칠안이 경성에서 그렇게 떠들썩하게 소란을 피워 폐하가 어쩔 수 없이 죄기소를 쓰게 압박하였고, 회왕은 사후에 지위도 명예도 잃어버렸다. 그는 유골을 황릉에 묻을 수 없었고, 위패도 왕실의 종묘에 배치할 수 없었다.

초주의 신비로운 고수는 하늘을 찌를 듯한 대단한 위세로 혼자서 적 다섯을 상대하였다. 회왕은 그의 손에 죽었다. 밀정들은 증오심으로 가득 찼으나 원망의 말은 하지 않았다. 약육강식은 본래 이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허칠안의 행위를 본 순간 대단히 분노하여 구역질이 났다. 고작 개미 한 마리일 뿐이었다. 회왕이 살아 있을 때 한 손가락으로 그를 찔러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회왕의 죽음을 등에 업은 채 사방으로 설치고 다니며 일부러 소란을 피우기라도 하듯이 여기저기서 날뛰었다. 그러면서 그는 회왕의 사회적 명망을 짓밟지 않았는가.

그들은 그의 행위가 정말로 가증스럽고 괴로웠다.

연화 도사들은 더욱 적나라했다. 누군가는 허칠안을 훑어보며 비웃었으며 누군가는 냉소를 지었고 누군가는 도발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사방으로 설치고 다니며 소란을 피우는 놈들은 염려할 가치가 없지!”

허칠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시선을 거두었다.

회왕 밀정과 연화 도사들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조 맹주, 연밥이 곧 여무니 거센 풍랑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이곳에는 진법을 설치하지 않았다.”

허칠안은 다시 조청양을 쳐다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너 역시 연밥을 훼손하고 싶지는 않겠지.”

조청양은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원하는 건 연뿌리다. 연밥은 그저 덤인 셈이지. 당연히 있으면 가장 좋고, 없어도 문제없다. 말해보라. 허 은라는 어떻게 겨룰 생각인가?”

허칠안은 허리 뒤춤에 있는 흑금장도를 들어 아무렇게나 옆에 내던졌다. ‘털컥’하는 소리와 함께 칼과 칼자루가 연못가로 떨어졌다.

그는 조청양을 쳐다보면서 아래턱을 치켜들었다.

“기기를 시전하지 않고, 무기를 쓰지 않고, 우리 체술(体術)을 겨뤄보자!”

똑똑하다!

먼 곳에 있던 소월노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렇게 하면 조청양을 그와 가까운 수평선으로 끌어당기는 일과 같았다.

3품 무사는 기기를 시전하지 않으면 강대함을 시전할 도리가 없었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할 때, 조 맹주가 잘하는 건 도법(刀法)과 도의(刀意)였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가장 강한 공격 기술 역시 배제되는 셈이었다.

마지막으로 조 맹주는 허 은라를 좋게 보니 틀림없이 그의 체면을 세워줄 터였다.

강호에 섞여 살아가는 사람은 전부 이렇게 체면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좋다, 체술을 겨뤄보자! 연밥이 여물 때 만약 내가 아직 너를 이기지 못했다면, 연밥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역시나 조청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장외 ‘관중’들은 깜짝 놀랐다. 조청양이 허칠안의 체면을 충분히 세워준 셈이었다. 모두의 앞에서 약조하였으니 약속을 어길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즉, 허 은라가 연밥이 여물 때까지 패하지 않고 버틸 수 있기만 하다면, 조 맹주는 연밥을 차지하지 않으리라는 의미였다.

천지회 제자들은 남몰래 기도하며 허 은라가 오래 버틸 수 있기를 바랐다.

‘금련 사숙이 허 공자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게 정말 묘수였어…….’

추선의는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조 맹주는 파죽지세로 단숨에 관문을 연달아 격파하였다.

그는 초원진이든 이묘진이든 양보하지 않았지만, 허 공자를 마주하더니 이렇게 크게 양보하였다.

허 공자처럼 명망을 누리는 소년 호걸은 세상에 드물었다.

그녀는 허 공자에게 점점 더 빠져들며 그에게 완전히 사로잡혔다.

‘이, 이 조청양이 이렇게 크게 양보할 수 있다니?’

백련 도사는 허칠안의 명망을 과소평가했다는 걸 깨닫고 경악했다.

“설령 체술을 겨룬다고 해도 맹주는 질 수가 없네. 허 은라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봐야겠군.”

부정문이 말했다.

“허 은라가 잘하는 것 역시 도법인 듯한데.”

양최설이 분석했다.

소월노는 두 사람이 나누는 의견을 들으며 부드러우면서도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조 맹주의 신체와 정신은 비할 상대가 없지만, 허 은라 역시 금강불패가 있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체술이 아니라 도법에 능하지. 이렇게 보니 용호상박이겠군.”

이때,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밀정 천추가 냉소를 지으며 참견했다.

“용호상박? 내가 자네에게 알려주지. 허칠안은 그저 6품 무사일 뿐이야.”

그녀가 말을 내뱉자 왈가왈부하는 소리가 떠들썩하게 울렸다.

관전하는 군웅들은 문득 자신들이 허 은라의 품계를 확실히 잘 몰랐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우선 야경꾼의 은라 중에는 8품 연신경도 5품 화경도 있었다. 직급 자체가 품계에 따라 구분되지는 않았다. 게다가 허 은라의 초기 사적에는 운주에서 반란군 수천 명을 홀로 막아선 일도 불문 두법도 있었다……. 이것들 모두 ‘전투’의 단계를 뛰어넘었다.

그들이 유일하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어젯밤에 허 은라가 내력이 신비로운 부잣집 공자를 베어 죽였다는 사실이었다. 상대 자체가 약자가 아니었고, 또 호위를 담당하는 4품 수행원 두 명이 있었다.

따라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허 은라는 4품까지는 아니더라도 5품 화경 정도는 되었다.

“허 은라가 그저 6품이라고? 6품이라면 어떻게 그 부잣집 공자를 죽인 거지?”

“6품이 어떻게 황궁에 난입하여 국공 둘을 납치했지? 그의 헛소리를 들었나.”

“하지만 이 사람들은 조정의 세력이니 틀림없이 허 은라를 속속들이 알 듯한데.”

“이런 얘기를 해서 뭐 하겠는가. 두 사람이 맞붙는 걸 보면 알게 되겠지.”

조청양은 허칠안을 살폈다.

“고작 6품? 이건 좀 의외군.”

그가 수집한 정보 중 최신 정보는 허칠안이 천인 양종의 걸출한 제자를 제압했다는 소식이었다. 비록 그가 유가 법술 서적을 사용했지만, 외부인이 평가하기로 그 자신도 5품인데 차이가 전혀 크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뜻밖에도 6품 무사였다.

허칠안은 대답하지 않고, 태연하게 웃으며 공수했다. 그는 양보한 조청양에게 예의를 차리며 말했다.

“조 맹주님께서 많이 가르쳐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날아오르더니, ‘쿵’하는 둔탁한 소리를 동반하며 맹렬한 무릎 박치기로 직격탄을 날렸다.

그 과정에서 미간에 금빛이 반짝이더니 순식간에 온몸에 퍼져나갔다.

조청양은 한 발 앞으로 내디뎌 자진해서 그를 맞이했다. 그는 왼손으로 허칠안의 무릎 박치기를 막아내고, 오른손 손바닥을 돌려 그의 가슴에 얹었다.

쿵!

허칠안은 거대한 종소리가 퍼지듯이 거꾸로 날아갔고, 사력(卸力)을 다해 몸을 가누었다.

“정말 5품에 이르지 못했군…….”

부정문은 문득 깜짝 놀랐다.

떠들썩한 소리가 단숨에 일었다. 군웅들은 서로의 귀에다 입을 대고 소곤거렸다. 매서운 관찰력을 지닌 자들은 방금 있었던 짧은 접전을 통해 허칠안의 수준을 바로 알아차렸다.

천지회 제자들은 낯빛이 어두워지면서 마음도 무거워졌다.

그들은 도문 체계를 수련했지만 무사 체계 역시 잘 알았다. 무사 체계는 다른 체계처럼 신비롭지 않았다. 이 길을 걷는 자가 실로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5품 화경은 무사 체술의 전봉이었다. 5품 전인 무사의 근접 공격은 강하지만, 다른 체계의 고품 강자를 두려움에 떨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5품 이후의 무사야말로 다른 체계 고품이 두려워할 만한 존재였다.

화경 무사는 육신의 힘을 완벽하게 장악하여 관성을 무시할 수도 있고, 불균형 등을 무시할 수도 있었다. 일단 그들에게 가까이 가면, 맹렬한 공세를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니 바로 승패를 가르거나 특수한 수단으로 다시 거리를 벌려야 했다.

허 은라는 5품에 이르지 않았기에 이 싸움을 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 끌기 따위는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허칠안이 굳건히 서자 조청양이 옆에 나타나 수도(手刀)로 그의 뒷목을 찍는 장면이 머릿속에 저절로 떠올랐다.

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사의 본능에 따라 웅크리고 앉은 뒤 앞으로 뒹굴었다.

그가 동작을 마친 순간, 조청양이 그의 옆에 나타나 수도를 휘둘렀다.

조청양의 공격은 당연히 허사가 되었다. 조청양의 눈에 의아한 빛이 스치더니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가 하늘에서 내려와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조청양이 손을 쓰기 전에 허칠안이 갑자기 비틀거렸다. 그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제대로 서지 못하고 좌측으로 두 걸음 미끄러지더니 완벽하게 공격을 피했다.

“우선 리듬에 적응해야겠다. 그의 공격이 너무 빨라서 약간 따라가지 못하겠군. 주로 피하다가 반격할 기회를 엿봐야겠어…….”

허칠안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예리함으로 앞일을 하나씩 알아갔다. 그는 조청양의 공격 화면을 포착한 뒤 허둥지둥 교묘하게 피했다.

두 사람은 장외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양이가 쥐를 잡는 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드디어 허칠안은 뒤로 젖힌 조청양의 발차기를 피한 뒤에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그는 오른발을 축으로 삼고 매섭게 회전하여 조청양 뒤에 이르렀다.

다음 순간 그는 폭우 같은 공격을 퍼부었다. 주먹질, 무릎 박치기, 팔꿈치 공격……. 그가 한순간에 수십 수를 퍼붓자 조청양의 강철 몸에서 굉음이 났다.

‘이건…….’

소월노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약간 흐리멍덩해졌다. 그녀는 조 맹주가 허 은라의 체면을 살려주려고 고의로 져주는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

“좀 이상하군. 그는 마치 사전에 조 맹주의 행동을 포착하여 효과적인 예측을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부정문이 양손에 천천히 주먹을 쥐고 다소 안달을 냈다.

“보는 내가 다 근질근질하구먼.”

‘그가 어떻게 한 거지…….’

양최설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허 은라가 보여준 능력은 이미 위험에 관한 무사의 직감을 뛰어넘었다. 그는 마치 선견지명의 능력을 지닌 듯했다.

“엇, 그는 5품에 이르지 않았잖나? 어떻게 오히려 조 맹주를 제압하고 때리지?”

“조 맹주가 제대로 하지 않는 거겠지. 어쩌면 허 은라의 체면을 세워주고, 그에게 퇴로를 열어주려는 걸지도.”

군웅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그래도 모두가 이런 이유라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강호에서 섞여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체면을 살려주는 일이었다.

체면도 세워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강호에서 살아가겠는가? 하물며 상대가 정의감이 넘치고 투쟁 정신이 투철한 허 은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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